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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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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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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6.04.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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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7쪽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2)

DUMMY

“으음, 그러니까, 적국에 투항했다가 다시 본국으로 투항하는 거잖아.”


“말했잖아. 그런 단어는 없다니까.”


“아니아니, 기다려봐........, 아아! 재투항? 아니, 이건 아닌데....... 투항철회? 으으음......”


장난기 가득한 입술을 매만지며, 마치 곧 답을 알아낼 수 있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이는 레이쇼. 그러나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올리의 얼굴엔 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


그리고

굵은 달빛을 어슴푸레 흘려놓는 쇠창살 너머로 조용히 이들의 만담을 지켜보고만 있는 그림자. 이미 모든 모욕과 수치심을 예상하고 왔다는 듯 그의 먹색 눈동자는 차분하게 모든 걸 삼키고 있었다.


“아! 생각났어! ‘줏대도 없는 쫄보짓’! 맞지?”


레이쇼가 환하게 웃으며 올리를 향해 손가락을 튕긴다.


“의미상으론 완벽하긴 한데, 그건 단어가 아니잖아. 기각.”


“쳇.”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레이쇼. 그리고 이어지는 특유의 비릿한 미소. 그는 쇠창살에 팔을 올려 보다 명확히 안을 들여다보기 위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간수가 대기할 수 있는 복도 쪽은 환한 조명으로 눈부신 데 반해, 죄수의 자유를 구속하는 안쪽은 배려의 불빛이라곤 단 한 조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이, 아조씨.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쇼? 뭐라고 불러드릴까? 변절자나 배신자 같은 건 너무 식상하잖아?”


“.......”


조롱의 화살이 직접 닿아왔음에도 쥬넨은 입을 열지 않는다. 이 도시와 이 도시를 얻은 나라에서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는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등장 때문에 저 위에서 무슨 말들이 오고가는지도 그에겐 상관이 없었다.

자신의 입을 열게 만들 사건과 인물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응?”


영원히 이어질 기세였던 레이쇼의 혀가 멎는다. 끝자락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그림자가 복도로 들어선 것이다. 죄수의 처우가 결정될 때까지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기에 레이쇼와 올리는 동시에 경계의 날을 세웠지만, 복도를 가로지르며 다가온 인물은 너무도 익숙했기에 곧바로 검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총리님, 회의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검성과 폐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굳은 얼굴로 큰삼촌의 앞을 막아서는 올리. 그녀가 이토록 정중한 태도와 목소리를 내는 게 익숙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쇼는 품속으로 손을 가져가는 총리의 손짓에 좀 더 신중함이 깃들기를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알고 있네. 관계가 관계이다 보니 회의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을 뿐. 그리고 그 ‘관계’ 덕분에 의회로부터 사전면담을 허가받을 수 있었고.”

마누앙이 꺼내든 것은 로빈과 당대표들의 도장이 찍혀있는 한 장의 공문서였다. 그것을 받아들고 한참이나 신중하게 살펴본 올리가 마침내 옆으로 비켜서 길을 터주었지만, 총리는 그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는 모양.

“미안하지만, 죄수와 독대하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총리님, 그건-”


“부탁하네.”


정중하게, 동시에 뚜렷하게 고개를 숙이는 마누앙. 물론 그가 내민 종이에 이것을 허락한다는 내용은 없었기에 올리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10분. 걸리면 책임은 총리님이 지시는 겁니다?”


난감한 침묵을 깬 것은 레이쇼의 쾌활한 목소리였다. 그에 올리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인상을 구기며 돌아보았지만, 그녀의 항의보다 총리의 감사가 한발 빨랐다.


“고맙네.”


레이쇼는 총리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올리의 팔을 붙잡고 복도 끝으로 이끈다. 아직 새로운 의수를 받지 못한 올리는 크게 반항하지 못하고 그의 손에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복도의 문이 닫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울린 말은, 무슨 짓이냐고 묻는 올리의 질문에 대한 레이쇼의 짤막한 대답이었다.


“재밌을 거 같잖아.”



침묵이 돌아온 감옥.

총리는 고개를 들고, 무거운 그림자를 끌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둠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미 그 안쪽엔 익숙한 목소리에 반응한 한 쌍의 먹색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을 삼키고 있었다.


“.......”


허락받지 못한, 한정된 시간이었음에도 침묵은 길게 이어진다. 반대쪽에 널브러져 있던 의자를 끌어와 앉고 나서도 ‘아버지’는 한참이나 어둠 속의 존재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결국, 그 침묵의 끈을 잡아챈 것은 어둠 속에 삼켜진 ‘아들’ 쪽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재회의 반가움, 혹은 미안함.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마른 목소리.

잔잔한 수면 위에 작은 파동만을 만들어놓고 쥬넨은 다시 입술을 닫는다. 그는 가만히, 그리고 인내심 있게 그 파동이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


“.......고작 이거냐?”

그리고 그 파동은, 쥬넨의 예상대로 격렬함을 숨긴 채 파르르 떨려온다.

“고작 이게, 네가 찾던 답의 종착역이었냐? 지금 네 꼴이, 진정 네가 모든 걸 버리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모습이냐? 고작-”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제가 단순히 기사로서의 영광을 찾기 위해 이러고 있다 생각한다면, 당신이 틀린 겁니다.”


‘당신’이라는 단어에 깃든 서늘함. 그러나 마누앙의 분노는 다른 방향으로 뒤틀린다.


“영광? 당연히 네가 찾을 영광 따윈 없을 것이다! 이제 곧 사형일이 확정되고 아르다르 가장 높은 곳에 네 머리가 내걸리겠지! 나는 매일 아침 아들이었던 자의 썩어가는 가죽을 보며 출근해야 할 테고! 도대체 왜 돌아온 것이냐, 쥬넨!”


영력이 실려 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격렬한 고함을 내지르며, 마누앙은 뼈가 으스러져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거세게 쇠창살을 내리친다. 하지만, 어둠 속의 쥬넨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아뇨, 저들은 저를 죽일 수 없을 겁니다. 재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사형이 확정되더라도, 당신이 막아야 할 테니까.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아도, 당신은 들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뭐?”


이제 와서 아비의 정에 매달릴 셈인가.

그러나 너무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아버지’를 향해,

‘아들’은 영광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들에게 전해 주십쇼.”




==================




쥬넨 니바르토라는 하나의 이름 때문에 예정되었던 모든 환영식과 축하연이 취소. 그러나 의원들과 지휘관들의 표정은 그런 이유와는 별개로 차갑게 굳어있었다.

그런 모두의 표정을 삼키고 있는 로빈은, 평소였다면 직무유기와 막무가내로 벌인 침략전쟁에 대한 청문회가 미뤄졌다는 사실에 기뻐했을 테지만 지금은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논의할 여지가 있습니까? 사실 여기에 그걸 논하기 위해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색하군요.”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귀족당의 대표로 앉아있는 란다 가슈펠라르. 선언과도 같은 그의 말에 앉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동조의 고갯짓이 이어진다.

“한 번 반역자는 영원한 반역자입니다. 몸담을 곳이 여의치 않아지니 이제 와서 다시 돌아오겠다? 도둑의 변명도 이보다는 양심이 있겠군요.”


“그가 제공할 정보에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처우에 있어서는 저도 란다 경과 같은 생각입니다. 현재 공화국 내에 쥬넨 니바르토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효수야말로 그에게 희생당한 군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이 되겠죠.”


시민당 대표, 아델이 바로 이어서 의견을 내놓았다. 왕당파의 오로메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로빈의 말을 기다리기 위함이었지 앞선 두 사람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차피 판결은 군재판에서 내려질 겁니다. 이 자리는 그의 처우를 결정하기 위함이 아닌, 그의 말을 들을지 듣지 않을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함입니다.”


목적을 환기시키는 로빈의 목소리. 아델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끌어당긴다.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전해주기 위함이었다면, 우리가 이곳 마즈다힐을 점령하기 전에 찾아왔어야죠. 아군은 배신자의 도움 없이도 훌륭하게 역사적인 승리를 일궈냈고, 그의 투항은 조급함에서 비롯된 치졸한 행동일 뿐입니다.”


“비록 시작부터 잘못된 승리긴 하지만.”


의도가 분명한 악의를 덧붙이는 란다. 몇몇이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오로메는 그가 논점을 흐리도록 두지 않는다.


“지금 논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과거 근위대장이었던 쥬넨 니바르토라는 남자의 진정성입니다. 앞서 대표님들께서 말씀해주셨듯이, 그의 투항은 시기적으로나 정황상으로나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죠. 그를 통해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다른 대표들의 의견과 상황을 정리하는 오로메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부터 하려는 말의 무게를 알고 있다는 듯,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제국군을 관찰해온 그의 눈이 앞으로 공화국에 어떤 이득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단 들어봐야 그 진위를 판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지금 공화국을 배신한 변절자의 협상을 들어주자는 뜻입니까?!”


탕, 책상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란다. 격분한 목소리답게 그의 얼굴 또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오로메는 이런 그의 반응을 예상했기에, 차분한 한숨으로 대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와 협상을 하거나 그를 용서하자는 뜻이 아니에요. 본인도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 가져온 이야기가 무엇인지, 일단 들어는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야기가 달다면 삼키고, 쓰다면 뱉어버리면 그만 아닌가요?”


“그가 아무런 보장도 없이 정보를 뱉진 않을 테죠. 오로메 경께서는 거짓으로 그와 협상하고 정보만을 취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동네 불량배와 같은 비겁함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아델은 자신이 이곳에 앉아있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그녀의 태도에서, 오로메는 자신의 대답이 소모성 논쟁으로 번질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침략전쟁의 명분과 합리성이 어떠했든 간에, 제국 2군단이 와해 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 찌꺼기에 불과한 배신자가 어떤 의미 있는 정보를 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의 말을 듣나 안 듣나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국민들은 분노할 겁니다!”

국민이라는 단어에 억양을 줘서 극대의 효과를 이끌어 내려는 란다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화살은 곧바로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날아간다.

“검성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사실 란다가 지목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이 로빈 바로 옆에 앉아있는 벤의 존재를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변수의 검성’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턱을 괴고 앉아 펜만 돌리고 있었다.


“검성님?”


“아, 예. 제 의견 말이죠.”

누가 봐도 귀찮음이 역력한 한숨을 내쉬며 펜을 멈추는 벤. 그는 느릿느릿한 고갯짓으로 차분하게 회의실의 모든 얼굴을 살펴본다.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는 자도 있었고, 기대에 가득 찬 눈빛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열린 벤의 입술은, 오히려 반대 방향의 허를 찔러온다.

“그에 앞서, 일단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희한테?”


질문에 질문으로 역공을 받은 란다의 눈썹은 뒤틀릴 수밖에.


“예. 쥬넨이 들고 온 정보에 대한 영양가를 논하고 계신데, 여러분 모두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 거 같아서요.”

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다.

“마즈다힐은 우리가 점령했고, 이제 제국2군단이란 이름은 다시는 반도에 나오지 않겠죠. 근데 여러분 모두가 이 두 가지 사실에만 생각의 발이 묶여계신 것 같네요.”


“.......그게 무슨-”


“왜 다들 쥬넨의 등장이 지금 저희가 밟고 있는 땅과 이미 사라진 이름에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죠?”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 묻는 듯한 가벼운 벤의 목소리. 모두가 그 진위를 깨닫지 못해 어리둥절한 가운데, 오직 로빈만이 이마를 감싸며 한숨을 내쉰다.

지금 이 무모한 친구가,

애써 자신이 피하고 있던 거대한 ‘문책’의 시간을 강제로 끄집어내려 하는 중이었으니까.

“정말로 왜 그가 마즈다힐이 점령당하고 2군단이 박살 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알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다음으로 한 걸음 나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말이죠.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되리라 생각한 거죠.”


“.......다음으로 한 걸음이라니......., 설마, 폐하.......”

경직된 표정으로, 새빨간 의구심의 시선을 로빈에게 옮기는 란다. 그리고 그는 믿기 힘들다는 듯, 크게 한번 호흡을 삼키고서 간신히 말을 잇는다.

“.......아직도 전쟁을 이어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이죠!”


그러나 확신에 찬 대답은 로빈이 아닌, 벤에게서 터져 나온다.

여전히 왜소하지만, 분명한 존재감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변수의 검성’.

그는 각양각색으로 물드는 모든 시선과 표정을 향해,

되돌릴 수 없는 선전포고를 내놓는다.




“우린 이제 첫걸음을 했을 뿐인데요?”




===========================





“.......”


나뭇잎의 그림자로 얼룩진 달빛이 먹색 눈동자 위로 쏟아진다. 하지만 눈동자의 주인은, 그 달빛의 존재보다는 그 앞에 드리우고 있는 그림자에 먼저 시선을 박아 넣고 있었다.


“주무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렌님. 본국으로부터 전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고맙네. 악몽을 꾸고 있었거든. 근데......., 전문이라고?”

길게 하품을 늘어트리며 그 끝을 의문으로 장식하는 렌의 목소리. 지휘관으로서 본국의 전문이 의문스러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쯤이면 날 탈영병이라고 취급할 줄 알았는데?”


“.......‘미소’께서 직접 보내신 겁니다. 받아보시겠습니까?”


“오호, 우리 친애하는 ‘형님’께서? 그럼 받아 봐야지 뭐.”

탈영병이라는 단어를 부관이 가볍게 넘어가지 못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카나반군과 ‘협력’하여 오스타이나성을 수복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온 렌과 병사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숫자는 처음 출병했을 때와 비교해서 1/5이 채 되지 않는 상태였다. 물론 예상치 못한 괴물의 습격과 내분으로 인해 줄어든 숫자도 있었지만, 사라진 인원의 대부분은 본국으로 복귀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기로 작정한 렌의 선택 때문이었다.

병사 대부분이 브린타이나 내전 당시 북부군을 지원했던 영주들의 사병들. 게다가 그 내전의 원흉인 ‘오열’의 양아들이 지휘관인 부대다. 이런 군대가 작전에 실패하고 복귀하지 않는다면 어떤 시선을 받을지는 명백할 터. 마치 그 사실을 즐기려는 듯한 렌의 태도에 병사들은 오명을 벗기 위해, 또는 정말로 그 오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저마다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렌이 그런 이탈을 막기 위해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무전실이 어디지?”


“저쪽입니다.”


“아 저기? 저거 화장실인 줄 알고 맨날 옆에다 오줌똥 쌌는데.”

최소한의 부대 구성은 유지하고 있는 진지였지만, 자신들의 지휘관을 향해 경례를 올리는 자들은 없었다. 그러나 렌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천막을 찢으며 안으로 들어선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문 왔다며? 줘봐.”


“아, 옛.”


멀쩡한 입구를 놔두고 왜 천막의 옆구릴 찢고 들어오는지에 대해 병사와 장교들이 따질 수 있을 리가 없다. 통신장교는 제발 빨리 꺼져달라는 말을 가슴에 품은 채 자신의 지휘관을 향해 종이 한 장을 내밀었을 뿐.


“.......흐음.”

집게손으로 전문의 끄트머리를 들고 천천히 내용을 살피기 시작하는 먹색 눈동자.

시선이 내려갈수록,

그의 입가가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곁에서 지켜보는 부하들은 점점 소름이 끼치고 있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어떤 온기도 없이, 입으로만 웃기 시작하는 렌. 결국, 모든 불편함을 대표하여 통신장교가 입을 연다.


“그......., 본국에서 뭐라고.......?”


“카나반이 제국의 마즈다힐을 점령했다고 하네.”

커다란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 시작하는 병사와 장교들. 그런 그들의 표정 위로 웃음소리를 뒤덮으며, 렌은 전문을 조심스럽게 접어 통신장교에게 되돌려준다.

“전군 이동준비 해.”


“옛? 어, 어디로-”


“어디긴, 씨발!”

분노인지

환희인지

그 경계가 애매한 욕설을 높게 외치며,

렌은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마구잡이로 주물럭거리기 시작한다.




“형제가 나를 부르잖냐!”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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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막간) 하나의 밤하늘, 세 개의 달빛 +11 16.08.29 623 14 15쪽
242 (22막) 세 개의 오만 (14) +10 16.08.24 576 13 16쪽
241 (22막) 세 개의 오만 (13) +9 16.08.19 450 13 26쪽
240 (22막) 세 개의 오만 (12) +6 16.08.14 494 9 18쪽
239 (22막) 세 개의 오만 (11) +10 16.08.09 599 11 17쪽
238 (22막) 세 개의 오만 (10) +6 16.08.05 608 13 14쪽
237 (22막) 세 개의 오만 (9) +6 16.07.30 578 14 15쪽
236 (22막) 세 개의 오만 (8) +8 16.07.26 534 11 24쪽
235 (22막) 세 개의 오만 (7) +8 16.07.20 639 13 19쪽
234 (22막) 세 개의 오만 (6) +7 16.07.15 679 12 21쪽
233 (22막) 세 개의 오만 (5) +8 16.07.10 686 13 22쪽
232 (22막) 세 개의 오만 (4) +6 16.07.05 635 14 18쪽
231 (22막) 세 개의 오만 (3) +9 16.06.30 576 12 18쪽
230 (22막) 세 개의 오만 (2) +6 16.06.25 651 13 18쪽
229 (22막) 세 개의 오만 (1) +6 16.06.20 730 15 16쪽
228 (막간) 현실을 마주하며 +4 16.06.15 750 16 16쪽
227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0) +10 16.06.10 729 14 21쪽
226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9) +8 16.06.05 730 12 16쪽
225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8) +4 16.05.30 698 15 19쪽
224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7) +6 16.05.25 724 11 19쪽
223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6) +4 16.05.20 955 10 22쪽
222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5) +5 16.05.14 777 12 18쪽
221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4) +2 16.05.09 703 13 15쪽
220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3) +6 16.05.04 1,028 12 18쪽
»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2) +4 16.04.28 742 16 17쪽
218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 +8 16.04.23 849 15 19쪽
217 (막간) 필요없는 증명. 필요한 증명. +10 16.04.18 739 18 13쪽
216 (20막) 증명 (9) +4 16.04.13 698 18 16쪽
215 (20막) 증명 (8) +8 16.04.08 670 20 16쪽
214 (20막) 증명 (7) +11 16.04.02 735 14 16쪽
213 (20막) 증명 (6) +10 16.03.28 783 13 15쪽
212 (20막) 증명 (5) +8 16.03.23 813 17 24쪽
211 (20막) 증명 (4) +8 16.03.18 948 16 23쪽
210 (20막) 증명 (3) +10 16.03.12 813 17 20쪽
209 (20막) 증명 (2) +10 16.03.07 887 20 19쪽
208 (20막) 증명 (1) +10 16.03.02 763 18 18쪽
207 (막간) 지평선으로 향하는 한걸음을 지켜보는 사람들 +8 16.02.26 810 19 17쪽
206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0) +8 16.02.21 911 24 21쪽
205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9) +10 16.02.16 1,033 20 22쪽
204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8) +6 16.02.11 809 17 28쪽
203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7) +6 16.02.06 765 19 21쪽
202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6) +6 16.02.01 828 17 22쪽
201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5) +10 16.01.27 820 17 17쪽
200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4) +10 16.01.22 965 16 18쪽
199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3) +8 16.01.17 707 20 18쪽
198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2) +10 16.01.12 773 20 19쪽
197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 +8 16.01.07 792 21 13쪽
196 (막간) 언젠가 +4 16.01.02 947 22 16쪽
195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2) +8 15.12.28 799 25 23쪽
194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1) +6 15.12.23 933 2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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