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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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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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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2막) 세 개의 오만 (11)

DUMMY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는 허름한 외벽과, 본래의 목적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덜너덜한 성문. 그나마 성문의 부식된 나무와 이음못 위로 합판을 마구잡이로 덧댄 것이 유일한 보수이자 보강이었다. ‘성’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전선이나 거점이라는 개념과는 동떨어져 있던 이스누시아였기에 납득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납득 또한 일반적으로 ‘제국’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생각해본다면 분명 이질적인 것.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제국의 성인데 꼬라지가 영.......”


유효사거리에 진입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성벽을 둘러보며 레이쇼가 한숨을 뱉는다.


“경계를 늦추지 마십쇼. 카논 대위님도 적의 외견만으로 얕봐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습니까.”


자신의 말처럼, 셰르는 찢어진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서 날카롭게 경계심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충고도 느긋한 왕실참모의 태도를 뒤집지는 못한다.


“그래그래, 그 대단하신 미지의 존재 때문에 말이지.”


“저쪽 내부의 사정을 아예 모르고 있는 지금, 전력 차이만 믿고 가볍게 접근하는 건 좋은 흐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선발대가 먼저 간을 보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셰르는 말끝을 흐리며 힐끗 레이쇼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신분이나 계급과는 상관없이, 오직 능력과 신뢰로만 오를 수 있는 영광이 바로 왕실참모라는 자리다. 하지만 이번 원정 내내 셰르가 레이쇼에게 받은 느낌은 대부분이 의구심이었다. 덜린족과의 면담 당시의 성급했던 태도라던가, 지금의 신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경솔한 행동과 생각들이 과연 왕실참모라는 직위에 걸맞은 것들인지 셰르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맘에 안 들어?”


“예?”


갑작스럽게 본심을 꿰뚫리며 눈이 마주치자 셰르는 당황할 수밖에. 그러나 레이쇼는 흔들리는 셰르의 작은 눈을 보면서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이해해. 근데 우리도 이런 입장이 됐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한마디로 자신감이지. 카나반은 여태까지 언제나 약자의 입장이었잖아? 항상 당하는 쪽이었고, 약한 쪽이었어. 이 기간이 길어진 탓에 모두가 신중함이라는 이름의 망설임으로 가득하지. 압도적인 힘으로 몰아칠 수 있을 때는 화끈하게 몰아쳐야 하는데 말이야, 안 그래? 그래야 병사들도 더 이상 우리는 약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


셰르는 입으로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레이쇼는 성급한 게 아니었다.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경박함 때문에 그런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카논을 포함한 그 외 다른 참모들, 심지어는 왕비까지도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병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이야말로, 어쩌면 이번 원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일지도 모른다고 셰르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뭐, 노크라도 해야 하나?”


결국 선발대가 성문에 다다를 때까지도 안에선 어떠한 저항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말에서 내려, 정말로 성문을 쿵쿵 두드려보는 레이쇼. 가까이서 본 성문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던 모양으로, 레이쇼는 얇게 웃으며 뒤따라온 공병대장을 향해 손짓을 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병대장과 함께 다가선 셰르의 질문에, 레이쇼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어떡하긴, 넘어가야지. 사다리 준비해! 공병대가 성문을 해체하는 동안 선발대는 성벽을 장악한다!”


“예엣!”


상태도 상태지만 이스누시아성의 외벽은 그 높이부터가 다른 도시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았다. 별다른 공성병기는 필요 없이 사다리만으로도 진입할 수 있는, 날랜 기사라면 두 세 번의 도약만으로도 넘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적의 저항까지 없었으니, 삼천 명의 선발대가 자유롭게 성벽을 넘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다.


“어디, 다 도망갔나 구경 좀 해볼까.”


“잠까-”


셰르가 말릴 틈도 없이 레이쇼가 맨손으로 성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균열이 만들어낸 발판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몸놀림의 왕실참모는 곧바로 성벽 난간으로 손을 뻗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레이쇼라도 이 다음부터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성벽 너머에서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지금부터 직접 눈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

레이쇼는 두 자루의 곡도 중 하나를 조용히 빼어 들고, 살며시 난간 위로 고개를 내민다. 처음부터 그랬듯, 부실한 성벽 위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레이쇼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성벽 위가 아니었다.

“어이구, 이런 젠장.”


욕설 반, 미소 반을 품고 성벽에서 뛰어 내려오는 레이쇼. 그는 다가오는 셰르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인다.


“왜 그러십니까?”


“이중성벽이야.”


“이중성벽.......?”


고개를 들어 다시 한 번 외벽의 상태를 올려다보는 셰르. 그 시선이 무엇을 뜻하는지 레이쇼는 곧바로 알아챈다.


“이런 허접한 성벽이 아니야. 높이는 비슷한데, 딱 보기에도 튼튼해 보였어. 아마 덜린놈들의 작품이겠지.”


“거리는 어떻습니까?”


“30미터 정도. 영악하게 애매하지.”


“그럼, 일단 본대에 보고를.......”


역시 제국은 제국이다. 적을 방심하게 만들 외벽 안에 비슷한 높이의 내벽. 만약 적이 내벽을 중심으로 방어를 하려 마음을 먹었다면 외벽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장애물이 된다. 단숨에 공략난이도가 대폭 상승한 셈이다. 그러나 레이쇼의 신경을 거스르는 건 따로 있었다.


“이상한데.”


“뭐가 말입니까?”


“생각해봐. 만약 이 외벽에 우리의 신경을 끌 수 있을 정도만큼만 병력을 남겨놓았다면, 우린 뭣도 모르고 전투에 빠져 성문을 부수고 성벽을 넘었겠지. 그럼 이중성벽의 틈에 걸려 꽤나 많은 피해를 입었을 거야. 근데 보란 듯이 아무것도 없잖아? 마치 우리가 내벽의 존재를 알아채 주길 바란 것처럼 말이야.”


“......그 말씀은.......”


레이쇼가 웃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수십 개의 사다리가 성벽에 기대고 있었고, 성문의 공병대는 격발기를 누르라는 명령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방금 자신이 셰르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레이쇼는 방향을 잡는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정말로 외벽을 비워두는 게 좋은 생각이냐?”


적이 외곽에 등장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로 줄곧 내벽의 성문 위를 떠나지 않은 어윈이었다. 당장에라도 다시 요격을 나갈 것 같은 그를 만류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부관. 그에 그치지 않고 외성벽을 완전히 비워두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도 바로 그녀였다.


“예, 이렇게 두면 적은 이쪽의 의도를 의심하여 쉽사리 성벽을 넘어오지 못할 겁니다. 그럼 ‘지원군’이 올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지원구운? 그 야만인들은 지원군이 아니다! 어디서 감히 우리와 같은 대우를 해주려는 거냐?!”


“아......., 죄송합니다.”


간신히 그의 고집을 돌려놓긴 했지만 어윈의 편견은 아직도 분노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놈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노예일 뿐이야! 지원군이라니?! 내가 그 놈들이 없으면 카나반새끼들을 조지지도 못할 거란 말이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쳇!”


짜증이 섞인 침을 뱉으며 노골적으로 면박을 주는 어윈. 그러나 익숙한 풍경이었기에, 주변의 병사들은 내색하지 않고 전방을 향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들은 한눈을 팔고 있는 지휘관을 대신하여 가장 먼저 성벽의 변화를 눈치챈다.


“대, 대령님!”


“뭐?”


“놈들이 넘어옵니다!”


“.......뭐?”

당황하여 난간으로 뛰어가는 어윈. 뒤이어 육중한 폭음과 함께 외벽의 성문이 사방으로 파편을 흩뿌린다. 폭음을 신호로 수많은 카나반의 병사들이 성벽을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고, 어윈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성벽이 무색한, 동시다발적인 내습이었다.

“부관! 얘기가 다르잖나!”


뒤틀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는 어윈. 부관 또한 예상 밖의 상황에 눈을 크게 뜨고 있긴 했지만, 당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서 밀고 들어오다니.......”


“어떻게 할 건가?! 내가 직접 요격을-”


“대령님은 이스누시아의 마지막 보루십니다. 이런 전초전부터 나셔서는 안 됩니다.”


“그, 그럼.......?”


몰라보게 단호해진 부관의 눈빛과 어투. 어윈은 자신도 모르게 턱밑을 긁으며 되물었다.


“후발대가 이어질 틈을 줘서는 안 됩니다. 돌입해오는 적을 빠르게 제압하고 기세를 끊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더더욱 내가-”


“안심하십시오. 대책은 마련해두었습니다.”


“.......뭐어?”


어윈의 눈빛이 빠르게 식어버린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대책’이란 걸, 자신은 들어보질 못했으니까.

그녀가 멋대로 어윈의 이름을 빌리고 군을 움직여 하사로 강등된 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여기서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는 말인가. 같은 짓을 한다면 어떻게 처분될지는 그때 충분히 각인시켜줬을 터. 그럼에도, 그녀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단 말인가?

뜻밖에도, 어윈은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를 대신하여 그의 이성에 자리 잡은 것은 호기심이었다. 가문의 이름도 없으며, 심지어 기사도 아닌, 이 작고 하찮은 여인이 실패한 군인들만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이스누시아라는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는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흔들리는 마력이 공중에 흩뿌려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중위님, 마력지뢰입니다!”


“그러시겠지!”

레이쇼가 비웃는다. 외벽에서 내벽까지 이르는 짧은 공간이 친절하게 포장되어있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가 놈들의 시선을 빼앗으면 본대가 곧바로 반대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 무리해서 뚫을 필요는 없어! 마법사들은 보호막이랑 지뢰제거에만 집중하고, 천천히 접근한다!”


성문과 성벽이 워낙 쉽게 돌파된 까닭에 돌입한 병사의 숫자만 벌써 천여 명을 넘기고 있었다. 그들은 레이쇼의 지휘에 맞춰 침착하게 대형을 유지했고, 내성벽으로부터 쏟아지는 포격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전진! 전진!”


온갖 파편과 폭발이 하늘을 뒤덮는 가운데 지휘관들은 단순한 명령도 사력을 다해 목의 핏줄을 세워야 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줄기와 같이 카나반의 병사들은 조금씩 내성벽과 성문을 향해 접근해 갔고, 마침내 전투마법사의 보호막 아래 조립식 사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다시 말한다! 절대 무리하지 마! 마법사들은 방어에만 집중해! 혹시라도 어윈이 나타나면 곧바로 후퇴를-”


확신이 가득했던 레이쇼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한다. 물론, 목소리는 분명 그의 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전장에서 그 외침의 마지막을 들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건축물이 무너지며 만들어내는 진동과 먼지가 대지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흔들림은 마력지뢰의 폭발로 인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무너진 것은 카나반군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성벽이 아니었다.

그들이 뒤로했던,

허름한 외성벽.

그 안쪽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엥?!”


그리고 그 자리에서 먼지를 꿰뚫고 시커먼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굳이 그들의 제복색을 보지 않아도, 그들의 적의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피부로 알 수 있었다.


“레이쇼 경, 적군입니다!”


“나도 눈 있거든!”

셰르의 진부한 보고에 신경질을 부릴 틈도 없었다. 허물어진 외성벽의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한 제국군. 성벽 안에 병력을 매복시켜놨다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물론, 나름 감이 좋다고 자부하는 레이쇼 본인도 성벽을 가로지르며 어떠한 기척도 느끼질 못했다. 즉, 영력을 통한 발각을 우려하여 오로지 일반 병사들로만 성벽을 채워놓았다는 뜻이다.

치밀하다. 외견부터가 무너질 듯 허술했으니, 그 안쪽의 균열들을 누가 신경 쓸 수 있었겠는가.

“3중대! 방패병을 제외하고 전원 후방으로! 보호막의 범위를 이탈하지 마라, 단단히 뭉쳐!”


레이쇼의 판단은 빨랐다. 충격적인 등장이긴 했지만, 성벽 안에 매복해있던 제국군의 숫자는 고작 기백 명. 마음먹고 돌파하려 한다면 못할 것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선택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내성벽과의 거리를 벌렸을 때 후방이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만약 퇴로가 막힌 상태에서 병력이 산개되기라도 한다면, 전투마법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두 번째는, 레이쇼가 아직 선발대의 진정한 ‘목적’을 완수하려 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삼천 명의 선발대는 적의 전력을 집중, 혹은 분산시키는 임무를 갖고 있었다. 아무리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있다고는 하나, 셰르의 말처럼 이스누시아 성 내부의 정보가 전무한 가운데 마구잡이로 병력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적이 무시하기엔 애매한 숫자인 삼천이 이 임무를 위해 선발된 것이다.

선발대가 외벽을 넘은 순간부터 이미 본대는 움직이기 시작했을 터. 지금 여기서 적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는다면, 후발대의 공격은 분명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레이쇼는, 이 삼천 명의 희생을 통해 성 전체를 먹는 그림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버텨낼 수 있느냐.

하지만 레이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한다.


“어윈 아이언하트! 내 말 듣고 있냐?!”


“레, 레이쇼 경?”


홀로 반쯤 조립된 사다리 위에 올라타, 광역도발을 내뿜는 레이쇼. 셰르가 경악스러운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병신 같은 새끼가 쳐발리고 쫄아서 숨어있는 꼬라지 봐라! 그렇게 무서웠냐? 그래서 이딴 수작이나 부리고 앉아있고? 어디 얼굴 좀 보자! 아! 오줌 지려서 나오질 못하나?!”







“비켜라.”


“참으셔야 합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어윈의 얼굴. 부관은 그 앞을 가로막고,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여기서 대령님이 나가시면 다른 모든 방어구역이 무방비가 되는 셈입니다. 참으십쇼.”


“.......크으윽.......”


부관의 침착한 설명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아래에선 노골적인 능욕과 욕설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저 아래에 있는 자들은 어차피 물러가거나 여기서 죽을 운명입니다. 대령님은 저들에게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이 틈을 노리고 적의 주력이 밀어닥칠 겁니다.”


“........흥, 알겠다.”


거친 콧바람과 함께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리는 어윈. 부관은 그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통신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적 본대의 움직임은?”


“세 갈래로 나뉘어서 접근 중입니다. 아군의 모든 성문을 동시에 공략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닐 거다. 적은 이쪽의 상황에 무지해. 그렇게 소모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리 없어. 아마 그중 하나가 주력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걸 파악해야 해.”


그녀는 직접 바깥을 살펴보지 못하고 있는 게 답답한 듯, 안경을 고쳐 쓰며 인상을 구긴다.


“.......방법이 있다.”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그녀와 통신병의 대화를 듣던 어윈이, 문득 고개를 들어 눈을 빛낸다.


“예?”


“적의 주력을 분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게 뭡니까?”


“.......그년....... 감히 나한테 대적하고도 살아남은 그년이 있는 부대가 주력이다.”


“그년.......?”


어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부관으로서는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당한 표정으로 통신병을 향해 고함을 내지른다.


“관측병에게 알려라! 선두에 노란 머리카락을 지닌 여기사가 있다면 그게 바로 놈들의 주력이다! 당장 위치보고 하라고 해!”


“예, 옛! 알겠습니다!”


황급히 무전기를 집어드는 병사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어윈. 그는 아직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부관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어때, 기발하지 않냐?”


“노란머리의 기사.......? 대령님, 혹시 그년이란 게-”


“파악했습니다! 선두에 노란머리의 여기사!”


부관의 말을 끊으며 어윈에게 보고를 올리는 통신병이었다.


“그래? 어디냐?”


“저, 그게.......”

수화기 너머의 내용을 건네 듣고,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 통신병. 어윈의 재촉이 튀어나오기 직전, 그는 힙겹게 입술을 움직인다.

“.......여기, 이곳.......이라고.......”


어윈과 부관은 반문하지 못한다.

이미 반쯤 허물어진 외성벽을 산산이 조각내며, 남색의 물결이 물밀 듯 쏟아져 왔기 때문이다.

그 순간, 어윈과 성벽 아래 있는 레이쇼는, 동시에 그 군세의 선두에 있는 노란 태양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태양에 대한 레이쇼의 한탄은 간단했다.



“하여간 쓸데없는 걱정이 많으시다니까.”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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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막간) 하나의 밤하늘, 세 개의 달빛 +11 16.08.29 623 14 15쪽
242 (22막) 세 개의 오만 (14) +10 16.08.24 576 13 16쪽
241 (22막) 세 개의 오만 (13) +9 16.08.19 450 13 26쪽
240 (22막) 세 개의 오만 (12) +6 16.08.14 494 9 18쪽
» (22막) 세 개의 오만 (11) +10 16.08.09 599 11 17쪽
238 (22막) 세 개의 오만 (10) +6 16.08.05 608 13 14쪽
237 (22막) 세 개의 오만 (9) +6 16.07.30 578 14 15쪽
236 (22막) 세 개의 오만 (8) +8 16.07.26 534 11 24쪽
235 (22막) 세 개의 오만 (7) +8 16.07.20 639 13 19쪽
234 (22막) 세 개의 오만 (6) +7 16.07.15 678 12 21쪽
233 (22막) 세 개의 오만 (5) +8 16.07.10 685 13 22쪽
232 (22막) 세 개의 오만 (4) +6 16.07.05 634 14 18쪽
231 (22막) 세 개의 오만 (3) +9 16.06.30 575 12 18쪽
230 (22막) 세 개의 오만 (2) +6 16.06.25 651 13 18쪽
229 (22막) 세 개의 오만 (1) +6 16.06.20 729 15 16쪽
228 (막간) 현실을 마주하며 +4 16.06.15 750 16 16쪽
227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0) +10 16.06.10 729 14 21쪽
226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9) +8 16.06.05 730 12 16쪽
225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8) +4 16.05.30 698 15 19쪽
224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7) +6 16.05.25 724 11 19쪽
223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6) +4 16.05.20 955 10 22쪽
222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5) +5 16.05.14 777 12 18쪽
221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4) +2 16.05.09 703 13 15쪽
220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3) +6 16.05.04 1,027 12 18쪽
219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2) +4 16.04.28 741 16 17쪽
218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 +8 16.04.23 849 15 19쪽
217 (막간) 필요없는 증명. 필요한 증명. +10 16.04.18 739 18 13쪽
216 (20막) 증명 (9) +4 16.04.13 698 18 16쪽
215 (20막) 증명 (8) +8 16.04.08 670 20 16쪽
214 (20막) 증명 (7) +11 16.04.02 734 14 16쪽
213 (20막) 증명 (6) +10 16.03.28 782 13 15쪽
212 (20막) 증명 (5) +8 16.03.23 813 17 24쪽
211 (20막) 증명 (4) +8 16.03.18 947 16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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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막간) 지평선으로 향하는 한걸음을 지켜보는 사람들 +8 16.02.26 810 1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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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7) +6 16.02.06 764 19 21쪽
202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6) +6 16.02.01 827 17 22쪽
201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5) +10 16.01.27 820 17 17쪽
200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4) +10 16.01.22 965 16 18쪽
199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3) +8 16.01.17 706 20 18쪽
198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2) +10 16.01.12 773 20 19쪽
197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 +8 16.01.07 792 21 13쪽
196 (막간) 언젠가 +4 16.01.02 946 22 16쪽
195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2) +8 15.12.28 799 25 23쪽
194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1) +6 15.12.23 933 2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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