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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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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7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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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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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뒷수습

DUMMY

봄이 되었다. 작년의 결산은 끝나고, 강은 녹았고, 농부들은 씨를 뿌린다.


이제 경식도 일을 다시 빽빽하게 해야할 때가 됐다.


결산이 거의 끝난 호조에서 특이사항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행정 인력을 확 늘였다고는 하나 어차피 전근대국가. 통신 기술 혁신 같은 것도 따로 없었다.


지방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전쟁나서 파발로 소식 전달하는게 아니면 웬만한 일은 정기적인 보고나 결산을 하고서야 중앙에서 인식한다.


그래서 이제야 작년의 성과와 실패가 와르르 확인되어 보고되기 시작했다.


일단 성공한 것은, 앞서 보고 받은대로 1500만전을 넘긴 세수였다.


"이 지폐의 법에 따른 전세만 있다면 앞으로도 국용에 모자랄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글쎄, 곧 아니란걸 알게 될거야.'


이제 곧 새 사업이랑 경장을 65535개 정도 벌여서 너희를 고생 시킬거라고 말하기는 좀 그래서, 일단 수고했다고 치하했다.


그리고 이제 따질 것은 실패들이었다. 왜 예상세수보다 조금이나마 펑크가 났을까?


그나마 간단한 사건은 지폐 위조였다. 애초에 경식도 위조 지폐가 안 생길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되려 이렇게까지 늦게 적발된게 신기한 일이었다.


'그냥 적발해내는 능력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지만, 뭐...현대에도 생기는 문제이니 아예 없앨 수는 없겠지.'


그런데 그 실물 위조 지폐 생긴 걸 보니 놀라울 정도로 조잡했다.


"종이가 파란색인걸 빼면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군."


사실 그럴만 했다. 현 지폐가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일단 현 조선에서는 최고의 공업 기술이 투입된 물건이다.


신하들의 인쇄를 해야 위조가 힘들다는 말도 사실이었고, 특히 지금 지폐를 찍는 종이는 조지서 외에는 만드는 방법을 아는 곳이 없다.


위조 지폐는 글자도 손으로 써서 원본에 비해 조잡하기 짝이 없고, 종이도 평범한 닥종이를 사용했다.


"과연 그렇습니다. 지폐를 한번이라도 보았다면 속지 않을 물건이나, 아직 벽지에는 지폐가 미치지 않아 속은 백성이 나온 것입니다."


보고를 듣자하니 사연이 이러했다.




미래의 대한민국에서도 미래의 땅으로만 남는 강원도.


그 중에서도 더더욱 미래의 희망만 있는 인제에도 전세를 내야할 날이 다가왔다.


농사라고 해봤자 조가 전부이고, 사람도 몇백 명 정도 사는게 전부라서 그때까지 상인도 딱히 안 왔다.


파발들이 매 달 어디 화매소에서는 쌀 값이 얼마네 조 값이 얼마네 하고 방을 돌리지만 그걸 읽을 사람도 몇 명이 안 되는 지경이라 평소대로 살아왔다.


그러다 추수를 할 무렵부터야 아전들이 와서 '이제 자네들 지폐로 세를 내야하는거 알지?' 하고 강조를 하고 다녀서 겨울이 되기 전에 빨리 팔아야겠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솔직히 화매소가 있다는 춘천까지도 가는게 쉽지 않다.


원래 세를 내던 소양강창이 춘천에 있어서 항상 다니던 길이긴한데, 강원도에서는 드래곤과 대등한 전투력의 괴수(龍虎相搏)가 드글거려서 옆 고을로 가는 것도 목숨 걸어야한다.


그런데 그 무렵 갑자기 상인이 배를 타고 올라왔다.


자기가 경창을 드나들며 미곡을 파는 상인인데 조를 주면 지폐로 값을 후하게 치러준다지 않는가.


인제 사람들은 지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지금 조의 시세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폐가 필요하니까 팔았다.


그러다가 현감에게 그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제 나라에서 지폐로 조를 내게 하는데, 백성들은 화매소까지 가기가 두려워 조를 팔러 가려하지 않을 것이다. 조를 화매소로 나를 요역부를 골라 화매소에 팔게 하여라."


"백성들이 이미 조를 상인에게 팔아 지폐를 구했다고 합니다."


"뭐? 여기에 상인이 와? 얼마에 구했다고 하느냐?"


"한 섬에 열 장 씩 받았다고 합니다."


"열 장? 지폐는 한 장이어도 그 값이 100배나 차이 나는데, 얼마인지 백성들이 제대로 알기는 하는 것이냐?"


그래서 직접 가져오게 해보니 위조 지폐였던 것이다.


빵꾸난 세수 중 대부분은 이렇게 깡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때문이었다.


위조한 지폐로 백성들을 속인 상인 박효대는 당연히 참수다. 왕 성깔 때문만이 아니라 저화 때부터 법으로도 그랬다.


경식은 박효대를 부대참(*不待時斬, 집행을 미루지 말고 참수.)하라고 수결하며 물었다.


"내가 분명 처음에 지폐의 법을 알리는 방을 내렸을 때, 그 밑에 지폐의 모양을 찍어 생김새를 알렸는데.

아직도 저화의 모양을 몰라 속는 사람이 있다니 무언가 잘못된 모양이오."


"그게...그 때 유난히 방을 떼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마 그들이 그 지폐의 견본을 잘라 위폐를 만들어 쓰는 것 아닌가 합니다."


경식은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아픈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둘째는 뉴딜과 관련된 비리들이었다.


박경식은 조선 공무원들의 청렴함을 믿지 않았다. 삥땅을 최대한 막을 수 있게 나름 머리를 썼다.


일단 공사를 하는 장소 자체가 전부 화매소가 설치된 조창 및 부, 목급 현들이다. 거기 창고들 증축하려고 하는 공사니까.


화매소 근처에는 화매소 관헌들이 직접 다니며 인력을 모집했다.


화매소에서 좀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인력을 끌어오는 것은 기존 행정 조직을 활용했다.


화매소가 관할하는 군현들은 호구단자를 화매소에 미리 제출하고, 그 뒤 8결 1부제에 따라 소농, 빈농들 중에서 인력을 모집해서 화매소로 보낸다.


보내는 요역부에게는 해당 8결 1부에 대한 호구 사항 등이 쓰여 있는 첩을 쥐여 보낸다.


그리고 화매소에서는 도착한 인력을 미리 받은 호구단자랑 비교해서 맞는 사람이 왔는지 확인한다.


일을 화매소에서 하고, 돈도 화매소에 있으니 직접 와서 일한 소농들은 일 끝나고 받아가면 되는 것이다.


여기다가, 토지세에 빵꾸가 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박경식은 대영제국의 위대한 수상 젊은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the Younger)[1759-1806]의 지혜를 빌렸다.(*1)


'소득세 원천징수' 였다.


월 40전의 급여 중 일하는 동안의 숙식비를 공제하고, 토지세를 못 낸 호라면 토지세도 공제한 뒤 나머지만 급여로 줬다.

친절하게 고향 군현으로 돌아갔을 때 관아에 이중으로 뜯기지 않도록 제출하라고 준납첩(세금 완납 영수증)도 챙겨서 줬다.


각 지방 관아가 전세를 걷는데 화매소에 또 전세 수납 기능을 넣은 이유도 비슷한 행정 편의를 위해서다.

어차피 대부분 백성들은 화매소에서 딱 세금 낼 10전 어치만 팔고 갈 것 아닌가. 그것도 '원천징수' 해서 걷으려는 것이었다.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온갖 흉악한 것은 영국인들이 다 만든다는 터무니없는 모함이 있다.

소득세가 어째서 흉악하단 말인가? 이렇게 알뜰하게 세금을 걷을 수 있는데.


대영제국의 흉악...아니 선진적인 제도를 300년이나 얼리 액세스한 요역부들은 영국에게 문명화 된 나라 사람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그래도 요역하고서 숙식도 해결해주고 돈도 생각보단 덜이나마 받았으니 이게 어딘가. 세금도 낸걸로 쳐준다고 하고.


토지세 시행하고 첫 해에 기대했던 세액 1600만전 중 1400만전을 징세 성공한 것에는 이런 노하우도 숨겨져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월 40전이라는 어마어마한 임금을 준다니까, 함경도 도사 이병정이 욕심이 생기고 만 것이다.

그래서 자기네 집안 노비들을, 소농 집안의 장정들으로 위장시켜서 대신 노역을 보냈다.


그리고 그 노비가 일하고 산료를 받으려 하자 화매소 관헌이 이런다.


"자네들이 두 달 간 일했으니 80전을 받아야하나...자네들 마을은 전세를 납부하지 않았군.

두 명이니 내야 할 전세 80전을 반 씩 공제해서 40전만 주겠네.

아, 두 달 간 숙식비도 16전 공제하여 자네들이 받는 돈은 각각 24전일세."


이 둘 외에도 다른 노비들 그룹도 똑같은 계산이 적용되었다. 애초에 토지세 못 냈을 거 같은 사람들만 불러다 시킨 일이니 당연하다.


이병정이 보낸 열 댓명의 노비들은 꼴랑 300전을 조금 넘게 받았다. 그리고 돌아가며 돈을 정리하다가, 세금 완납 영수증을 보고 말했다.


"이건 돈이 아니잖아? 사또께 굳이 드릴 필요가 없네."


그리고 영수증은 원래 받아야 할 마을 사람들에게 싼 값에 팔았다.

그 노비들은 서리 노릇도 하고 글도 알고, 그 영수증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알 정도로 똑똑했던 것이다.


노비들이 어처구니 없이 적은 돈을 가져오자 이병정은 분노했다.

이병정은 노비들이 자기 수준일거라 지레짐작하고, 어디서 해처먹었다고 의심해 두들겨 팼다.


그의 통찰은 훌륭했다.


하지만 다들 정말로 돈이라곤 24전만 줬다는, 거짓말은 아닌 대답만 나왔다.


노비들을 두들겨패도 아무 것도 안 나오자, 이병정은 뭔가 새로운 이익 창출 수단을 생각해야 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리는 조선의 지혜 '환곡'을 떠올렸다.


사실 아직은 조선의 환곡이 원역사 조선 삼정의 문란 때처럼 개판은 아니다. 이병정의 갈취 노하우도 마치 미래용사가 빙의한 듯 했다.


그 돈을 자기가 일거리를 뺏어서 임금을 삥땅친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줘서' 그들의 토지세를 납부한 걸로 쳐 준 것이다.

조선의 양심스러운 이자율 연 30% 도 적용해서.(*2)


마을 사람들이 딴소리 못하게 준납첩도 자기 이름으로 바로 발급해서 중앙으로 보냈다.


그러자 중앙에서 호조가 토지세를 취합, 결산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북청도호부의 마을 중 일곱이나 준납첩이 화매소에서 발행한 것이랑 도호부에서 발행한 것 둘이 동시에 들어왔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원래 조선의 세금 완납 영수증은 3부를 발행해서 1장은 납세자에게 주고, 1장은 해당 관헌에서 보관하고, 1장은 중앙으로 보내는 구조다.


그걸 집계하다 두 장이 나오니 수상함을 느낀 조정에서 조사를 갔다가 적발해낸 것이다.


이병정이 빌린 '조선의 지혜' 따위, 같은 백성 갈취...아니 세금 수취가 목적이어도 경식이 빌린 '영국의 지혜'와는 그 레벨이 달랐다.




그리고 사람 생각하는게 어디서나 다 비슷비슷한지라, 이 외에도 거의 똑같은 일이 많았다.


해남에서도 벌어졌다. 관리가 아니라 이웃 간의 일이라는 점에서 좀 달랐다.


"아무리 나라에서 한 달에 40전을 준다고 하나, 화매소까지 가고, 거기서 또 일하는 건 얼마나 고생인 일인가.

내가 가노를 보내 자네들 이름으로 요역을 하도록 할테니 여기서 푹 쉬게."


"우리가 가서 노역해야하는 광주 화매소는 이틀이면 가는지라 그렇게까지 고생도 아닌..."


"아아, 그러고보니 자네들은 전세를 못 내서 지폐가 급하겠군. 일하면서 받을 값 중 절반인 20전은 내가 지금 줌세."


"감사합니다, 나리. 과연 해남 고을을 먹여 살리는 군자이십니다. 공덕이 많으시니 부처님도 베풀어주실 겁니다.

요새 공부한다는 데릴사위도 이번에 꼭 생원시에 입격하실 겁니다."


아직 불교세가 다 죽지 않은 시대라 유교적 칭찬이랑 불교적 칭찬이 퓨전한 기묘한 찬사였으나 아무튼 뜻은 전해졌다.


그렇게 빈농들의 일자리를 돈 주고 뺏은 정귀영의 노비들은 두 달 일하고서 24전을 받고 돌아왔다.


일하고 돌아온 막쇠는 제 주인 정귀영(*3)이 똥 씹은 표정으로 있을 때 눈치 없이 말했다.


"역시 저번에 돈 줬던 집들에게 가서 다시 받아올깝쇼?"


"관둬라 이놈아! 돈 줘가면서 일 뺏고 다시 돈 뺏는다고 하면 얼마나 욕을 먹겠느냐. 그 받아온 준납첩이나 그들 줘라."


이 해남 정도는 아주 평화롭게 잘 끝난 편이었다. 정귀영이 정직하게 준납첩을 원래 주인들에게 줘서 정귀영이 들킬 일도 없었다.




더 골때리는 일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충청도 당진현의 서면.


"요역을 하는데 돈을 준다고?"


"줘봤자 또 하루에 콩 한 되 주고서 산료(*散料, 월급을 줌.)했다고 끝내는거겠지."


"아냐. 내가 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분명 한 달 일하면 40전이라고 써 있었네."


"뭐? 자네가 문자를 언제부터 알았나?"


"문자라는게 별건가? 선 하나 그은게 한 일이요, 둘 그은게 두 이요, 선 둘을 겹치게 그으면 열 십인데 숫자 정도는 알지."


"그걸 모른다는게 아니라 자네가 방을 어떻게 읽었느냐는 말이지."


"이 친구는 맨날 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면서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한단 말이야."


워낙 정부에 갈취만 많이 당하고 살아온 조선인들이다보니, 막상 뭘 준다고 하니까 이렇게 의심하는 백성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불신의 틈바구니에서 뭘 해먹으려는 인간들도 있었다.


"에엥? 요역을 시키는데 산료를 한 달에 40전이나 준다니요. 개똥이 아버님이 잘못 보신 거겠지요."


"거봐! 이 친구도 이렇게 말하지 않나!"


"아니, 정말로 내가 방을 봤다니까..."


"그럼 이 친구가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김 서방 이 친구는 자네랑 다르게 진짜로 글을 아는데!"


"하하, 글을 안다 해도 대단한건 아니고 일기장(*日記帳, 조선 시대에는 회계장부를 뜻함.)을 쓸 정도만 압니다."


이 마을을 찾아오는 보부상 김기특은 나름대로 글이나 세상 소식을 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지라 인망이 높았다.


"하여간 걱정이구만. 무슨 요역을 두 달이나 한다는건지. 심지어 8결에서 2명 씩이나 뽑는다니."


"개똥이 아범을 보내는게 어떤가? 40전을 준다니 가면 되겠네."


"아니, 내 말을 그리도 못 믿는겐가?!"


"하하하, 너무 다투지 마시지요. 평소처럼 포를 주시면 제가 대립(* 代立, 군역이나 요역 등 부역노동을 부담하는 사람이 대가를 지불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 입역하게 하는 일.)할 사람을 구해 드리겠습니다.

전세도 못내고 계시니, 값은 좀 싸게 해서 두 달 간 두 명 분을 포 12필로 해드리지요."


당연하지만 김기특은 방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포를 대립가라는 명목으로 받고, 나라에서 요역하고 받는 돈은 돈대로 챙기려는 양심 꼬라지가 과연 사대부들이 상인을 탄압하고 싶을만 했다.


"흠...지금 포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데..."


"집마다 한 필 씩 내면 어떻게 되기는 하겠지. 추수도 했으니 시간도 있으니 서둘러 짜면 될걸세."


김기특에 휘말려 그대로 대립가를 내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도중 개똥아범이 소리쳤다.


"아니! 포를 그리 낼 필요 없네! 내가 가겠어! 참말로 40전을 주는지 아닌지 가보면 알 거 아닌가!"


김기특은 일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정이 좋지 않으시다면 대립가를 더 줄여드리지요. 10필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서 남는게 있나?"


"아니면 외상으로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김기특이 갑자기 이상하게 값을 깎는걸 보고 수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다른 글을 아는 분께 방의 내용을 물어보면 되는거 아닌가?"


"그러게. 읍성에 가면 지나가는 생원 분 하나 없겠나. 하다못해 아전바치들이라도 물어보면 알려는 주겠지."


김기특은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조짐을 느꼈다.


"대립을 안 사신다면야 전 가보겠습니다."


"어딜 가나? 자네도 함께 가세."


과연 읍에 가서 지나가던 생원에게 물어보니 방의 내용이 개똥이 아범 말대로라고 알려줬다.


"김기특 이놈이 우리를 속였네!"


김기특 때문에 거짓말쟁이로 몰린 개똥 아범이 유난히 화가 나서 김기특의 멱살까지 잡아댔다.


"아이고! 제가 정말로 방 내용을 미처 안 살펴서..."


"잠깐, 진정하게 개똥이 아범. 김 서방이 우릴 왜 굳이 속인단 말인가? 그냥 김 서방 말대로 방을 안 읽었을 수도 있지."


이 깡촌 마을에는 달리 드나드는 보부상도 별로 없는지라, 김기특을 이렇게 작살냈다간 거래할 상인도 달리 없다.


"왜 속이냐니, 대립가를 평소보다 싸게 부르고, 내가 직접 가겠다고 하니 또 대립가를 깎은걸 보면 모르는가?

그게 우릴 속이고 대립을 서서 받아챙기려는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개똥 아범의 말이 너무 논리적이어서 순박하고 배운거 없는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이 또 옳은 거 같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관아로 가서 지혜로운 사또님이 밝혀주십사 하고 재판을 기다리게 되었다.


시골 사람들에 비해 사리 분별을 잘 할 수 있는 현감은 대번에 김기특이 사기를 친 걸 눈치챘지만, 유사한 일이나 법이 없어 어떻게 벌할지 약간 망설여져서 위로 보고한 것이다.

물론 대충대충 법치인 조선에서는 이런 상인은 그냥 괘씸죄로 패죽여도 되긴 하지만, 지금 왕의 치세 아래에선 어째선지 일단 보고해야 책임을 줄여준다.




"함경남도 도사 이병정을 해임하고 벌하시오.

당진의 상민 김기특도 벌해야 마땅하나 미수로 끝났으니 이병정보다는 한 단계 감하여 벌하면 되겠군.

이 두 일은 어떤 벌이 가하오?"


"대전에는 비슷한 일을 징치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그러고보니 그렇겠군."


조선에서는 국가가 뭔가 역사(役事)를 할 때 돈을 제대로 줘 본 적이 없다.

당진현 백성들 말 마따나 잘해야 하루에 콩이나 쌀 한 되 주고 끝이었다.

이런 빼돌려먹기가 가능해진거 자체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형조는 이전 법을 상고하여 이런 일을 처벌하는 법을 검토하여 아뢰시오."


왕이 괘씸죄로 이병정과 김기특을 대충 때려죽일줄 알았던 신료들은 의외의 조치에 놀랐다.

하지만 왕의 성정을 보아 분명 처벌 수위를 매우 높게 잡은 법안을 원할 것이다.


왕이 또 사대부를 패죽이기 전에 뭐라도 해서 말려야 했다.


함경도를 돌아보고 온 호조판서 이세좌가 나서서 아룄다.


"비록 이병정의 죄가 크나, 함경도는 야인과 접한 땅으로써 무재가 뛰어난 이들이 배속되어야 야인들을 능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근래 야인들의 준동이 심상치 않은데, 이병정을 치죄하는 것은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미루는 것이 어떻습니까?"


신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왕은 융통성이 있다.


"군국의 일은 중요한 시무지. 지금 이른 야인의 준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소상하게 아뢰시오."


---


<이하 미주>


*1 : 일반적으로 현대적인 소득세의 기원은 1798년 헨리 비키(Henry Beeke)가 제안한 바에 따라 총리 소 윌리엄 피트가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 수행을 위한 전쟁세의 성격이 강했지요. 이전에도 프랑스에도 '10분의 1세' 등의 소득세와 유사한 개념의 조세가 존재했으나, 가톨릭 교회에서 걷던 십일조를 계승한 성격이 강했던 것에 비하면, 영국의 소득세는 누진적 과세 구조나 원천 징수 등 현대 소득세에 더 가까운 요소들을 보여줍니다. 이런 조세가 가능했던 것 자체가 당시 영국의 조세 행정 능력이 이미 근대 수준에 접어 들었음을 보여주지요. 물론 행정 능력이랑 별개로 의회 의원들을 포함해 모든 영국인들이 싫어하는 악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면 폐지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으나, 아시다시피 지금까지 이어져 전세계인들이 싫어하는 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2 : 지금이야 이자율이 연 5% 도 높은 수준이지만, 전근대는 대체로 이자율이 높았습니다. 신용이 부족한 시대였던만큼 어쩔 수 없었지요. 사실 근현대에도, 한국도 불과 2007년까지도 법정 최고 금리가 66%에 달했습니다. 조선의 경우 시대마다 다른데, 작 중 시대에서 제일 가까운 시기인 성종 16년에 사채 최대 이자율을 연 5할로 지정한 적이 있으니 그 정도가 일반적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의외로 이병정은 양심적인 이자율을 적용하는게 맞는 셈이지요. 다만 공채의 이자율은 그보다 낮은게 일반적이긴 합니다. 중종 21년에는 공채 이자율을 연 2할로 제한했습니다.


*3 : 8화 <아 장사하자 1> 에서 등장한 어초은 윤효정의 장인 정귀영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카리 겐도 같은 말투로 사위를 배에 태워서 사도와 싸우...아니, 쌀을 공진창에 팔게 했었죠.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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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1,756 507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1,841 536 25쪽
31 서울의 여름 +36 24.06.05 11,334 480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085 494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1,727 517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073 565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6 24.06.01 12,114 556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172 554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471 543 22쪽
» 뒷수습 +49 24.05.29 13,094 490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561 541 24쪽
22 백성 2 +40 24.05.27 12,592 534 22쪽
21 백성 1 +42 24.05.26 13,170 54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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