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워싱턴
케일과 나머지 뮤턴트는 LA를 기반으로 터전을 잡기로 했다. 아무래도 넓은 평원보다는 그나마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 환경이 적을 막아 내기 요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나에 대해 주의를 내렸다. 데몬 프린스화 되는 것은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한다. 이곳에서 먹거리를 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만나 외에 불가능한 수준이다.
재배할 수 있는 채소나 식물은 아예 없고 육식할 수 있는 동물도 없다. 수분 보충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는 만나를 섭취해야 한다.
이 대지는 죽은 대지다. 이제는 생명의 씨앗을 품을 수도, 발아 시킬수도 없는 땅이 되었다. 괴물과 죽음만이 떠도는 이 대지에 다시 생명의 씨를 뿌려야 한다.
충분하다 못해 넉넉한 차원 에너지는 차원이 다른 디멘션 파워를 발휘했다.
기간테스의 몸무게는 약 300kg에 육박한다. 삐쩍 마른 형태에 비해 상당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그건 지구의 금속이 아니기 때문인데 비중이 전혀 다른 금속이라 부피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간다.
그런 기간테스를 가뿐히 공중으로 들어 올려 마하 3의 속도로 하늘을 나는 것은 기존에는 역부족인 능력이었다.
순간 이동 능력이 없고 아직 차원 이동은 불가능한 상태이니 물리적으로 하늘을 나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물론 그런 나도 1km의 고도는 지킨다.
그 이상 올라가면 중력 난기류에 휩싸여 배는 힘이 들어간다. 즉 쓸데없는 능력 낭비다. 그 이상 올라갈 이유도 없거니와 1천km 상공으로 날아도 걸리적거릴 것은 하나도 없다.
다행한 것인지 이 세상에는 하늘을 나는 몬스터나 악마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섹서스는 감상에 젖어 있다. 가끔 이놈이 진성 악마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실 섹서스는 감정을 먹는 악마가 아닌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고 태어난 네메시스만의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녀석은 흉내를 잘 낸다. 왜냐하면 자신의 근본 성정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보통 천사는 절대선이라 칭하고 인간은 혼돈의 선이고 악마는 절대악이라고 봤을 때 네메시스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섹서스가 이렇게 농담 잘하고 건방지게 행동하는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빙의했던 캐릭터의 성향을 온전히 가진 채로 기간테스에 장착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건 섹서스 본연의 감성이 아닌 단지 캐릭터의 성향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원래 섹서스라는 이름조차 어떤 악마가 붙여준 거다. 왜냐하면 악마는 진성을 매우 중요시하며 권능의 힘 또한 이름을 두고 맹세하는 일이 많아서다.
섹서스는 기간테스의 보디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 따로 관리해야 할 필요도 없고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원도 무한대나 마찬가지며 악마가 차지하기 딱 좋은 성향을 지닌 기계 육체다.
그럼 인가보다 좋지 않은가? 하면 답은 절대 아니다. 이건 아스트랄계로 쳤을 때 악마가 가장 원하는 순수한 영혼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과학적 기계 장치에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악마에게는 작은 장난감 정도 그 이상의 가치는 가지지 못한다. 섹서스는 부패의 축복을 받은 존재며 무형의 존재라 닿는 것은 모두 부패시켜 버리는 가장 잔악한 네메시스 중 하나다.
그런 섹서스가 기간테스라는 멋진 신체를 얻었으니 얼마나 흥분이 되겠는가? 그리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오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크게 만족해했다.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빙의 했던 캐릭터는 섹서스의 힘을 버티고자 심지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런 단순한 유기체 인형이었다.
기간테스는 인간의 약 다섯 배에 달하는 평균 오감 센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증폭했을 시 최대 열 배까지 활용할 수 있다.
주변 냄새가 고약하면 냄새 센서를 끄면 될 정도로 그 효율성 또한 상당하다. 호흡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체가 발붙일 수 없는 유독성 대기를 가진 행성에서도 전혀 구애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섹서스가 차지한 기간테스는 식민지 개척용 버전이라 꽤 많은 다양한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난 처음 기간테스를 단지 방어력이 우수한 갑옷 정도로 생각하고 브릔힐드에 줄 때도 싹 다 분해해서 브릔힐드 몸에 맞게 개조했는데 자세히 알고 보니 상당한 내력을 가진 네크로이드 종족의 기계 신체였다.
악마는 기간테스를 포획한 후 기억 장치를 포맷시켜 버리고 장난감으로 사용했다. 기억 장치를 포맷한다는 것은 네크로이드 종족에 한 해 영원한 소멸을 의미한다.
악마는 단지 재미 삼아 기간테스를 잡아들였다.
워싱턴으로 가는 데는 체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대륙 간 이동도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 같다. 차원 에너지를 흡수한 후 언노운은 즉시 에테르 자동 흡수 비율을 극대화해 놓았다.
미 대륙에도 엘리시움 광석이 있다. 특히 던전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상당량의 엘리시움을 확보할 수 있다. 엘리시움 광석의 활용도는 엄청나다. 그것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우리였고 다음이 네오 나치 독일이었다.
엘리시움 광석의 활용 가치는 엘리시움 광석이 품고 있는 에테르다.
계속되는 업그레이드 동안 에테르 농도 조정에 간섭할 수 있게 되고 에테르 자가 증식 기능도 이젠 10레벨에 올라 있다. 초당 에테르 약 일천을 흡수하고 있다. 에너지 저감율도 상승하여 약 70%에 이르고 있다.
이젠 굳이 엘리시움 광석에서 에테르를 추출하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의 에테를 흡수하고 있다.
에테르란 이 행성 자체의 생명 에너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행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계속되는 에너지 원이다.
지금 인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권능과 신성력, 차원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핵심이 되는 요인이 바로 에테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에테르는 오직 인간 신체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악마도 천사도 몬스터도 가질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을 위한 에너지 원이다.
워싱턴에 가까워질수록 뮤턴트가 많이 잡혔다. 지금 범위를 300km 내로 축소해 두고 있었다. 워싱턴에 가까워지자 더 많은 수의 뮤턴트가 속속 점등됐다.
'검색 범위를 오백 킬로로 확대해줘.'
【알겠습니다】
베헤모스가 워싱턴으로 왜 가는지 알 것 같다. 상당한 규모의 뮤턴트가 워싱턴을 중심으로 집결해 있었으니 인간의 군중이 뿜어내는 감정의 크기가 상당할 것이다. 그 냄새를 맡고 오는 것일 거다.
【게이스트 인퀴리 위성의 정보 처리 과정 중 검색 대상에 권능의 덩어리가 잡혔습니다. 표기하겠습니다】
새빨간 붉은 점 등 하나가 떴다.
'악마 새끼지?'
【권능의 양으로 보면 최소 이품 이상의 악마로 보입니다】
'게헤나의 규정상 악마는 인간의 땅에 관여할 수 없을 텐데? 모노스 테리움인가? 겁도 없는 녀석인데?'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붉은 점등과 초록 점등이 겹쳐 있다는 것은 둘이 매우 근거리에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뮤턴트의 배치를 보면 이 두 명을 중심으로 두 그룹으로 나뉜 것처럼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보낸 아크 데몬의 포진도 이상했다. 워싱턴 근처에 총 세 명의 아크 데몬이 있다. 붉은 점등 쪽에 두 명 초록 점등 쪽의 한 명.
알다시피 아크 데몬은 내 종속이라 내 명령 이외는 절대 타인의 명령이나 부탁을 들어 줄 수가 없다. 내 종속이라는 것은 그들 또한 바알의 낙인을 가지고 있어서 미친 악마 새끼가 아니고서는 바알의 낙인을 가진 아크 데몬을 절대 건들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지···. 그리고 누가 멜트 다운을 일으켜 폭발했는지조차 알수 없는 상황이다.
원래대로라면 시애틀을 먼저 방문해야 했을 테지만 지금은 워싱턴 쪽이 확실히 급하다. 급한 쪽 불을 먼저 끄는 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라고 언노운도 그리 말했다.
고도를 낮추자 발아래 풍경이 훨씬 또렷하게 보였다.
처음 멜트 다운이 발생한 곳에 도착했다. 주변은 초토화되어 있었고 거대한 크레이터가 당시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워싱턴 한복판은 아니지만 워싱턴으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에서 폭발했다는 것은 그가 워싱턴에 들어가지 전 여기서 살해됐다는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고 자폭했거나.
전투력 삼천줄 이상의 각성자를 죽였다는 것은 그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자였을 것이다. 그런 자, 아니 악마 새끼는 새빨간 점등을 한 새끼가 분명하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언노운이 2품이 이상이라고 하니 전투력은 최소 백만 이상인 놈일 거다.
"운석인가?"
"아니야. 권능과 신성력이 부딪진 흔적이지."
"그럼 천사와 악마가 싸웠다는 건가?"
"그럴 리가. 내가 만든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근데 좀 짜증 나는 냄새가 나는데?"
"느낌이 오는가 보네?"
"글치, 이 정도 냄새를 풍기는 놈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될 건데?"
"어, 그 말이 맞아. 그럼 왜 인지 확인해 봐야겠지?"
"잠깐, 내 위치가 애매한데?"
"사고 터졌을 때 뒷감당해달라는 소린가?"
우리 둘은 허공에 둥둥 떠서 호버링 하는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아무런 부하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원 에너지를 손에 넣기 전이라면 그래비티 포스를 사용하는 동안 초집중해야 했다. 이젠 그걸 필요가 아예 없었다.
300kg짜리 거대 쇠뭉치를 매달고도 말이다.
"빨강이 먼저냐 초록이 먼저냐겠구먼. 야, 섹서스 네가 한 번 선택해 봐. 빨간색이 좋아 초록색이 좋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대답해. 어느 색상이 좋아?"
"초록?"
"초록이라 뭐 그러지."
나는 초록 점등이 반짝이는 곳으로 날았다. 어차피 빨간 점등과 얼마 떨어지지도 않아서 동시에 둘을 다 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리가 들리는데?"
"그래, 총소리네."
점등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총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이어링으로 검색해 본 결과 근처에 몬스터는 거의 없다. 그러면 뮤턴트끼리 싸우고 있다는 소리다. 가뜩이나 인구수 박살 난 상태에 번식조차 되지 않는데 이것들은 도대체 대가리에 뭐가 들어 있기에 이렇게 싸우는 걸까?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 야망은 정말 지독하리만큼 우둔하고 경멸스럽다. 자기 종 자체가 멸족의 길로 가고 있는데 서로 죽이고 싸움질이라니 내가 이딴 썩어 빠진 종족을 과연 구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 때도 있다.
특히 유럽의 바티칸 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솔직히 깡그리 전멸시키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불필요한 놈들은 깡그리 없애버리고 번식할 수 있는 이모탈 시티 인구를 전 세계로 늘리면 그것으로 다시 이 행성의 주인이 인간이 되었다고 할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도 해 봤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어림 반품 없는 생각이다.
건물 위로 날아내려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아래는 엉망이다. 폭발 소리, 화염, 시꺼먼 검은 연기. 난장판이 따로 없다.
"인간들은 항상 이러냐? 꼴에 전투 종족이야? 허약한 것들 주제에 참 희한한 성격을 가졌군."
"미안하군. 저것들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그래. 죽고 싶어 아주 안달이 난 모양이네."
"아, 아까 이야기마저 하자. 내 위치가 참 애매해. 잘못 까불다가는 아래 어르신들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거야. 네메시스 한 마리 정도는 우습게 생각할 분들이 버글버글하니까."
"너도 소멸을 두려워하나?"
"두려움이라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난 몰라. 그런 걸 느껴본 적도 없고."
"근데?"
"재밌잖아. 널 따라다니면 왠지 모르게 신나는 것 같고. 또 이 캐릭터 본연의 성격이 쾌활하고 모험심이 강하게 설정되어서 그 영향을 받으니까 말이지."
"넌 감정이 없는 녀석이야. 괜히 캐릭터에 몰입하지 말라고."
"어, 그것도 그렇네. 근데 더 중요한 것이 네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거지. 그래서 널 따라다니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는 거지. 근데 나도 뒷배 하나는 챙겨 두고 싶은 생각은 들어."
"정식으로 피의 교단 소속은 아니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처먹을래? 아웃사이더라니까! 널 잡으라고 보낸 고용된 용병에 불과해. 정확히 말해 딱히 소속이 없다는 소리지."
"자, 이걸 받아 이거면 신분증명서 대용은 될 테니까."
"어? 어렵게 구한 거잖아?"
"그딴 증명서 없어도 움직이는 데는 아무런 문제 없어. 이래 봬도 교차로 악마 자격증도 가진 몸이니까."
"이건 피의 교단 원만 가질 수 있는 통행증인데···."
"그러니까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넌 피의 교단의 정상적인 교원인 셈이지."
"정말 내가 가져도 된다 이 말이지?"
"아따, 악마 아니랄까 봐 의구심은 졸라 많네. 아. 싫으면 말든지."
섹서스는 즉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가슴 속에 구겨 넣었다.
왼쪽 가슴에는 몇 개의 수납공간이 있다. 옷으로 치면 주머니인 셈이다.
"이제 됐지? 혹이라도 시비 거는 놈이 있으면 교단 통행증 제시하면 안 건드릴 테니까."
"이상하네. 왜 날 그렇게 챙기는 거지?"
"기브 앤 테이크."
"내 이랄 줄 알았다. 그래 무엇을 바라는 거지?"
"별거 없어. 날 따라다니며 보좌하는 것. 어때 쉽지?"
"정말 그것뿐?"
"배신하면 좃된다. 그것만 명심하고."
"당연한 거고."
"가자. 초록이 보러 가보자고."
"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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