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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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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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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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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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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뉴딜 2

DUMMY

원래 역사의 조선에서는, 상평통보가 유통되던 후기에 전황(錢荒)이라는 현상이 있었다.


'동전이 흉년 들었다.' 즉 디플레이션을 말한다.


조선은 구리가 영 나지 않는 나라인지라, 아무리 정부가 열심히 동전을 찍으려고 해도 수급이 막혀버렸다.


그로 인해 동전의 가치 급증은 사람들이 동전을 매집하여 저장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고, 전황은 더 심각해졌다.


박경식이 바꾸고 있는 조선도 비슷하다. 아직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인지라 어딘가에서 돈이 막히는 구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바로 지폐 첫 발행 때가 그게 제일 극심했다.


하지만 원래 역사의 조선의 전황과 다른 점이 두가지 있다.


원래 조선 후기의 당백전은 저러한 전황 때문에 뭐라도 해보자고 만들어낸 것이다.

공급량 통제를 못해서 망한 정책으로 영원히 이름 남게 됐지만.


그리고 박경식의 조선에서는 처음부터 지폐가 1문부터 100문까지의 다양한 가치의 저화를 발행했다.

게다가 공급량의 경우도, 돈을 '빌려주는' 형태로 하다보니 원하면 이자율을 높여서 공급량을 줄일 수 있다.


두번째 차이는, 동이 부족해서 동전을 못 찍은 원래 조선과 달리, 박경식의 조선은 인쇄기를 만들어냈다.

공급량이 모자라면 돈을 막 찍으면 됐다.

인쇄기 속도에 비해 종이 생산이 모자라면 그냥 100문 짜리 지폐를 더 많이 찍었다.

전세가 1결에 10전인건 최고액 지폐랑 값을 맞추려고 한 것이기도 하다.(*1)


하여간 그렇게 너무나도 빨리 지폐 공급량이 폭증해버리니 지폐 가격은 당연히 하락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렸다'.


윤은로가 방납까지 하고 그걸 왕에게 들켜서 죄를 더 많이 뒤집어 쓴거지, 사실 도성의 양반가들도 머리가 있고 지폐 가격이 떡상하는게 딱 눈에 보이지 않겠는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좀 금전 감각 있다 싶은 이들은 꽤 지폐를 모아놨다.


원래 역사 조선의 재테크는 매점매석이 기본.

지폐가가 떨어지는 징조가 보일 때 원래대로라면 지폐를 풀매도하고 물건을 매입하는 걸로 포지션을 바꿨어야 했다.

하지만 왕이 윤은로에게 매점매석이라는 죄목을 손수 추가해서 죽여버렸는데, 1년이 채 되지 않고서 그 짓을 또 할 깡이 있는 사람은 아직까진 도성에는 없었다.


물론 눈치가 빠른 양반들은 이미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냈지만, 아직도 투자처를 못 찾고 지폐를 집안에 쟁여놓기만 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새로 나타난 투자 대상이 바로 이번의 납전첩이었다.




"자, 자! 줄을 서시오!"


"어허! 이 사람들이 왜 줄을 안 서고 앞에 서려 하는가!"


"이보시오, 우리 가게 봐주는 분이 파평부원군임을 모르오? 부원군께서 좀 충군애국하려고 하시는데 우리보고 뒤로 서라니?"


채권은 1장에 1천 전 단위로 발행하여 팔고 있었다.

부자들이 쟁여두고 있는 지폐를 밖으로 끌어내려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일부러 부자들이 살 수 있을 만한 높은 단위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벌써 이렇게나 사람들이 몰리고, 심지어 어느 집인지 한번에 수 십 장을 쓸어 가는 부호들도 나타났다.


"원래는 평양부, 전주부에서도 납전첩을 팔려고 했으나 서울에서 벌써 많은 납전이 있어 필요가 긴하지 않을듯 합니다."


평준도감에서 보고했다.


원래는 서울에서 채권을 3천장 팔고 1500장 씩 전주랑 평양에 배정해서 팔게 하려고 했는데 서울에서 채권 재고가 순식간에 바닥났다.


경식에게는 의외였다.


'...한양 사람들 이렇게 돈이 많았어?'


사실 지금까지 조선이 마땅하게 발전한 산업이나 투자처가 없어서 그렇지, 지금은 이미 부를 모을 사람들은 모아둔 시대다.


이 시기 부자들의 재산을 흔히 표현하는 수식이 '무명 1천동'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원래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이 조선에서도 아직은 포화와 쌀이 화폐로써 매력을 다 잃지는 않았기 때문에 포화로 재산을 세는 관습이 이어지고 있다.


1동은 50필 세는 단위니, 5만필에 달하는 무명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는 것이었다.(윤필상도 원역사에서 그랬다. 이 조선에서 왕에게 짤린 이유이기도 하다.)


포의 질이나 재질에 따라 다르고, 풍흉에 따르지만 무명으로 짠 정포라면 1필은 쌀 4~8두 정도, 삼베로 짠 2~3승의 추포는 2~3두 정도다. 무명으로 짠 정포는 지금 지폐로 환산해도 5~6전 정도 된다.


즉 서울에서 잘 나가는 부자는 지폐로 치면 25만~30만전 정도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셈이다.


그 뿐인가. 잘 나가는 선상들은 한 번에 쌀을 1천 석 씩 싣는 배를 쓰고는 한다. 이것도 지폐로 전부 바꾸면 쌀 값이 폭락한 지금 시점에도 11000전이 넘는다.


'조선인들의 자본력이 이미 내가 대충 알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잖아? 이거 개발만 잘 하면 진짜 뭔가 해볼만 한데?'


조선은 이제야 금융의 첫 걸음을 걸었지만, 박경식의 머릿 속에서는 이미 자본주의를 향한 도약이 구상되기 시작했다.




이번 건설 공사의 목표는 세가지다.


첫째는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뺀 전 지역의 조창과 부목급 군현에 창고를 짓고, 제대로 된 곡물경매시장 시설을 만드는 것.


조창에 창고 짓기는 지금 조선 신료들도 오랫 동안 염원해온 일이니 따로 설명할 일이 없다. 정작 세곡을 조운하는 일을 관두고서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다.


둘째는 평양부의 대동강 포구들에도 방을 건설해서 경강삼방이랑 똑같은 경매시장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


고귀지의 사례에서처럼, 지금 조선에서 제일 중요한 역내 무역은 평안도와 남부 지방을 잇는 면포 무역이었다. 그리고 그 집산지가 평양이다.


실제로 툭하면 올라오는 상소가 평양에서 곡물을 서울로 팔러 오는 상인이 있는데, 평안도의 군자곡이 모자라게 되니 금지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올해는 경식이 그냥 금지를 풀어버렸다.

신료들이 난리를 쳤지만 경식은 양계 지방의 화매소에 돈을 잔뜩 박아서 양계 지방의 미곡가를 올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고귀지가 서울로 올라와서 조를 팔려고 했더니 평양이랑 값 차이가 별로 안 난다며 난리를 친 것이다.

징징거리며 자기 조 좀 나라에서 비싸게 사달라고 상소한 고귀지에게는 '미곡가 전국에 다 공개했는데 안 보고 뭐했냐' 고 꼽만 주고 돌려보냈다.

어차피 그 낮은 값으로 미곡을 팔아도, 서울에서 목면을 사서 평안도에 팔면 이득이 크다.


동시에 평안도는 명나라와 밀무역이 많이 이뤄지는 곳. 조선 내내 평안도가 제일 잘 사는 동네로 유명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집산지인 평양에 경매장을 설치하고, 돈을 뿌려서 물가를 올린다면 필연적으로 주민 소득은 증대하고 신하들이 그리 걱정하는 식량 집하도 이뤄질 것이다.


세번째 목표는, 민간경제 활성화다.


이번에는 주로 조창, 부, 목 지역 근처 주민들, 특히 소작농들을 임금 노동자로 고용해서 건설을 진행한다.


또한 1결 이하의 토지를 가진 빈농들에게서는 싯가보다 약간 높게 미곡을 사서 새로 지은 창고에 채워넣는다.


이것은 조선인들 기준에서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정책이다.


"이것이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내 비책이오. 백관은 받들어 시행하시오."


하지만 아직도 납득이 안간다는 관헌이 있었다.

형조 쪽에서 한 명이 질문했다.


"전하께서 경장을 시작하신 이래 국용이 넉넉해졌으나, 경강삼방에서 경매의 법을 시행한 뒤로도 도성의 물가가 쉬이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평양에도 방을 설치하신다면 거기서 거래되는 물건에서 세를 거둬 국용이 늘 것이나, 평양 역시 물가가 올라 백성들이 괴로울 것입니다.

또한 흥리를 좇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나 농지가 버려지고 백성들이 시장에 모일 것인데 과연 국용이 풍부한 것이 오래 갈 수 있겠습니까?"


대간 출신인 홍식이었다.

대간 출신답게 유교 성리학의 농본주의 경제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사실, 단기적으로는 물가가 오르는 걸로 보이는게 당연하다.


지금 시장을 설치하는 것은 상업이랑 유통을 공식화하여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수요가 공식적으로 드러날 뿐 생산 능력을 늘리는 상황이 아니니, 당연히 물가가 오른다.


1년 만에 성과가 생긴 시장 설치와 달리, 이 생산 능력을 늘리기 위한 작업은 적어도 몇 년은 각 잡고 투자를 해야하리라.

아니, 어쩌면 수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농본주의 경제학을 타파하는 논리적인 이론을 대지 않으면 이 상업 정책은 오래 진행되지 못하겠지.

내가 죽은 뒤에도 잠시 지속한다고 해도, 이유를 이해 못한 채로 굴리다간 잘못된 방향으로 꺾이거나 취소될 수도 있고.'


그래서, 경식은 다시 한 번 꺼내기로 했다.

진정한 이세계 비의를.




10명이 사는 나라에 딱 두 종류 재화가 있다고 쳐보자. 철물과 쌀이다.

그리고 한 명은 반드시 한 종류의 재화만 생산 가능하며, 1명은 2의 재화를 만든다. 모든 사람은 철물과 쌀을 1 씩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철을 만드는 사람이 5명, 농사를 짓는 사람이 5명이면 나라가 능히 풍족히 살 수 있습니다."


홍식이 별로 어렵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 이런 수준의 경제학은 전근대인들도 다 안다.

아무리 조선인들이 경제학과 화폐 제도도 말아먹었어도, 맛있다는 개념을 몰랐던 어느 이세계 엘프 수준의 지능은 아니다.


되려 홍식은 더 길게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하늘이 백성을 내실 때 사민을 나눠 삼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비(士)는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고, 농부는 농사에 힘쓰며, 공장(工匠)은 공예(工藝)를 맡고, 상인은 물화(物貨)의 유무(有無)를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니 뒤섞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이 생기자 흥리를 좇는 사람들이 늘어나, 농부는 농사를 내팽개치고 농지가 버려지고 사민이 뒤섞이고 있으니 좋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2)


"아니지, 우리나라가 저 '철을 만드는 사람이 5명, 농사 짓는 사람이 5명' 인 상태요? 우리나라가 풍족히 살고 있소?"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조선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지금 이 시대 조선인들이 제일 잘 안다. 실록만 봐도 천하에 가난한 땅이라고 한탄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조창이 있어야 세곡을 걷는데 세입이 부족해서 조창을 못 만듬' 같은 웃기는 악순환이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지 않던가.

그걸 한 방에 해결한 왕이 지금 왕이다.

경세에 대해서는 노대신들도 솔직히 이 어린 왕에게 비비기가 민망했다.


"우리나라는 차라리 '철을 만드는 사람이 2명, 농사 짓는 사람이 8명'인 상태지.


철은 나라에 넷, 쌀은 열 여섯이니, 철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저들이 쓰려는 것 말고 철을 하나 씩 팔 것인데, 그들은 쌀이 둘만 필요로 할 뿐이오.


허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철을 여덟 필요로 하니, 철 하나를 사는데 쌀을 하나만 주어야겠소? 서로 값을 올려야 하니 쌀을 여덟을 준다해도 능히 사지 못하오.


이것이 우리나라가 가난한 이치요, 농사를 버리는 사람이 많은 이유요."


"그 하교가 지극히 마땅하나, 지금은 공장은 늘지 않고 모리를 좇아 장사에 나서는 무리만 늘어났을 뿐입니다."


진짜 귀찮군. 이제 진짜 미래 기술을 알려줄 때다.


전근대인들이 흔히 생각하고, 현대인들도 착각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상업은 그냥 물건을 나르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냥 남아도는 잉여 물품을 날라서 이득을 남기는 것이 전근대 상업 아니냐고.


그래서 미래에서도 조선의 경제사를 말할 때 이런 실수를 하고는 한다.

조선 후기의 상업 발전은 생산성 증가로 잉여 생산이 생겨나서 가능한거라고.


하지만 아니다. 딱히 토지가 훌륭하지 않아도 상업이 있으면 도시가 생겨난다. 대단한 물건을 만들 옥토가 없는 아라비아 사막에도 상업으로 도시국가들이 형성되었다.


조선도 그렇다.

지난 성종 시대에 생긴 나주와 무안의 장시의 사례를 듣고서 경식은 확신을 얻었다.


'대체 어떻게 흉년이 든 나주와 무안에, 장시가 생긴 것으로 흉년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사실 상업은, 그 물건을 그냥 나르는 것은 그 자체로 생산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A 라는 국가와 B 라는 두 국가가 있고, 두 종류의 재화로 직물과 포도주가 있다.


A 국가가 직물 1을 생산할 때는 70 의 비용이 들고, 포도주 1을 생산할 때는 110 의 비용이 든다.

B 국가는 직물 1 에 90 의 비용이 들고, 포도주 1을 생산할 때 80 비용이 든다.


라는 예시는 해답이 단순하다.


두 나라가 자급자족하면 A 는 180, B 는 170이 든다.


하지만 A 는 직물만을 만들고, B 국가는 포도주만 만든다면 A 는 140, B 는 160 의 비용으로 둘 다 이득이라는 걸 쉽게 계산 할 수 있다.


이런 절대우위론은 누구나 이해한다. 조선인들이 경제학을 말아먹고 상인을 천시했어도, 일단은 상인을 사민 중 하나로 넣어서 필수적인 존재로 본 건 이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런 예시는 어떨까?


A 국가가 직물 1을 생산할 때는 100 의 비용이 들고, 포도주 1을 생산할 때는 120 의 비용이 든다.

B 국가는 직물 1 에 90 의 비용이 들고, 포도주 1을 생산할 때 80 비용이 든다.


이렇게 보면 B 국가가 모두 생산 능력에 우위를 가지고 있어서 교환을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계산해보면 다르다.


둘 다 자급자족한다면 A는 220, B 는 170이 들지만, A 는 직물만 생산하고, B 국가는 포도주만 만든다면, A는 200, B 는 160 이 든다.(*3)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신료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저 교환을 했을 뿐인데 이득이 생겼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인가?'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홍식도 반박할 말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상인이 물건을 나르는 것만으로도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이치요."


이 비밀을 발견한 영국이 산업혁명을 향해 도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앞으로 내가 경세경장을 할 때 간하려 하는 자는 경연에서 나와 논박하시오.

그대들이 지금까지 조정에서 녹을 받으면서, 나보다 국용을 풍족하게 한 이가 있었소?"


'꼬우면 나보다 잘해보던가' 를 마무리로, 왕이 일방적으로 신료들을 가르치는 경연은 마무리되었다.




경식이 마음 속으로 '뉴딜'이라고 부르는 이 사업의 실무는 정부의 기존 조직을 그대로 활용하였다.


1년 간의 경장으로 급증한 정부 조직을 지금 활용해야지 언제 활용하겠는가.


지금 요역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8결 출1부제. 8결마다 한 사람을 보내라는 것이다.


1호 마다 1결 짜리 토지를 가진 빈농들이면 8호, 즉 48명 정도가 묶여서 요역 단위가 되어 1명을 차출해서 요역 시키는 것이다.


40결 짜리 대토지를 가진 부농이면, 으레 노비들도 거느린 편이니 그 집 노비들 중 다섯을 데려다가 쓰는 식이 되겠다.


하지만 지금 뉴딜 정책의 목적은 빈농들에게 돈을 뿌리려는 목적도 크다. 부잣집은 대상이 아니다.

공진창 화매소 관리하던 관원은 주변 고을들을 돌아다니며 빈농들의 마을을 방문해 요역부를 모으고 다녔다.


"이 마을의 이임(里任)이 자네인가? 얼굴을 보니 올해 초에 지폐를 빌려줬던 기억이 나는 거 같군. 이번 가을에 나라에서 요역을 하려 하는데."


요역이란 말을 듣자마자 이임 김검동이 몸서리를 쳤다.


이놈의 나라는 백성들에게 대체 뭘 해줬다고 이러는가?


작년에 흉년이었는데 쌀을 주는게 아니라 웬 종이쪼가리를 주는데, 이게 또 그냥 주는게 아니라 빌려주는거라며 빚으로 달아놓기까지 했다.


물론 상인들이 그 지폐라는 것을 좋다고 사가는 덕에 먹고 살기는 했다.


이임 씩이나 하면서 그 종이쪼가리인, '지폐'가 뭔지 이해 못한 건 아니다. 전세를 그것으로 내라는 것 아닌가.


그래서 김검동도 지폐를 구하려고 노력은 해봤다. 나라가 내준 장리도 갚고, 내년 전세도 내야하니까.


그러나 막상 추수를 하고 나서 공진창으로 가보니 조 두 섬(30말)을 주고도 10전을 사지 못했다.

전세를 낼 지폐 값도 그럴진대, 나라에 빚진 건 또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이런 상황인데 풍년이랍시고 나라는 또 바로 요역을 시키겠다고 이런다. 나라가 항상 백성을 착취한건 알지만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이 모든 한탄을 관원에게 하며 제발 요역을 면해달라고 사정했다.


"이번에는 요역에 오는 요역부 한 사람 마다 한 달에 40전을 줄 것인데."


"마을 사람들 다 불러 함께 가겠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나라가 뭔가 많이 해주려는 거 같았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들도 겨울 나기 준비를 해야지. 마을 모두가 가면 소는 누가 키우는가."


"우리가 비록 하민이어도 어찌 충(忠)을 모르겠습니까? 교화가 잘된 마을이라 삼척동자부터 여인네까지 삼강오륜을 다 외우고 있으니-"


"아니, 그 정도로 사람 필요 없다니까? 어린애랑 여인네까지 요역에 데려가겠다고?"


"꼭 가고 싶습니다!"


"필요 없다고!"


그렇게 드잡이질을 하고서야, 마을에서 손재주 제일 좋은 장정 셋이 차출되어 공진창을 지으러 투입되었다.


다른 마을들에서도 비슷했다. '40전' 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백성들이 오오오옹!!! 하면서 호응해줬다.

무수히 많은 자진요역의 요청이 들어왔다.


사실 40전 자체가 소작농이나 빈농들에겐 어마어마하게 비싼게 맞아서 그렇다. 무명 1필이 서울 물가로도 5전 정도 되는데, 무명 1필도 사실 대부분의 백성은 너무 단위가 높아서 일상거래에 잘 못 쓴다.


600만전을 예산으로 배정한 이 프로젝트는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마쳐야하니 2~3개월을 기간으로 잡고 있다.


그래서 예상 투입 가능 인원은 5만 여명. 돈이 좋은 점 또 하나가 이것이다. 예산과 비용 계산이 명확해진다.


백성들 먹여살리겠다고 돈을 팍팍 쓰는 프로젝트이다보니 '자진 입역' 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5만 여명이 전국 5도에서 자진 입역하여 나라의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니 온 조선인들의 충(忠)함이 여간 교화가 아니었다.


---


<이하 미주>


*1 : 7화 <이세계 용사 박경식> 에서 '1문으로 하여 10문을 1전, 10전을 1냥으로 하며 1문, 5문, 1전, 5전, 1냥' 으로 지폐를 여러 종류로 만든다고 언급했습니다. 전세는 1결에 1냥 짜리 지폐 하나를 내면 끝이지요. 문 단위가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1전으로 계속 표기하는 것은 다양한 단위로 계속 말했다간 혼동이 커질거라 판단하여 편의상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정 상 작 중 인물들은 '냥'이나 '관' 등의 단위로도 말을 하고 있습니다.


*2 : 해당 구절은 성종실록 13년 4월 15일의 기사로 올라온 사헌부 대사헌 채수의 상소문의 문장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이전에 말했지만 성종 시기는 성리학이 자리 잡으며 신분제가 강화되던 시기이며,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기술자와 상업을 천시하던 사대부들'의 이념이 보여지는 때이지요. 다만 정작 명나라 사람들이 조선을 방문하고 쓴 책인 조선부(朝鮮賦)에서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상인과 기술자를 천시하는 것이 특이한 풍속인 것처럼 서술 되어 있어서 이런 조선의 풍속이 정말로 순전히 성리학 때문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3 : 이 이론은 영국의 제일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하나인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년 4월 18일 ~ 1823년 9월 11일)의 비교우위론입니다. 직관과 아주 반대되어 보이는 결과라서 현대인들도 잘 이해 못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부정 되지 않는 제일 중요한 법칙 중 하나입니다. 본문에서 설명한대로 '사막에 도시가 세워지게 되는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지요. 위정척사파들의 이론에서 보여지듯 '조선은 가난해서 무역해봤자 물산을 뺏길 뿐'이라고 생각하는게 조선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지만, 이제 경식이 이 이론을 바탕으로 조선을 바꿔나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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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1,760 507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1,843 536 25쪽
31 서울의 여름 +36 24.06.05 11,336 480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086 494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1,729 517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075 565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6 24.06.01 12,115 556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174 554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472 543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094 490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562 541 24쪽
22 백성 2 +40 24.05.27 12,592 534 22쪽
21 백성 1 +42 24.05.26 13,170 54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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