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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조회수 :
448,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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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6.06.05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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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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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6쪽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9)

DUMMY

“뭐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크고 날카롭게 귓등을 때리는 고도의 경악에 벤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고도는 도리어 이런 반응을 내보이는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머금더니, 곧바로 두터운 붕대가 감싸고 있는 벤의 왼쪽 무릎 위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른다.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물론이었다.


“으아아악! 아파, 인마!”


“아프라고 찌른 거야 새꺄! 마력이 없으면 손가락도 못 버티는 놈이 어딜 가겠다고 설치는 건데? 누굴 고생시키려고?”


“누가 들으면 너더러 업어달라고 한 줄 알겠다? 지휘관이 원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뭐가 되겠어? 당연히 직접 봐야지!”


“자, 자, 두,두,두 분 다 지,진정하시고.......”

벤이 누워있는 침대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의 고도 사이로 중재의 손길을 집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부사령관을 맡고 있는 토우칸이었다.

“하,하지만 검....성님, 서,선임전투마법사의 마,말에도 일리....가 있스,습니다. 저,적어도 걸어 다,다닐 수 있으실 때까...진 회,회복을 하시는..게........”


“제가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한시라도 빨리 3군단 문제를 매듭지어야 동맹도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을 테고, 그래야 마즈다힐에 있는 동생분도 자유롭게 움직일 거 아닙니까? 제 재활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요?”


“그럼 그냥 토우칸에게 맡기면 되잖아! 넌 여기 누워서 전문으로 지시만 내려!”


흥분한 나머지 대군을 향한 존칭도 잊어버린 고도. 다행히 병실 안엔 그런 그녀의 무례함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안 돼.”


“왜?!”


“.......그냥 안 돼. 내가 직접보고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하니까.”


대답의 시작을 망설임이 장식하고 있었던 것은 ‘악몽’이라는 진실을 말할 수 없기 때문. 물론 이런 허술함을 고도가 납득할 리 없었다.


“하아, 참 잘나셨어. 너 알아서 해, 그럼.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니까. 가자, 이리스.”


고도가 벤의 침상 곁을 지키고 있던 소녀의 팔을 잡아끈다. 그러나 소녀는 금방이라도 커다란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얼굴로 벤을 돌아보았고, 벤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고도의 팔에 이끌려 병실을 빠져나간다.


“.......괘,괜찮겠습...니까?”


고도와 이리스의 그림자가 사라지자마자 토우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여태까지 수많은 이들의 걱정스런 얼굴을 봐왔지만, 벤은 이 남자처럼 진실됨이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두툼한 턱살과 둔해 보이는(실제로도 둔하지만) 입술이 더듬더듬 내뱉는 말엔 언제나 진심이 깃들어 있다. 그가 걱정스러워하면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고, 그가 미소를 지으면 정말로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보기완 다른 훌륭한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은 별개로, 바로 이런 순박함이 그의 태도에서 왕의 형제라고는 믿을 수 없는 친밀감과 인자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였다.


“뭐, 저러다 말겠죠. 자기가 다친 것도 아닌데 왜 승질인지 모르겠네.”


“.......”


그리고 그러한 토우칸이었기에, 벤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놀라움을 느낄 수 있었다.


“왜요?”


“무, 무리해서 마력...을 사용하,하고도 그,그녀는 저,전투가 끝난 후.....에 계속 거,검성 님의 곁을 지,지켰습니다.”


“.......”


“걱정......이 돼서 그러,런 거겠지요....... 그, 그리고 고도 양의 마,말이 옳습...니다. 지그,금 충분...히 재활하지 않으,으시면....... 여,역시 본국이 부상소시,식을 알리는 게.......”


“아뇨, 우린 이대로 북진합니다. 제가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전 직위만 검성일 뿐이지, 정말로 검을 들고 뛰어다니는 게 본업은 아니잖아요?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 하지마,만.......”


“해가 밝는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재정비 잘 해주시고, 로쿠베 경에게는 최소한의 수비 병력만 남겨주세요.”


“.......아,알겠습니다.”


아무리 인정이 많다하더라도 토우칸 역시 지휘관으로서의 공사는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다소 강압적인 태도로 그의 주저를 종식시켜준 것이다. 토우칸이 꾸벅- 육중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병실에서 나가자 마침내 벤은 침묵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침묵은 그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렌.”


자신이 이 이름을 입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한 듯 벤의 입가가 살짝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해맑은 미소가 창문 아래에서 떠올랐고, 벤은 자신과 똑같은 얼굴에서 깊은 혐오감을 느껴야 했다.


“으이구, 이 답답한 인간아. 여자 마음을 그렇게 몰라?”


날렵한 움직임으로 창문을 넘어 병실로 들어서는 렌. 마치 어린 동생을 나무라는 듯한 그의 어투에 벤의 표정이 한층 더 깊게 일그러진다.


“뭐?”


“알면서 그러는 건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저 여자애는 네 물건을 입에 넣고 빨고 싶어서 안달 난 거잖아. 그걸 눈치 못 채? 너 나한테 화난 것도 쟬 덮치려고 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추잡함이다. 벤은 주제를 돌릴 필요성을 느끼고 고개를 저었다.


“됐고, 부탁 하나만 하자.”


“부타악?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 부탁 들어주는 사이가 됐지?”


“.......”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 귀여운 얼굴 망가지니까 찌푸리지 말라고. 무서웡.”


결국 벤은 짧은 한숨 뒤에야 입을 연다.


“네가 먼저 북쪽으로 가서 브린타이나와 3군단의 교착상황이랑 각 진영의 전력 좀 알아봐 줘.”


“뭐어? 어차피 보고서로 받았을 거 아냐?”


“내가 알고 싶은 건 서로 간만 보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검성끼리의 눈치싸움이 아니야. 총력전으로 전환했을 시 브린타이나 쪽이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의 크기, 그리고 그걸 막는 3군단의 정확한 계획을 가늠해야 해. 아무리 동맹이라도 타국의 검성이 작계를 들춰보기엔 좀 그렇잖아. 넌 어차피 브린타이나 소속이니까 괜찮을 테고.”


“글쎄에, 그 인간들도 그닥 나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미소. 동시에 벤은 어째서 브린타이나가 이 남자를 ‘브린타이나의 기사’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 나한테 순순히 협조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한테도 잘 보이면 될 거 아냐.”


“협조오? 하핫,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더니 이젠 날 부하라고 생각하나 봐?”


“난 너 같은 부하 두지도 않았고, 둘 생각도 없어. 내가 부탁한다고 네가 들어줄 의무도 없고. 빨리 대답하기나 해. 할 거야, 말 거야?”


“어휴, 그게 부탁하는 사람 태도야?”

렌이 날카롭게 웃으며 벤의 침대에 살짝 걸터앉는다. 왼쪽 무릎과 가까운 자리였기에, 순간 벤은 불길한 중압감에 짓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불길한 예감대로, 렌은 그런 벤의 반응을 눈치채고 미소의 색을 짙게 띄운다.

“흐음, 뭐어, 나를 억지로 떼어내려는 것도 아니고 타당성도 있으니 못 해줄 건 없지.”


“그럼-”


“대신 조건이 있어.”


역시나.

벤은 보랏빛 입술을 씹는다.


“......뭔데?”


“달랑 나 혼자 갑자기 나타나봤자 ‘미소’가 날 믿어줄 리가 없잖아. 내가 지금까지 너네한테 협조하느라 복귀가 지체됐다는 것과, 그걸 제대로 증명해줄 사람이 필요해.”


“사람?”


되묻는 순간,

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렌의 짓궂은 미소와 게걸스러운 눈빛.

지금 그것들이 원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형제’의 신뢰에 대한 실험이라고.







“.......뭐? 나 참 어이가 없어가지고....... 너 지금 나랑 장난해?”


“.......”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벤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고도의 얼굴을 향해 굳은 침묵을 지킨다. 지금 그녀의 눈빛이 너무도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바닷빛의 깊이 때문은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할 줄 알았더니, 기껏 불러서 한다는 소리가 뭐? 나한테 그짓하려고 했던 인간이랑 둘이서 북쪽에 가라고?”


“단둘이 아니야. 이리스가 같이-”


“아, 그러셔. 이리스가 다 막아줄 테니 안전한 여행 다녀오시라? 지금 네가 뭐라고 하고 있는지 알기는 해?”


“알고 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군내에 토우칸이나 카니아 정도인데, 둘 모두 군을 지휘해야 하니까. 내가 믿을 수 있고, 동시에 렌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아하, 믿을 수 있다? 위대하신 카나반의 검성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이거 영광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근데 이걸 어쩌죠? 미천하고 할 일 없는 전투마법사는 그 좆같은 새끼랑 조금도 얼굴 맞대기가 싫은데?”


물론 고도의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에 존경심이나 영광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고도, 부탁이야. 렌은 날 시험하고 있는 거라고. 여기서 신뢰를 보여주지 않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란 거, 너도 알고 있잖아. 나는 지금 그놈의 눈과 귀가 꼭 필요하-.”


“아~, 그러니까 강간범의 눈치를 봐야 하니 닥치고 명령을 들어라, 이거네?”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 새끼가 뭔 짓을 하려고 했는지 네 두 눈으로 봤으면서도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한다는 건, 결국 너한테 있어 나란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 뻔히 알려주는 거지. 참 편하시겠어? 대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걸 들이밀고, 거부하면 나만 또 썅년이 되는 거잖아.”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고도의 비웃음이 멈춘다. 그녀는 물론이고, 가만히 침대머리에 앉아있던 이리스 또한 갑작스러운 고성에 놀라 커다랗게 눈을 뜬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벤의 모습은 그들에게 익숙한 광경이 아니었다.

“사실 내가 직접 가고 싶었어. 아니, 내가 갔어야 했어. 하지만 갈 수가 없잖아. 당장에 일어설 수도, 앞으로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라고 그 새끼한테 부탁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나라고 마음이 편할 거 같냐고?! 이리스가 아니라 백 명의 검성을 붙여준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걸, 네가 이해해주길 바랐고!”


벤의 목소리 마지막은 깊은 신음으로 맺어지고 있었다. 흥분으로 인해 마력의 흐름을 놓쳤고, 찢어질 듯한 무릎의 통증이 그대로 노출된 탓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통과는 별개로, 이미 고도의 표정은 당혹감에서 벗어나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그럼 애매하게 미움받지 않으려 피하지 말고, 명령을 내려. 까먹었어? 넌 검성이고, 난 일개 전투마법사야.”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내가? 그래? 그럼 한 번 물어보자. 왜 그럴 수가 없는데?”

벤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위해, 크게 한 걸음 다가서는 고도.

“왜 나한텐 그냥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데? 내가 싫어하든 말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냥 명령을 내리면 되는 거잖아. 왜 나한텐 그러지 못하는데? 응? 대답해봐.”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벤은 고도의 깊고 푸른 시선을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시선의 회피가 걸리지 않을 수가 없을 터. 알고 있음에도, 벤은 눈동자를 옆으로 흐린다.


“.......너는 나의 멘티니까.”


“.......그러시겠지.”


미련 없이, 그리고 기대도 없이, 그대로 뒤돌아 병실의 입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깊은 그녀의 시선만큼이나 그 뒷모습에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기에, 벤은 고도를 따라 나가려는 이리스의 팔목을 붙잡는다.


“이리스.”

말은 없었지만, 언제나 동반자였으며 동시에 가족이었던 인형 소녀의 회오리 같은 눈동자. 붉은빛과 푸른빛을 동시에 품고 있는 그 소용돌이를 향해, 벤은 진심을 눌러 담은 말을 꺼낸다.

“........고도를 부탁해.”





=====================





모두가 이미 한 번 불타올랐던 숲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카나반은 조금씩 조금씩 그 불가능을 현실로 되돌려놓고 있었다. 기꺼이 손을 빌려준 ‘칸시온 델 보스케’의 드루이드들과 수인들이 아니었다면 묘목을 옮겨 심는 수준에 불과했을 녹화작업. 그 범위가 마즈다힐 전역으로 확대되었음에도 숲의 생명 그 자체를 키워내는 드루이드의 능력은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푸른 파도를 일궈내고 있었다.


“음, 바로 이 냄새야, 아주 훌륭해.”


이런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칸시온 델 보스케’와 카나반 정부 둘 모두에 접점을 가지고 있는 듀라의 역할이 중요했다. 칸시온 델 보스케를 대변하는 숲의 민족인 엘론족이면서도, 동시에 카나반의 기사라는 특이성이야말로 벤이 없는 지금 드루이드들을 회유할 수 있는 큰 이점이었던 것이다. 본래 숨을 죽이고 살며 인간들의 세계에 발을 딛지 않는 것이 원칙인 숲의 영혼들을 고향의 복구라는 미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데에는 듀라와 페어리 아이데아의 입김이 주효했다. 그들의 ‘외교’ 덕분에 숲의 축복을 통해 지형적 우위를 점하고 싶은 카나반과, 제국에 의해 불타버린 카모라숲을 재건해야 한다는 드루이드들의 이해관계가 쉽게 맞아떨어질 수 있었다.

정찰과 상황지도라는 명목하에 야밤의 산책을 나온 듀라는 어느덧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숲의 풍경에 만족하며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제국에 몸을 담고 있던 그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엘라론 드리브달이라는 존재에 매료된 것이 원인이었을 뿐, 숲을 불태우는 그들의 방식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죽음이 곧 숲으로의 회귀인 엘론족에게 있어 숲을 불태운다는 것은 무덤을 파헤치고 마지막 안식을 증발시켜버리는 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숲의 축복과는 별개로, 숲바람을 통해 마음과 발이 가벼워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


그런 그였기에,

상큼한 숲의 향기 사이로 흘러들어온 불쾌한 악취를 놓칠 리가 없었다.

갑옷도 걸치지 않았고, 무장이라곤 발목에 숨겨둔 작은 단도 하나뿐이다. 그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조용히 영력을 감추고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부관! 여기쯤이면 되나?”


“예.”


걸걸한 남성의 목소리와 곧바로 그에 대답하는 특색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여인의 목소리. 듀라는 곧바로 첫 번째 목소리는 기사, 두 번째 목소리는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들려온 목소리는 두 개였지만, 나타난 그림자의 숫자는 꽤 많았다. 모두가 빛을 반사시키지 않는 복장이다. 잠입이라는 불길한 단어가 듀라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였다.


“흥, 건방진 나무새끼들. 브란트 그 병신 같은 뚱땡이 하나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서는. 어디 넘볼 걸 넘봐야지.”


“대령님, 이제 슬슬.......”


“아, 그래. 다들, 여기다 내려놓도록.”


부스스 풀잎들이 스치는 소리. 그러나 육중한 무언가가 바닥을 나뒹굴고, 그 둔탁함이 듀라의 신경을 대신 긁는다.


“이만 물러나시지요.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래. 모두 퇴각한다.”


굵은 목소리의 명령에 모든 그림자들이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듀라가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데 망설일 필요조차도 없는 신속함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흙 위로 내려서, 천천히 ‘불청객’들이 놓고 간 덩어리들을 향해 다가선다. 엘론족의 흐린 눈동자는 달빛의 도움이 없이도 그 정체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


듀라는 숨을 삼킨다. 만약 의도적으로 숨을 삼키지 않았다면, 그의 창백한 입술 사이에서 대신 흘러나온 것은 탄식이었을 테니까.


그것들은 머리였다.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짐승들의 머리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듀라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수인 드루이드라는 사실을.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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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22막) 세 개의 오만 (14) +10 16.08.24 577 13 16쪽
241 (22막) 세 개의 오만 (13) +9 16.08.19 450 13 26쪽
240 (22막) 세 개의 오만 (12) +6 16.08.14 495 9 18쪽
239 (22막) 세 개의 오만 (11) +10 16.08.09 599 11 17쪽
238 (22막) 세 개의 오만 (10) +6 16.08.05 608 13 14쪽
237 (22막) 세 개의 오만 (9) +6 16.07.30 578 14 15쪽
236 (22막) 세 개의 오만 (8) +8 16.07.26 534 11 24쪽
235 (22막) 세 개의 오만 (7) +8 16.07.20 639 13 19쪽
234 (22막) 세 개의 오만 (6) +7 16.07.15 680 12 21쪽
233 (22막) 세 개의 오만 (5) +8 16.07.10 686 13 22쪽
232 (22막) 세 개의 오만 (4) +6 16.07.05 635 14 18쪽
231 (22막) 세 개의 오만 (3) +9 16.06.30 576 12 18쪽
230 (22막) 세 개의 오만 (2) +6 16.06.25 651 13 18쪽
229 (22막) 세 개의 오만 (1) +6 16.06.20 730 15 16쪽
228 (막간) 현실을 마주하며 +4 16.06.15 751 16 16쪽
227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0) +10 16.06.10 729 14 21쪽
»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9) +8 16.06.05 731 12 16쪽
225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8) +4 16.05.30 698 15 19쪽
224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7) +6 16.05.25 724 11 19쪽
223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6) +4 16.05.20 955 10 22쪽
222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5) +5 16.05.14 777 12 18쪽
221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4) +2 16.05.09 703 13 15쪽
220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3) +6 16.05.04 1,028 12 18쪽
219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2) +4 16.04.28 742 16 17쪽
218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 +8 16.04.23 850 15 19쪽
217 (막간) 필요없는 증명. 필요한 증명. +10 16.04.18 739 18 13쪽
216 (20막) 증명 (9) +4 16.04.13 698 18 16쪽
215 (20막) 증명 (8) +8 16.04.08 671 20 16쪽
214 (20막) 증명 (7) +11 16.04.02 735 14 16쪽
213 (20막) 증명 (6) +10 16.03.28 783 13 15쪽
212 (20막) 증명 (5) +8 16.03.23 813 17 24쪽
211 (20막) 증명 (4) +8 16.03.18 948 16 23쪽
210 (20막) 증명 (3) +10 16.03.12 813 1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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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7) +6 16.02.06 766 19 21쪽
202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6) +6 16.02.01 828 17 22쪽
201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5) +10 16.01.27 821 1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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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2) +10 16.01.12 773 2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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