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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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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43,319

작성
16.07.0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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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8쪽

(22막) 세 개의 오만 (4)

DUMMY

“마찬가지야. 모두 비어있어.”

아버지를 포함한 지휘관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보고서보다는 입으로 직접 전하는 것을 선호하는 올리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의 손도, 입도 아무런 내용을 들고 있지 않았다.

“초소도, 전초기지에도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아. 흔적을 보아하니 급하게 도망친 건 아닌 것 같고, 꽤 오래됐어.”


“.......이상하군.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라면 소대규모의 병력정도는 남겨둬서 우리의 경계심을 유도했을 텐데.”


원정군의 사령관을 맡고있는 ‘늑대’ 크라트 니바르토. 올리는 아버지의 고민을 향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먼저 도발까지 하면서 우리가 쫄기를 원했는데, 상관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쳐들어오니 도망간 거겠지.”


“네가 말했잖나. 급하게 퇴각한 것 같진 않다고. 그건 처음부터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줄 알았다는 뜻이다.”


“그들의 도발이 허세가 아닌, 정말로 믿을 구석이 있어서 그랬다는 의견도 있었죠. 그런데 보란 듯이 텅텅 비어있는 기지들을 보니....... 이건 우리가 오지 않길 바란 건지, 오기를 바란 건지 애매하네요.”


크라트의 의견에 보충을 해준 이는 선봉장으로서 원정대 현장지휘의 한 축을 맡은 지나였다. 그녀가 말한 ‘믿을 구석’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기에, 크라트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네 남편은 블라고슬로바 쪽을 경계하라고 했지. 하지만 남쪽 국경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우리가 발을 디딘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스누시아는 고립되어있어. 만약 경계초소와 전초기지들이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면 나는 좀 더 신중해졌겠지.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대처조차 포기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히려 모두 비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멈춰 서서 의심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어쩌면 적들이 원한 게 바로 이거일지도 몰라요. 대장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적의 수비대와 조우했다면, 우린 시간을 끌려고 한다는 의도를 간파하고 더욱 빠르게 돌파했겠죠.”


크라트가 거친 손으로 더욱 거친 턱을 쓰다듬는다.


“네 말은, 선제도발과 비어있는 초소들 모두가 우리의 발을 늦추려는 수작이다?”


“네, 정확히는, 우리가 의심하도록 만들고 있는 거죠. 분명 부족한 전력임에도 우리에게 먼저 도발을 함으로써 파병과정에 있어 혼란을 빚게 만들었고, 지금은 전투 한번 없이 우리의 발을 묶어두고 있잖아요?”


“흐음.”


크라트의 짤막한 한숨은 고민보다는 납득의 색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이곳에 와있던 자가 입술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게 정말로 우릴 방심시키기 위한 수작일지도 모르잖습니까? 지나치게 서두르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매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의견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귀결되는 것을 방지하고, 지휘관이 다시 한 번 자신의 선택을 곱씹어볼 수 있도록 만들라는 명령을 받고 합류한 왕실참모소속, 카논 드라흐마였다. 그녀의 곁엔 같은 명령을 받고 파견된 레이쇼와, 왕비의 전투보조를 위해 합류한 셰르, 유진도 함께였다. 물론 이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할 그림자가 하나 더 있지만, 그 ‘왕녀’는 지금쯤 자신의 저격특무대와 함께 불타버린 숲의 흔적을 배회 중이란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카논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이스누시아의 지형은 우리에겐 적대적이죠. 아무리 전력에서 앞선다고는 하나 이 주변의 숲은 이미 죽은 숲.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요. 적들도 그걸 잘 알고 있고, 이용하려 하겠죠.”


“그렇다면 왕비, 네 결론은?”


원정군의 최종책임자이자 총지휘관은 크라트다.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 그의 딸인 올리조차도 그가 이렇게 한발 물러나 의견을 구하는 풍경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큼 크라트가 성장을 통해 지나가 갖게 된 기사로서의, 그리고 지휘관으로서의 날카로움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나 본인도 이런 크라트의 태도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대답에 앞서 한참이나 샛노란 눈동자로 전술지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객관적인 정보로만 판단하자면, 지형의 특성상 치명적인 매복을 당할만한 곳은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의 진군속도를 늦추기 위한 또 다른 수작들이겠죠.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올리, 듀라 경의 척후능력과, 리즈의 저격특무대를 이용해서 빠르게 진입로를 파악하고 속도전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알았다. 다른 의견은?”

불편함과는 거리가 먼, 암묵적인 합의의 침묵. 늑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올리, 너는 듀라와 함께 계속해서 척후대를 운용한다. 너무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네가 판단하기에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중점적으로 확인해라. 왕녀에게는 코를 이용해서 위험요소를 확인하라고 전해. 다만 숲이 불타버렸으니, 지나치게 후각에만 의존하지는 말라고 당부해라. 본대는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너희들의 신속함에 따라 우리의 속도도 결정된다. 이 점, 반드시 숙지하도록.”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군요.”


숲의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언덕. 주변이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었기에 여인은 저 멀리, 지평선의 끝자락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군세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었다.


“젠장! 역시 수비대를 남겨놓았어야 했어! 부관! 너 때문에 저들이 쉽게 들어온 것 아니냐!”


그런 여인을 질책하는 굵은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히려 그의 목소리가 왜소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갖고 있었다. 이마 주변에만 듬성듬성 남아있는 누런 머리칼과 굵은 눈썹. 그리고 다부진 턱선을 따라 삐죽하게 올라있는 거친 수염까지. 마주하기만 해도 위축될 것만 같은 근육투성이의 위용이었지만, 부관이라 불린 여인은 덤덤하게 자신의 안경을 고쳐 쓴다.


“말씀드렸듯이, 만약 어설프게 병사들을 남겨놓았다면 적들은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왔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병력에 손실이 발생했음은 물론이죠. 어떻게든 적의 진군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게 우리의 목적입니다.”


“진군을 늦추면 뭐하나?! 본국에선 아직 아무런 대답이 없어! 병신같은 중앙새끼들, 내가 지들을 위협하는 존재임을 알고 일부러 나를 죽게 내버려 두려는 걸 테지!”


“그러니 더더욱 치열하게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어윈 대령님.”


부관의 당부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의 이름은 어윈 아이언하트. 이스누시아의 영주이자, 이스누시아 방위군의 총지휘관.


“부관! 이렇게 된 거 그냥 정면으로 치고받으면 안 되나? 놈들은 그저 쪽수만 많을 뿐, 그래봤자 카나반의 가지나부랭이들이잖아!”


어윈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자신의 육중한 철퇴를 집어 든다. 일반병사라면 온 힘을 다해도 꿈적도 안 할 철퇴의 크기와 무게였지만, 어윈은 가볍게 한 손으로 크게 휘두르는 시늉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대령님의 무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저들의 대부분이 베르달 출신의 병사입니다. 비록 숲은 사라져버렸지만 카나반의 최정예임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적이 2군단장님을 격파했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2군단장? 스이바노 브란트 그 뚱땡이 새끼는 내가 군단장 심사받을 때만 해도 내 얼굴도 똑바로 못 쳐다보는 새끼였어! 엘라론님의 후임이 그런 병신새끼라니....... 이건 노골적으로 2군단을 견제하려는 중앙새끼들의 횡포라고! 내가 군단장이었으면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카나반 새끼들을 후려쳤을 텐데!”


어윈은 자신의 이런 태도와 성격 때문에 군단장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부관은 그런 그를 나무라지도, 그리고 만류하지도 않고 적당히 구슬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적들에게 대령님 정도의 기량을 가진 기사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대령님께서는 대령님만의 승리가 아닌, 이스누시아의 모든 제국신민들의 승리를 위해 참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승리를 통해, 중앙에서도 대령님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음, 음. 물론이지. 하지만 부관, 이렇게 피해만 다녀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않나? 네가 뭘 기대하든, 중앙에서의 지원은 오지 않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적을 지체시키는 게 무슨 이득이 있지?”


만족스럽게 턱을 쓰다듬으며 철퇴를 내려놓는 어윈. 부관은 기세를 놓지 않고 대답을 이어나간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이득보다는 적에게 손해를 주기 위함입니다.”


“적에게 손해?”


“예. 적들은 이번 전투를 최대한 속전속결로 치러야 합니다. 마즈다힐을 점령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고, 듣자 하니 블라고슬로바와의 외교적인 문제도 생겨난 모양입니다. 게다가 북쪽의 동맹국인 브린타이나는 3군단에 의해 발목이 잡혀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엔 홀로 제국의 중앙군과 대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카나반은 빠른 시간 내의 전력향상을 위해 우리 이스누시아를 공략하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된다면, 카나반의 수뇌부도 현장의 지휘관도 점점 다급해질 것입니다. 다급함은 곧 빈틈을 낳고, 저흰 그 빈틈을 공략하면 됩니다.”


“흐음, 그래....... 즉, 크게 제대로 한방 먹여주기 위해 참고 있다는 소리지?”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는 한 것인지 의심이 됐지만, 부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단정하게 묶어 올린 갈색 머리에, 특색 없는 안경과 특색 없는 갈색눈동자. 검은색 제복만 아니었다면 민간인이라고 보아도 이질감이 없었을 그녀였지만, 시선만큼은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지평선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한 번쯤은 확실하게 적들을 지체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체? 어떻게?”


어윈은 지휘관으로서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으로 되묻고 있었다.


“적의 본대는 척후의 보고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몸뚱이를 멈추게 하기 위해선 물론 그 몸뚱이를 직접 공격하는 방법도 있지만, 눈과 다리를 괴롭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으흠? 그게 무슨 소리야?”


부관은 일그러진 얼굴로 되묻는 어윈을 향해 돌아서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대령님께서 나서셔야 할 때라는 뜻입니다.”


어윈은 그제야 히죽 미소를 짓는다. 마침내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에 즐거웠던 것이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다시 철퇴를 집어 들었고, 가볍게 어깨를 빙빙 돌리며 언덕을 내려설 준비를 한다.


그러나 부관은 그 등을 향해 웃을 수가 없었다.


“대령님,”


“응?”


“그....... 전에 말씀드렸던 덜린족 말씀입니다만.......”


그녀답지 않은, 주저하는 모습. 그리고 이어진 어윈의 반응이, 어째서 그녀가 주저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그건 이미 말했을 텐데, 부관! 내가 제국신민도 아닌 그 야만족들을 왜 신경 써줘야 해?”


“하지만 대령님, 그들은-”


“놈들은 광부일 뿐이다! 오히려 터전을 잃고 방황하던 놈들을 받아준 나에게 감사를 해야지, 왜 내가 눈치를 봐? 안 그래?”


“.......”


“그 이야기는 끝났어. 기분 잡치게 다시는 꺼내지 마라.”


누렇게 끓는 가래침을 탁, 뱉으며, 언덕 아래로 내달리는 어윈. 그리고 그의 뒤를 병사 몇 명이 따라나선다.


“.......”


순식간에 홀로 남게 된 부관. 그녀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체념이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





“뭐야, 표정이 왜 그래, 형제?”


벤은 말을 걸어온 게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수레 옆으로 얼굴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자신과 똑같으면서도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진 자는, 반도에서 오직 하나뿐일 테니까.


“.......무릎은 박살 났고,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야 할 수도 있어. 게다가 매일 악몽 속에 나타나던 애가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죽이겠다고 난리인데,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있어야 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도에게 암살위협을 받은 거잖아? 나 같으면 흥분돼서 잠도 안 올 거 같은데?”


“잠은 지금도 충분히 못 이루고 있어. 다른 의미지만.”


크게 웃으며 수레의 벽을 쾅쾅 두드리는 렌. 벤은 뭐가 그리 재밌냐고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벤이 실린 수레는 숲의 하늘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군의관을 비롯한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직접 군을 이끌고 원정에 나선 그였다. 개척되지 않은 숲을 가로질러야 했던 탓에 차량은 운용할 수 없었고, 벤의 고집을 꺾지 못한 카니아가 적어도 마차라도 준비해주겠다고 했지만 벤은 그것마저 거부하고 짐짝신세를 자처하여 보급대 수레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나저나, 진, 그년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거야? 너를 죽이려고 온 년인데?”


“선택권이 없잖아. 고도와 너에게 맡기려고 했던 정보를 대신 알려줬고, 나는 그 대가로 내 ‘처형권’을 맡겼으니까.”


숲의 어디선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진에게 들리라는 듯, 노골적으로 불만을 내뱉는 벤. 진이 그를 죽이기 위해 오스타이나성으로 찾아왔던 날, 벤은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그녀와 거래를 했다.

진에게 벤의 죽음으로 평온을 되찾을 거라던 세뮈엘의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이자 제안의 기저가 되었던 벤에 대한 사도의 불신. 벤은 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게 우선이며, 진이 자신을 죽임으로써 생길 모든 사회적, 국제적 논란을 인질로 삼아 일시적으로 ‘처형’을 보류해줄 것을 그녀에게 요청한 것이다. 물론 진은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지만, 일단 그녀도 야만과는 거리가 먼 드루이드, 게다가 검성의 약혼자라는 위치에 있는 존재였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거래야말로 벤이 무리해서 전장으로 나서는 유일한 이유였다.


“근데 네가 직접 나서서 제국군이랑 싸우는 게 어떤 증명이 된다는 거야?”


어느새 말에서 뛰어내려 수레에 올라타는 렌. 진만큼이나 여전히 그의 존재도 달갑지 않은 벤이었지만, 이동 내내 덜그럭거리는 수레 안의 풍경만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곧바로 대답을 내어놓는다.


“진이 말했잖아. 세뮈엘은 내가 검성으로 있는 한 아펜타우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있어. 내가 직접 그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면 나를 죽이라고 했던 세뮈엘의 말이 허상인 걸 진도 알게 될 테고, 그럼 나에 대한 ‘처형’을 다시 고려해보겠지.”


“헤엥, 왜 그렇게 그년의 눈치를 보는데? 그냥 네가 먼저 그년을 죽여 버리면 되잖아?”


“.......넌 걔가 데리고 있던 ‘괴물’이랑 싸워봤다며. 인력 하나하나가 아까운 마당인데, 그 괴물을 죽이기 위해 몇 명의 병사와 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도 네 목 따기만 기다리고 있는 년을 계속 등 뒤에 놓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거래를 한 이상, 걔가 나를 죽이든 말든 그건 후의 일이야. 그동안은 훌륭한 전력으로 써먹으면 돼.”


“미친년이 너를 죽이지 않게 할 증명에 대한 수단으로 미친년을 이용하는 거네. 재밌어, 하핫!”



“미친년은 누가 미친년이야, 미친 새끼야?”


수레를 끌던 말들이 기겁하며 뛰어오르고, 덩달아 수레도 크게 흔들린다. 경악할 정도로 거대한 야수가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경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병사들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괴물’의 위장과 존재감은 완벽했다.


“아이, 씨발 깜짝이야! 냄새 나는 개새끼 저리 안 치워?”


“냄새 나는 개새끼한테 다시 한 번 쳐발려 볼래? 그리고 레오가 1년을 안 씻어도 네 좆대가리보다는 깨끗하거든?”


보란 듯이 새하얀 원래의 털색으로 탈바꿈하는 짐승. 렌은 지지 않고 자신의 창을 집어 들려고 했지만, 벤이 짜증으로 저지한다.


“싸우려면 저어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줄래? 여기서 난리 쳤다간 수습이 안 될 거다.”


“닥쳐. 너도 마찬가지야. 뭐? 전력으로 써먹어? 다시 말하지만 너는 내 손에 죽게 되어있어. 잠깐 지체됐을 뿐,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난 거래한 대로 정보를 건네줄 뿐이고, 너는 목숨을 내놓으면 돼. 전력으로 써먹기는, 내가 미쳤다고 너넬 위해서 레오를 더럽히겠니?”


“알았으니까 좀 멀리 떨어져! 말들이 굳어서 움직이질 못하잖아!”


벤의 외침대로 수송을 담당하고 있는 말들은 레오와 진의 등장 이후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몇몇은 대소변을 지리며 주저앉기까지 한 상황. 그러나 진은 일부러 레오에게 짧은 울음소리를 내게 만들어 말들을 모두 졸도시킨 뒤에야 대열에서 벗어난다.


“세뮈엘 맙소사. 저런 게 우리 형제라니! 숲의 사도께서 우릴 보살피시길, 미트라블루스.”

비웃음이 섞인 렌의 기도에 벤은 잔뜩 인상을 구긴 채 렌을 노려본다. 카나반사람도 아닌 그가 굳이 이런 기도를 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뻔했기 때문이다.

“아, 미안. 틀렸어? 두 손을 좀 더 모아야 하나?”


“닥쳐 좀.”


역시 그냥 덜그럭거리기만 하는 수레의 풍경 쪽이 나았던 걸까.

쉴 생각이 없는 렌의 비웃음에

결국 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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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막간) 하나의 밤하늘, 세 개의 달빛 +11 16.08.29 623 14 15쪽
242 (22막) 세 개의 오만 (14) +10 16.08.24 576 13 16쪽
241 (22막) 세 개의 오만 (13) +9 16.08.19 450 13 26쪽
240 (22막) 세 개의 오만 (12) +6 16.08.14 494 9 18쪽
239 (22막) 세 개의 오만 (11) +10 16.08.09 599 11 17쪽
238 (22막) 세 개의 오만 (10) +6 16.08.05 608 13 14쪽
237 (22막) 세 개의 오만 (9) +6 16.07.30 578 14 15쪽
236 (22막) 세 개의 오만 (8) +8 16.07.26 534 11 24쪽
235 (22막) 세 개의 오만 (7) +8 16.07.20 639 13 19쪽
234 (22막) 세 개의 오만 (6) +7 16.07.15 679 12 21쪽
233 (22막) 세 개의 오만 (5) +8 16.07.10 686 13 22쪽
» (22막) 세 개의 오만 (4) +6 16.07.05 634 14 18쪽
231 (22막) 세 개의 오만 (3) +9 16.06.30 576 12 18쪽
230 (22막) 세 개의 오만 (2) +6 16.06.25 651 13 18쪽
229 (22막) 세 개의 오만 (1) +6 16.06.20 730 15 16쪽
228 (막간) 현실을 마주하며 +4 16.06.15 750 16 16쪽
227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0) +10 16.06.10 729 14 21쪽
226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9) +8 16.06.05 730 12 16쪽
225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8) +4 16.05.30 698 15 19쪽
224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7) +6 16.05.25 724 11 19쪽
223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6) +4 16.05.20 955 10 22쪽
222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5) +5 16.05.14 777 12 18쪽
221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4) +2 16.05.09 703 13 15쪽
220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3) +6 16.05.04 1,028 12 18쪽
219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2) +4 16.04.28 741 16 17쪽
218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 +8 16.04.23 849 15 19쪽
217 (막간) 필요없는 증명. 필요한 증명. +10 16.04.18 739 18 13쪽
216 (20막) 증명 (9) +4 16.04.13 698 18 16쪽
215 (20막) 증명 (8) +8 16.04.08 670 20 16쪽
214 (20막) 증명 (7) +11 16.04.02 735 14 16쪽
213 (20막) 증명 (6) +10 16.03.28 783 13 15쪽
212 (20막) 증명 (5) +8 16.03.23 813 17 24쪽
211 (20막) 증명 (4) +8 16.03.18 948 16 23쪽
210 (20막) 증명 (3) +10 16.03.12 813 17 20쪽
209 (20막) 증명 (2) +10 16.03.07 887 20 19쪽
208 (20막) 증명 (1) +10 16.03.02 763 18 18쪽
207 (막간) 지평선으로 향하는 한걸음을 지켜보는 사람들 +8 16.02.26 810 19 17쪽
206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0) +8 16.02.21 911 24 21쪽
205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9) +10 16.02.16 1,033 20 22쪽
204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8) +6 16.02.11 809 17 28쪽
203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7) +6 16.02.06 765 19 21쪽
202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6) +6 16.02.01 828 17 22쪽
201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5) +10 16.01.27 820 17 17쪽
200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4) +10 16.01.22 965 16 18쪽
199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3) +8 16.01.17 707 20 18쪽
198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2) +10 16.01.12 773 20 19쪽
197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 +8 16.01.07 792 21 13쪽
196 (막간) 언젠가 +4 16.01.02 947 22 16쪽
195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2) +8 15.12.28 799 25 23쪽
194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1) +6 15.12.23 933 2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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