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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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처입니다】
나이 많은 그라모슈 한 명이 지팡이를 짚고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노인은 곧 수명이 다해 죽을 운명에 있는 그라모슈입니다. 잠깐 이용해도 해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날 붙잡아 놓은 이유가 뭐지? 아티타는 왜 죽이라고 명령했나?"
"저희 간에는 명령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당신에 관한 정보는 모두 수렴했습니다."
"구태의연한 부가 설명은 필요 없겠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처한 상황도 이해하고 있으며 의회에서 당신의 존재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 말고 진실로 내가 누군지도 알고 있나?"
"우주 최악의 학살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어, 맞아 그게 나야. 지금은 이런 보잘것없는 몸이지만. 잘하면 나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맞습니다. 의회에서도 수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만."
"매우 짧은 시간인데 논쟁할 시간은 많았나 보지?"
"상황이 상황인 만큼 평소 잘 사용하지 않은 몇 가지 기술을 사용하긴 했죠."
"넌 본체는 아니군."
"네 왓처는 자릴 비울 수 없습니다. 이 노인의 의식에 잠시 끼어든 정도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군. 내게 무얼 바라는 거지?"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뒤틀린 것을 바로 잡을 기회이지요."
"내 존재를 안다면 지금이야 말고 토벌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의회에서 내려온 지시는 절대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의회에서는 당신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행동 패턴을 볼 때 절대악은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다른 차원에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원래의 차원으로 조용히 되돌아 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냥 놔두면 알아서 갈 터인데 레칸티엘은 왜 쓸데없는 짓을 했지?"
"쓸데없는 짓이라뇨? 그는 의회의 지시를 잘 이행한 것뿐입니다. 당신을 아무 탈 없이 당신 차원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 아티타를 죽인 겁니다. 의회에서 당신의 정보를 보내왔을 때 토벌군이 오지 않을까 했지만, 의회에서는 오히려 당신을 무사히 돌려보내기를 원합니다."
"왜지?"
"그것까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알 필요도 없겠지요. 이곳의 상황을 바로잡은 공로를 인정한 것은 분명합니다. 크레이도스의 소멸로 인해 오티우르스는 그분이 바라는 대로 피조물 스스로 만든 역사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뭐가 그분의 뜻대로야? 마울을 만든 것은 다른 천사잖아? 그의 행동도 그분의 뜻인가?"
"네 물론입니다. 당신이 이곳으로 찾아온 것도 그분의 뜻입니다."
"정작 벌을 하려면 마울을 만든 그놈이지."
"울드원턴터컬즈는 타락했습니다. 그는 이제 게헤나의 주민이 되었죠."
"마울을 만든 것이 울드원턴터컬즈라는 천사인가?"
"그는 이제 천사가 아닙니다. 천사의 이름을 잃었고 대신 악마의 호칭을 얻었죠."
"혹시 그놈 토끼 머리를 하고 있지 않나? 타락 교단의 악마이고?"
"맞습니다."
"그 토끼 머리 내가 처리해도 무방한가?"
"오히려 부탁을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레칸티엘이 그냥 날 보내도 될 텐데 왜 소환식을 지웠지?"
"글쎄요. 그건 의회의 지시일 거니 제가 알 수 없죠. 당신 스스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길어 봐야 사흘인데···. 사흘 동안 내가 무얼 하길 바라나?"
"스스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성궤는 탐이 나질 않고?"
"그건 이 차원의 성유물이 아닙니다. 있어야 할 곳으로 당신과 함께 돌아갈 겁니다. 이 차원에서 더는 문젯거리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단지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여기 내려왔나?"
"전 의회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저희는 오티우르스의 피조물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역사에는 말이죠. 단지 과거 울드원턴터컬즈가 저질렀던 잘못을 바로잡기를 원합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노인은 잠시 휘청거렸다. 그리곤 잠시 멍한 눈이 되어 나를 응시하다 조용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마지막 임무를 다하고 조용히 숨을 거뒀다.
'왓처가 내게 무얼 바란 거지?'
【시작한 일의 끝맺음을 이야기합니다】
'시작한 일? 교차로 악마의 일 말이야? 그 일이라면 이젠 나도 어쩔수 없게 되었잖아. 소환자가 죽었으니···.'
【왓처가 한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십시오. 천사는 이 행성 피조물의 역사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행성에서 벌어진 잘못을 바로잡고 싶어 합니다】
'하, 그래서 내가 소환된 것을 늦춘 거군. 마울과 그라모슈의 뒤처리 할 시간은 남겨 둔 거네?"
【그렇습니다. 왓처가 바란 것도 그 부분입니다】
'잠깐만 그걸 내게 맡겨 둔다고? 호랑이 앞에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고 먹으라고 하는 소리와 같은데? 이 두 종족의 역사는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어느 한쪽을 멸망시켜도 될 정도인데?'
【의회에서 테스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 세계를 다시 설정할지 말입니다. 천사는 두 종족의 역사에 관여할 수 없지만, 당신은 얼마든지 관여할 수 있습니다】
'천사라면 당연히 그분의 피조물을 지키기 위해 나를 상대해야 해. 완전히 흙탕물을 만들어 놓은 건데?'
【왓처의 말대로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인 크레이도스를 소멸시켰기에 이 세계의 흐름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 이후 두 종족의 미래를 당신 손에 맡긴 것입니다. 이대로 두면 어느 한쪽은 완벽히 멸망할 것입니다】
'그건 그 두 종족의 미래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야.'
【의회에서는 당신이 어떻게 할지 그것을 지켜보려 함입니다】
'내가 무얼 할지 지켜보겠다고?'
의아해도 의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의회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기에 성궤라는 아이템과 자칭 우주 최악의 문제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일까?
'뭔가 알고 있는 거나 조언할 만한 정보는 없어?'
【그들은 이 차원의 침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저희 존재가 이 차원에서 시간의 지평선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것 그리고 성궤 같은 성유물이 차원을 넘나드는 것을 몹시 꺼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날 토벌해 소멸시키고 성궤를 압수해 원래 차원으로 되돌려 놓으면 되지. 의회에서 충분히 할수 있는 정도 아니야?'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회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저도 알수 없습니다】
'신기하네. 왜 날 그냥 내버려 두는 거지? 우주 최악의 문제아인데? 그건 그렇고 나머지 사흘 동안 무얼 해야 하나? 의회에서는 내가 무얼 하길 바라는 걸까?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마울이란 존재를 없애야 하는 건데.'
잠시 곰곰이 현 상황을 생각해봤다.
아티타는 죽었고 교차로 악마 임무는 끝이 났다. 소환을 주관하는 매표소에서 취소 난 것을 알았을 테고 천사의 힘이 개입된 것도 알아차렸을 거다.
소환식은 사흘 뒤면 제 가동된다. 게헤나의 시간으로 치면 3분 내외.
일단 마울의 본거지로부터 크라탄을 멀리 이동시켰다.
마울도 생각해 보면 그동안 상당한 고초를 겪었고 선조가 했던 잘못을 지금 세대가 뒤집어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는 분명히 선조의 잘못이 담긴 피가 그대로 흐른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보기에 두 종족이 화해하고 공생의 길을 걸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분이 창조한 피조물과 천사가 만든 피조물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다. 감히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대 태어난 종족인 마울은 그 창조주의 욕망과 탐욕을 담긴 사악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것은 본능으로 마울 그 자체이기 때문에 크레이도스가 그 무수한 세월 동안 유전적으로 개량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걸 사흘 안에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두 종족의 화합도 불가능. 그렇다고 한쪽을 완전히 멸족시켜 버린다? 그것도 사흘 안에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 종족을 멸족시키는 것에는 내 힘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아티타의 소원을 해결하기 위해 그라모슈를 멸족시킬 생각 또한 없었다.
언노운은 아예 종족 간의 투쟁에 관해서는 일절 관심 없었다. 언노운이 바란 것은 성궤와 모자란 신성력을 채우는 것이 미션이었을뿐이다.
의회는 골치 아픈 크레이도스를 해결하므로 짐을 덜 수 있었지만 그가 해 놓은 것은 결과물에는 손댈 수 없었다. 천사의 3원칙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의회 자체에서 그분의 피조물에 손을 댈 수 있는 자 또한 없기 때문이다.
결국 레칸티엘이 소환진을 해제한 것도 왓처가 굳이 나를 찾아와 힌트를 던져 준 것도 이왕 하는 김에 마지막 마무리까지 깔끔히 해 달라는 취지일 것은 뻔하다.
로우루니에게서 아울셈을 되돌려 받았다.
지금 로우루니가 이끄는 마울 외에 각성한 마울은 없다. 다섯 개의 보이얀을 합쳤으니 인구는 대략 4만 정도 된다. 그라모슈와의 전투로 일만 이상이 죽었다.
언노운의 말로 이 들 다음 자식 세대들은 모두 마울의 본성을 그대로 가진 채로 태어나 번영을 이끌 것이다. 하지만 이 별 어딘가 있는 각성하지 못한 마울은 도태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라모슈는 날개도 잃고 부유석도 잃었으니 이제 대지 위에서 생활하며 직접적으로 마울과 대치 상태가 된다. 그들은 본성이 착하다. 달리 말하면 나약한 정신 상태를 지녔다는 것이다.
투쟁과 투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마울과의 오랜 싸움은 그런 그들의 본성을 바꿔 나갈 것이다.
문제는 그 투쟁이 지금 당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왓처가 계속 지켜 보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행성이 유기체라고 했으니 이 아울셈으로 제어할 수 있을까?'
【어떤 식이냐에 따라 다릅니다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행성의 표면을 조작할 수 있을까?'
【보이얀도 행성 일부분입니다. 보이얀을 제어할 수 있으니 충분히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럼 행성의 반을 산맥으로 둘러쳐. 웬만해서는 넘지 못할 큰 산맥을 만들어 줘.'
【마울과 그라모슈를 격리할 생각입니까】
'응, 지금은 그러는 편이 좋아. 마울은 그라모슈에 비해 소수다. 그라모슈가 각성한 마울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총반격을 가해올 수 있어. 지금 시나리오대로라면 마울이 먼저 멸족하겠지.'
【저도 같은 예측입니다. 마울은 먼저 멸족될 확률이 95% 이상입니다】
'우리가 예측할 정도면 천사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그런데 나를 이용한다는 것은 마울을 멸족시키지 않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야.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두 종족이 당분간 부딪치지 않도록 서로를 분리하는 방법이 제일이지.'
【그럼 행성의 적도면를 따라 산맥을 융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해.'
오티우르스 행성 적도를 가로질러 거대한 산맥을 융기시켰다. 이대로면 당분간 두 종족이 크게 부딪칠 일은 없다. 산맥은 높고 가파르게 형성되었기에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물론 이따금 소수의 인력만이 겨우 넘을 수 있도록 일종의 다리는 만들어 놓았다.
그걸 발견하는 것도 힘들뿐더러 발견한다 해도 서로 간 정찰 정도만 할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숨구멍 통로였다. 누가 먼저 발견하는 것도 재미고 이후 마울과 그라모슈가 어떻게 변화할지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겠지.
초스피드로 행성을 날아다니며 그라모슈와 마울을 완벽히 분리했다. 마울의 땅에 있는 그라모슈의 부유성을 끌어 올려 반대편으로 넘겨 놓는 일은 식은 죽 먹는 것보다 맛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마울과 그라모슈는 완벽히 분리되었다. 이제 이들은 상대의 존재를 인식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막 마울의 공포를 맛봤던 그라모슈는 태평하게 시간을 보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있을 마울의 공격을 대비해 무언가를 발전시켜 나가겠지.
얼마 뒤 아울셈은 모두 멈출 것이다. 그것은 그라모슈와 관계없는 크레이도스의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신성력이 다 소진되면 아울셈은 멈춘다.
마울은 보이얀을 벗어날 수 없다. 그건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치명적인 걸림돌이다. 나는 오티우르스에 애포가 열리는 나무가 자라도록 설계했다.
이 행성은 지구처럼 식물이나 동물 따위는 없다. 오로지 애포라는 과실 하나만 먹고 산다. 애포에는 마울이든 그라모슈든 자라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이 결집하여 있다.
당연히 우리 인간과 전혀 다른 세포 구조로 되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 두 종족도 유기체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무얼 하든 왓처는 보기만 했지, 관여하지는 않았다.
사흘은 금방 흘렀다. 정확히 자정이 되었을 때 발밑에 다시 소환진이 그려졌다.
이젠 다시는 오티우르스를 올 일은 없을 것이다.
두 종족의 흥망성쇠는 이제 두 종족 스스로 맡겨진 것이다.
- 작가의말
자꾸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네요.
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놈의 태풍이 뭐라고...
부모님 댁 공사 중인터라..
태풍이 직격 한다고 걱정이 많으셔서
금요일 부터 부모님 댁으로 바로 퇴근해서
바람에 날릴 것들 정리하고 주말 그렇게 보내고
태풍 오는날 개 쫄았는데.....
아. 뉘미.. 바람 한 번 쓰윽 불더니 끝나더라고요.
비도 그렇게 많이 안 오고
물론 큰 피해를 받은 포항분들이 읽으시면 격노하겠지만..
그렇게 보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또 곧 추석이네요...
글 올리는 것도 들쑥 날쑥해 질것 같아요..
하... 추석 보내고는 부모님 댁 공사는 주말에만
하기로 했으니 큰 일은 더는 없을 것 같네요..
기다리시는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자질구레한 일이 계속 발생하네요...
사소한 난관이 있어도 끝까지 완결 날때까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좋은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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