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조회수 :
448,206
추천수 :
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6.08.14 23:02
조회
494
추천
9
글자
18쪽

(22막) 세 개의 오만 (12)

DUMMY

지나와 카나반 본대의 등장과 함께, 선발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던 이스누시아 매복군은 순식간에 와해 된다. 변변한 기사 하나 없는 그들이 카나반 정예기사들의 돌진을 막아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이었다. 덕분에 일방적인 포화를 받아내고 있던 레이쇼의 선발대는 겨우 숨통을 틀 수 있었다.


“아니, 빨리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끝내버리지, 여긴 왜 왔어요?”


반가움 반, 그리고 원망을 반 담아낸 레이쇼의 목소리. 그에 지나는 말에서 내릴 준비를 하며 새빨간 혀끝을 내보인다.


“당신 죽으면 나한테 잔소리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말을 마치고 지나는 그대로 말 위에서 도약한다. 그러나 그녀의 착지 지점은 레이쇼의 곁이 아니었다.

“리즈!”


왕비의 부름에,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던 왕녀는 세 대의 화살을 시위에 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화살들은 망설임 없이 왕녀의 손을 떠나갔지만 이어지는 비명은 없었다. 세 대의 화살 모두, 조금의 균열도 허락하지 않던 이스누시아 내성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꽂힌 것이다. 그리고 그 화살들은 지나의 도약을 위한 훌륭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


영력의 향이 남아있는 화살은 단단한 성벽에 꽂힌 것은 물론, 지나의 도약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굳건했다. 그녀는 수비병들이 뭔가 조취를 취하기도 전에 가볍게 세 번을 뛰어오른 후 성벽의 난간으로 올라섰고, 그곳에서 제국병사들의 당혹스러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


다정한 태양의 인사에 병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그의 목은 간단한 손등치기에 의해 부러진 뒤였기 때문이다. 지나는 절명한 제국병사가 만들어준 공간으로 사뿐히 발을 내려놓는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모든 병사들의 적의가 모여들었지만, 그녀의 미소를 거두기엔 역부족이었다.

목을 노리며 찌르고 들어오는 창끝을 가볍게 고개를 틀어 빗겨낸 뒤, 왼손으로 창목을 잡아 끌어당기는 지나. 그녀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던 병사는 창을 놓칠 틈도 없이 성벽 아래로 추락한다. 벌레를 털어내듯 제국병을 떨쳐버린 지나와, 아직도 그녀의 손에 남아있는 창. 일반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보잘 것 없는 창도 지나의 기합이 담기면 무시무시한 병기가 된다. 그녀의 손을 벗어난 창은 차례대로 목, 가슴, 어깨, 다시 목, 네 명의 병사들을 무너트리고 나서야 바닥을 나뒹굴 수 있었다.

뒤이어 모든 빛을 빨아들일 기세로 모습을 드러낸 흑도. 그 검은 불꽃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치켜든 병사의 방패를 뚫고 주인의 목을 베어내어 오늘의 첫 번째 희생자를 음미한다. 두 번째, 세 번째 희생자가 곧바로 이어진다. 그 우아한 춤사위를 방해할 수 있는 목소리는 성벽 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건방진 년!”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던 어윈은 부관이 만류할 틈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통신병의 보고는 부관의 미간에 깊은 계곡을 남긴다.


“동쪽과 북쪽에서도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예비대의 투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만.......”


“.......예비대를 나눠서 각 문을 지원한다.”


“옛? 하지만 그랬다가는 적의 본대가 있는 이곳이-”


“여기엔 철심장이 계신다. 각 군에게 전달해라. 최대한 버티라고. 버티고 있으면 대령님이 여길 정리하신 후 직접 구원해주실 거다.”


“.......알겠습니다.”


이것은 전술이 아니다. 명령을 내리는 부관이나, 그를 받아 전파하는 통신병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윈 아이언하트’라는 존재가 지닌 ‘무’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 그가 무너진다면 이스누시아도 무너진다. 그의 철퇴가 뚫어내면, 이스누시아의 숨통도 트인다.


“.......후우.”


짧은 한숨을 삼키며 부관은 먼지로 얼룩진 안경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 물건이 없이는 코앞에 있는 글자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시력이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전장을 벗어난, 저 멀리 산맥을 향하고 있었다.








“좋아, 사다리!”


혼자서 수십의 제국병사를 도륙 냈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지나. 결국 먼저 질려버린 것은 제국군 쪽이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접근할 엄두를 못 내고 주춤주춤 거리를 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지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벽 아래의 레이쇼를 향해 투입을 요청했고, 곧바로 여러 개의 갈고리가 사다리를 세우기 위해 내성벽의 난간에 고정된다.

하지만 그곳에 사다리가 오르는 일은 없었다.


“으랴아아앗!”


성벽을 넘어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우렁찬 목소리. 그 괴성과 함께 휘두른 육중한 철퇴는 난간을 갉아먹던 갈고리들을 모조리 가루로 만든다. 그러나 적군의 침투를 저지한 것은 오직 부차적인 문제. 어윈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은 처음부터 오직 하나의 태양만을 향해 있었다.


“안녕, 또 만났네, 무식한 아저씨.”


“으으으음!”


반가움과 인사를 대신하여 지나의 정수리 위로 쏟아지는 철퇴. 누가 봐도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지나는 너무도 가볍게, 손바닥만으로 철퇴의 경로를 옆으로 비껴낸다.


“이거 왜 이러셔? 우리가 서로 간 볼 사이는 아니잖아?”


“.......”


분노로 일그러져있던 어윈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스며든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철퇴를 천천히 어깨 위로 되돌려 놓는다. 다급함이 사라진 손가락과 무릎. 그에 맞서, 지나 또한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흑도를 고쳐 잡는다.

미소가 맞부딪치는 순간이었다.







“엘라론 경이 이끄는 우익이 동문의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아직까진 적의 저항이 거세긴 하지만, 머지않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카논의 보고에도 전장을 주시하고 있는 크라트의 시린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북쪽은?”


“비슷한 수준입니다. 왕비님께서 어윈을 묶어두고 계시는 한, 공략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지휘관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눈앞의 전투가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가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선발대를 구원하고자 했던 지나의 선택도 결과적으로는 어윈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철심장’이 없다면 이스누시아의 제국군은 그야말로 인간방패. 목숨을 내어놓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가 된다.

하지만 크라트는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있는 지휘관이 아니었다.


“예비대를 투입한다. 왕비가 어윈을 묶어두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시선을 계속 유도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야말로 총동원. 이제 이 땅에서 움직이지 않는 카나반 병사는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함성도 없이,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무너진 외벽을 향해 움직이는 병사들. 카논이 마지막 확인을 위해 크라트를 바라본다.

“.......대장님?”


그러나 ‘늑대’의 눈은 전장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말라버린 숲과, 그 먼지 색 대지의 끝을 장식하고 있는 짤막한 서쪽의 산맥.

시선을 그곳에 고정시킨 채, 크라트는 낮은 목소리로 입술을 연다.


“예비대 정지. 대기한다.”







“후!”


아무리 거센 영력을 담아 흑도를 휘둘러도 저 무식한 철퇴의 궤도는 더 이상 뒤틀리지 않는다. 결국 지나는 뒤로 도약하여 어윈의 공격을 피해야 했고, 그런 그녀를 대신하여 성벽의 바닥이 사방으로 파편을 흩뿌린다. 만약 이곳이 외벽과 같은 상태의 성벽이었다면 이런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력을 다한 어윈의 공격에도, 성벽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약간의 조각만을 허락하고 있었다. 치명적인 공격이 오고가는 와중이었지만 지나는 이 성벽에 대한 견고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흡!”


내리꽂힌 철퇴의 무게중심을 이용하여 포물선을 그리며 접근해오는 어윈.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이었지만 지나의 판단이 먼저였다. 그녀가 갑자기 태세를 바꾸어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자, 이미 철퇴를 휘두르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어윈이 주먹을 휘두른다. 그러나 그마저도 예상한 지나였다. 그녀는 활처럼 허리를 꺾어 그의 팔뚝을 피하고, 완전히 열린 그의 복부를 향해 흑도를 찔러 넣는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깔끔한 일격. 하지만 ‘또다시’, 흑도의 일렁이는 불꽃은 철심장의 근육을 갈라놓지 못한다.


“-!”

이번만큼은 끝내버릴 확신이 있었기에 감행한 접근이었다. 그 대가는 철퇴의 손잡이와 함께 날아든 두터운 주먹. 지나는 재빨리 두 팔로 방어를 하긴 했지만 튕겨져나가는 것만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야야....... 여전히 무식하네.”


감각이 사라진 두 팔을 이리저리 털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지나. 얼굴에는 아직 여유가 묻어나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조금씩 쌓여가는 피로감을 감추기 위해 더욱 많은 영력을 끌어내야 했다.


“학습능력이 없는 거냐? 이 세상 어떤 무기도 나를 쓰러트릴 순 없다!”


“학습능력이라니, 당신한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은데.”


미소와 함께 도약한 지나의 주먹이 어윈의 명치에 꽂힌다. 날붙이가 먹히지 않는 그의 몸을 타격으로 멈춰보려던 시도였지만, 어윈의 두꺼운 입술 아래로 흘러나온 것은 격통으로 인한 신음이 아닌 비웃음이었다.


“벌레 같구나!”

자신의 외침처럼, 어윈은 마치 벌레를 찍어 누르려는 듯 철퇴를 휘두른다. 일반 병사라면 두 손으로도 들기 힘든 육중한 무기를 깃털처럼 다루는 그였지만, 지나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그 모든 공격을 피해낸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성벽의 난간으로 그녀를 몰아넣는 데 성공한 어윈이 확신이 가득한 외침을 내뿜었다. 그는 자신의 무자비한 연격으로 인해 그녀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간격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라는 주인의 눈빛을 품고 크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철심장의 철퇴, 아몬둔.


“도망 안 가거든?”


그에 지나는 도약을 준비하지도, 방어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이것으로 저 아래 누군가를 위한 거대한 표적지가 완성되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


강력한 휘두름을 위해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 어윈은 불길한 바람소리를 듣는다. 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들어왔던 소리였지만, 동시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소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역시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철퇴를 높게 쳐들었던 오른손. 그 팔뚝의 중앙으로 정확하게 박혀있는 화살 한 대. 비록 단단한 그 가죽과 근육을 완벽하게 관통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화살 따위에 상처를 입었다는 신선한 충격은 잠시나마 그의 이성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지나가 노리고 있던 순간이기도 했다.


“싸움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제아무리 영력으로 몸을 치장하고

제아무리 상처를 허락하지 않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 해도,

절대 단련하고 방어할 수 없는 부위는 있는 법이다.

지나의 흑도는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빛을 삼키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 검끝이 향한 곳은, 바로 잔뜩 일그러진 어윈의 눈동자였다.

어윈으로서는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예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겁도 없이 자신의 얼굴로 다가오는 샛노란 눈동자와, 그 눈동자보다도 먼저 시야를 잠식해오는 검은 불꽃. 이 끝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 평생을 무적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흐름.

지나의 혀끝에 확신이 걸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텅.



“.......”


지나의 호흡이 멈춘다.

그녀가 예상했던 소리는 철심장의 비명, 혹은 모든 제국병사들의 탄식이었다. 그러나 흑도의 끝에서 전해져온 낯선 진동은, 그녀가 기대하고 있던 그 어떠한 소리나 감각과는 다른 것이었다.


“붉은 나무의 기사여. 사과한다.”


에페보다는 두껍지만, 병기로서의 내구성이 의심될 정도로 얇은 검신. 손잡이부터 굴곡 하나 없이 매끈한 곡선이 흑도의 모든 어둠을 넘겨받으며 어윈의 턱 아래에서 빛나고 있다.

검의 주인은 얼굴이 없었다. 기괴한 문양이 가득한 가면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문양이었지만, 그 아래에서 들려온 목소리만큼은 지나에겐 익숙한 음색이었다.


“.......고브나이?”


“미안하다.”


어째서 그가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그가 어윈의 눈동자를 구원해준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그가 사과하는지.

지나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의 사과가 끝나지 않았다는 건 확실했다.


“-!”


덜린족의 거대한 발로 얼굴을 걷어차인 지나는 그대로 성벽 아래를 향해 추락하고 만다.


“언니!”

화살을 날린 순간부터 그쪽을 주시하고 있던 리즈가 아니었다면 지나는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리즈는 제때에 맞춰 지나의 몸을 받아 들었고, 코피로 범벅이 된 지나의 얼굴을 향해 후방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전달해 줄 수 있었다.

“언니, 늑대 아저씨가 싸울 건지, 잠시 물러날 건지 선택하래. 덜린족이 몰려왔다고.”


“.......응. 퇴각하자.”


고민은 짧았고, 인중을 훔치는 지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





턱을 받치고 있는 어윈의 표정은 싸늘하다. 복부와 팔뚝의 상처와는 별개로 그의 심기는 잔뜩 뒤틀려있었다.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덜린족이 바로 그 이유였다.


“대령님, 이쪽은 고브나이라고 하는 자로, 이번 지원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역할?”

덜린족 중 가장 덩치가 작은 자를 소개하는 부관의 말에 어윈이 노골적으로 미간을 구긴다.

“아, 그래. 잘나신 지원군이란 말이지. 거기 야만인, 고브나이라고 했나?”


“나는 야만인이 아니다.”


“닥쳐라, 냄새나는 야만인아!”

오직 덜린들만이, 갑작스럽게 터지는 어윈의 고함에 움찔하지 않는다.

“네놈이 그 년을 살려주는 걸 바로 앞에서 똑똑히 보았다! 큰 역할? 적을 살려 보내주는 것이 네놈들의 역할이란 말이냐?!”


“대령님, 그는 그저 대령님을 구하기 위해-”


“누가 이런 더러운 놈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나?!”


침을 튀기며 팔을 휘두르는 어윈. 그의 손끝에 안경이 박살난 부관이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러나 부관은 다시 한 번 어윈의 곁으로 다가서며 간곡한 어투로 그의 분노를 만류한다.


“대령님, 우리에겐 이들의 도움이, 아니, 이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이들의 참전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닥쳐라, 주제도 모르는 년이 감히 나를 판단하려고?!”


“그게 아닙니다. 대령님, 저는 그저-”


“그리고 너희 야만인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 내일 동이 트는 대로 요격하여 적들의 숫자를 하나라도 줄여 놔라! 명령이다, 알겠냐?!”


“.......우린 명령을 받지 않는다. 다만 그게 너의 요구라면-”


“그래, 나의 요구다! 알았으면 썩 꺼져! 냄새난다!”


이 모든 모욕에도 불구하고 고브나이는 고개만을 끄덕인 뒤, 무리를 이끌고 회의실에서 빠져나간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들의 그림자를 향해 가래침을 뱉어버리는 어윈.

평소였다면, 부관은 이쯤에서 그의 고집을 방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대령님, 안 됩니다. 그들을 중요한 전력으로 삼아야 이 전투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버텨? 버티면 뭐가 있냐?”

버럭 고함을 지르는 어윈.

그러나,

부관은 대답하지 못한다.

“버티면 누가 도와주러 오기라도 하냐?! 어? 저 야만인들이 ‘지원군’이라고? 나 어윈 아이언하트가 야만인들의 지원을 받으면서까지 추잡하게 연명하고 있어야 하나?! 다 필요 없어! 내가 직접 카나반 새끼들의 목을 모조리 따버리고 중앙으로 쳐들어갈 것이다! 알겠냐?!”


“대령님,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지금 저들이 없으면, 카나반을 물리칠 수 .......”


그녀는 말을 맺지 못한다. 그녀의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대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영력을 쓸 수 없는 그녀의 얼굴은 곧바로 새파랗게 질리고 만다.


“더 이상 지껄이면 정말로 죽여 버릴 거다.”


어윈의 분노가 뼛속까지 스며들고 나서야 부관은 그의 손길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눈물과 함께 숨을 몰아쉬는 그녀가 꼴보기도 싫다는 듯, 곧바로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어윈. 넓은 회의실에 남은 것은 부관의 기침소리와, 오늘 전투 때부터 그녀와 함께 있었던 통신병뿐이었다.


“.......이제 어떡합니까.......?”


부관의 숨소리가 안정되자, 통신병이 깊은 한숨과 함께 묻는다. 부관은 그의 목소리에서 짙은 체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백 명. 오백 명의 덜린족........”


“예?”


되물으며 다가서는 통신병의 부축을 거절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부관.


“내일 요격을 나가는 오백 명의 덜린족이 카나반을 물리칠 수 있다면, 아직 가능성은 있어.”


“.......예에? 하지만 고작 오백 명이잖습니까? 게다가 그중에 기사는 한 명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오백 명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나도, 대령님도, 그리고 카나반도 덜린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해.”


부관이 조심스럽게 부서진 안경을 주워든다. 테는 휘었고, 이미 알은 조각나버린 상태. 그러나 그 공백을 꿰뚫는 부관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빛이 살아있었다.





“그들은, 절대로 없는 가능성에 매달리지 않아.”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86 네모구름
    작성일
    16.08.15 02:00
    No. 1

    [속보] 덜린족 그들의 정체는?
    고요의 종족 덜린족. 비록 세간에는 그 존재 조차 전설로 치부되고 있지만 실제하는 그들은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이자 '기사'급의 무력을 소유한 자들로 추정되어진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네모구름
    작성일
    16.08.15 02:01
    No. 2

    2시에 잠 안와서 이러고 있군요 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6.08.18 15:34
    No. 3

    네모구름님 감사합니다 ㅠㅠ
    더위 조심하세욧!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6.08.16 21:14
    No. 4

    지나의 앞길도 장애물 투성이네요. 임신한상태인데...ㅠ.ㅜ
    우리의 검성 벤이 무슨 변수의 흐름을 가져오겠죠?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6.08.18 15:34
    No. 5

    불의검님 오늘도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니푸르
    작성일
    16.08.29 19:46
    No. 6

    덜린족이 뭔일 저지를 분위기네요ㄷㄷ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변수의 굴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3 (막간) 하나의 밤하늘, 세 개의 달빛 +11 16.08.29 623 14 15쪽
242 (22막) 세 개의 오만 (14) +10 16.08.24 576 13 16쪽
241 (22막) 세 개의 오만 (13) +9 16.08.19 450 13 26쪽
» (22막) 세 개의 오만 (12) +6 16.08.14 495 9 18쪽
239 (22막) 세 개의 오만 (11) +10 16.08.09 599 11 17쪽
238 (22막) 세 개의 오만 (10) +6 16.08.05 608 13 14쪽
237 (22막) 세 개의 오만 (9) +6 16.07.30 578 14 15쪽
236 (22막) 세 개의 오만 (8) +8 16.07.26 534 11 24쪽
235 (22막) 세 개의 오만 (7) +8 16.07.20 639 13 19쪽
234 (22막) 세 개의 오만 (6) +7 16.07.15 679 12 21쪽
233 (22막) 세 개의 오만 (5) +8 16.07.10 686 13 22쪽
232 (22막) 세 개의 오만 (4) +6 16.07.05 635 14 18쪽
231 (22막) 세 개의 오만 (3) +9 16.06.30 576 12 18쪽
230 (22막) 세 개의 오만 (2) +6 16.06.25 651 13 18쪽
229 (22막) 세 개의 오만 (1) +6 16.06.20 730 15 16쪽
228 (막간) 현실을 마주하며 +4 16.06.15 750 16 16쪽
227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0) +10 16.06.10 729 14 21쪽
226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9) +8 16.06.05 730 12 16쪽
225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8) +4 16.05.30 698 15 19쪽
224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7) +6 16.05.25 724 11 19쪽
223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6) +4 16.05.20 955 10 22쪽
222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5) +5 16.05.14 777 12 18쪽
221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4) +2 16.05.09 703 13 15쪽
220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3) +6 16.05.04 1,028 12 18쪽
219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2) +4 16.04.28 742 16 17쪽
218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 +8 16.04.23 849 15 19쪽
217 (막간) 필요없는 증명. 필요한 증명. +10 16.04.18 739 18 13쪽
216 (20막) 증명 (9) +4 16.04.13 698 18 16쪽
215 (20막) 증명 (8) +8 16.04.08 670 20 16쪽
214 (20막) 증명 (7) +11 16.04.02 735 14 16쪽
213 (20막) 증명 (6) +10 16.03.28 783 13 15쪽
212 (20막) 증명 (5) +8 16.03.23 813 17 24쪽
211 (20막) 증명 (4) +8 16.03.18 948 16 23쪽
210 (20막) 증명 (3) +10 16.03.12 813 17 20쪽
209 (20막) 증명 (2) +10 16.03.07 887 20 19쪽
208 (20막) 증명 (1) +10 16.03.02 763 18 18쪽
207 (막간) 지평선으로 향하는 한걸음을 지켜보는 사람들 +8 16.02.26 810 19 17쪽
206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0) +8 16.02.21 911 24 21쪽
205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9) +10 16.02.16 1,033 20 22쪽
204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8) +6 16.02.11 809 17 28쪽
203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7) +6 16.02.06 765 19 21쪽
202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6) +6 16.02.01 828 17 22쪽
201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5) +10 16.01.27 820 17 17쪽
200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4) +10 16.01.22 965 16 18쪽
199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3) +8 16.01.17 707 20 18쪽
198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2) +10 16.01.12 773 20 19쪽
197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 +8 16.01.07 792 21 13쪽
196 (막간) 언젠가 +4 16.01.02 947 22 16쪽
195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2) +8 15.12.28 799 25 23쪽
194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1) +6 15.12.23 933 24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