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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공모전참가작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8 21: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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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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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아이신기오로

DUMMY

지금 조선 북쪽의 사고뭉치들을 조명하기 전에,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할 수 있을만한 오해를 톺아보자.


박경식이 말하는 식민지는 19세기 서구 열강들이 했다고 알려져 있는


"제하하하! 빨리 원료를 공급하고 우리가 만든 완제품을 사가라 열등한 식민지 주민 놈들아!"


같은 게 아니다.


애초에 지금 조선에는 그럴 국력도 없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에 대한 이런 도식은 종속이론이라고 부르는데, 경식이 태어나기 20년 전 쯤에는 학계에서도 유행했지만 경식이 배우고 있을 때 쯤에는 반론에 부딪힌다. 실제로는 저런 구조로 교역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들은 워낙 가난해서 완제품을 사갈 돈도 없고, 개발 수준이 낮아서 원료 공급도 잘 못했던 것이다.


산업혁명에 들어가기 시작한 영국에게 '식량과 원료를 공급하고 완제품을 사주는' 곳은, 19세기에 땅따먹기 하다가 얻은 식민지들보다는, (옛날에는 식민지였지만) 독립국이었던 미국이었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들은 경제적 이유보다는 그냥 자기 나라 색깔로 지도가 넓게 칠해진 것을 좋아하는 이상성욕을 전 국민이 공유하게 된 결과다.


그리고 경식이 근세 유럽을 더 좋아했긴 했어도 나름대로 사회경제사가 주력이다. 종속이론과 그 비판 정도는 들어봤다.


경식이 생각하는 식민지는 독일의 동방식민운동이나, 영국의 북미개척 쪽에 더 가깝다.


지금 경식의 개혁으로 인해 조선은 점점 도시들이 상공업 중심지 기능이 갖춰지기 시작했으며, 토지가 과도하게 적은 빈민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 경제가 더 제대로 작동하고 퍼지려면 그런 도시화와 상공업 활성화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조선은 이미 농촌의 과잉 인구는 300만에 달하는데에 비해, 그들을 전부 도시로 흡수하고 경제적으로 쓸모 있게 만들 산업 구조를 만들기에는 자본도 기술도 벅차다.


경식이 서울에서 한 것처럼 조정이 주도해서 산업단지를 올린다 쳐도, 1년에 2만명을 취직 시킨다고 해도 300만을 취직 시키려면 150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도시 위주의 경제 구조로 설계된 새 땅으로 나아간다면 어떨까?


독일의 동방 식민 운동은 그렇게 이뤄졌다. 독일의 발전한 도시법을 바탕으로, 기존 독일에서 농노로 살던 인구들을 자유민으로 해방 시켜주는 대신 인구가 희박한 동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동방에 정착한 독일인들은 수로를 따라 진출하며, 시장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동방을 개척했고, 그 과정에서 세워진 도시들은 서방에 동방산 곡물을 공급하는 거점이 되었다.


경식이 원하는 식민지는 그가 앞으로 만들어갈 시장 경제 체제로 굴러갈 사회의 규모를 넓히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자본주의는 시장이 넓을수록 좋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세계적으로 보면 기형적인 수준으로 쇄국을 하고 있고, 특히 제일 큰 시장이어야 할 중국이 강력하게 쇄국을 하니 생각나는게 식민지일 수 밖에.


경제는 서로가 합리적으로 거래할 때 양쪽이 부유해지는 이야기지,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것으로 부유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 대한 개항조약도 절대로 '조선을 괴롭힌 쪽발이들에게 복수하겠어!' 같은 이유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 것처럼 관대하게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전수하여 문명화 시켜주겠다는 의도였다. 결국 제국주의 맞지 않냐는 비판은 대충 넘어가자.


하지만 경식의 이런 생각이랑, 지금 번리위무사 경영은 정확히 반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두만강 이북의 수령님 윤필상은 또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농업이 대부분인 전근대의 경제는 계절의 리듬을 따라 움직인다.


농업이 아니어도, 현대에도 겨울옷이 여름에 팔리지 않듯 많은 상품은 계절성을 띈다.


번리위무사는 주요 상품인 초피랑 인삼이 둘 다 계절상품이었다.


초피는 겨울에 제일 인기 있으며, 늦가을이랑 겨울에 잡아야 품질이 제일 좋다.


인삼도 마찬가지다. 아직 조선에는 인삼 재배 기술이 없어 오직 산삼만 존재하는데, 산삼 채취 시기는 10월이 적기다.


즉 겨울이 지나면 매출이 증발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4진에 배치된 3천 갑사들의 이론 상 유지비는 매년 360만전.


경식이 조선에서의 금전 감각이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국가 재정부터 보느라 금전 감각이 마비되었고, 전쟁을 삼국지로 배워서 군대를 만 단위로 생각해서 이걸 가볍게 여기는데, 사실 철갑 중기병 3천은 상당한 대군이요, 360만전은 현 조선 1년 세입의 20% 에 달하는 거액이다.


기존의 동양식 군대 계산법이면 갑사들이 데리고 다니는 보인들도 병력으로 치기 때문에 1만 대군이 배치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 보인들도 다 함경도 출신이고, 호신용인지 약탈용인지 군기시에서 만들어진 무기를 들고 다니느라 기존 동아시아 기준이면 엄연한 병력이 맞다.


몇개월만에 두만강 이북 여진들을 다 때려잡아 제압하거나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단순한 이유였다. 돈이랑 병력을 퍼부었으니까.


그리고 번리위무사는 이 대군을 셀프로 유지비를 벌어서 굴려야 한다.


사실 말도 안되는 명령이다. 번리위무사가 건주돌파 황형라간을 찍을 때는 그럴싸해보였지만, 사실 수익성으로 치면 '따서 갚으면 돼' 의 끝판왕급 도박수 사업이었다.


1년차에 좀 성과 있다고 2년차에 냅다 군비 증강에 쓴 결과, 조선은 이미 세입의 90% 가량이 군사비로 들어가게 되었다. 경식이 이제 수군 만들 돈 없다고 매관매직 해댄 이유가 있다.


무슨 정신 나간 군국주의 국가 같아 보이지만, 사실 전근대에는 흔한 재정구조라서 굉장히 이상한 건 아니다. 당장 경식이 오기 전에도 조선의 7000여 개의 관직 중 5000개는 갑사 등 직업군인이었다.


그리고 지출표 상으로 그렇게 들어간다고 정말로 군대가 천수백만 전을 온전히 받는 것도 아니다.


군사들에게 주는 월급 중 상당수를 군기시 장비를 강매하고 원천징수한 것으로 처리하여, 거기서 난 수익으로 나머지 정부 조직을 돌리거나 별도 사업을 하는데 쓰고 있어서 큰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무사는 조정의 군기시와 달리 갑사들에게 강매할 것이 별로 없다.


위무사에서 일하는 갑사들에 대한 급여 회계처리와 실제 지급 자체는 길주 화매소에서 하지만, 지급할 때마다 번리위무사 빚으로 달아놓기 때문에 지금 위무사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한마디로 조정은 갑사들에게 거의 용돈 수준 월급만 현금으로 주고, 위험부담 중 대다수는 번리위무사 투자자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그런데 지금 번리위무사가 온전히 가져가는 수익은 모피랑 인삼 무역 수익 말고는 없다.


그리고 지금 번리위무사의 도원수는 그 투자자 중 제일 큰 손이기도 한 윤필상이다. 번리위무사가 적자를 본다는 것은 곧 윤필상의 돈이 까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드는 정상적인 생각은 당연히 군축이다.


삼년상도 안 끝났는데 1년 차에 조세 개혁으로 늘어난 돈을 2년차 되자마자 냅다 군 정예화에 몇백만 전을 퍼부어가며 만주 진출부터 해서 여유 예산이 홀랑 사라진 '세종의 후손' 누구랑 다르게 윤필상은 상식적이다.


한 3분의 1로 병력을 줄이면, 초피를 중국에 잘 팔아서 중국이랑 삼각 무역만 해도 어떻게든 흑자로 전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진족이 세다는 것이다.


조선에 애매하게나마 신종하던 번리여진들은 이전부터 자기들끼리도 대대로 원수여서, 육진의 군사력으로는 중재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3천 갑사가 와서 번리들이 줄을 확실하게 조선으로 갈아타긴 했으나, 서로 대대로 원수인 것은 변하지 않아서 서로 조선에 줄을 더 잘 대서 서로를 처죽일 생각만 가득했다.


다행히 윤필상은 일에 대해서는 상식적이었고, 왕의 명령도 '번리들은 조선의 법에 따라서 다스려서 서로 원수여도 법에 따라 처결해야지, 사사롭게 싸워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라' 여서 일단은 중재를 하고 있다. 주로 갑사들의 무력으로.


이 상태에서 군대가 빠지면 또 지들끼리 싸우다가, 중재를 못하는 조선에게서 이탈할 것이 뻔하다.


게다가 건주여진도 지들이 쳐들어와놓고서 얻어 터진 것에 열 받았는지 자꾸 알짱거렸다.


그리고 지금 위무사에서 제일 세고 돈도 잘 버는 황형도 문제아였다.


자꾸 울지령 너머에서 우디캐 놈들이 와서는 간을 보다가 돌아갔는데, 알고보니 알타리랑 같이 손잡고 울지령 너머의 니마차 우디캐까지 공격했다는 것 아닌가.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사고뭉치인게 마치 지금 서울의 조정 같았다.


결국 윤필상은 장계로 뭐 좀 더 달라고 왕에게 징징대야 했다.





'소신이 4진에 와서 살핀 바, 전하께서 하교하신 4진의 자리는 과연 옥토가 지천에 널려 개간하면 능히 3만 결에 달할 것입니다.

지금 4진의 병사들이 쓰는 군자를 오직 배로 사들이고 있어 장사치들이 그 값을 갑절로 부르니 군용이 넉넉하더라도 함부로 쓸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을 갈아 군둔토로 두면 군자를 조달하는 값이 크게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위무사에 4진 인근의 토지개간권을 달라는 얘기다.


경식도 서서히 4진 지역을 개간해서 식민화할 생각이었고, 윤필상이 행간에 자꾸 위무사 적자 나게 생겼다고 징징거리는게 보여서 허락했다.


사소한 문제는 4진 지역의 농경 가능 지역 대부분은 이미 번리 여진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단 점이다.


한국인들은 여진족을 마냥 유목이나 수렵 정도나 하는 원시 야만족으로 생각하지만, 이 시대 쯤이면 한창 전부터 조선이랑 중국에서 농사를 배워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온성에서 북쪽으로 1주일 거리에서 사는 니마차 여진(현대의 중국 무단장 시 인근)도 쌀농사를 짓고 있을 정도다.


세조 때까지만 해도 여진족이 조선 침공해서 밭을 태운 것보다 조선이 여진을 침공해서 밭을 태운 규모가 더 클 지경이다.


아무튼 위무사는 새로 개간한 땅이 아니라, 여진족이 원래 잘 경작하고 있던 땅을 개간지로 등록해서 둔전으로 넣었다. 조선에서는 지방관아들이 돈 부족할 때 자주 하던 일이다.


그리고 경식이 오기 전 조선 둔전의 표준적인 방식대로 병작반수...즉 50% 의 세율을 적용했다.


게다가 경식이 바꾼 방식대로 돈으로 내는 것도 아니고, 이전 시대처럼 수확물을 뜯어가는 것이다.


사실 번리여진들에게는 아직 지폐가 낯설고, 현물 경제가 더 익숙하다보니 이게 현지 최적화 정책이 맞다.


동인도회사 등 동시대, 아니 미래 유럽의 개척 주식회사들도 현지 정책은 비슷했으니,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실 이전 조선인들에게 하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니 여진족에게는 사실 상 후대해주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방법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지 50% 뜯어가는게 좆같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4진 인근에서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진족들은 조선에게 반항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지 않다.


대신 조선인들을 이용해서 조선에게 반항할 정도로 머리가 나쁜 여진족에게 평소의 원한을 갚아주기로 했다.




퍽!


황근쇠 보인이 호랑이처럼 날아서 니마차 출신 야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ᠠᡴᡡ!ᡠᠮᡝᠠᡵᠠᡵᠠ!"


"이 자식이 뭐라는 거지?"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랍니다."


처음부터 니마차 새끼들이 싫었던 알타리부 여진 지주가 말을 엉터리로 옮겨줬다.


니마차 야인은 그날 황근쇠 보인에게 반병신이 되도록 맞았다.


구타가 끝나고 황근쇠 보인이 말했다.


"이 밭 전부 오늘 내로 갈아라. 네가 선택해서 귀부해 온 조선이다. 악으로 갈아라. 네가 못 간 밭은 아무도 대신해서 갈아주지 않는다. 여기 연변에서만이 아니야. 조선이 다 그렇다. 명심해라."


갑사 본인도 아니고 갑사에게 보인으로 고용된 놈이 지가 뭐라도 된 것처럼 잡혀온 여진족을 괴롭혔다.


니마차 여진은 전혀 선택해서 조선에 귀부한 것이 아니란 점은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조선에게 귀부할지 말지 간을 보다가, 결국 척지기를 선택한 니마차 여진은 싸움이 날 때마다 번리여진과 갑사들에게 잡혀와 번리여진 지주들의 노비가 되었다.


니마차 여진이 살던 목단강 유역의 밭들은 짐승들이 다니고 수풀이 자라나게 되었다.




윤필상은 여진족을 지배한다는 지위를 이용해서 또 다른 이익 창출법을 생각했다.


조선에서는 폐지된 공물이다.


당하는 사회나 백성 입장에서는 시장경제를 붕괴시키고 백성들의 고통이 커지는 비효율적인 제도지만, 수취하는 입장에서는 이처럼 날로 먹는 편한 수취법이 없다.


그래도 윤필상은 이전 조선처럼 나지도 않는 것을 공물로 바치라는 억지까진 안 부렸다.


대신 여진족 각 부락에 제철에 맞는 짐승들 고기와 가죽을 분정하여 위무사에 공물로 바치도록 했다.


초피가 제일 짭잘하긴 해도 초피 외 가죽들도 위무사 독점 판매고, 나름 수익이 된다.


그뿐인가. 짐승고기 역시 육포로 만들어서 팔면 다 돈이 된다.


특히 사슴이 짭잘한데, 사슴가죽은 부드러워서 쓸모가 많고, 사슴육포는 약용으로도 쓰이고 녹용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여진족들에게 농우가 급하다는 것도 이용했다.


위무사가 소를 사오고, 여진족들에게 빌려줘서 값을 받는 것이다.


그뿐인가. 여진족들은 소금과 철도 급하다. 위무사는 여진족에 대한 소금과 철 판매도 독점하기로 했다. 여느 독점 기업이 그렇듯 최대한의 바가지를 씌웠다.


위무사 설치 직전의 함경도-여진 무역 구조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무역 역전 세계였다.


역시 돈은 밝혀도 일머리는 유능한 윤필상 다운 일처리였다.


이따위로 착취했다가 여진족들이 무슨 일 터트릴 거 같다고?


윤필상은 알 바 아니었다. 그 전에 도원수 임기가 끝날 것이고, 솔직히 여진족이 반란 일으키기 전에 자연사로 죽을지도 모르는 나이다.


번리(藩籬)를 위로하고 어루만지는(慰撫) 관아(司)라는 이름 값을 이렇게 하고 있었다.


마치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명예로운 것(honourable east india company)과 닮은 꼴이었다.




위무사에서 돈 밝히는 것은 윤필상만이 아니었다.


황형은 여진족들의 특산품인 말을 여기저기서 닥닥 긁어서는 요동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초피도 비싸게 팔리지만, 말은 여진족 내에서보다는 조선에서 훨씬 비싸며, 조선보다는 중국에서 갑절 비싸다.


조선은 여진과 중국 사이에서 말 중계무역만으로도 이득을 꽤 보고 있었다.


평안도 병사들은 돈이 급하면 나라에서 지급한 말을 중국에 팔았을 정도다. 조선스럽게 당연히 참수로 처벌하지만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다. 이번에 왕이 말을 판 병사는 관노비로 배속해서 말 값을 갚을 때까지 일하는 것으로 바꿨지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이렇게 여진에게서 말을 무료로 받고 중국에 직접 팔면 그 이득은 어떠하겠는가.


말 수천 필을 이끌면서 달려오는 조선군 기병들을 본 요동 병사들은 몽골의 올량합 삼위가 쳐들어오는 줄 알고 나팔을 불고 북을 두드렸다.


솔직히 이건 황형이 잘못한 게 맞다.


오해임을 필사적으로 전달한 뒤에야 겨우 들어왔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 말은 다 무엇인가? 근래 조선인들이 드나들 때마다 무역을 크게 하여 아조의 물산을 가져가려드는데, 천조에서 금한 것을 사사로이 무역하려는 것인가?"


황형은 어떻게 알았지?! 라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 친구가 자신과 요동도사가 친한 것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요새 수입이 좀 부족하거나.


황형은 이럴 때를 대비하여 준비해둔 은을 그 명나라 관헌에게 살포시 쥐여줬다.


그러나 그 관헌은 은을 쳐내고 되려 화를 냈다.


"이놈들이 날 뭘로 아는 것이냐?!"


뇌물 액수가 부족해서 이러나 했는데, 알고보니 황형이랑 친했던 요동도사 장수(張岫)가 그새 짤리고 새 요동도사가 와서 이러는 것이었다.


장수는 뇌물 수수 혐의와 밀무역 혐의로 고발되어 퇴직했다.


황형 때문일 거 같지만, 그건 아니고 원래 역사에서도 이 때 같은 혐의로 짤렸다.(*1)


황형이 무역하러 온 것이 막힌 것 자체는, 조선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아주 조금 기여를 하긴 했다.





지금 조선에서 무역에 환장하는 것은 윤필상과 황형만이 아니다. 사실 민간에서 하는 밀무역도 엄청 성행하고 있고, 굳이 말하면 지금 왕이 제일 심할 것이다.


경식은 사신 명목으로 가는 사행단이 중국과의 거의 유일한 합법 무역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아예 국고 수입을 위해 대놓고 장려하기로 했다.


정조사들이 상인을 자기 노비로 등록하는 꼼수를 쓰는 것을 간파하고 상인들을 아예 등록하고 허가서도 발급했다.


그리고 알고보니 상인들이 돈을 모아 밑천을 대서 장사를 하고 이문을 나누는 체제도 있길래, 그대로 고본계로 등록해버렸다. 조선 최초의 민간 주식회사가 그렇게 생겼다.


대부분의 물건 수출을 허가하는 대신 전부 검사해서 관세를 매겼다.


경식이 알고 있듯 금이랑 은을 가지고 가는 놈들도 많았는데, 금이랑 은에는 특별히 관세 200%를 매겼다. 원래는 사형이었으니 이 정도면 싸다.


이래서 화폐 조세가 좋다. 세율 100%를 넘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지고 가는 물건 수도 아예 확 늘리라고, 작정하고 수레도 만들어서 (강매해서)줬다.


세조 시절부터 왕실 대신 대중 사무역을 하던 상인 조복중(曺福重)은 판스프링이 달리고 연철로 바퀴를 감싸 더 없이 튼튼한 수레를 받고, 무역을 허락해주는 성은에 감사하며 (관세를 뜯기고 영수증에 쓰인 수레 가격을 본 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조선의 사신들이 가지고 온 막대한 물자를 본 명나라 관리들은 환장하기 시작했다.


경식이 시대를 100년 정도 착각하고 있는데, 아직 이 시기 명나라는 해금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시대다. 동아시아사 알못이어서 대중외교를 그냥 조공 사절 드나드는거 정도로 생각하는 경식이 나쁘다.


제대로 된 도로도 없으면서 꾸역꾸역 수레로 무역 물자를 가득 가져오다니 지금 조선인들은 대체 얼마나 돈에 환장한 것이란 말인가.


원래 역사에서도 성종조를 기점으로 사행무역이 확대되고, 연산군 시기에 더 확대되어 중종조 쯤에는 열받은 명나라에서 과거 문제로 사행들의 사무역을 근절하는 방법을 내기도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경식이 끼어들어서 사행무역을 원래 연산군보다도 더 급발진해서 확대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명나라도 진지하게 조선 사신의 사무역 금지를 논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요동도사에게 내리갈굼을 시전할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장수가 짤리고 새로 온 요동도사 장옥(張玉)은 자신의 임무가 조선인들의 밀무역을 단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형은 무척이나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황형과 함께 온, 올해 초에 복속하여 만포 건너편에 자리잡은 번리 동아망개(童阿亡介)가 황형에게 물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황 장군?"


"번장이 함부로 상국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일단 돌아가자."


실망하여 터덜터덜 돌아가는 황형의 눈에 요동 마시에서 교역하며 중국의 비단을 받아가는 건주여진들이 보였다.


왜 여진 따위에게는 교역을 허락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이요 제일 번국인 조선에게는 이리 박대한다는 말인가.


저렇게 마시로 달래봤자, 저 무도한 건주 놈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요동을 노략질 할텐데.


그때 황형의 머리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동아망개, 자네는 건주위에 속했었지. 그때 마시에서 거래한 적이 있나?"


"아뇨, 알다시피 마시에는 명 조정으로부터 칙서를 받아야만 가능한데, 건주는 우리에게는 칙서를 나눠준 일이 없습니다."


명은 칙서를 건주삼위를 중심으로 나눠주고, 건주삼위는 그 칙서로 무역을 한 뒤 얻는 물품을 이용해서 핵심 부족 외 다른 부족들도 복속 시킨다.


동아망개의 부족도 그런 이유로 건주에게 복속해 있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건주위에서 찔끔찔끔 주는 물품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떡고물을 좀 받아먹고 싶어서 조선에 귀부한 것이기도 하다.


"그 칙서를 두고 야인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하고 말이지?"


"그렇습니다만, 그건 왜...?"


그 때 황형의 얼굴을 본 동아망개는 황형이 여진족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았다.




마시에서 교역을 마치고 돌아가던 건주좌위의 아이신기오로 푸만은, 갑자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기병 한 무리를 보게 되었다.


볼 것도 없다. 또 전투다.


만주에서는 숨쉬듯 흔한 일이라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교역 한 번 할 때마다 거의 군대 수준으로 다니는 거고.


누구인지 궁금하기는 하나, 그런 걸 따지면서 싸울 채비를 하면 늦는다. 건주좌위 병사들은 바로 대형을 짜고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적들의 얼굴이 슬슬 보이는 거리 쯤이 됐을 때 깨달았다.


조선군이다. 저번의 그 말 위에서 쏠 수 있는 화포를 들고 온.


"화포다!!!!!!!피해랏!!!!!!!!!!!!!구석으로!!!!!!!!!!!!!!!"

푸만은 사망했다.




평소처럼 여진 약탈에 성공한 황형은 시체더미에서 명나라의 칙서를 찾아서는 동아망개에게 주면서 말했다.


"네 성은 이제 아이신기오로다."(*2)


조선이나 미래 한국인의 편견과 달리 이 시대 여진족들은 상당히 유교화가 진행되었다. 그들 입장에서도 성씨를 바꾸라는 것은 패드립에 해당한다.


동아망개가 잠시 멍 때렸다가 칙서를 보고서 이게 대체 무슨 완전 미친 소리인지 깨달았다.


"당장 하겠습니다."


명나라의 마시에서 거래를 하는 동안, 동아망개의 성은 아이신기오로다.


"아망개라는 이름도 건주에서는 쓰지 않으니, 아예 이름도 가짜로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슈르가치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황형은 여진족 이름이나 말 따위 모른다. 아이신기오로 슈르가치건 수가르치건 스크루지건 알 바 아니지만,


"좋네. 멋진 이름이야."


라고 칭찬했다.


---


<이하 미주>


*0 : 국경의 병사들이 받은 말을 명나라에 파는데 사형으로 다스려도 단속이 쉽지 않았다던가, 금과 은을 명에 가져가는 것은 사형인데도 역시 단속이 쉽지 않았다던가 등의 작 중에서 묘사되는 조선과 명의 무역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논문들을 참조했습니다.

<張海英. (2015). 14∼18세기 중국-조선의 민간무역과 商人. 민족문화연구,(69), 61-91.>

<朴平植. (2018). 16世紀 對中貿易의 盛況과 國內商業. 역사교육, 146, 253-296, 10.18622/kher.2018.06.146.253>

<朴平植. (2018). 15世紀 後半 對外貿易의 擴大. 한국사연구,(181), 181-235, 10.31791/JKH.2018.06.181.181>


*1 : 장수가 처음 등장한 38화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에서 제가 따로 미주로 언급 안 해서 창작 인물이나 임의로 설정된 부분으로 오해하셨을 수도 있겠군요. 요동도사로 나오는 장수, 장옥 둘 다 실존 인물이며, 장수가 1497년(연산군 3년)에 짤리고 장옥으로 교체된 것도 실제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 부분이며, 본문에서 언급한대로 이유도 그대로입니다. 다만 장옥이 조선의 밀무역을 강하게 단속하려는 것은 창작이 맞습니다.


*2 : 사실 아이신기오로라는 성은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가 국성으로 삼으면서 확정된 것이고, 그 이전 사료에서는 누르하치의 조상들이 아이신기오로라는 성을 썼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작 중에서 동아망개가 아이신기오로 슈르가치가 되어버린 것은 개그 및 패러디 요소입니다.


작가의말

k3723_fazzgd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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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8

  • 작성자
    Lv.59 춘천아산
    작성일
    24.06.25 14:02
    No. 91

    헐 그럼 작가가 식근론의견인거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hyo7
    작성일
    24.06.25 18:16
    No. 92

    아이신기로오에서 빵 터졌습니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28 ji******..
    작성일
    24.06.25 18:24
    No. 93

    춘천아산// 아마 작가가 모르고 쓴거 같은데 '식민지를 만든 것은 경제적 이유가 아니었음'이게 식민지 근대화론 빌드업임.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를 수탈하지 않았음-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에 인프라도 건설하고 경제도 발전시켰음-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를 근대화 시켜주고 식민지 이전보다 더 발전시켰음 콤보가 니얼퍼거슨류의 제국주의 수정주의자들의 핵심임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9 요통남
    작성일
    24.06.25 18:32
    No. 94

    바닥 피해욧ㅋ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BIN123
    작성일
    24.06.25 22:21
    No. 95

    능력자 맞네 인정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사이소
    작성일
    24.06.26 19:46
    No. 96

    종속이론이 틀리다? 노..16-18세기 초까지 식민지에서 자원, 농산물을 힘에 의한 저가 매입 및 약탈하여 본국의 산업을 발전시킴. 경제성장으로 소득향상, 기술향상에 따른 산업혁명, 복지증진등에 따른 인구폭발. 그러나 식민지 경제는 그대로. 뜯어 낼 수 있는 한계 봉착. 속된 말로 나는 스마트폰 생산하는데 식민지는 아직도 양은냄비에 겨우 라디오정도 구입할 경제력 밖에 안됨. 그래서 종속이론이 한물감. 18세기 이후 제국주의에선 방법을 바꿔 식민지에 은행을 만듬. 인구폭발로 늘어난 빈민을 식민지로 보내 현지 은행에서 막대로 대출을 줌. 현지에 헐값에 대농장을 만들어 낮은 임금으로 플랜테이션을 해서 식민지 생산을 늘려 본국으로 보내고 이들은 본국 고가 생산품을 소비시켜줌. 결국 식민지는 경제지표는 대한히 좋아졌는데 원주민은 폭망. 그러다 2차대전후 식민지 독립. 본토는 그동안 식민지 은행 대출 안 갚음. 은행파산, 화폐가치 몰락, 경제 폭망. 내란 테크트리를 탐. 일본도 제국주의와 같음. 조선에 은행세워 일본 빈민에게 대출. 동양척식회사에서 왕실토지등 국유화 농지를 빈민에 매매. 조선인은 소작농, 일본 빈민은 대지주가 됨. 조선인 60% 소작농, 시중 경제활동의 80% 일본인 소유. 즉, 조선인은 자기 먹을 식량조달도 힘듬. 판매분은 거의 일본인 것임. 30년대 중반이후 중일전쟁 때문에 한반도에 여러 전범대기업이 들어 옴. 이때도 일본은행에서 대출. 일본은행은 조선은행에 서류상 빚을 지고 조선은행이 일본기업에 돈을 대출. 이 돈으로 월급주고 생산품은 본국으로 이송. 결국 해방시 일본정부 조선은행에 대한 부채가 340억앤정도. 달러로 80억달러 정도임. 참고로 포항제철 1기 건설비가 1억 2천만달러 조금 넘음.

    찬성: 2 | 반대: 1

  • 작성자
    Lv.68 무뇌드라군
    작성일
    24.06.26 20:13
    No. 97

    성을 빼앗는건 웃기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참좋은아침
    작성일
    24.06.27 16:49
    No.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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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봉 잡았다 2 +79 24.06.18 9,669 468 22쪽
40 봉 잡았다 +90 24.06.17 10,263 505 23쪽
39 탈상 +87 24.06.15 10,659 484 21쪽
38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56 24.06.14 10,563 489 22쪽
37 생일 축하합니다 +55 24.06.13 10,266 465 23쪽
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451 475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60 24.06.11 10,342 471 21쪽
34 돈과 전쟁 +54 24.06.10 11,142 500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2,142 513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2,244 544 25쪽
31 서울의 여름 +37 24.06.05 11,695 488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436 500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2,102 526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460 573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8 24.06.01 12,500 562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540 562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842 551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450 499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940 55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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