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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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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7 18:0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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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1,495

작성
24.06.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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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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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인클로저

DUMMY

경식이 한 해 동안 왜구의 제압과 일본과의 교역에 관한 부분에 많이 신경을 쓰긴 했지만, 그 외에도 한 일이 이것저것 많다.


일본 막부의 사신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고, 통신사들은 일본의 사신들과 함께 일본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던 4월, 왕은 아주 기분 좋게 적전(籍田)을 거닐고 있었다.


이른 봄에 심었던 아마들이 자라서 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경식은 아마꽃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다.


아니, 사실 꽃이 아름답다는 느낌 자체를 미래 한국에서는 그다지 느껴보지 못했다.


그 점을 기억해내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조선에 온 뒤로 꽃이 갑자기 좋아졌는데, 이것도 사실 연산군 영향이었나?'


그러고보니 조선에 온 첫 해에도 봄 되어서 꽃 폈다고 싱글벙글 거리고 있었지.


하지만 굳이 이렇게 일일히 자기 성찰하며 기분을 잡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설마 연산군이 꽃 좋아하는 걸로 무슨 일을 벌이겠어.


그리고 '경식'으로서도, 일본이 알아서 주권을 가져다 바치는 호구짓을 하고 있는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아직 확답은 못 들었지만 통신사들이 돌아올 때 뭔가 소식을 가져오겠지.


"이 아마는 봄과 여름에는 꽃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가을이 되면 줄기로는 포를 짤 수 있고, 씨는 기름을 짤 수도 있으며 먹거나 약으로도 쓸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풀이 어디있겠느냐. 오곡에 삼(麻)이 들어가는 것은 이 아마가 그 자리에 있어야 마땅하다."


경식은 이번 가을에 추수되는 아마 씨를 재배법과 함께 전국에 보급하여 점차 아마를 전국적으로 재배 시킬 계획이었다.


또 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니, 화훼 농업을 발전 시켜서 농민들 소득을 올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경제학의 하부 학문으로는 경제지리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경제지리학의 시초는 19세기에 독일의 귀족 튀넨이 제시한 농업 입지론이라는 이론이다. 농부가 재배하는 작물은 지대와 운송비에 따라 결정된다는 수식이다.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면, 시장이 존재하는 중심지를 주변으로 해서 시장 제일 가까이에서는 야채나 화훼를 재배하고, 그 바깥은 숲이 둘러싸고, 그 바깥은 밭이 둘러싸고, 그 밖은 목초지가 둘러싸는 구조라는 것이다.(*2)


이런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농업 입지론을 빼고 보더라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수준에서도 배우는 이야기이다.


꽃이나 야채는 하루면 상하기 때문에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 재배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현재 조선은 그런 시장 경제의 발전이 아직 심화되지 않았다.


경식이 와서 급격하게 시장경제 체제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사회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본격적인 경제사범들이 일부 머리 좋은 사대부들 사이에서나 나타나고 아직은 지폐 위조범 같은 잡범 위주로만 나오는 것도 경식이 바꾸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렇다.


조선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업 역시, 아직 농부들에게는 시장경제 구조에 맞게 개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농업은 기본이 1년을 바라보고 하는 산업이지 않은가. 경식이 오고서 겨우 2번 순환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농민들은 시장경제 하에서는 생산성과 소득이 떨어져 갈 것이다. 곡물은 부가가치가 낮다.


그래서 일부러 농협도 만든 것이고, 조선에 원래 있던 면리제도 원래는 면마다 '권농관'을 두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이제 권농관 제도를 본격적으로 정비하여, 농민들에게 상품 작물 재배를 더욱 활성화 시켜서 소득을 증대 시킬 것이다.


그 상품작물로 꽃을 재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조선의 도시는...사실 경식이 본 것은 서울 뿐이지만, 가로수도 없고 녹지도 없으니 너무 삭막했다.


미래 용사로서 한성부민들의 정신 복지를 위해서라도 도시 내 녹지를 만들어줘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꽃으로 향수 같은 상품도 만들 수 있을테고.


곡물이 부족해지지 않냐고?


지금 앞서 2년 동안에서 본 것처럼, 지금 조선은 되려 곡물가가 떨어지는게 문제다.


곡물을 소비해줄 도시 소비자층이 부족하고, 공산품을 생산해서 농민들의 생활 수준을 올려줄 공업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직 양전과 근대적 인구 조사가 안 끝나긴 했어도, 지금 조선의 농업 생산량이나 인구로 봤을 때 원래 역사의 조선 후기처럼 절대 식량 생산량이 부족한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 조선인들이 좀 많이 처먹어야지.


사람이 밥을 너무 많이 처먹으면 소화 기관이 소화 효율이 떨어져서 많이 먹어도 적게 먹은 것처럼 된다는데, 조선인들 먹는 양을 보면 그런 증세가 아닌가 좀 의심스러웠다.


아무튼 아직은 절대적인 곡물 생산량을 걱정할 때는 아니...


"전하! 춘궁기에 이어서, 보리 농사가 가물어서 지금 조의 가격이 폭등하고 있나이다!"(*1)


"뭐라고?!"




경식이 조선의 조세 구조를 바꾼 덕에, 다행히 흉년 좀 들었다고 원래 역사의 조선처럼 정부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역사의 조선, 즉 세금을 곡식 등의 현물로 내던 구조에서는 흉년이 드는 순간, 세금도 안 걷히고, 백성들에게 구휼한다고 창고가 텅텅 비고, 관료들에게 녹봉도 못주고, 요역도 동원 못 한다.


그렇다고 풍년 때는 세금을 잘 걷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조운선도 부족하고 조창 시절도 부족하니 세를 못 걷어서 흉년으로 비축곡 다 날렸다가 풍년만 목 빠지게 기다릴 뿐이었다.


조선이 그 체급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매일 가난하다 타령을 하며 군사도 못 일으키고 역도 못 부리던 나라인 이유가 이래서다.


경식의 조선에서는 지폐를 중심으로 한 시장 경제가 완비되고 조세 구조도 지폐 위주로 재편성 되어서 그 정도까지는 안 일어난다.


곡가의 등락도 마찬가지다. 경식이 첫 해부터 수만 명을 동원해서 창고를 빵빵하게 지어둔 덕에 비축곡이 동시대 원래 조선보다도 많다.


곡가도 기존처럼 10배 씩 오르내리기 전에 화매소에서 비축곡을 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급등하진 않는다.


다만 이전의 조선에서는 없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문만 줍쇼! 공덕을 쌓으시면 부처님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요!"


"나라에서 역을 부리는 것은 없습니까? 지금 나흘 째 굶고 있습니다!"


"허허, 이 사람, 도저히 못봐주겠구만. 우리 집에서 돗자리를 짜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와서 돗자리라도 짜보겠는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리!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지게꾼이건, 물장수 건 뭐든 하겠습니다! 쫓지만 말아줍쇼!"


풍년 때에 울상을 짓던 농민들은 이제 흉년이니 웃고 있을까? 아니다.


박경식이 '아직 조선 농지 수준으로 인구 부양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절대 생산량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다.


생산량으로만 계산하는게 아니라, 1인 당 농지 소유 상태와 1인 당 생산량과 소득을 계산하면 그렇지 않아진다.


지금 조선 농민 중 거의 30% 가량은 1결 미만의 농지를 가졌거나, 그조차도 없는 빈농들이다.


풍년으로 곡가가 떨어졌을 때 세금을 내기 빠듯하다고 울상을 짓던 농민들의 대부분은 이들이었다.


하다 못해 소 한 마리 정도를 가지고 쟁기를 끌어 농사를 짓는 정도의, 3~4결 정도의 땅을 가진 중산층 농민만 해도 풍년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흉년이 든다면, 풍년이 든 동안에도 돈을 못 벌고 빚만 늘어갔던 빈농들은 완전히 소득이 사라진다.


3~4결의 땅을 가진 농민들이면, 밭이 통채로 흉년이라해도 이전 풍년 동안에 비축한 곡식이 있거나, 그 사이 팔아서 돈을 쌓아뒀을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어떤 밭은 흉년이어도 어떤 밭은 본전은 건져서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지의 규모에 비해 농민이 너무나도 많아 빈농들이 많아진 조선의 지금 경제 구조에서는, 수 많은 빈농들이 흉년에도 풍년에도 울상을 짓게 된다.


그렇게 몰락한 빈농들은 이전 조선에서는 어디 대감 집 노비로 들어가거나, 머슴이 되거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식이 빙의하기 전 시대, 성종 시대부터는 상업의 발전으로 좀 방향성이 달라진다.


성종 시대부터는 그런 몰락 농민들이, 상업이 발전한 한양 도성에 와서 대립을 서거나 임노동자로 일하며, 도성 밖 빈민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기 시작했다.


경식이 온 첫 해에 경기도 난민들이 2만 명이나 서울 인근에 몰려온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경식이 순식간에 바꿔버린 조선은 그 현상이 더더욱 빠르게 가속되었다.


경식이 잠행을 다녀보니 또 사대문 바깥에 움막으로 지어진 빈민촌이 또 발생했다.


'첫 해에는 정병영을 지어서 처리했고, 둘째 해에는 활인서를 증축해서 해결했는데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전국에 아직 30여 군데 밖에 안된다고는 하나 상업 중심지로 기능하기 시작한 화매소와 경시들, 그리고 여전히 전국의 돈과 물산을 빨아들이는 서울은 빈농들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이 존재했다.


'돈' 이다.


1결도 안되는 손바닥만한 농지에서, 풍년에는 빚에 시달리고, 흉년에는 그대로 쫄딱 망하는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그깟 땅은 팔아버리고 도시에서 품팔이라도 하는게 나았다.


받은 품삯으로 조라도 사 먹어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작년 말에 경식이 도입 했던 발명품들도 농민들에게는 좋은 일로만 작용하지 않았다.


"이 큰 낫이 있으면 다섯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능히 할 수 있으니 편리하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


"주상께서 고안하신 훌테는 아녀자도 장정 다섯이 도리깨질 해야 할 곡식을 쉬이 털어낼 수 있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경제 같은 거 아직도 잘 모르는 신료들은 아무튼 편리한 물건이니 좋다고 했지만, 사실 경식이 만든 물건들은 전부 노동력 필요를 감소 시킨다.


"지금 한창 추수철인데, 혹시 머슴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추수철에만 잠시 품앗이를 시켜주신다면..."


"품앗이? 글쎄...우리 가솔만으로도 금방 다 보리를 벨 수 있을 거 같아서 필요 없을 거 같은데."


3~4결 정도의 토지를 가진 자영농은 사실 꽤 부유한 중산층에 가깝다. 1결도 사람 힘만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장정이 2~3명 정도는 필요하다.


그래서 추수철 같이 한창 농번기 일 때는 잠시나마 머슴을 고용해서 같이 일하고는 한다. 머슴은 보통 같은 마을의 빈농들을 쓰고.


하지만 소 한 마리 정도 가지고 있다면 딱 농사를 마칠 수 있는 정도 넓이기도 하고, 경식이 도입한 혁신은 또 이런 자영농들의 노동력 수요를 감소시켰다.


게다가 지금 진행 중인 양전도 문제를 심화 시켰다.


원래 조선의 토지소유권은 사적소유권 개념은 존재하는데, 공권력이 그걸 제대로 보증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토지 주인이 조금만 농사를 안 짓고 방치하면 관에 신고하고 누구나 멋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 '법적인 지주를 생까고 농사 짓는 권리'도 사람들끼리 거래됐다.


그래서 외거노비에게 토지 빌려주고 농사를 맡겨놨더니, 외거노비는 또 다른 사람에게 '농사 짓는 권리' 를 팔아서 자긴 차익만 챙기고 다른 농민이 농사 지어서 지주에게 토지임대료를 내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이번 양전에서는 그렇게 두지 않는다.


기존 조선의 제도에도, 입안이라고 하는 거래 증명 제도가 있기는 했다.


물론 제대로 활용이 안되니까 위와 같은 일이 있던 것이다. 대부분 입안은 안 만들고 그냥 사적인 거래 기록인 사문기(私文記)로 퉁쳤다.


새 양전에서는 모든 토지에 강제로 입안을 발급하고, 입안의 내용에 토지가격, 위치, 모양, 넓이, 지번, 소유권자, 소유권 이전 내역 등을 기재하여 근대적 토지소유증권으로 바꾼다.


또 관에서만 꼭꼭 숨겨 가지고 있던 전안(田案)도 바꿔서 등기부로 만들어 모두가 열람할 수 있게 바꾼다.


임대 계약 등 토지 이용에 대한 권리도 토지 주인이 온전히 독점한다. 노비가 멋대로 경작권을 남에게 파는 건 이제 못한다.


세납의 의무도, 반대로 민회에 대한 투표권도 등기와 입안에 따라 부여된다.


명백하게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을 목표로 한 정책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기존 체제에도 다 비슷한게 있어서 큰 혼선은 없었다. 기껏해야 기존에는 FM대로 안되고 있던 걸 하게 되는 수준이었다.


양전과 같이 호구조사도 기존의 역 부과를 기준으로 임의로 조사하던 방식을 바꾼다.


잘 알려져 있듯 조선의 호적에 등록되어 있는 인구는 실제 추정 인구랑 수가 영 동떨어져 있다.


조선의 인구 조사 목적은 어디까지나 요역을 부과하기 위한, 그러니까 세금을 걷기 위한 호의 편성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호 만큼만 파악을 하면 됐기 때문에 중앙에서 일부러 파악을 안 했다.


능력이 없어서 못한게 아니다. 호구단자 같이 1차적인 사료를 보면 다 조사를 했다.


중간에 취합하는 과정에서 '이 집은 밭도 없어서 전세도 못 내고 군포도 못 낼테니 호로 편성하지 맙시다' 하는 식으로 임의로 빼버리는 식으로 처리해서 사라지는거다.


하지만 경식은 국정 운영을 위한 데이터 취합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누락 없이 일단 집계한다.


엄청 많이 바뀌는 거 같지만, 이것도 기존 방식을 상당히 재활용한다.


사람이 안 부족한가 싶겠지만, 애초에 원래 조선에서도 하던 것이다.


호조 관헌 수가 확 늘은데다가, 금군까지 같이 붙여서 경차관으로 보내고, 지역의 학당 학생에, 이임과 면임들까지 총동원 시키니 되려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반발이라고는 기껏해야 향촌 양반들이 토지문권에 자기 이름을 꼭 써야한다는 것에 기분 나빠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확립된 토지소유제도에서는, 많은 중소지주가 양성되었다.


경식은 토지소유제도를 개혁하는 김에 아예 소유 상태도 개혁해버리기로 마음 먹어서 그렇다.


기존에 지주가 가졌던 땅을 멋대로 경작하던 경작자들의 경작권을 그대로 소유권으로 인정하고, 관아가 보유하고 백성들을 부역 시켜서 경작하던 둔토들도 다 불하해버렸다.


토지 분배와 자영농 육성에 항상 신경 쓰던 조선 기준으로 전혀 이상한 정책은 아니다.


그렇게 땅을 뺏긴 지주들은 안 억울해 했냐고? 위에서 말했듯 지금까지의 조선의 토지 소유권은 애당초 제대로 안 지켜졌다.


외거노비들이 주인 땅 몰래 팔고 자기가 차익 처 먹어도 관아들은 전혀 도와주지 못했다.


'앞으로는 진짜 지켜주겠다'고 이번에 선언하고 있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 지나면 흐지부지 될 거 같았다.


조정에서 경차관에게 금군까지 딸려서 보내고 있으니, 괜히 반항하는 것보다 기다리고 있다가 나중에 되사면 된다.


맨날 거지였고 FM대로 안 돌아가긴 했어도 조선은 중앙정부 권위가 무척 강한 중앙집권적 나라다.


되려 여기서 문제가 된 건 '유상매입 유상분배'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사또 나리, 제가 나라에 매년 세를 10전 씩 바치고."


"난 사또가 아니라 경차관일세. 하여간 그렇네. 자네가 땅 문권을 가지고 있는 한 매년 나라에 1결 마다 10전을 내야하네. 이제 3결을 가졌으니 30전이지."


"1결은 원래 제 땅이고, 이번에 별좌 나리 땅의 2결의 세도 이제 제가 내는 거라굽쇼?"


"아니, 이제 그 2결은 자네 땅이야. 한 별좌 땅이었는데, 이젠 자네 땅이니 자네가 세를 내는 거지."


"그런데 왜 저는 한 별좌 나리한테도 매년 40전을 드려야합니까?"


"왜냐니, 자네가 이제 한 별좌의 2결을 샀으니까. 1결 마다 20전을, 10년 간 원래 주인에게 주면 되네."


"산다구 안 했는뎁쇼."


"어허, 땅 준다고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도 다 있다니. 이제 자네 땅이니 자네가 열심히 부쳐서 빚도 갚고, 세도 내서 먹고 살면 되는 것인데 뭐가 문제인가."


말이 쉽다.


사실 농사가 순조롭게 된다면야 어떻게든 내기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절묘한 타이밍에 갑자기 흉년이 들어버렸다.


원해서 산 땅은 아니라고 하나, 기껏 얻은 땅인데 다시 뺏기는 것도 싫었던 농부들은 집안의 입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인두세제였으면 이럴 때 태어나는 아기를 죽이는 것으로 입을 줄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선은 온갖 조세가 토지세로 통합되었고, 농부들은 사람을 줄이는 것 자체보다는 돈이 필요했다.


"막동아, 지금 집 힘든 거 알지? 어디 고을로 나가서 장사라도 해보는 거 어떠냐."


"장사요? 농사만 지었는데 내가 무슨 장사머리가 있다고."


"하려면 못할 게 뭐 있냐. 정 안되면 어디 지게꾼이라도 하던가. 요새 읍마다 장시가 열려서 장사 한다고 뛰어드는 놈들 많더만.

네가 여기 붙어 있어도 너 줄 땅도 없어서 넌 색시도 못 들여."


"아니, 장사하면 색시가 알아서 들어오나?"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네가 벌어먹을 수 있으면 색시도 붙겠지. 아무튼 여기선 네가 벌어먹을게 없다."


그야말로 모든 상황이, 사람들을 도시로 몰리게 만들고 있었다.(*3)


그런데 문제는 조선은 아직 이들을 받아줄 일자리를 창출할 산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농민들의 막연한 기대랑 달리 도시도 그들을 팔 벌려 환영해줄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구걸을 하거나 막노동이라도 해야했다.




이 모든 현상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해결책을 알고 있는 것도, 왕 뿐이었다.


신료들은 슬슬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농민들이 진 나라 빚을 탕감해주자던가, 곡식을 풀어서 유랑민들을 먹이자는 자신들의 뻔하고 항상 반복되던 대책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금상이라면 내놓을 수 있다.


좀 용기 있는 정통 조선식 성리학자라면, '이게 다 돈이라는 제도 때문이니 돈을 폐지 해야 합니다.'(*4) 라는 골 때리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또는 '시장이 생긴 뒤로 백성들이 본업을 폐하고 말업을 쫓으니 시장을 없애야 합니다.' 라는 원래 역사의 조선에서는 계속 반복된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왕은 3년 동안 그런 주장을 하는 놈들 뚝배기를 계속 깨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엄마를 팔아서 신하들 기강을 잡기까지 했다.


이제와서 그런 소리 했다가 깨지는 것보다는 그냥 주상을 응원하는 것이 낫다.





'이건 농촌과잉인구(rural over population)로 인한 현상이군. 자본주의 체제로 돌입하기 시작한 개발도상국에서 나타난다는 현상.

이게 곧 나타난다는걸 기억해야 했는데 풍년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어.'


위에서 본 것처럼, 농촌에 사람들이 계속 남느라 토지가 계속 분할되면 1인 당 생산성은 감소하기만 한다.


이걸 해결해야하는게 도시의 상공업의 역할이다.


토지를 분할 시키며 생산성을 낮추는 과잉 인구를 농촌에서 빼오고,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늘이는 것이다.


그게 잘 돌아가면 국가 전체의 경제가 성장한다.


인구가 늘면 알아서 도시가 생기고 상공업이 발전하면 이런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았다.


토지 소유 구조의 문제, 봉건적 예속의 존재, 제도적인 상공업의 탄압 등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그 많은 악조건을 뚫고 자본주의 사회가 탄생한 것이 되려 우연이라고 할 정도로 일반적인 일이었다.


지금 경식의 조선도, 제도적으로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로 향할 수 있는 조건들 상당 수가 갖춰졌다.


토지 소유 구조 변화는 지금 진행하고 있고, 봉건적 예속은 작년에 경식이 요역을 다 흐트러트려서 없어졌다. 상공업 탄압도 이제 끝났다.


문제는 자본과 기술이다.


도시에 생산성 높은 일자리를 만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하다.


미래에서는 이럴 때 차관을 빌려서 자본을 투입하고 외국의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후발 주자들이 급격히 따라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지금 조선은 차관을 빌려줄 외국도, 기술을 전수해 줄 외국도 없다.


대신 경식이가 있다.


---


<이하 미주>


*1 : 9화 <아 장사하자 2>에서 미주로 기펜재에 대해서 말했었지요. 경식이 조선에서 많은 것을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아직도 심층적인 경제 구조나 전반적인 소득을 상승 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흉년 때는 농민들의 소득이 급격히 감소하여 소득 효과로 인해 조가 기펜재로 작동합니다.


*2 : 이러한 농업 입지론적 구조는, 야채 장사는 조선 후기에야 활성화되고(교과서에도 나오는 상품 작물 재배의 활성화죠), 화훼 농업은 특별히 상업적으로 발전하지 않지만, 적어도 목초와 목재 조달은 경기도에 공물로 많이 분정되는 것으로 실제로 나타나는 양상입니다. 사복시에서 사용할 마초의 공급과, 숯 및 건축 자재용 목재 등이 경기도에 많이 분정되어서 국가에서 민초의 부담이 클 것이라며 특별히 신경을 썼지요. 물론 현물 조세라는 특성 상 부담이 줄어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3 : 토지 소유 구조권의 재편으로 인해 농촌에서 추방되고 도시로 공급된 인력들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기존의 '인클로저 운동'에 대한 해석의 통설입니다만, 근래에는 부정되는 추세입니다. 영국 런던의 산업화 당시에는 농촌보다는 런던 자체의 인구 성장과 인근 부도심에서 유입된 인구로 노동력을 충당했다는 것이 근래의 정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우처럼 산업화의 후발주자 국가들은 토지개혁으로 토지가 분배된 이후 자영농화 된 농촌에서 잉여노동력이 급격히 도시로 유입되며 빠른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했습니다. 대지주가 아니라 중소지주들이 도시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한 것이지요.

<김종현 (2006). 영국 산업혁명의 재조명. 서울 : 서울대 출판문화원>


*4 : 미래인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황당한 주장입니다만, 조선 후기에 실제로 있던 주장입니다. 실학자로 더 잘 알려진 성호 이익이 말한 '폐전론'이지요. 이익은 동전 통용이 사치와 탐욕을 조장하여 농업에 해롭고 도적을 발호시켜 백성을 곤궁하게 만들었다며 폐전을 주장하였지요. 이익만의 독특한 주장이 아니라, 조정 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던 주장 중 하나입니다. 당시의 조선왕 영조 역시 폐전론을 지지하고 있었지요. 이로 인해 새로운 동전의 주조가 줄어들어 전황, 즉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여 되려 상인들이 더 많은 이익을 챙기고 농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유학자들의 직관과 윤리에 따른 경제론이 실제와 얼마나 정반대였는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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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9

  • 작성자
    Lv.42 눈귀입조심
    작성일
    24.06.20 21:34
    No. 61

    한성 부심.. 서울 부심.... 지긋지긋하네..............................작가 주관! 서울 중심. 지방..........?? 질린다!!

    찬성: 2 | 반대: 23

  • 작성자
    Lv.55 노블매니아
    작성일
    24.06.20 21:38
    No. 62

    저 넘쳐나는 인력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키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2 n9423_rl..
    작성일
    24.06.20 21:58
    No. 63
  • 작성자
    Lv.22 기름사과
    작성일
    24.06.20 23:07
    No. 64

    만주랑 열도에 사람을 심을까?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8 아모르
    작성일
    24.06.20 23:18
    No. 65

    경식이는 사후 도조(?)로 추증될거 같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8 Quinvirt
    작성일
    24.06.21 00:24
    No. 66

    석탄은 좀 캐야겠고, 중세시대에 경공업 이라고 할만한게 있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9 gl****
    작성일
    24.06.21 03:58
    No. 67

    경식에몽 도와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비과학적
    작성일
    24.06.21 04:32
    No. 68

    대신 경식이가 있다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D.M.K
    작성일
    24.06.21 07:34
    No. 69

    아니 이 각은 새마을운동이자나?
    쫘악 모아서, 지방으로 보내면서, 도로도 만들고 도착지에는 집도 새로 짓고, 항구도 짓고, 자연스레 군대로도 보내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0 xk******
    작성일
    24.06.21 08:02
    No. 70

    저거를 후세에 따라하겠다고 자료 참고해도 이해가 안되서 다 말아먹을 듯

    현대인도 설명 들어도 감만 잡는걸 저 당시 실무자들이 어떻게 성공시켜;;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 혈풍수라
    작성일
    24.06.21 10:31
    No. 71

    아직도 야채가 일본식 말이라고 믿는 놈들이 있다니...
    야채는 조선 초에도 쓰이던 말임. 원래 뜻은 들에서 난 나물이란 뜻임.

    찬성: 7 | 반대: 1

  • 작성자
    Lv.68 명원중공업
    작성일
    24.06.21 18:54
    No. 72

    경식이란 경제 대식이의 준말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4 위스덤
    작성일
    24.06.21 20:19
    No. 73

    진짜 도라에몽 수준. 연산에몽 도와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혼수객
    작성일
    24.06.22 02:59
    No. 74

    햇반현미밥 210g 305킬로 칼로리. 90년대 한국군인 섭취표준 2800킬로칼로리. 단순 계산 일단 하루 아홉개. 대개 하루 두끼만 먹어도 감사하던시절. 반찬이라고는 소금묻힌 무조각이나 귀한 간장정도가 전부. 모든 열량을 밥에서만 찾아야하고. 오로지 몸과 조잡한 농기구만으로 농사를 짓던 농민이 농번기에 소모하는 칼로리는 2800동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조선시대 고봉밥사진에 같이 있던 조선인들 중에 살찐 사람보셨나요? 입력이 출력보다 과했으면 살이 쪘을텐데 그살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걸 대식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걸까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8 혼수객
    작성일
    24.06.22 03:27
    No. 75

    상인윗대가리급이나 기술직 중인이나 양반지주들이라면 육체노동을 덜하니 덜먹을수 있을테죠. 날이 따뜻하면 덜 먹을 수 있고. 단백질 섭취수단인 사냥도 쉽지 않습니다.소도 겨울에 소를 먹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키우는 거였구요. 그래서 동서양막론하고 일반 농민은 개고기가 다른어떤고기보다 익숙했던 거고. 콩도 재배해서 먹기까지 만만한 일이 아니죠. 품종개량도 안되서 양도 조잡하고. 된장띄우고 간장을 담근다는 것도 사치였을 수 있습니다.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니 아무리 노동을 해도 근육은 붙질않고... 음식의 영양분을 흡수못하면 똥부터 달라집니다.설사납니다. 동물들의 경우 사료를 과하게 먹이는 일이 계속되면 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설사를계속 하고 지속되면 죽어요. 그렇지만 사람이면 겨우 3000 4000킬로칼로리를 곡물로 섭취한다고 해서 장트러블 나서 소화 못시키는 경우 거의 없죠. 박태환선수 선수시절 훈련하면서 먹는 양 유명했죠.개만봐도 살이 뒤룩뒤룩 찔지언정 장트러블로 지속적으로 설사할 정도로 먹지는 않습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27 마라짜글이
    작성일
    24.06.22 13:01
    No. 76

    웬만한 경제지식없이는 조선에 중상주의하면 좆되는구나;;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4.06.23 10:16
    No. 77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무뇌드라군
    작성일
    24.06.26 19:49
    No. 78

    답은 부동산 재개발이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참좋은아침
    작성일
    24.06.27 15:33
    No.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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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063 465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59 24.06.11 9,983 462 21쪽
34 돈과 전쟁 +54 24.06.10 10,771 494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1,761 507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1,844 536 25쪽
31 서울의 여름 +36 24.06.05 11,338 480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088 494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1,731 517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078 565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6 24.06.01 12,117 556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175 554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473 543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094 490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563 541 24쪽
22 백성 2 +40 24.05.27 12,593 534 22쪽
21 백성 1 +42 24.05.26 13,171 54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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