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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공모전참가작 새글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7 18:0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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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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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8
글자수 :
451,495

작성
24.06.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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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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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
글자
21쪽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DUMMY

세금 내는 건 누구나 다 싫어한다.


그래서 전근대건 현대건 '세금 줄이겠다' 고 선언하는 것보다 인기 끌어모으는 정치적 선언이 없다.


물론 대부분은 그 후 현실 정치인들끼리 '오, 그럼 그래서 빵꾸 나는 재정은 조상님이 내주시나요?' 하고 싸우게 된다.


하지만 경식의 조선은 왕이 좀 많이 특별하다. 왕이 재정을 일단 폭증 시킨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이 이 세금도 저 세금도 없앤다고 해도 신료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건진 몰라도 임금님이 다 해주실 거야.


왕이 공납을 없애고 뭔가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했을 때도 신료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다들 경매를 통해서 사는 걸로 바뀐 상태다.


그래서 서울은 공납을 없애도 의외로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말이다.




경상도 함양군은 양반과 상놈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태그 매치 공성전을 벌이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 썩을 원악향리(元惡鄕吏)놈들아! 빨리 문 열어!"


"이 무식한 난민(亂民) 놈들이 감히 읍사(* 邑司, 향리들의 최고 집무처.)를 범하려 들어! 네놈들이야 말로 썩 꺼지지 못할까!"


"망할, 도끼 가지고는 안되겠어! 안쪽에서 문에 뭘 대고 있어!"


"내가 통나무 하나 가져 오겠네! 기둥만 한 걸로 들이받으면 제 깟 문이 대수겠어!"


"저 미친 난민배들이 문을 부수려 하는 모양입니다!"


"석전 잘 하는 녀석들이 담 위로 올라가! 가져오려는 놈 머리통을 부숴버려!"


공성을 하는 쪽은 향회에 속한 유향품관의 노비들과 소농민들이고, 방어전을 하는 쪽은 향리들과 생원진사들.


이 향전도 다 왕의 새 정책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왕의 공납 전격 폐지에, 백성들은 왜인지 몰라도 갑자기 그 지긋지긋하던 공납을 갑자기 없앤다니 일단 좋아했다.


그런데 무작정 없애면 서울로 물자 공급이 줄어들게 뻔하다.


그래서 농민들에게, '자기 지역 특산물을 서울에 팔 수 있는 특권'을 주기로 했다.


까놓고 말하면 열심히 만들어서 서울에 열심히 팔라는 소리지만, 아무튼 특권이라고 하니까 뭔가 좋은 거 해주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그냥 공납으로 받던 물건 돈 주고 사겠다는 소리랑 똑같지만, 아무튼 세금도 없애고 특권도 준다니 농민들은 좋았다.

사실 전자 같이 직설적으로 표현했어도 뒤집어지게 좋아했을 일이긴 하다.


그리고 향리들은 '그럼 우리는?' 하는 표정이 됐다.


박경식이 시작부터 이세계 용자 검법으로 재정을 늘였다고는 하나 사실 지방 향리랑 아전들에게 까지 돈을 주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향리들은 이전처럼 알아서 각자도생으로 지방재정을 조달하고 자기들 힘으로 지방행정을 굴려야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해먹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공물을 서울로 가져갔을 때 서울 관아들에 바치지 않고 그냥 경강의 사주인들에게 팔아버리고 자기들이 그 돈을 먹는다던가.


왕이 사주인들을 때려잡은 후에도 사실 비슷했다. 그냥 경매장에 팔던가 근처 암시장에 팔았다는 것만 달랐다.

향리들은 그 뒤로도 반 년 넘게 공납을 악용해서 해처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납을 폐지한다고 한다. 심지어 무슨 특권인 것처럼 생색내며 농민들이 직접 공납하던 물건들을 서울에 팔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까놓고 말해서 향리들의 밥줄을 잘라서 농민들에게 준 것이다.


작년부터 무슨 이임(里任)이네 면임(面任)이네 하는 정체불명의 향임직을 새로 만든다며 백성들에게 뽑게 할 때는 몰랐다.


웬 평민들 수십 명 묶은 행정구역을 책임지고 다스리라고 해봤자 그냥 조별과제 조장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사대부들도 향리들도 그런 거 왜 함? 하고 차일피일 미뤘더니 그냥 평민들 중에서 억지로라도 뽑게 시켰다.(*1)

그때만 해도 상놈들에게 그런 감투 줘서 뭘 하려는 건지 이상하게만 여겼다.


그러더니 이번에 내려온 명이 저 공납 폐지였다. 그리고 이제 이임, 면임이 근처 화매소를 드나들며 물건을 책임지고 팔게 된다고 한다.

그 값은 백성들이 나눠가지게 되고.


제일 큰 밥줄을 갑자기 뺏긴 향리들은 분노했다.


그래서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공안(貢案)과 관인을 들고 튀었다. 정확히는 향리들의 사무처인 읍사에 틀어박혔다.


'어디 우리 없어도 실무가 돌아가는지 보자!'


공납 업무를 처리하던 건 자기들이었다는 걸 과시하는 시위였다.


이런 짓 하면 괘씸죄로도 법적으로도 뒤지는거 아니냐는 합리적인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전근대인들은 좀 빠꾸 없이 산다.


갑자기 향리들이 관인런을 치는 황당한 사태로 함양군의 행정이 마비되었다.


함양군의 수령도 '저 명을 듣지 않는 놈들을 매우 쳐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매우 치기' 실무를 담당하는 놈들이 튀었다. 향리들은 지방군 통솔도 맡는다.


눈 앞이 깜깜해진 수령은 동네의 벼슬살이 퇴직한 선배들(유향품관)에게 가서 절하고 도와주십사 했다.


늙고 재주도 없고 딱히 높은 자리도 가본 적 없는 이들이었지만 가암히 원악향리 놈들이 국법을 어지럽히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노비들 몇을 보내 수령을 도왔다.


그러자 유향품관이 평소부터 맘에 안 들었던 놈들이 튀어나왔다.


이 무렵 조선에서는 생원, 진사시에 합격해서 선비인 척 하지만 그냥 날백수 건달인 놈들이 사마소(司馬所)라는 걸 조직하고 다닌다.


미래 한국에서는 친목을 도모하고 수학하던 기관이라고 예쁘게 다듬어서 말해주지만 사실 진짜 하는 건 그냥 술 처먹고 맘에 안드는 상놈을 두들겨 패고 다니는 것이었다.(*2)

조선의 선비와 영국의 신사가 서로 통하는 면이 이런 점에 있다.


사마소 생원들은 자기들이 평소에 삥뜯고 다녔던 향리들의 편을 들었다.

말하는 명분은 "향리들도 백성입니다, 백성!" 이지만 사실 자기들을 향회에 안 껴주는 유향품관들이 꼬와서 그렇다.


그리고 깡패들도 셔틀들이 돈을 벌어야 삥을 충분히 뜯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향리들이 돈줄을 잃으면 자기들 먹을 것도 줄어든다.


생원과 진사들은 평소에 상놈들을 두들겨 패던 전투력을 발휘해 유향품관들의 노비를 격퇴했다. 상놈 앞에서만 강한 선비의 전투력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왕이 봤다면 그들의 무재를 아깝게 여겨 당장 차출해서 두만강 너머로 보냈을 것이다.


덕분에 1차 읍사 레이드전은 수령의 패배로 끝났다.


법 개정으로 제일 혜택을 본 일반 백성들은 그 모든 개꿀잼 실황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원래 남의 싸움 구경이 이 시대 최고의 컨텐츠다.


생원들 하나 못 잡은 허접 수령이 백성들에게 괜한 성질을 부렸다.


"이 어리석은 백성들아! 일을 돕지 않고 무엇하느냐!"


왜 안 돕냐고 해봤자 관에서 자기들에게 뭘 해줬다고 이렇게 큰 소리인가.


법이 바뀌기 전에 전세를 내러 쌀을 날랐던 것도 자기들이요, 공물을 바치려고 대나무를 베거나 벌을 키우던 것도 자기들이다.


바뀐 법에서도, 전세를 낼 지폐를 사러 화매소로 쌀을 나른 것도 자기들이고, 이젠 공물이 없다 하나 돈을 벌러 화매소로 가서 파는 것도 자기들일 것이다.


자기들이 다 해왔고 앞으로도 할 일에 대한 값을 이제야 자기들이 받게 된 것인데 왜 관이 난리란 말인가?


그리고 솔직히 저 사마소 양반들이 무서웠다. 선비라는 새끼들이 왜 저렇게 쌈박질을 잘하는가. 저럴 거면 차라리 무과를 보지.

게다가 끼어들어봤자 양반 때렸다고 죄 줄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 무지한 놈들아! 너희들이 화매소에 뭘 팔려면 관인이 찍힌 면임, 이임 임명장이 있어야 한단 말이다! 죄를 묻지 않을테니 저 놈들을 어떻게든 잡아라!"


밍기적 거리는 백성들에게 수령이 저렇게 소리치자 백성들은 용기로 충만해졌다.


공납을 바치기 위해 대나무를 베던 솜씨를 발휘해서 죽창을 깎았다.


생각해보니 놈들에게 한 번쯤 이런 걸 찔러보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벌어진 것이 지금의 2차 공성전이다.


"통나무 가져왔...억!"


사마소 생원들이 원딜의 민족 조선인의 기상을 발휘해 석전 때 갈고 닦은 필살기를 선보였다.

무릿매도 쓰고 망팔매도 쓰는 게 그냥 사람 잡으려는 기세였다. 원래 석전이 그렇긴 하다.


"말똥아!"


"저 씨발 새끼들이 말똥이를 죽였어!"


사실 죽진 않았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나는 채로 쓰러졌으니 죽은 것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지만.


조선인들이 전부 이랬으면 여진족이랑 왜구들도 못 쳐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치열한 마을 싸움은 읍사가 함락되는 것으로 끝났다.


백성들은 평소에 사마소 놈들에게 얻어터진만큼 갚아줬다. 민주주의의 횃불 비슷한 것이 좀 희한한 형태로 밝게 타올랐다.


그러나 이 싸움이 세상에 알려지는 일은 없었다.


관인을 향리들에게 도둑 맞은 걸 들켰다간 체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 수령은 관인런에 동조한 향리들을 패죽이는 걸로 자기 선에서 마무리했다.


행정 실무는 요새 백성들 중에 학당 다니며 서원 노릇 정도는 할 수 있게 된 인원들이 있어서 그들로 땜빵 하기로 했다.

어차피 시골이라 일이 엄청 많지도 않다. 왕이 공납이랑 같이 봉족제도 날려버려서 할 일이 더 줄었다.




사실 이런 사건이 전국에서 함양 하나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라서, 비슷한 사례들이 왕 귀에 좀 들어갔다.


함양처럼 마을 사람들끼리 데스매치를 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몇 군데 있기는 했는데, 대부분 기존 향족 세력이 강력한 삼남 지방에서 발생했다.


향족들이 이서배들이랑 같이 지방행정의 중간 실무를 맡고 있었는데, 그 떡고물을 백성이랑 나누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 시절 조선에서 공납은 이미 미래인들의 상상 이상의 이권이 엮여 있는 일이었다.


물론 삼남이라고 다들 저러진 않았고, 대부분은 면임이나 이임에 농민이 아니라 사족이나 향리가 임명되거나, 투표에 뇌물이 좀 오가거나, 면임 자리 투표에 100명이 참가 했는데 표를 다 합치니 140표가 나왔다던가 같은 사소한 문제만 나왔다.

조선은 벌써 21세기 러시아와 대등한 수준의 민주국가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면임과 이임들이 모이는 회는 민회(民會)였는데 민(民)이 없는 희한한 곳도 몇몇 있었다.


반대로 다들 무식해서 사족 같은 것 없는 양계나 강원도는 원만히 합의 됐다.

아니, 합의고 뭐고 갈등도 없었다. 그냥 다들 공납으로 갈취 당했던 모피를 이젠 서울에 왕창 비싸게 팔 수 있겠다며 벌써 부자가 되는 꿈에 부풀었다.


향리들과 백성들의 관계가 원만했던 해남 같은 지역도 별 일 없이 공납 수익을 공개해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끝났다.


아무튼, 이제 백성들은 더 이상 공납을 두려워해서 생산되던 특산물을 자기 고을에서 없애지 않을 것이다. 만들어서 팔면 이제 그들의 수익이다.


그리고 지금은 얼렁뚱땅 농민들 뽑아서 장사하기만 시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면마다 권농관을 두어서 농업 생산력을 향상 시킬 계획이다.


아마 부목마다 설치한 4년제 향교에서 농학 전공 출신들이 나와야 가능하게 되겠지만.(*3)


이렇게 경식이 목표로 했던 것 중 '농촌이랑 도시가 서로 물건을 자주 사고 팔게 하기' 와 '상품작물 재배 활성화' 가 그 첫 걸음을 내딛었다.


상품작물 재배 활성화만 된 것이 아니다. 공납으로 얻던 물건들에는 경공업 제품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경식이 처음에 생각하던 농계 내지 농민회라는 이름이 취소되고 민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농민만 모인 곳이 아니니까.




그리고 경식의 목표 중 나머지 한 가지는 금융 기관이었다.


이쪽도 민회 조직을 그대로 활용했다. 민회에서 돈을 보관해주고, 그걸 회원에게 빌려주고, 돈을 맡긴 사람들에게는 이자를 붙여서 돌려준다.


다만 민회 조직이 군현 단위다보니, 금융기관으로써 굴러가려면 더 큰 규모로 조직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금융 기능 만큼은 부목급 군현을 중심으로 여러 군현의 민회를 모아서 운영하게 했다.


권력을 남용해서 민회의 돈을 떼먹으려는 놈들이 있을게 뻔해서, 민회의 예금을 보호해주는 법도 몇 개 만들었고, 호조에 감시 기구도 만들었다.


통장이랑 어음, 예금 증서 서식도 만들어서 인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보호막도 넣어줬다. 민회에 평준도감의 돈을 예금해준 것이다.

앞으로는 민간에 돈을 풀 때는 화매소에서 직접 백성에게 빌려주지 않고, 민회에 평준도감이 예금하는 형식으로 돈을 푼다.(*4)


이것저것 할만큼 준비 한 거 같은데, 솔직히 경식도 불안했다. 은행이 생기면 또 대체 무슨 창의적인 방법으로 조선인들이 해처먹으려 할까.


은행 설립기 쯤의 금융 관련 범죄는 권력자들(주로 프랑스 왕)이 돈 빼먹은 후 은행 주인들을 범죄자로 몰아서 죽이는 것 정도 밖에 생각이 안 났다.


하지만 지금 조선에서는 이미 보호법도 만들었고, 한 지역 백성들 대부분의 이권이 걸린 구조인데다가 평준도감의 돈도 들어 있으니, 왕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재위 1년 반 동안 조선인들이 계속 희한하게 부정부패를 일으키는 걸 봤다보니 경식은 막연하게 불안했다.


물론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다. 미래의 자신을 믿으며 여기서 대충 던지고 시행하기로 했다.




경식의 구조개혁에 피해를 보는건 향리들만은 아니었다.


갑자기 가격을 집계 해야 할 품목이 300개 가까이로 늘어난 화매소 관헌들이야 그렇다쳐도, 화매소 앞에 장시를 만들어뒀던 상인들이 문제다.


경식은 '화매소를 중심으로 서서히 시장경제를 확장 시키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고, 그 발전은 짧아도 몇 년 정도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몇 년이 걸리지도 않았다.


화매소는 처음부터 이 시대에 제일 중요한 상품인 곡물이 집하되고 돈이 공급되는 물류 중심지였다.


윤효정이 작년 중순에 아산 공진창 화매소에서 보았듯, 깡촌인 아산조차도 화매소를 중심으로 이미 사적인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작년 추수 이후로는 전국 화매소가 설치된 군현들에는 이미 장시가 자리 잡았다.


조선의 사회경제 발전 수준 상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원래 역사의 조선은 성종 시기에 장시가 처음 형성되고 연산군 시기와 중종 시기를 거치며 장시가 전국에 형성된다.

그것이 경식의 개입으로 훨씬 가속된 것 뿐이다.


하여간 그 장시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은, 기존의 향리들이 날아가고 백성들이 화매소로 토산물을 팔러 온다니 상권침해를 당하는 것이자, 기회로 보였다.




민주주의는 몰라도 토산물 판매권은 확실히 쟁취한 함양 군민들은 대나무, 감, 꿀, 밀랍, 석류, 잣, 석이버섯 등 동네 토산물은 다 배에 싣고 남강을 타 진주로 내려갔다.


이제 이걸 진주 화매소에 팔기만 하면, 방으로 날아온 시세표 값대로만 받으면 못해도 몇천 전은 벌 것이다.


학당에서 산술 좀 배웠다는 이들이 배 갑판에 물을 묻혀가며 이거 팔면 값이 얼마네, 얼마로 나눠야하네 하고 즐겁게 싸우고 있었다.


"판 돈 가져가면 마누라가 오죽 좋아하겠구만. 아니, 돈보다 선물이 좋겠어. 비단은 좀 비싸고 무명 치마라도 사갈까?"


"이놈은 평소에 마누라한테 잡혀 살더니 뭐 바칠 생각만 하는구만.

그보다는 진주부 민회에 돈을 맡기는게 낫지. 1년만 돈을 넣으면 2할을 더 얹어준다니 얼마나 이득인가."


그때 그들의 배로, 작은 배는 아니지만 아주 좋다기엔 좀 낡은 배가 가까이 왔다.


"거기 네놈들! 네놈들은 누구이길래 남강을 우리 허락도 없이 돌아다니느냐!"


잘 보니 진주 남강을 드나드는 조운군이었다.


"우린 함양의 백성으로써 진주 화매소에 토산물을 팔러 가고 있소!"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것이냐? 네놈들이 수적이 아닌지 살펴야겠다! 가까이 와라!"


함양군민들은 이게 뭔 개소리인가 잠깐 뇌정지가 왔다가 상황파악을 했다.


생각해보니 공물이나 세곡을 바치러 갈 때도 이런 일이 흔했다.


조선의 병사들은 지금까지 대부분 자력갱생으로 돈을 벌어서 군복무에 썼다.

지금은 급료가 나오지만 딱 살 수만 있는 돈 수준이라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졸 같은 수군들이 하던 돈벌이는 소금굽기, 물고기 잡기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자주 하던 건 그냥 백성들 토색질하는 것이었다.


특히 조졸들은 왕이 전세 제도를 날리면서 조운제도도 구조조정해버려서 백수가 된 인원이 많았다.


물론 서러운 역에서 해방되었다며 좋아하고 그냥 농사 지으러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백성들 토색질하는게 체질에 맞던 쓰레기들은 다시 배를 탔다.


그리고 지금처럼 상인들에게 용돈을 좀 받고, 상인들의 나와바리에 물건을 팔려하는 일반 백성들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좀 변한게 있다면 이들이 법적으로는 군무에서 해방된 민간인이라는 점 정도였다.


함양군민들은 이 조졸들이 상인들에게 돈 받고 이런단 것이나, 이젠 사실 병사도 아니라는 것까진 몰랐어도 이 새끼들이 평소처럼 토색질을 시도한다는 것은 알았다.


옛날이었다면 그들에게 선물 좀 쥐여주고 굽신거리며 달래서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이전의 상놈들이 아니다. 당당하게 향임직과 그 임명장도 있는 향리 아전이다.


이 배에 탄 건 다들 마을에서도 '이임 나리' '면임 나리' 하며 농담스럽게나마 나리 소리 듣는 사람들이다. 글도 마을 사람들 이름 정도는 쓴다.


현대로 치면 이장, 면장 수준인데 자신감을 얻은 모양새가 퍽 우습겠지만 원래 조선에서는 그런 말단 향리직도 상놈들에 비해서는 꽤 높은 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양반도 패봤다.


"그래, 가까이 배를 대라! 우리가 옮겨 탈 수 있게...아니, 이제 멈춰라! 너무 가깝다! 속도를 늦춰!"


함양군민들은 (전직)조졸들의 배에 자신들의 배를 댔다. 부드럽지는 않고 좀 드럽게.


갑작스런 충각 공격에 당한 조졸들이 균형을 잃고 배에서 떨어지거나 넘어졌다.


"이, 이이, 난민 놈들이 감히 관군을 쳐!"


함양군민들은 자기들 배에 있던 대나무를 꺼내 몽둥이로 삼고, 썩어서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석류를 무릿매에 끼워 던졌다.


"어딜 감히 향임 아전 나리들에게 난민이라고 하느냐!"


"너희야 말로 백성들 토색질을 해대는 난민, 궐군(*闕軍, 탈영병.)이 따로 없으니 우리가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마침 근처 강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성원(사실 누가 싸우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응원했다) 속에서 함양군민들은 또 다시 1승을 올렸다.




이 모든 일은 왕이 농협 비슷한거 세운다고 정책을 짰더니 벌어진 일이다.


---


*0 : 오늘 제목 역시 농협의 노래의 한 소절입니다.


*1 : 이전 15화 <호조야 지금 너만 힘든줄 아냐 다들 힘들어>에서 이조에게 명해서 전국의 면리제를 정비하게 시켜 의회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언급되었습니다. 결국 시간을 못 맞춰서 미뤄졌다는 설정이었죠. 원래 역사에서 조선의 면리제는 조선 전기부터 꾸준히 시도했으나 조선 후기에야 완비되는데, 작 중 묘사처럼 이임과 면임 같은 최하위 향임을 맡으려는 향족이나 이족이 없었던 것이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서는 급하게 면리제를 조직하기 위해 억지로 백성들 중에서 뽑아 채웠는데, 이게 재활용되어서 농협(?)을 조직하는데 쓰이게 되었습니다.


*2 : 함양군 사마소에 대한 오늘 에피소드는 연산군일기 4년 8월의 윤필상과 유자광의 상소를 모티브로 한 고증입니다. 유자광이 자기 본관인 함양에서 생원들이 사마소라는 것을 조직하고 유향소를 멸시하며, 술 마시고서는 못된 논의를 하거나 백성과 서리를 패고 다니고, 서리들은 유향소가 아닌 사마소를 더 따르는 지경이니 혁파해야한다고 상언합니다.


*3 : 이전 15화 <호조야 지금 너만 힘든줄 아냐 다들 힘들어> 에서 언급되었지요. 향교를 혁파한다고 선언하여, 군현 수준의 소읍들은 학당으로 바꿔 소학과 산술 수준까지 글을 가르키고, 부목 수준의 대읍들의 향교에서는 4년 간 경학, 농학, 악학, 산학, 제술, 율학, 무학, 농학을 가르칩니다. 2년 동안 먼저 싹수를 보고 뒤 2년은 전공을 선택 시키는 구조입니다.


*4 : 이것은 현대 중앙은행이 통화를 시중에 공급할 때 쓰는 방법을 중 하나인, 공개시장조작 정책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개조하여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평준도감이, 민간은행에 해당하는 민회에 예금을 하면 민회는 회원들에게 돈을 대출해줌으로써 시중에 유통되는 돈이 늘어나는 구조가 되겠습니다. 이것은 조선의 특성 상 통화정책만이 아닌, 민회의 돈을 수령 등 권력자들로부터 보호하며 민회의 경영 구조를 감시하고 국가가 개입할 수 있게 하는 부가적인 기능도 하게 됩니다.


작가의말

명원(命元)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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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064 465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59 24.06.11 9,983 462 21쪽
34 돈과 전쟁 +54 24.06.10 10,772 494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1,761 507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1,845 536 25쪽
31 서울의 여름 +36 24.06.05 11,339 480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089 494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1,732 518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078 565 25쪽
»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6 24.06.01 12,118 556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175 554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473 543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094 490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563 541 24쪽
22 백성 2 +40 24.05.27 12,594 534 22쪽
21 백성 1 +42 24.05.26 13,171 54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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