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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공모전참가작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8 21:00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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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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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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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신항로

DUMMY

경식이 나름대로 곡물 거래 시장과 유통망을 잘 갖춰내서 기존보다 기근이 줄었다고는 하나, 그래봤자 전근대 수준이다.


봄과 가을에 두 번 연달아 발생한 흉작은, 전국적인 흉작은 아니었지만 조선 경제에 꽤 진지하게 타격을 주었다.


식량가가 증가하니 노동자들 생계를 위한 최저비용도 증가하고, 목화 주산지인 호남이 흉년이니 원료비도 오른다.


게다가 경식이 구상한 서울로의 섬유 원료 공급망도, 지방민들이 크게 호응하지는 않았다. 딱 '우리 쓰고 남으면 팔겠습니다.' 정도 반응이었다.


또 전국 화매소가 경매를 실시하고 가격공시의 대상이 되는 품목이 늘어날 수록, 전국 물자 유통량도 늘어서 가격이 점차 균제 상태에 가까워졌다.


특히 곡물 다음으로 상인들이 집중 투자하여 유통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직물이었다. 목면의 경우 벌써 산지와 양계의 가격 차이가 3배 이내로 좁혀졌다.


이것은 서울에 새로 설치된 직물 공장 단지의 수익성을 유의미하게 감소시켰다.


아직 전국적인 경제 상태와 산업을 집계할 행정력이 없어서 경식도 정확히 파악을 못하고 있지만, 경식이 서울에 건설한 직물 공장 단지로 인해 나주 등지의 경제에 타격이 가기도 했다.


조선의 경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경식이 돌아온 통신사들이 가져온 대박에 얼떨떨 할 정도로 좋아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일본은 기후 때문에 쌀농사도 잘 되고, 아직 땅에 비해 인구가 적고 전란이 잦아 개간하지 못한 땅이 많다.


경식이 기억하기로는 분명 일본의 대개간은 전국시대 후기부터 에도 시대까지의 일이다.


일본의 농업 개발을 지원하여 쌀을 수입하고, 조선은 직물을 수출하는 구조를 만들면 흉년 때 도시들이 식량가 급등으로 흔들리는 사태를 줄일 수 있다.


사실 이런 구조가 특별히 조선에서 낯선 것도 아니다. 이미 경상도의 삼포왜관 인근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는 목화 재배로 전환하였고, 목면을 짜서 왜관에 파는 것으로 생계를 잇는다.


전라도 지역이나 서울의 직물 산업 단지도 그런 유통 구조가 갖춰지면 직물 산업의 수익률 감소나 식량가 불안정의 문제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좀 아쉬운게 있었다.


"일본의 경도(교토)까지 우리의 배가 바로 갈 수 있는가?"


통신정사 어세겸이 대답했다.


"결코 불가합니다. 배로 일본 서울에 가려면 여러 번 배를 대어야 할 뿐더러, 가는 길의 적간관(* 현 일본 시모노세키.)을 대내전(오우치)이 다스리고 있어 그들이 막아설 것입니다."


그치? 역시 우리 허접한 해양 기술로는 무리지?


"그것을 일본의 관령도 알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일본 조정에서는 어떻게 우리가 가서 통교하라고 하는 것인가?"


"구주(큐슈) 남쪽과 사국(시코쿠)은 일본 조정을 따르는 거추가 많으니, 남쪽으로 돌아서 오면 올 수 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세계 지도 하나는 꽤 잘 외우고 다니는 경식은 한반도와 일본의 해안선을 떠올리고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무슨 소리인지 대충 알겠군.


"우리 배가 그렇게 갈 수 있는가?"


"우리가 일본 조정과 통교를 맺기로 결정하면 지도와 해도를 주겠다고 합니다. 허나 아직 지도도 해도도 주지 않고서 우리보고 와서 통교하라니,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요구입니다."


호소카와도 아직 확답도 듣지 않은 채 지도랑 해도부터 넘기는 멍청이는 아니다. 지도랑 해도를 넘기는게 무슨 의미인지는 이 시대 전세계가 다 통한다.


물론 듣는 조선 입장에서는 '우리 보고 어쩌라는 건데?'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대응이었지만.


게다가 조선인들이 보기에는, 지금 일본 국왕은 정통성도 없다.


"지금 일본 국왕이라 하는 자는, 일본의 수상인 세천정원이 정변을 일으켜 억지로 세운 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른바 지금의 일본 조정이라 하는 자들은 힘을 믿고 난행하는 무부의 무리에 불과합니다.

일본 66주의 제후들은 그들을 따르지 않아 형세가 자못 위태로우니, 그들과 통교하여도 얻을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야 경식도 알고 있다. 아무리 동아시아사를 모르는 편이래도 나름 사학도인데 센고쿠 시대 정도는 안다.


일본 통일 3걸 정도나 알고 나머지 무가나 귀족 가문들은 듣보잡 취급해서 자세히는 모를 뿐이지.


"그렇다면 조선방은 장차 박다(하카타)에 설치하여 대내전과 통교하는 것이 좋겠군. 대신들은 이에 관해 논하시오."


그러면서도, 역시 경식은 교토도 놓치기 좀 아까웠다.


'쟤네가 알아서 세토내해 교역권을 가져다 바치겠다잖아.

호소카와에게도 분산투자 해놓으면, 오우치인지 뭔지가 망하면 하카타랑 사카이 둘 다 우리가 점유하고 일본 내 교역도 장악할 수 있게 된다고!'


사실 원래 역사 기준으로는, 망하는 건 호소카와 쪽이다. 되려 오우치는 곧 교토를 점령해서 정권을 잡기까지 한다.


이래서 회귀하기 전 평소부터 투자 정보에 관심을 기울여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식은 호소카와가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항로를 개척하기로 했다.


지금 경식의 머리 속에는, 이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세계지도가, 이 시대 기술에 비하면 상당히 정밀한 수준으로 들어있다.


역시 지도 게임은 도움이 된다.




신료들은 왜 왕이 일본의 지도를 이렇게 잘 그리는지 묻지 않기로 했다. 아마 해동제국기에 있는 지도를 보고 다시 그린 것인가 보다.


사실 지도가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일본 관령이 말한 길이 이렇게 되는 것 같은데 우리 배로 갈 수 있겠는가?"


경식은 나가사키와 가고시마, 미야자키, 고치를 경유하여 오사카로 들어가는 항로를 그려보았다.


당연히 못 간다.


조선의 항해술은 연안 항해로 조운하는 것도 뻑하면 가라앉고, 매일 배를 대지 않고 며칠이나 바다 위에 떠 있으면 죽는 줄 아는 수준이다.


돛은 천이 아니라 짚으로 짠 거적이나 부들로 짠 돗자리로 만들고, 항해일지 같은 개념도 없었으며, 역풍항해도 할 줄 몰랐다.


역시 체계적인 항해술 교육과 연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올해 해동제국사 창설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인식한 경식은 조선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할지도 모를 여러 변화를 만들게 되었다.


해동제국사에 입대는 단순한 매관매직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많은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해동제국사에 납전하면 밀무역했던 죄 전부 사면! 심지어 벼슬을 한 자급 더 올려줌!' 하고 홍보를 해서 밀무역으로 뱃길을 알아둔 놈들이 특히 번개 같이 해동제국사에 자진입대했다.


밀무역을 했었다며 자진신고를 하는 놈들 중 뱃길을 아는 놈들은 정말로 한 자급 올려서 새로 창설한 수군훈련원에 넣어서 굴리고 있다.


덕분에 조선 조정에서는 몰랐던 부산-큐슈 직항 항로나, 두만강에서 동북쪽으로 가야 나온다는 삼봉도, 황해도-산동 항로, 황해도-요동 항로까지 정보가 쫙 뽑혀나왔다.


역시 조선은 민간의 역량을 정부가 다 못 뽑아서 이상하게 약해 보인 나라였다. 의병이 관군보다 셌던 이유가 다 있다.


물론 경식은 항해술이라고는 대항해시대 온라인으로 배운 정도 밖에 몰랐지만, 원래 문과는 직접 뭔가 만들고 해내기보다는 시스템을 설계해주는 것이 역할이다.


그래서 경식이 만들어낸 것이 해군사관학교 비슷한 것일 수군훈련원이었다.


사실 전국민을 제일 철저히 교육 시킨 것은 교육을 통한 교화 타령을 한 유교 국가가 아니라, 전국민을 군인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프로이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경식도 마찬가지였다. 유교에는 1도 관심이 없고, 장사에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무런 교육도 못 받고 그저 억지로 역을 세습 당하며 고통 받던 수군들은 처음으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숙련된 사공(* 항해사)과 영선(* 領船, 선장)들에게 벼슬을 내려 수군훈련원에 배속하여 서로 정보를 공유하여 연구하고 미숙련자들에게 항해술을 가르치게 했다.(*1)


대포 쏘는 법이랑 조총 쏘는 법도 가르쳤다. 다른 전투 훈련을 시키기엔 시간이 아무래도 부족했다.


물론 유학자들이 원하는 종류의 교육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수군들에게는 중요한 교육이었다.


또 성균관 유생들을 배마다 태워서 항해일지를 쓰게 했고, 배의 돛은 목면을 쓰도록 강매했고, 세로돛으로 역풍 항해를 해보도록 연구도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배도 건조되었다.


첫째는 단순히 크기를 키우고 갑판을 분리하고 노를 없애고 세로돛을 달아본 수준이긴 해도, 기존 배들보다는 외양 항해에 적합하지 않을까 싶어서 만든 대선이었다.


작년 마포행궁 설치 이래로 연구와 건조가 진행되어서 이미 3척 정도가 완성되었다.


또 다른 새로운 배는 판옥선이었다. 물론 경식도 원역사의 판옥선 구조 같은 거 모른다. 그냥 기존 배의 크기를 키우고 대포를 달고 갑판을 분리해서 단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선과 차이는 노를 달 수 있다 정도일까.


이쪽은 연초부터 연구랑 건조가 시작되어서 수군훈련원 설치 때엔 2척이 전부였다.


사실 다른 것보다도 배에 달 대포 만들 구리가 부족해서 건조가 늦어지고 있다. 돈도 없고.


둘 다 성능이 어떤지는 실험해봐야 안다.


이제 첫 발걸음을 땐 수준이지만, 이제 수군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교육 체계도 만들어졌으니, 시간과 기회만 충분하다면 조선은 앞으로도 항해술을 발전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고, 시간도 얼마 흐르지 않았다.


어디서 저 대선을 굴려볼만한 핑계거리라도 떨어지면 좋을텐데.


경식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예조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제주에 표박된 사람이 있다고 보고가 들어와, 동평관에 머무는 왜인에게 보이니, 유구국 사람이라 합니다. 왜인들에게 이들을 본국으로 보내도록 시키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니, 우리가 배를 보내 직접 송환하는 것은 어떤가?"





하필이면 그 쇄환 담당자로 뽑힌 최말동은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2)


자신의 뒷배인 윤필상은 함경도로 끌려가고, 자긴 유구로 끌려간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돈 좀 벌어보겠다고 발 담근 것인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본래 11월이야말로 날이 맑아 제주로 배가 많이 다니는 때이니, 지금이 바로 유구로 가기에도 더 없이 적합한 때다. 부만호 최말동은 명을 받들어 유구인 10인을 쇄환하여라."


억울하면 자기가 큐슈로 가는 물길을 안다고 티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덕분에 최말동은 원래 바친 배 값보다도 한자급 더 높은 부만호로 승진했다.


함께 딸려가는 일본인 사부로와 시로는 되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리께서는 이렇게 큰 배를 나라에서 받았는데 무엇이 걱정이십니까? 무릇 나라에게서 벼슬과 녹을 받아 신하가 되었으면 죽는 일도 피해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하물며 저희가 이미 뱃길을 아는데 죽는 일이겠습니까?"


뭐라는거야? 사부로랑 시로는 동평관에서 주는 밥이랑 옷이라도 얻어먹었지 최말동은 벼슬은 받았어도 받은 돈은 한 푼도 없다. 되려 빚만 뒤집어 썼지.


아니, 이 항해가 성공하면 이 배를 준다고는 했다. 이전 맹선이랑 비교도 안되게 큰 배이니 확실히 나쁘진 않다.


하지만 배도 살아야 쓰지, 강화도에서 제주도까지 가고 제주도에서 또 유구까지 가보라니 조선 기준으로는 자살 명령이랑 별 차이가 없다.


어제해동제국지도라며 지도를 주긴 줬는데, 경식이 대충 지도 게임에서 배운 걸 기억에 의존해서 그린, 유구에 섬이 몇 개인지도 부정확한 지도는 그냥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말동의 뒷배인 윤필상도 이미 함경도로 쫓겨났다. 조선에서는 애초에 벼슬도 역이라서 못 하겠다고 항명하면 처벌된다.


어쩔 수 없이 최말동은 배에 올라야 했다.


그래도 항해 성공 시의 상이 이것저것 참 많이 약속되기도 하지 않았는가.


납전 해동제국사 벼슬이 아니라 진짜 벼슬로 올려준다던가, 유구랑 거래할 수 있게 해준다던가, 이 대선이라던가.


사실 돈에 목숨 걸 각오가 없었으면 애초에 선상 노릇도 안 했다.




원래 조선에는 배에 일일히 이름을 붙이는 관습은 없다.


선박등록제도를 확대하면서(*3) 배의 이름도 쓰게 했지만, 다들 이름을 그냥 '배' 따위로 써서 내느라 그냥 일련번호로 구분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개발한 대선은 왕이 좀 신경을 썼다.


대선들에게 손수 '0호기', '초호기', '2호기' 같은 번호도 붙여줬고, 특히 실증기인 초호기에는 충무(忠武)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예조에서는 배 이름으로 충무는 좀 에바 아니냐고 했지만, 미래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무슨 의미로 지은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여간 최말동 선단의 기함이 된 충무는 출항 전 최말동의 우려와 달리 상당히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왕이 말한대로 10월에는 원래 날씨가 좋아서 그렇다.


조운도 제대로 못하는, 세계적으로 뒤에서 세는 게 빠른 수준의 항해술을 가진 조선조차도 10월~12월에는 제주도를 잘 드나든다.


날씨는 맑고, 서북풍이 남쪽으로 배를 밀어주니 거칠 것이 없었다.


둘째로는 선원들이 죄다 숙련되어서다. 지금 충무에 태운 선원들은 다들 수군훈련원 벼슬을 달고 있는 이들이다.


사실 태반이 언문도 모르고, 그냥 상선 사공 출신이거나, 조졸이나 수졸 출신이거나, 심지어 수적 출신까지 있으나 다들 순수하게 항해 실력만으로 벼슬을 받은 것이다.


출항 직전까지도 수군훈련원에 속해서 다른 해동제국사 수군들과 함께 항해술을 연구할 정도였다.


제주도를 다녀와 본 선원은 물론이요, 산동, 요동, 큐슈까지도 다녀온 달인들만 알차게 모여있다. 통령(선단의 우두머리)인 최말동도 큐슈를 다녀와 본 인물이고.


조선에서 제일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이들을 모은 드림팀이나 다름 없으니, 경식도 이들이 죽으면 거품을 물 것이다.


셋째로, 조선이 항해를 더럽게 못하던 이유 중 하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에서 조운선이 자주 가라앉던 것은, 조선의 지리적 특성 상 연안항해가 더 위험해서이다.


섬이 드글드글하고 암초와 뻘이 많은 조선 서해안은 연안 항해를 하느니 그냥 먼 바다로 나가서 빙 돌아가는게 빠르고 안전하다.


이 기형적인 지형에서 해금을 하여 연안 항해에만 집착하니, 산이 과반이어서 교통의 대부분을 수운에만 의존하는 나라인데도 나날히 항해술이 쇠퇴할 수 밖에.


민간에서는 이미 연안항해를 포기하고 외양항해로 물산을 나르곤 했고, 신하들이 그걸 금해야한다고 주장할 때 경식은 되려 그 금제를 확 풀어버렸다.(*4)


법적인 근거는 확실했다. 경국대전에는 없는 조항이고, 전제군주인 왕이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비록 대명률에 사사로이 넓은 바다를 통해 경계를 나가는 것이 금지(私出外境及違禁下海)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의 법인 경국대전에는 없는 조항이 아닌가?

내가 즉위 이래로 계속 말했으나,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가난하여 바다를 통해 나가 장사하지 않으면 물산을 얻을 수 없다."


덕분에 지금 왕의 즉위 이래로 상선들은 마음 껏 외양으로 나가며 외양 항해를 연습할 기회를 얻었다. 아직 왕의 재위가 짧아 연습한 기간은 2년 정도 밖에 안되었지만.





그리하여 충무는, 인천 앞바다를 좀 돌아다닌 연습을 빼면 본격적인 항해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도, 조선 기준으로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순항 중이었다.


그리고 충무에 탄 사람 중에는 외양항해를 못하는 사람은 항해일지 작성을 담당하는 성균관 유생 하나 뿐이었다.


그 하나인 유표(劉豹) 혼자만 지금 충무에서 적응을 못하고 멀미를 하고 있었다.


"구웨엑!"


먹은 것이라고는 미숫가루랑 찐쌀이랑 돌덩이 같은 인절미 뿐이었는데 멀미는 잘 쏟아졌다.


"어이! 유 씨! 그만 토하고 와서 돛줄이나 당겨!"


배 타는 재주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수적질을 용서 받고 수군으로 배속되어 벼슬까지 얻은 임맛생이 멀미 중인 유표의 엉덩이를 뻥 걷어차며 부려먹었다.


유표는 정 9품 사용(司勇)이고 맛생은 정 8품 사맹(司猛)이라 계급도 더 높다. 배 위에서 상놈 역전 세계가 벌어지고 있었다.


왕은 성균관 유생들을 수군에 처 넣을 때 "선비라면 무릇 하민들을 교화 시켜야 할 것이다. 잘난 너희가 한 번 수졸들을 교화 시켜봐라!" 라고 했다.


오기가 든 유표도 '까짓 거 한 번 해보죠!' 하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 이 수부 놈들을 교화 시키는 것보다 수달을 교화시켜서 풍월을 읊게 하는 게 쉬울 거 같았다.


"이런 망할...고작 사공들에게 이게 무슨 취급인가..."


"지금 뭐라고 했나?"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경식이 첫 해 말에, 취재로 들어오는 실무진들도 문무반 정6품까지 오를 수 있게 구조를 바꾼 결과, 7품~9품까지의 벼슬 자리는 사족과 상민들이 뒤섞인 곳이 되었다. 아직 문관 6품으로 오른 서리 출신은 없긴 하다.


이번에 만들어진 수군훈련원도 그렇다. 숙련된 사공들은 무반에 속하는 품계를 받았다. 특히 이 충무에 탄 선원들은 낮아도 전부 7품, 8품은 된다.


물론 아직 신분제 사회다보니 신분적인 차별도 대놓고 남아있긴 하다. 애초에 조선은 같은 양반이고 같은 품계여도 문반이 높고 무반이 낮다.


하물며 서리 출신은 문반 정 7품으로 오른다 해도 사족들에게는 그냥 상놈, 잘 쳐줘야 중인일 뿐이다.


그래서 뭍에서는 대놓고 차별이 계속되지만, 물에서는 다르다.


유표의 목숨은 그들 손에 달려 있으니까.




"세상에, 작정하고 오니 서울에서 제주까지 바로 오는 것도 가능하구만."


제주도, 큐슈, 부산, 대마도를 드나들어본 최말동이 멀리 보이기 시작한 한라산을 보고서 새삼스럽게 놀랐다.


"해보니 별 거 아니구만. 차라리 평양에서 산동 가는게 더 힘들었어."


"푸하하! 그깟 산동이 뭐라고 잘난 척이야."


평양에서 산동을 가는 사람, 개성에서 논산을 이틀만에 가는 사람, 서울에서 나주를 드나드는 사람, 해남에서 제주로 다니는 사람 등 물길을 아는 사람들이 종류별로 다 나서니 닷새만에 제주도까지 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통령' 최말동이 나설 때다.


"항해는 이제 시작이다. 이제부터 가는 유구로 물길은 우리 중 아무도 아는 이가 없지 않느냐."


"그 왜놈 시로인가 시루인가 하는 놈들이 알고 있지 않수?"


시로인가 시루인가 하는 놈이 조선말을 대충 알아듣고 대답했다.


"우리는 큐슈에서 남서로 섬들을 따라서 유구로 가는 길만 알지, 제주에서 바로 남쪽으로 가서 유구로 가는 길은 모릅니다."


"들었지? 이제부터 제주에 들렀다가 다시 동쪽으로 항해해서 구주로 간다."


그러자 몇몇이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통령이 아는 길이라고 해봤자 박다로 가는 길 뿐이지 않소?"


수군훈련원에서 가르치는 과정에서, 경식의 기억과 조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취합하고 가르친 결과, 이들은 일개 선원의 수준을 뛰어넘는 지리 지식을 알게 되었다.


민감할지도 모르는 외교 관련 정보도 다 주입되었다. 이들은 지금 조선에서 제일 동아시아 정세를 잘 아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하카타의 오우치 몰래 유구나 사카이로 가는 물길을 찾는거니까 최대한 접촉하지 말라던가, 지금 오우치와 쇼니가 싸워서 큐슈는 위험하다던가 하는 것도 다 배웠다.


그러니 무슨 일에 휘말려서 죽을지 모르는 하카타보다는, 차라리 날씨가 좋은 지금을 노려서 남쪽으로 빠르게 갔다가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나아보였다.


"아니, 겨우 며칠 바다를 좀 멀리 다녀봤다고 바다 무서운 것을 벌써 잊어! 나라에서 내린 지도를 보면 유구로 가려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거리만큼 가야한다고!"


"그러니까 그게 낫다는 것 아니오. 바다가 무섭다는게 어디 진짜 바다만 말하나. 왜구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지."


당연히 제주에서 오키나와까지의 거리가 더 멀다.


일본 지도는 기억에만 의존하느라 일본은 좀 작게 그린 주제에, 한반도 해안선은 조선의 기존 지도들도 참고해가며 기똥차게 그려서 선원들이 지도를 굳게 믿게 만든 경식이 나쁘다.


또 이들은 극히 숙련된 선원들이다. 바람의 온도나 습도 등의 느낌만으로도 어느 계절의 바람인지, 어느 쪽에서 부는 바람인지, 곧 날씨가 어떻게 될지까지 알아낸다. 경식이 이들을 아끼는 이유가 있다. 차라리 성균관 유생이 죽는 걸 덜 아까워 할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항로를 개척해보기도 한 모험심 강한 이들이기도 하다. 태풍이 부는 여름과 가을의 바다면 몰라, 평온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바다는 두렵지 않다.


차라리 왜구가 더 두렵다. 이들은 싸움이라곤 훈련원에서 날림으로 배운 포술이랑 소총 쏘는 것 밖에 모른다.


너무 숙련도가 높은 선원들만 실어놓으니 통령에게 항명하는 이런 부작용이 나타났다. 게다가 해동제국사 관헌인 최말동은 군령을 빙자해서 함부로 선원들을 처벌도 못하는 상황이다.


"저, 저도 좀 말해도 되겠습니까?"


"어, 유 씨. 자네가 배에 대해서 뭘 안다고?"


토하는 것으로 배 위에서 일과의 절반을 보내는지라 개무시 당하던 유표가 나섰다.


"사실 지금까지는 먼 바다로 왔다고 하나, 나름 육지 근처에 있는 섬들이 보이는 정도로만 떨어져서 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동남쪽으로 가서, 구주섬 근처의 섬들이 보일 정도로만 거리를 두고, 그러다가 유구에 속하는 섬이 나오면 비로소 남서로 향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왜구가 무서우니 구주를 피하자는 의견과, 바닷길은 위험하니 육지를 들르자는 의견을 딱 반 씩 섞은 절충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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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미주>


*1 : 42화 <봉 잡았다 3>에서 해동제국사에 들어오는 수군들을 간단하게 훈련 시키는 장면이 나왔고, 훈련원이라는 키워드를 언급했었지요. 매관매직을 통해서 날림으로 준비한 수군이지만, 경식이 핵심 인재들은 뽑아내서 수군훈련원을 창설하여 훈련 시키는 중입니다.


*2 : 서울의 상인 최말동은 연산군 시기의 실존인물입니다. 다만 대상부고인 것 외에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본작에서는 재해석하여, 윤필상의 재산을 관리하는 상인으로 설정했습니다. 사실 18화, 35화, 42화에서 스쳐지나가듯 계속해서 나왔는데, 제가 딱히 해설이나 강조를 안 해서 못 알아보신 분들이 많았겠군요.


*3 : 14화 <호조는 오늘도 갈려나간다>에서 화매소 관헌들이 드나드는 배마다 선안에 등록하고 등록장을 내어준 장면이 있었습니다. 해당 화에서 선안이 성종 시대에 이미 대충 만들어져 있었지만 부실했다는 해설도 했었지요.


*4 : 조선의 항해능력이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시절보다 떨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요. 무척 신기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고, 자연 환경 등을 원인으로 짚으려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사실 그냥 조선 정부가 명나라의 해금 정책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원인입니다. 배는 결국 크면 클 수록 항해하기 좋은데 이런 건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필요해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였던 조선에서는 외양항해를 금지하는 순간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본문에서 말한대로, 연안 항해가 외양 항해보다 더 어려운 조선의 지형적 문제는 조선의 항해술을 쇠퇴시키는 속도를 가속 시킨 동시에 항해술이 부활하는 속도도 가속시켰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강력하게 외양항해를 금지하는 바람에, 극히 항해 난이도가 높아 극복할 수 없었던 연안 항해 기술까지 쇠퇴하는 지경이 됩니다. 반대로 조선 중후기에 민간 경제는 성장하지만 그것을 통제할 중앙정부의 행정력은 점점 약해지면서, 민간에서는 그냥 연안항해를 포기하고 외양항해로 물건을 수송하자 급격히 외양 항해술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앞선 회차들에서도 많이 말씀드렸듯, 이것도 성종 시기가 분기였습니다. 정부 통제력은 약해지고 민간의 상선들이 점점 발전하고 커지면서 민간에서 알게 모르게 외양항해를 시도하고, 덕분에 본문에서 이야기한대로 산동반도나 요동반도까지 항해해서 밀무역을 하는 민간 상인들이 나타났고, 동북쪽으로는 삼봉도라는 불가사의한 섬을 발견했다는 소문도 돌지요.

본작에서 서울에서 유구로 가는 항로를 선원들이 자기들도 놀랄 정도로 간단하게 찾아내는 것은 이런 부분들을 반영한 것입니다. 경식이 개입해서 외양항해를 전면 허용하고, 심지어 그 항로를 보고하면 상을 주는 것으로 대응하여 정부가 미파악했던 항로들을 찾아내고 제도권 내에 수용했습니다.


작 중에서 묘사되는 조선시대 항해술에 관한 내용은 아래 논문들을 참조했습니다.

<고동환. (2013). 조선후기 연안항해와 外洋航路의 개척. 동방학지, 161, 287-327.>

<김성준. (2006). "표해록"에 나타난 조선 시대 선원 조직과 항해술. 한국항해항만학회지, 30(10), 787-791.>

<. (2018). [해양역사] 17-18세기 통신사 선단의 항해(2): 항해와 해양사고. 옛 해양담론, 5(), 177-226.>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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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7

  • 작성자
    Lv.31 푸른바람07
    작성일
    24.06.26 19:42
    No. 31

    역풍 항해는 가로돛으로도 가능합니다. 대항해 시대를 연 서양의 범선들이 가로돛을 단 범선들이었구요... 물론 후기로 갈수록 가로돛과 세로돛을 모두 단 형태로 발전하긴 했지만서도요... 21세기인 지금도 부자들이 가진 대형 범선들은 전자동으로 작동되는 "가로돛"을 가지고 잘만 역풍 항해를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냠남냠남냠
    작성일
    24.06.26 19:42
    No. 32
  • 작성자
    Lv.31 푸른바람07
    작성일
    24.06.26 19:48
    No. 33

    그리고 조선이 원양항해 능력이 쇠퇴한 이유는 이글에서도 언급된 지형적인 문제도 있죠.. 연안 항해를 주로 하려다 보니, 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 같은 경우 (조운선이 서울로 삼남지방의 미곡을 날라야 하니.. 서해안 위주로 항해) 뻘 때문에 썰물시 배가 기울지 않게 하기 위한 평저선 위주로 발전한 탓도 있습니다. 되려 한선의 돛대는 가로 활대가 들어간 사각 돛이라 (중국에서도 쓰던 정크선에도 들어가던 돗) 방향 조절을 해서 역풍 항해는 가능했다고 합니다. 원양항해를 하려면 평저선이 이나리 바닥이 역 세몰꼴인 첨저선이 유리하기 때문이죠...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95 다주리
    작성일
    24.06.26 20:14
    No. 34

    통교하여도 얻을 것은 얻을 것 > 없을 것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고기먹자
    작성일
    24.06.26 20:24
    No. 35

    에바! 배에 타라!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85 MN
    작성일
    24.06.26 20:28
    No. 36

    큐슈 옆에 고토 열도 거기 신세계잖아
    원피스적인 의미로

    찬성: 10 | 반대: 0

  • 작성자
    Lv.68 무뇌드라군
    작성일
    24.06.26 20:38
    No. 37

    연산군은 진짜로 놀았구나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99 로렘
    작성일
    24.06.26 20:45
    No. 38

    유로파랑 빅토리아좀 해본솜씨가 판도박이 못지않규나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1 shadowx
    작성일
    24.06.26 20:56
    No. 39

    성공하면 만년 수군행, 실패하면 물고기밥 ㅋㅋㅋ 희망을 버려라 유생

    찬성: 13 | 반대: 0

  • 작성자
    Lv.53 라면먹어
    작성일
    24.06.26 20:59
    No. 40

    초호기. 폭주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참괴
    작성일
    24.06.26 21:26
    No. 41

    휴.. 오늘은 한번에 이해 했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hi*****
    작성일
    24.06.26 22:16
    No. 42

    범선에 타라 말동!
    싫어요 그런거 들어본적도 없다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잔뿌리
    작성일
    24.06.26 22:36
    No. 43

    0호기가 나오려면 0이라는 숫자 개념도 있어야...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as*****
    작성일
    24.06.26 23:45
    No. 44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Alloien
    작성일
    24.06.27 01:59
    No. 45

    말동 : 목표를 중앙에 놓고 점화
    목표를 중앙에 놓고 점화

    저는 충무의 선장 말동입니다!

    낯선 천장이자…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참좋은아침
    작성일
    24.06.27 18:50
    No. 46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4.06.28 02:31
    No. 47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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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451 475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60 24.06.11 10,342 471 21쪽
34 돈과 전쟁 +54 24.06.10 11,142 500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2,142 513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2,244 544 25쪽
31 서울의 여름 +37 24.06.05 11,695 488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436 500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2,102 526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460 573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8 24.06.01 12,501 562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540 562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842 551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450 499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940 55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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