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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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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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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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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대초피시대

DUMMY

이세좌의 보고는 이런 내용이었다.


'저기, 이이후(伊伊厚)야, 약속한대로 봄이 되었는데 이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어떠니?'

'아 싯팔! 저기 애들이랑 원수라서 못 돌아간다고 했잖아. 군소리 말고 밥이나 줘.'

'귀순할 생각은 있는거야? 귀순할거면 차라리 남쪽 가서 살지 왜 여기서 다른 야인들이랑 싸우고...'

'아이, 싯팔! 약탈 맛 좀 볼래?'

'좆 같은 야인 새끼들...'


여기서 저 '좆 같은 야인 새끼들...' 부분이 바로 지금이다.


처음 경식이 조선에 오고서 한 생각 중 하나가 '딱히 외교적으로 사건도 없는 시대인데 뭐함?' 이었다.


그건 일단 경식이 동아시아사를 잘 모르고, 조선이 중원이랑은 좀 떨어진 곳이어서 실제로 영향이 적기도 해서 그렇게 보인 것이다.


성종~연산군 시기도 나름대로 동아시아는 격동의 시대였다. 조선만 평화로웠다.


불과 수십 년 전, 몽골은 서부의 오이라트(와랄)과 동부의 몽골(달단)으로 분열되어 있는 상태였다.


정통인 동부의 몽골은 징기스칸의 후손인 황금 씨족이 다스리나, 오이라트가 강성해져 몽골 본국을 압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몽골에 만두카이 카툰이라는 여걸과 그녀가 선택한 남편 다얀 칸이 등장하며 달라졌다.


몽골은 여느 때처럼 분열하여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때 만두카이는 내전으로 남편을 잃었고, 다얀 칸은 내전으로 아비를 잃은 고아였다.


만두카이는 23살이나 어린 다얀 칸을 둘째 남편으로 고른다. 쇼타 취향이어서 그런건 아니고, 그가 거의 유일한 황금씨족의 혈통이었다는 것 하나만을 보고 영끌하여 배팅한 것이다.


만두카이는 기도 메타 투자자들과 달리 자기가 롱 친 주식을 떡상 시키기 위해 직접 나서서 행동했다. 만두카이는 남편이 장성하기도 전에 친정하여 오이라트를 토벌하고 몽골을 통일했다.


이 정도면 다얀 칸은 2022년 웹소설 트렌드랑 정반대인 '결혼 후 몽골제국 대칸 대박' 같지만, 다얀 칸도 아내에게 지지 않았다.


다얀 칸 아래의 몽골은 동쪽의 코르친부와 우량카이(올량합) 삼위까지 복속 시켜 그 세력이 현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서부 일대까지 이르렀다.


그 확장의 영향으로...그러니까 저 오랑캐 놈들이 여진족을 약탈해대서.

두만강 너머 저 멀리 살던 여진족들이 남하하여 조선의 동북부 국경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명은 이미 조선만큼이나 군사력이 쇠락했다. 건국 시기 주원장이 만든 군사제도인 위소제(衛所制)는 조선의 병농일치적 제도와 비슷했다. 문제점도 비슷했다.


게다가 국경의 정세도 명나라 편이 아니었다. 서남쪽의 귀주성과 운남성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느라 다얀 칸이 서북부 국경을 약탈하는데도 이렇달만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동북의 여진에 대해서는 대응은 커녕 올량합 삼위의 확장에 점점 요동이 밀려나는 모양새였다.


다만 조선과 달리 명은 돈이 존나 많아서 돈으로 병사들을 구할 수 있어서, 남북의 국경이 동시에 위협 받는데도 심각한 위협으로 발전하진 않은 것이다.


지금 황제 명 효종, 홍치제는 후대에는 유교 사대부들의 관점에서, 유교적 행동 규범에 맞게 행동했느냐는 잣대로 평가 받아 명의 마지막 명군이라며 '홍치중흥'이라는 고평가까지 받는다.


하지만 유교의 관점을 벗어나 재평가하는 관점에서는 홍치제는 심화되는 경제, 사회, 정치적 모순을 극복한 것은 없고 새로운 성과를 만들지 못한 군주로 본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박경식은 그런 국제 정세 잘 모른다.

지금 명 황제가 나중에 무슨 묘호를 받는지도 모른다. 다얀 칸은 이름만 들어봤고, 만두카이는 누군지도 모른다.


다행히 경식이 그런걸 몰라도 큰 일이 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조선인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성종 시절 여진족인 간혹능이 와서 '야 지금 달단이 중국 공격하고 있음! 너희도 휘말릴지도 모르니까 조심해!' 하고 알린 적이 있다.


그때 조선의 결론은 '에엥? 저 멀리 중국이랑 달단이랑 싸우는게 우리랑 뭔 상관이야? 우리한테서 뭐 받거나 정탐하려고 이러는거 아냐?' 였다.


조선의 국제정세 정보력이 이와 같았다.




경식은 이세좌의 보고를 듣고 생각했다.


'그냥 줘패서 통제하면 되는거 아닌가?'


이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을 끝내고 '여진 학살자'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경식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이 시베리아의 각종 수렵 민족들을 흡수하며 쑥쑥 개척한 방식은 이렇다.


일단 강력한 국가 세력의 중심부를 타격해서 멸망 시킨다.

그 다음 그 자리에는 요새를 세워서 알박기 한다.

그리고 중심을 잃고 혼란해진 부족들을 러시아가 서로를 중재하며, 분할하고, 통치한다.(Divide and rule)

그 중 말 잘 듣는 놈들에게는 귀족 작위도 주고 해서 국가 지배 체제로 편입 시킨다.

말 안 들으면 죽인다.


사실 이건 조선이 여진족 통제하던 것과 그닥 방법론이 다르지 않다.


조선은 건국 시절부터 나름대로 여진족이랑 인연이 있는 나라다.


이후로도 여진족들이 살던 땅을 정복하기도 했고, 두만강 너머에서 오는 여진을 흡수하기도 했다.


여진족과 지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나름 쌓여 있다.


일단 줘패고, 말을 잘 듣기 시작하면 뭔가 '뽀찌' 를 줘서 복속 시킨다.

토관직을 준다던가, 교역을 해서 사치품을 준다던가.


직접 지배할 힘이 없어서 못하는거지, 두만강 건너 여진족들도 다 자기들 번호(藩胡)라고 부르며 대놓고 조선의 나와바리로 보고 있었다. 명나라에게도 이 점은 한창 전부터 인정 받았다.


그런데 이 방법은 일단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이 돈이다.


육진은 세종 때부터 개척한 땅이지만 지금도 그다지 개발되지 못한 개깡촌이다.

육진에 기반한 군사력으로는 두만강 유역의 번호 여진족도 제대로 통제 못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뿌릴 사치품 같은게 있을리가 있나. 그건 명나라가 더 많다. 그래서 명에 붙은 여진들이 꽤 있다.


경식은 여진족들을 줘패서 통제하기에는 조선의 군사력이 IMF 직전 대우그룹 장부와 대등한 수준임을 다시 상기해야 했다.


돈은...있다. 여진족에게 아무 쓸모가 없을, 조선인들에게만 가치 있는 돈이. 교역을 하려면 여진인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을 개발해야한다.


그리고 지금은 돈 많다고 바로 군사력으로 바뀌지는 않는 시대다.

돈이 곧 군사력으로 바뀌는게 가능해지는 건 총의 시대인데, 아직은 잘해야 핸드캐논 수준인 총통(銃筒)이랑 대포가 전부다.


'총부터 개발해야하나? 아니, 어차피 있는 병력 대부분이 광선 안 나오는 광선검 같은 거나 들고 있을텐데 군제 개혁부터?'


충심이란 왕의 근심을 먼저 알아채는 것. 왕이 할말하않 상태가 되자 훈련원 습독관 동청례가 먼저 나서서 상소했다.


"전하의 경장으로 국용이 넉넉하고 금군 2만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신에게 금군 1만만 주신다면 조련하여..."


아니, 이제보니 딱히 충심은 아니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왕은 상소를 대충 읽고 접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자꾸 상소하는 이 습독관 동청례는 뭘 하는 자인가?

국경을 지키는 일에 관심이 많은건 무관으로서 소임이나 우리가 금군 2만이 어딨다고 자꾸 달래?"


임금 말투가 이상해지는걸 보니 자꾸 징징대는 동청례에 빡친게 분명하다.


병조판서 성준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는 본래 아비가 야인인 자로 향화한 인물인데, 무재가 있어 무과에 입격하여 겸사복으로 지내다 회령에 부임하여 변방을 지키다가 훈련원 습독관으로 들어왔습니다."


"흠? 그럼 야인들 일은 잘 알겠군."


"과연 그렇습니다. 이전에도 변방의 일을 아뢰겠다면서 하문해달라 청한 바가 있지요."


생각해보니 이전에도 금군 2만 타령을 해서 똑같이 던지듯 처리한 상소 때 그런 얘기가 있던거 같았다.


"크흠. 무비를 갖추고자 하는 마음이 가상하니 병조와 승정원은 동청례에게 시국 현안을 추려 묻고 답을 들으시오."


그래서 질문을 하게 시켰더니 동청례는 무기도 없고 병사도 없이 싸웠던 것이 그리도 서러웠나보다.


"양계의 백성은 그 무재가 효용하기가 야인들과 다를바 없이 용맹하나, 지는 역이 무겁고 병기가 변변치 않아 방어에 전력하지 못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제 나라의 국용이 넉넉하니, 군기시의 창칼와 활과 살을 북방에 보내 방어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골라 뽑으신 정병들 역시, 지금은 비록 상민과 다를바 없으나 조련하여 병사로 만들어 보내면 국경이 튼튼해져 저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흠...대충 알겠네. 병조도 그의 말이 옳다고 여기시오?"


당연히 국방 담당인데 '우리 예산 더 주세요' 라는 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과연 그 대답은 '헤헤, 더 주신다면야 좋죠' 였다.


경식은 신하들이 파업하기 직전 자신이 내놨던 군제개혁 떡밥을 떠올렸다.


사실 지금 조선의 군사 재정은 개혁 전과 후의 제도가 뒤섞인 실패한 키메라 같은 상태다.


원래 조선에서 병사들은 병농일치제에 따른 입번이라는 교대제로 운영된다.


병사로 복무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농민을 의무복무 병사로 지정하고, 그들이 교대로 복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면 병사로 복무하는 동안 농사를 못 지으니 손해 아닌가. 그에 대한 보상책으로 봉족이라는걸 준다.


봉족은 마찬가지로 병사로 지정된 백성이지만, 실제 복무는 하지 않는다. 대신 실제로 병사로 복무하는 '정병'에게 포를 줘서 생계를 보태게 하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 이것을 설계한 사람들에게는 그럴싸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세조 시절 쯤 부터 문제가 생긴다. 인구가 폭증하면서 농민들의 토지가 점점 쪼개지고 줄어들어 경제력을 갖춘 농민이 줄어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세조는 또 군사력을 증가시키는 바람에, 경제력이 부족해진 병사들은 무장이 부실해지고 질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이 상황은 기병의 약화도 가져왔다. 땅이 없는 빈농들이 늘어나자 기병용 말을 기르는 목장들의 땅을 나눠줘서 농사 짓게 한 것이다.


흔히 인구가 곧 국력이라고 하지만, 기반 산업이 오직 농업인데 더 이상 농지를 확장할 수도 없는 상태까지 인구가 늘어버리니 되려 1인당 소득의 하락만 발생한 것이다.


그 이후 성종 시절에는 '군사 너무 많아서 이 꼴 같은데 좀 줄이죠' 라는 논의로 기울어져서 줄이긴 했는데 딱히 질적으로 혁신되진 않았다.


대신 '대립'이 성행해서, 다른 정병들 몫까지 복무하고 포를 더 몰아 받는 일이 성행하는 중이다.


여기서 경식의 개혁으로, 모든 복무 중인 병사들에게도 쥐꼬리만한 월급이나마 나오고 있다.


또 지폐가 포를 대체하면서 대립의 값도 포 대신 지폐로 주는 일이 흔하고.


그래서, 성문 지키던 병사 김막동을 예로 들면 월급 15전에 대립가 20전을 또 다른 정병들에게 받아서 월 35전으로 살고 있다.


이 구제도와 신제도가 기묘하게 섞인걸 제대로 조정하고 병사 급여를 현실화 해야 군제 개혁을 하던가 할 것이다.


일단 봉족제와 정보병(일반 보병)은 전면해체한다.


보인들이 정병에게 주는 월 1필의 포는 세금제도 측면에서 보면 인두세라고 할 수 있다.


납세자의 소득 같은거 고려 안 하고 그냥 1명 당 얼마 씩으로 정해진 세금말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인두세를 후생 손실이 최소화 되는 세금, 그러니까 아무도 별로 손해를 안 보는 세금이라고 하는데, 이론만 그렇다.


인두세를 매긴다고 자살할 수는 없으니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인데, 역사적으로 보면 실제론 자살하고는 했다.


그리고 일반병인 정병은 기병 빼면 지금은 그냥 다 노동자다. 기정병이 보병이 된 상태고.


그러니까 없애고 그냥 지금 예산 1600만 전 내에서 어떻게든 짜내본다.


경식은 저번 보고로 들은 장구류 가격이나 근래 대립가를 바탕으로 병사 유지 비용이 얼마나 들지 대략 계산해봤다.


'어디보자...막동이 수준으로 종이갑옷이랑 투구, 창 갖춘 경보병이라도 하려면 월 50전, 1년에 600전 정도.

기병은 말 때문에 2배는 들테니 1200전으로 잡고...

보병을 1만, 기병을 3천으로 잡는다면...'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조선은 지금 1만 좀 넘는 상비병도 유지하기 아슬아슬하구나.


그렇다면 역시 어쩔 수 없다.


병사들이 돈 벌어와야지.




"아버지, 이번에 나온 방은 봤습니까?"


학당에서 돌아온 대식이가 아비 대평에게 물었다.


"무슨 방을 말하는거냐? 방이 한 둘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학당 옆에도 붙고 용산방에도 붙고 엄청 여기저기 붙은 건데, 나라가 고본(*股本, 밑천.)을 모은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람. 나라가 장사라도 한다는 말인가. 웬 고본을 모은다는건지.


"같은 학당 다니는 애들이 그러는데요. 저희 집에서는 벌써 고본을 내서 무슨 첩도 받았다고."


"말하는 걸 보니 이놈이 뭔지도 모르면서 남들 한다니까 같이 하려는 것이구만. 허튼 소리 말고 공부나 하여라."


"아니오, 제가 언문으로 된 방이나마 읽었는데, 그 첩이라는게 있으면 나라가 초피 장사를 해서 버는 돈을 나눠 준답니다."


그 때야 대식이의 어머니인 이조이가 이야기를 듣고 끼어든다.


"초피 장사? 나라에서 초피 장사를 한다고?"


아내가 끼어들자 괜히 더 큰소리를 치며 대평이가 비웃듯 말했다.


"허! 이젠 초피 장사를 나라가 해? 인제 경강에 초피 장사하는 장사꾼들은 다 망하겠네 그려."


아비는 비록 비웃으나, 어머니가 관심을 보이니 대식이가 한마디를 더 한다.


"학당 다니는 애들 집이 다들 경강삼방이나 경저에서 장사하는 집 아이들인데, 걔들 집안이 장삿속이 있으니까 그 첩이라는 것도 받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그 고본을 내고 무슨 첩을 받자는 것이냐?"


"한번 해도 좋지 않습니까? 1전만 내면 그 첩을 살 수 있다는데."


"어이구. 그거 값이 나쁘지 않네. 설마 나라에서 초피 장사를 하는데 본전도 못 건지려고."


주식회사라는 제도화된 개념이 없어서 그렇지, 어느 나라에나 여러 장사꾼이 모여서 각자 낸 밑천만큼 장사하고 남은 돈을 나눠 가지는 정도의 개념은 있었다.


조선 역시 고본이라는 한자어도 있고, 성종~중종 시대 쯤이면 고본을 갹출해서 대명 무역을 한 상인들의 기록이 나타난다.


이 대평이 네 가족이 장사에 직접 손을 대는 건 아니어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있는 한강변의 소시민이다.

그래서 나라가 고본을 모은다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을 했다.


이조이가 아들에게 맞장구 치며 솔깃하자 대평이는 괜히 더 목소리를 키운다.


"야 이놈아! 1전이 어디 쉬운 값인줄 알아! 우리 같은 집에는 1전도 쉽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1천전 짜리 납전첩은 또 두 장이나 있지 않습니까."


아비에게 그 납전첩이 생긴 경위 같은건 모르는 대식이는 순진하게 물었다.


"이놈아! 그건 올해 추석이 지나서 관아에 팔아야 제 값을 받는거야!"


"대식이 아범, 내가 그 때도 한 번 장사라도 나가보라고 하지 않았소. 한 번 알아나 보시오. 혹시 모르오."


"에잇, 여편네가 뭘 안다고, 참!"


아내가 잔소리하니 대평이는 심통이 나서 훌쩍 나가버렸다.


그러면서 그 나라가 모은다는 고본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보려고 방을 살피러 갔다.




신하들도 방의 내용을 보면서 참 긴가민가 했다.


이런 근본 없는 법제는 정말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이번 왕이 하는 건 죄다 그랬지만.


'내가 옛 법과 여항의 풍속을 살피었는데...' 라며 이것저것 조합해서 만들었다고 우기니 되려 거짓말 같았다.

차라리 왕이 '내가 사실 천재라서 뚝딱 만들어냈소' 하고 당당하게 말했으면 '아! 주상전하가 하신 거면 킹정이지' 했을 것이다.


일단, 병사들이 직접 돈 벌어서 군생활에 보태는 것은 조선의 오래된 풍속이다.


특히 수군이 심했다. 조선군이 다들 그렇지만 수군 역시 급여도 따로 없었던 주제에, 육군과 달리 배나 무기도 자비로 조달해야 했으니 군생활하는데 돈이 엄청 들었다.


그래서 비용을 자력조달하려고 고기잡이를 해서 팔거나 소금을 굽거나 해서 돈을 버는 희한한 행위가 군생활의 태반이었다. 그냥 물 위나 근처에서 하는 일은 전부 다 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임진왜란 때도 그랬다. 이런 군대로 전공을 그렇게 세우고 중앙에 남는 돈도 보낸 이순신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그래서, 늘리는 군대 비용을 초피 장사를 시켜서 충당하겠다는 왕의 제안은 의외로 신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이 늘리는 군대를 두만강 너머에 성을 지어서 배치하겠다는 주장도 그럴 수 있다. 솔직히 조선인들도 돈이랑 군대가 없어서 못한거지 '만따먹' 해보고 싶었다.


그 초기 비용을 백성들에게 첩을 발급해서 조달하겠다는 것도 알겠다. 작년 말에 그걸로 창고도 왕창 지었으니까.


그런데 이 고본첩이라는건 뭔가. 장사꾼들이 밑천 모아 장사하듯, 병사들이 초피 팔아서 남는 돈을 고본첩 가진 백성들에게 뿌리겠다고?


신료들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근래도 초피로 사치하는 풍조로 나라가 어지러운데, 군대에게 초피를 무역하게 하는 것과 그 소출을 백성에게 주는 것은 그것을 부추길 것이오."


"전하께서 하교하신 책은 매번 국용을 풍족하게 해왔는데 이제와서 낯선 제도라고 배척할 필요가 무엇 있단 말이오?"


잘 보면 알겠지만 둘 다 온 백성이 초피 입고 다니는 신분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후자도 아무튼 돈이랑 군대 있으면 금상의 해괴한 제도들도 좋지 않느냐는 것이지 신분질서를 부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의 신료들도, 금상은 전자의 의견은 코딱지만큼도 신경쓰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지라, 어느 쪽 의견의 신료건 왕 앞에선 도저히 이런 의논을 꺼내지 못했다.


저저저, 왕이 지금 하는거 보라.


신료들 모아놓고 자꾸 두만강변 지도를 펼치면서 '새 성은 어디에 쌓아야 배가 드나들기 쉽겠소?' 라던가, '영동과 영남의 고을들 중 어디서 물자를 옮기는 것이 가하겠소?' 하며 벌써 계획을 풀로 짜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관들도 이미 '정말 위대하십니다 전하!' 하고 설렘에 가득차서 열광적으로 계획에 동참하고 있었다.


말리다간 분위기 다 깬다.


그리고 솔직히, 문관들도 돈 생기니까 해보고 싶었다. '만따먹'.


금상이 군재를 보인 적은 없지만, 금상이라면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조선에 온 뒤로 사용하는 미래용사 치트키가 죄다 경제 관련이어서 그렇지, 경식은 분명 서양 근세도 주력으로 배운 사학과 복전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시대에 짓눌려본 역사적 경험이 있는 한국인은 '인류 문명의 승리자' 들의 이야기인 서양사를 배우다보면 '무엇이 이들을 승리자로 만들었나?' 를 물을 수 밖에 없다.


동아시아는 시베리아의 드넓은 땅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왜 러시아는 시베리아로 뻗어갔을까?


동아시아는 바로 남쪽의 동남아시아 제도들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왜 포르투갈은 작고 척박한 땅에서 아시아까지 닿는 항로를 개척해내고 제국이 되었을까?


기술의 문제? 국력의 문제? 조선만 본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의 국력이나, 항해기술을 보면 납득가지 않는다.


사실, 포르투갈이나 러시아 같은 경우 그 땅의 가난함을 보면 더욱 아닌 것 같다.


경식이 나름대로 찾은 해답 중 하나는, 서양에 있던 국력을 더 많이 끌어모으고 위험은 더 많이 분산시키는 제도들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저 땅을 정복해야겠으니 백성들은 세금을 내라!' 고 한다면,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당대에는 신하들이 '정복왕' 이라는 뜻의 묘호 세종 같은걸 붙여주겠지만 나중에는 백성들을 고생시켰다고 욕한다.


하지만 서양에서, '저 땅을 정복해서 나오는 돈을 나눠줄테니 투자하십시오!' 라고 한다면, 돈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꼴아박는다.

물론 전국민이 영끌을 심하게 하다가 나라가 통채로 망한 포르투갈 같은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땅따먹기는 성공했다.


'돈 나눠줄테니 투자하십시오' 의 구체적인 방법은 물론 나라마다 다르긴 한데, 제일 성공적인 것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세계사에 기록된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다.


나라가 나라 운영의 수익을 국민에게 나눠준다고 한다면 국민은 기꺼이 따른다.


동아시아처럼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것만으로는 동원할 수 없었던, 서양 국력의 비결은 거기에 있다고 경식은 믿었다.(*1)


---


<이하 미주>


*1 : '서양이 왜 지배하는가' 는 세계사를 배우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부딪히는 의문입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답을 나름대로 생각하고 내놓고는 하지요. 과학 기술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군사력이나, 종교, 철학, 경제 등 모든 분야에 대해서 각기 나름의 포커스를 가지고 이 주제를 탐구하고는 합니다. 유럽이 세계의 승리자가 된 과정을 가르키는 학술 용어는 대분기(Great Divergence) 혹은 유럽의 기적(European Miracle)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본작의 주인공 박경식은 본문에서 말했듯 사회경제사를 중심으로 탐구한 학생으로서 그 나름의 대답을 찾은 것이지요. 본 소설은 사회경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작품이기 때문에 박경식의 견해와 유사한 주장을 정답으로 전제하고 이야기를 펼쳐나가겠지만 꼭 정답이라고 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른바 대분기 가설에 대한 논쟁에 대해 좀 더 심도 깊게 알아보길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논문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종석 /Ahn Jongseok. (2014). 영국 산업혁명의 원인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대분기’의 재고찰― ‘제도·문화적 해석’의 한계와 ‘경제적 해석’의 도전. 사회와역사,(103), 349-400.>

<문우식. (2021). “대분기(Great Divergence)” 가설의 재검토: 유럽 경제는 언제 어떻게 아시아 경제를 추월하였는가?. 국제.지역연구, 30(4), 1-31, 10.56115/RIAS.2021.12.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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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신항로 2 NEW +72 9시간 전 3,733 332 25쪽
47 신항로 +47 24.06.26 6,356 391 25쪽
46 수완가 +58 24.06.25 7,368 380 22쪽
45 아이신기오로 +98 24.06.24 8,199 465 24쪽
44 자본과 기술 +72 24.06.21 9,139 480 21쪽
43 인클로저 +79 24.06.20 8,641 459 23쪽
42 봉 잡았다 3 +67 24.06.19 9,116 485 24쪽
41 봉 잡았다 2 +79 24.06.18 9,250 455 22쪽
40 봉 잡았다 +90 24.06.17 9,849 493 23쪽
39 탈상 +87 24.06.15 10,261 474 21쪽
38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56 24.06.14 10,173 478 22쪽
37 생일 축하합니다 +55 24.06.13 9,892 452 23쪽
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063 465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59 24.06.11 9,983 462 21쪽
34 돈과 전쟁 +54 24.06.10 10,771 494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1,761 507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1,844 536 25쪽
31 서울의 여름 +36 24.06.05 11,338 480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088 494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1,730 517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077 565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6 24.06.01 12,117 556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175 554 20쪽
» 대초피시대 +62 24.05.30 12,473 543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094 490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563 541 24쪽
22 백성 2 +40 24.05.27 12,592 534 22쪽
21 백성 1 +42 24.05.26 13,170 54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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