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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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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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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43,319

작성
16.01.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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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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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7쪽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5)

DUMMY

물론 아예 경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베르달군에게 커다란 평원에서의 전투는 분명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적의 후방을 교란하며 움직일 수 있는 나무도, 적 마법사와 소총병의 사선으로부터 그들을 숨겨줄 풀숲도 존재하지 않는다. 숲의 축복에서 멀리 벗어난 그들의 몸은 마치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이 무거웠으며, 그 부담감은 비교적 가벼운 그들의 무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깊은 무게였다.

하지만 베르달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쏟아지는 마법폭격과 그들을 상쇄하는 푸른빛의 보호막 아래로 거대한 나무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가죽을 이어붙인 난잡한 베르달의 군복과는 달리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의 남색 정복. 금빛으로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태양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눈동자를 안고 있는 그 나무는, 오직 단 한 장의 붉은 나뭇잎만을 가슴에 품고 있는 카나반의 수호목이었다. 이 금빛의 나무야말로 베르달군에게 있어선 숲보다도 광활하고 하늘보다 푸르른 안식. 그 존재감은 맞은편의 제국군에게도 마찬가지였기에, 총탄은 물론이고 영력이 실린 화살과 단창까지 순식간에 그녀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불타오르는 흑도를 휘두를 필요조차 없었다. 깊게 숨기고 있던 영력을 전개하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집중되던 위협들을 하늘 높이 빗겨낸 것이다. 그 짧았던 영력의 노출, 찰나의 순간, 제국의 기사들 중 몇몇에겐 지금 선두에서 돌진해오는 저 여기사의 존재가 소름 끼칠 정도로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경고의 외침을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그녀가 타고 있는 백마가 전열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누가 보아도 무모했던 돌진. 그러나 그 무모한 돌진은 가장 무거운 파괴력이 되어 제국군의 방패벽을 무너트린다.

주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길이와 두께가 변하는 흑도가 바람을 가르고, 그 악의의 빛에 관통당한 병사들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영혼이 무너진다. 문제는, 그 검은빛에 직접 닿은 자들뿐만이 아닌, 그들의 뒤에,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병사들까지도 마른 낙엽처럼 바스라졌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낫처럼 흑도를 휘두르며 순식간에 중앙의 대열을 무너트리는 그녀를 저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타고 있던 백마에게도 작은 상처하나 허용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카나반의 창년이 멋대로 날뛰는구나!”


물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제국의 기사들이 아니다.

홀로 적진 깊숙이 침투해온 지나의 앞을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가로막는다. 칠흑의 제복 위로 빛나는 용문양의 계급장이 그가 꽤나 전적이 깊은 기사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높게 치켜든 육중한 도끼날이 얼마나 많은 피를 삼켜왔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자신감. 그가 몸을 맡기고 있는 군마도 지나의 날렵한 백마와는 달리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철갑마였다.

이어지는 자잘한 도발 따윈 필요 없었다. 제국의 기사는 그대로 번개처럼 달려들어 지나와 그녀의 말까지 단번에 동강 낼 기세를 내뿜으며 영력이 깃든 도끼를 수직으로 내리찍는다. 끔찍한 무게가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기 직전까지 그녀에게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기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제국군들은 순간 환호가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


도낏자루를 쥔 손에서부터 전신으로 울려 퍼지는 반동. 그 손맛의 끝에서 제국의 기사는 작은 위화감을 잡아낸다. 어느새 도끼날을 막아내고 있는 흑도가 바로 그 위화감의 정체였다. 살의의 무게로 인해 주저앉은 것은 그녀가 아닌, 그녀가 타고 있던 말이었다. 모든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었으니, 네 다리가 모두 부러졌으리라.

그러나 그가 자신의 위력에 흡족할 틈은 없었다. 무기와 무기 사이에서 빛나는 두 눈동자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으니까.

흑도 위에서 짓누르고 있던 도끼의 측면을 손등으로 후려치는 지나. 작은 손에서 나온 위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으로 인해 철갑마의 균형이 흔들렸지만, 제국기사는 간신히 도끼를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지나가 노리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지나는 도끼날을 쳐낸 손으로 그대로 도끼의 목을 잡아당겼고, 이미 흔들리고 있던 철갑마는 갑작스러운 힘에 그대로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검은 기사의 건장한 몸이 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경험으로 무장한 2군단의 정예기사. 곧바로 날아들 흑도를 경계하기 위해 보조무기인 손도끼를 꺼내 들었지만, 그의 앞으로 다가온 것은 악의가 가득한 검은 빛이 아닌, 태양처럼 빛나는 두 눈동자였다.


“으읍-!”

그의 이성이 저항할, 반응할 틈도 없이, 기사의 목을 움켜쥐는 지나의 하얗고 작은 손. 그는 들고 있던 도끼와 손도끼 모두를 내팽개치고 그 손을 저지하기 위해 지나의 손목을 움켜쥐었지만, 지나의 손가락은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단단하게 살갗을 파고든다.

“으윽-.......케........케헥.......!”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그리고 자신들의 기사가 무슨 짓을 당하려는 것인지 병사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크게 흑도를 휘둘러 그를 돕기 위해 나서는 제국의 병사들을 베어내면서도 적의 목을 놓지 않고 있는 카나반의 여기사는, 집요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손안의 살덩어리를 비틀고 있었다.


뿌득-하고,

불길한 소리가 혼란스러운 전장을 관통한다. 하얗게 돌아가는 눈동자와 피거품이 부글거리며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지나는 손의 힘을 멈추지 않는다. 뼈가 부러지고, 핏줄이 뒤틀리고, 피부가 찢어질 때까지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을 때, 마침내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깨달을 수 있었다.


“후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으로 쥐어뜯은’ 머리를 치켜드는 카나반의 여왕. 울컥 솟아나온 피와 위액으로 인해 그녀의 손과 제복은 더러워졌지만, 그에 상반되는 개운한 표정을 보며 제국의 병사들은 넋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미소는, 그들에게 있어선 더할 나위 없는 공포였다.


“씨발년이!”


공포를 이겨내고, 처참한 동료의 죽음에 격분하며 달려드는 또 한 명의 기사. 사각으로 도약해오는 그녀의 검을 향해 지나는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치켜들고 있던 머리를 집어던진다. 제국의 여기사는 차마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베어낼 수 없어 품으로 머리를 받아들었고, 동시에 손도끼 하나가 날아와 원래 주인의 머리와 함께 그녀의 심장을 박살 내고 만다.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 숨을 몰아쉬지도 않는다.

지나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뺨을 닦아내며, 살짝 미소를 짓는다.

주변을 둘러보는 눈동자. 차가운 불길을 내뿜고 있는 흑도.


그녀가 자신이 가슴에 품고 있는 나무를 위해


악마가 된 순간이었다.







“중앙이 너무 깊숙하게 파고드는 거 같은데요?


굴곡이 없는 지형이었기에, 로빈은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말 위, 그것도 드렌턴의 어깨를 빌려 일어서야 했다.


“목적이 있어서 돌파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막지 못하는 것’일 테지. 왕, 네 ‘기사’는 지금 이 전장에서 베르달 용사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는 거다.”


드렌턴의 어깨에서 내려와 자신의 말로 돌아가는 로빈을 향해 묵직한 목소리를 내뱉은 크라트였다.


“.......카나반 최고의 정예들이라고는 하지만, 여태까지 베르달의 용사들은 ‘막아내는’ 입장이었지, ‘괴롭히는’ 입장은 아니었죠. 다시 말하면-”


“자신감이 부족하다.”


왕과 베르달의 영주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베르달군이 카나반에서 경험적인 면으로나, 질적인 면으로나 최정예에 가까운 집단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베르달이라는 숲과, 그 숲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그들만의 능숙함에서 오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 그 특수성은 세뮈엘의 축복을 받은 뒤로 더욱 그 색이 짙어졌는데, 크라트는 그때부터 줄곧 이러한 ‘축복’에 안주하기 시작한 자신의 부하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걱정은 국경을 넘는 순간, 현실이 되어 베르달군 전체에 내리깔리기 시작했다.

용사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 난생처음 밟아보는 땅과 그 땅의 지형은 그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사방으로 숲은커녕 초록색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익숙하지 않은 기동전도 새롭게 훈련받아야 했다. 개방된 공간에서의 힘싸움은 가벼운 무장의 그들에겐 어쩔 수 없는 부담이었다.


“카나반을 대표하여 왔다는 사실도 줄곧 중앙과는 동떨어져 있던 이들에게는 어색한 중압감이었을 거다. 이럴 때일수록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건 결국 기사들이다. 이런 곳에서도 그들의 개인역량이 제국군에게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병사들도 자신감을 되찾고 전투력을 끌어올릴 수 있지. 기선제압이 중요하다는 네 말도 같은 맥락이다.”


“네. 근데 문제는,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거네요. 중앙을 제외한 양익이 좀처럼 전선을 밀지 못하고 있어요. 이러다가는 파고들어간 지나와 중앙군이 포위당하겠는데요.”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한정적이지. 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고.”


“.......흐음.”


로빈과 크라트,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근위대의 뒤로 수백 명의 기병대가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대치상황이 길어질수록 이런 평원에서 기병대가 끼칠 수 있는 영향은 굳이 병법서를 탐독하지 않은 지휘관이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하지만 로빈이 섣불리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첫째로, 본래 베르달군은 평지에서의 기병전이 주특기인 집단이 아니다. 때문에 마즈다힐 침공에 앞서 단기속성의 훈련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책이었다. 즉, 지금 그가 운용할 수 있는 기병대는 베르달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정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기병전에 있어서 베르달군과 로빈에게 아픈 기억을 준 인물이 적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이름은 쥬넨 니바르토. 과거 ‘붉은 장미’와 함께 베르달을 침공했을 시, 기병대를 통한 용병술로 베르달군에게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했던 인물. 적국으로 귀화한 배신자를 인정하긴 싫지만, 쥬넨이 전장을 읽고 기병을 다루는 능력만큼은 분명 경계해야 할 1순위 위협이었다. 만약 그런 그에게 이쪽의 기병전력이 신병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 노출된다면-,


“이런 상황에선 먼저 기병을 움직이는 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불완전한 이쪽의 기병전투력이 노출되게 된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겠지. 왕, 여기선 나도, 참모진도 해줄 조언이 없다. 선택은 지휘관의 몫. 네가 짊어져야 할 무게다.”


“네, 알고 있어요.”

로빈은 턱을 감싸며, 자신이 드렌턴의 어깨 위에서 보았던 풍경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린다.

지금 자신은 왕으로서의 로빈이 아닌, 지휘관으로서의 로빈슨 폰 미트라블루스로 이 자리에 발을 딛고 있다. 지휘관은 전장으로 보이는 것 너머를 보아야 한다. 벌어지는 일 너머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모든 변수를 품고 승리로 부하들을 이끌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즐기는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친구는 지금 자신의 곁에 없다. 잠시나마 그를 의지하고 싶었던 자신을 향해 짧은 욕을 내뱉으며, 로빈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무조건 적의 기병대를 먼저 움직이게끔 만들어야겠군요.”


“좋은 수라도 있나?”


“솔직히 말해서, 제가 유능하고 좋은 지휘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좋지는 않아도, 꽤나 쓸 만한 지휘관인 친구로부터 한 가지 만큼은 배울 수 있었죠.”

중압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로빈의 표정.

“적을 당황시키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첫걸음이라는 걸요.”


“.......당황이라.......”


“대장님, 전 아직도 어디까지나 이곳의 총지휘관은 대장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한 명의 지휘관으로서 부탁드릴게요.”


순간, 부탁이라는 단어에 크라트는 물론이고 드렌턴도 눈살을 찌푸린다. 본능적으로 뭔가 불편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고 예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확실한 현실로 그들에게 닥쳐온다.




“저한테 예비대의 지휘권을 주세요.”





=====================





찌르고 들어오는 칼등을 팔꿈치로 빗겨내고, 그대로 손가락을 병사의 얼굴로 짓눌러 그의 안면을 부서뜨린다. 압력을 이기지 못해 안구가 튀어나오고 갈라진 두개골 사이로 뇌수가 흘러나오지만 지나의 얼굴엔 역겨움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정갈했던 남색 제복은 이미 군데군데 베이고 뜯어져 안쪽의 먹색 강화복을 노출시키고 있었고, 금빛의 머리카락은 이미 적갈색의 체액으로 눌어붙어 군데군데 덩어리져있다. 새하얗던 피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적군의 피를 뒤집어쓴 채였다. 아직까지도 빛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눈동자와 까맣게 불타오르는 흑도뿐이었다.

그녀는 살의와 악의로 전장을 읽는다. 그들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검을 휘둘러 영력의 흐름을 내뿜고, 그것들이 느껴지지 않는 방향으로 등을 맡긴다. 그녀를 뒤따르는 베르달의 용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지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지금 여왕의 존재는, 전장에 홀로 우뚝 선 버팀목이었으니까.


“나이트 마제스티, 전하!”


비명과 고함만이 가득하던 지나의 귀로 간만에 친숙한 목소리가 다가온다. 자신에게 덤벼든 기사의 창과 상반신을 한꺼번에 잘라내고 지나는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는다.


“아, 올리.”


올리 또한 지나만큼은 아니었지만 온몸에 죽음의 흔적을 묻히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여왕에겐 다소 놀랄 수밖에.


“그, 너무 깊숙하게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는 포위-”


“괜찮아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예?”


아버지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호의에 올리는 당황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당당한 선언에 믿음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지금 절반쯤 뚫고 왔죠? 슬슬 포위될 때도 됐네요.”


“그건....... 일부러 깊게 들어오신 겁니까?”


“네, 대충 제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할지 알 거 같아서요. 조금 있으면 아마 이쪽으로 통신을 넣을 거예요. 올리는 용사들을 잘 추슬러서 이 기세를 잃지 않게끔 해주세요.”

이미 그럴 필요는 없다-라고 내뱉으려는 올리의 말은 지나의 뒷목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에 막혀버린다. 그러나 그 영력이 깃든 화살은 본래 목표에 닿지 못한 채, 지나의 가슴팍을 스치며 땅으로 깊숙하게 촉을 박아 넣는다. 지나는 여유롭게 그 화살을 뽑아들어 커다란 동작으로 날아온 방향을 향해 되날린다. 목표가 된 기사는 황급하게 활을 들어 그 자신이 날렸던 화살을 막아보려 했지만, 화살은 그의 활과 영력을 찢으며 그의 목을 관통하고, 그 뒤에 있던 병사의 머리도 꿰뚫어버리고 만다.

“그럼, 부탁할게요.”


여왕다운 인자한 미소. 그리고 그녀가 휘두르는 먹색 불꽃의 향연은 그녀의 뒤를 따르는 용사들에겐 그 무엇보다 든든한 ‘나이트 마제스티’의 빛이다. 올리는 이 당혹스러우면서도 익숙한 위압감을 그리 멀지 않은 기억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


베르달의 숲에서 맞이했던,

압도적이었던 붉은 미소.


그 미소를 바라보며 자신이 지었던 표정이, 지금은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기사와 병사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다.

절제와 냉정을 기사가 지녀야 할 최우선적인 미덕으로 배워왔던 자신조차도, 이 여왕의 곁에서 검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어 넘치려하는 고양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과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리는 하나의 생각이 집요하게 자신의 머리를 괴롭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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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막간) 하나의 밤하늘, 세 개의 달빛 +11 16.08.29 623 14 15쪽
242 (22막) 세 개의 오만 (14) +10 16.08.24 577 13 16쪽
241 (22막) 세 개의 오만 (13) +9 16.08.19 450 13 26쪽
240 (22막) 세 개의 오만 (12) +6 16.08.14 495 9 18쪽
239 (22막) 세 개의 오만 (11) +10 16.08.09 599 11 17쪽
238 (22막) 세 개의 오만 (10) +6 16.08.05 608 13 14쪽
237 (22막) 세 개의 오만 (9) +6 16.07.30 578 14 15쪽
236 (22막) 세 개의 오만 (8) +8 16.07.26 534 11 24쪽
235 (22막) 세 개의 오만 (7) +8 16.07.20 639 13 19쪽
234 (22막) 세 개의 오만 (6) +7 16.07.15 680 12 21쪽
233 (22막) 세 개의 오만 (5) +8 16.07.10 686 13 22쪽
232 (22막) 세 개의 오만 (4) +6 16.07.05 635 14 18쪽
231 (22막) 세 개의 오만 (3) +9 16.06.30 576 12 18쪽
230 (22막) 세 개의 오만 (2) +6 16.06.25 651 13 18쪽
229 (22막) 세 개의 오만 (1) +6 16.06.20 730 15 16쪽
228 (막간) 현실을 마주하며 +4 16.06.15 751 16 16쪽
227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0) +10 16.06.10 729 14 21쪽
226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9) +8 16.06.05 730 12 16쪽
225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8) +4 16.05.30 698 15 19쪽
224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7) +6 16.05.25 724 11 19쪽
223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6) +4 16.05.20 955 10 22쪽
222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5) +5 16.05.14 777 12 18쪽
221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4) +2 16.05.09 703 13 15쪽
220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3) +6 16.05.04 1,028 12 18쪽
219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2) +4 16.04.28 742 16 17쪽
218 (21막) 악몽을 마주하며 (1) +8 16.04.23 850 15 19쪽
217 (막간) 필요없는 증명. 필요한 증명. +10 16.04.18 739 18 13쪽
216 (20막) 증명 (9) +4 16.04.13 698 18 16쪽
215 (20막) 증명 (8) +8 16.04.08 671 20 16쪽
214 (20막) 증명 (7) +11 16.04.02 735 14 16쪽
213 (20막) 증명 (6) +10 16.03.28 783 13 15쪽
212 (20막) 증명 (5) +8 16.03.23 813 17 24쪽
211 (20막) 증명 (4) +8 16.03.18 948 16 23쪽
210 (20막) 증명 (3) +10 16.03.12 813 17 20쪽
209 (20막) 증명 (2) +10 16.03.07 887 20 19쪽
208 (20막) 증명 (1) +10 16.03.02 764 18 18쪽
207 (막간) 지평선으로 향하는 한걸음을 지켜보는 사람들 +8 16.02.26 810 19 17쪽
206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0) +8 16.02.21 911 24 21쪽
205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9) +10 16.02.16 1,033 20 22쪽
204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8) +6 16.02.11 810 17 28쪽
203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7) +6 16.02.06 766 19 21쪽
202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6) +6 16.02.01 828 17 22쪽
»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5) +10 16.01.27 821 17 17쪽
200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4) +10 16.01.22 965 16 18쪽
199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3) +8 16.01.17 707 20 18쪽
198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2) +10 16.01.12 773 20 19쪽
197 (19막) 너의 색으로 물드는 지평선 (1) +8 16.01.07 793 21 13쪽
196 (막간) 언젠가 +4 16.01.02 947 22 16쪽
195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2) +8 15.12.28 799 25 23쪽
194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1) +6 15.12.23 933 2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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