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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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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8 21:00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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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059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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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1,568

작성
24.06.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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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3
추천
402
글자
22쪽

수완가

DUMMY

서울에서는 왕이 무로마치 막부와의 수교를 준비하고 직물 공장을 만들고 있으며, 북방에서는 윤필상이 여진족들을 최대한 착취해서 뽕을 뽑고 있는 동시기, 눈을 다시 조선 내부로 돌려보자.


조선 내부도 점점 화폐 경제가 서울 외 지방으로도 퍼져나가며 조금 씩 변하고 있었다.


지금 조선에서 제일 상업이 발전한 것은 명백히 서울과 평양과 개성이지만, 사실 자생적으로 발전한 상업으로 치면 나주도 뺄 수 없는 곳이다.


경식이 조선에 오기 한창 전부터 나주는 대읍, 그러니까 큰 도시로 유명했고, 성종 초기에 이미 자생적으로 시장이 발생하여 장시가 들어섰다.


경식의 개혁으로 조선 전체가 시장경제로 변하기 시작한 지금도, 나주는 전국 군현들에게 장시를 세우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중심지였다.


경식이 만든 것이 아닌 조선의 '자생적인 시장경제'에서는 거의 핵심과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이제는 화매소와 경시까지 설치되었으니, 더욱 나주의 상업도시화는 가속되었다.


목급 군현인만큼 경식의 향교 혁파 때 향교도 학당으로 강등되지 않고 되려 기능이 강화되기 까지 했다.


그리고 그 나주 향교에서 해남의 선비 윤효정은 글을 배우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는 연산군에게 밉보여 귀양 간 최부에게 글을 배워야 했을 인물이지만, 최부는 지금 군기시에서 수차 만드는데에 굴려지느라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나리! 막쇠입니다! 아가씨가 보내신 간찰을 받아왔습니다!"


"오! 막쇠야! 퍽 오랜만이구나. 그래, 우리 구(* 윤구(尹衢)[1495~?], 윤효정의 첫째 아들을 말함.)는 잘 크고 있느냐?"


"아니, 바로 전 겨울 동안 방학이라고 돌아와서 지내셨으면서 뭐가 그리 오랜만이시란 겁니까. 도련님은 잘 계십니다."


"이놈아, 네가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없어서 남편과 아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다. 자식을 하루도 보지 않으면 걱정되는게 부모의 마음인데 이렇게 억지로 떨어져 있으니 내 마음이 어떻겠느냐."


조선은 관학 향교가 딱히 과거제랑 연결이 안되어 있으니, 과거를 준비한다해도 그냥 고향에서 공부 하지 이렇게 먼 외지의 향교에 들어와서 공부할 이유가 없다. 조선시대 관학이 쇠퇴한 이유는 이래서다.


지금 경식도 관학을 강화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관학에서만 공부해야만 과거를 볼 수 있게 바꿀 생각이지만, 아직은 과도기라서 여전히 굳이 향교에서 안 배워도 과거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윤효정도 처갓집에서 아들 돌보고 마누라랑 알콩달콩 신혼을 보내면서 공부를 하려고 했다. 물론 글머리가 없으니 그랬다간 생원시도 못 붙을 가능성이 컸지만.


윤효정이 졸지에 신혼도 못 즐기고 외지로 끌려와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윤효정이 꾸물거리는 것을 보자 해남 현감이


"이 유생 놈이...! 향교에 들어가기 적합한 글재주를 갖고서도 아직 향교에 들어가지 않다니! 이는 명백히 중대한 피역(避役) 행위에 해당한다!!"


라는 기합찬 소리를 하며 강제로 나주 향교에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것보다는 수령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학교흥(學校興)의 평가 항목에 지역 향교에 진학 시키는 인구 수가 추가 되어서 그렇다.


윤효정이 아무리 글머리가 없어도 학당에서의 커리큘럼 최종단계인 소학 정도는 땠기 때문에, 바로 향교로 진학이 가능했다.


원래 조선의 향교는 성균관의 예를 따라서 따로 방학 같은 개념이 없었다.


겨울에 방학하게 된 것도 무슨 현대적 학제를 도입하려고 만든게 아니라, 그냥 땔나무 값 아끼게 겨울에는 방학하면 어떠냐는 호조의 건의를 왕이 받아들인 정말 조선스러운 이유였다.


그래서 윤효정이 처갓집에 돌아갈 기회는 겨울 밖에 없었다.


그리고 향교로 온 윤효정은 향교 내의 커리큘럼이 생각보다 빡세다는 것을 깨달았다.


2년 동안은 천천히 가르치고, 그 뒤에 세부 전공을 고르게 한다지만 과목이 7개나 된다.(*1)


그리고 1년 동안 배워보니, 윤효정은 안타깝게도 유학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윤효정이 재능을 보인 것은 농학, 서산, 율학이었다.


문과로 응시하려면 유학 점수가 높아야하고, 무학 점수가 높으면 무관으로 넣고, 나머지 과정은 수학을 마치면 서리로 넣는 모양인데 이러다간 꼼짝 없이 서리로 끌려가는 개쪽을 당한다.


윤효정은 최대한 빨리 비상 탈출 버튼을 누르고 싶어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농학서는 자꾸 탐독하고 있어서 낙제도 안하고 있으니 완벽한 농학자의 재목이었다.


왕이 알았다면 호조에 넣을 귀한 인재가 멋대로 도망치려 든다며 납치라도 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다행히 일개 유생인 윤효정의 일은 조정 대신들의 귀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올해 보리 농사가 흉년이어서 백성들은 유랑하며 나라의 근심이 큰데, 나도 처가로 돌아가서 농사를 도와야 하지 않나 싶구나."


향교에서 튀려고 윤효정이 별 시답지 않은 핑계를 대자 막쇠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되물었다.


"예? 더벅머리 선비께서 무슨 농사를 도우신다는 겁니까? 그냥 글공부 하기 싫어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에잇, 이놈아. 설마 내가 직접 쟁기질을 하겠다는 소리겠느냐.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가르치는 등 머리를 쓰겠다는 것이지."


"머리를 쓴다고 하셔봤자..."


윤효정은 막쇠가 또 양반을 능멸하는 소리를 하려는 것을 알아채고 한 대 먹여주려고 했지만 막쇠는 홀랑 피했다.





윤효정은 나주에서 농학만 배운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상업도시화 되어 가는 나주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현상들을 보고 스스로 통찰하여 배운 것도 있다.


윤효정도 이전부터 들어 아는 것이었지만, 나주의 장문은 성종조의 큰 흉년 때문에 처음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라에서 지은 화매소나 경시나 민회 덕에, 나주 장문은 더 큰 자극을 받아 성장했다.


거기에 지금의 흉년까지 겹치니, 사람들은 더욱 나주의 경시나 장문에 몰려들어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일부 사대부들은 '백성들이 본업(농사)를 버리고 말업(상업)을 좇으니 나라의 먹을 것이 부족해진다' 라고 하고 있으나, 윤효정이 나주에서 본 것은 정반대였다.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농사가 아니라 상업이었다.


또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곡 농사를 지어야할 필요도 없다.


나라는 이제 지폐로 세를 걷는데, 같은 농사를 짓는다면 조보다 쌀이 더 비싸게 팔리고, 쌀보다는 목화 농사를 지어서 목면을 짜서 파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지금도 나주에는 흉년이 들지 않은 경상도에서 실어온 보리가 들어오고, 백성들은 목면을 팔아서 보리를 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라에서 이걸 가르쳐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성종조에 장문이 생겼을 무렵부터 이미 나주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고 있던 사실이다.


또 이전에 아산에서 본 것과 닮은 일도 일어났다. 아산 인근의 백성들은 나라가 돈을 빌려준 덕에 조를 사서 먹고 살 수 있었다.


지금 나주에서도 이전 아산과 같이 보리 농사를 망치고 성내장(城內場)에 들어온 이들에게 민회와 화매소에서 돈을 빌려주고 있어서 굶주려 죽을 정도인 이들은 없었다.


물론 이들이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들이 항산으로 삼을 것을 구한다면 다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농사에 굳이 매달릴 필요가 없다. 차라리 백성들은 솔직하게 돈이 되는 것을 좇는게 낫다.


선비가 돈을 좇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나, 백성들에게 항산을 주는 것은 되려 선비가 해야할 일 아니겠는가.


농사를 계속 짓는다해도 마찬가지의 이치가 적용된다. 지금 윤효정이 보니 화매소에서 또 신기한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가을에 날 목화를 지금 문권(文券)을 써서 사고 팔라고?"


"문권이 아니라 입안(立案)이오. 사사로이 쓰는 문권이 아니라. 관에 증첩을 제출하여 서로 지키게 하는 것이지."


"아무튼 비슷한 것 아닌가. 관에 가서 입안하는 것은 번거로우니까 안 했던 것이지."


화매소에서 나주 민회원들을 불러 모아 새 정책을 알리니 다들 희한하다는 반응이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선물 거래인 밭떼기 자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절에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개항하고서야 밭떼기 개념이 일본에서 들어왔고, 선물 계약과 거래가 근대적인 형태로 발전하는 것은 아직 세계사적으로도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의 조선에도 사적인 계약과 그것을 관에서 보증하는 개념은 있다.(*2)


사실 물품 거래에 문권을 쓰는 것도 원래 역사의 조선에서는 좀 더 미래의 일이긴 하다. 이 시대의 조선은 토지 매매나 노비 매매 정도 외에는 거래할 때 문권을 굳이 쓰진 않는다.


그러나 경식의 조선에서는 이미 화매소와 경시에서 발생하는 거래는 전부 다 증빙 문서를 발행하도록 만들었던지라, 아주 낯선 개념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선물 계약과 매매 개념 역시,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참신한 방법으로 느껴질지언정 아예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


선물 계약의 개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 나주 민회 사람들은 이 계약이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가늠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조정에서 목화를 사겠다며 부르는 값은 낮지는 않으나, 높은지도 알기 어려운 상태다.


지금까지는 목화를 재배하면 직접 목면을 짜서 팔았지, 목화 자체를 판 일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작년 가을에 조정에서 사들인 것 말이다.


조선도 나름대로 지역적 분업이 발달 중이었으나, 그것은 생산지와 소비지의 분화 수준이었다.


원료 생산지와 완제품 생산지가 분리 될 정도로 지역적 분업이 심화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민회 사람들은 지금 목화를 팔기로 계약을 맺는게 좋은지, 아니면 그냥 목화를 직접 써서 목면으로 짜서 파는 것이 좋은지 계산을 해야 했다.


민회 사람들끼리는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그 소식을 들은 윤효정은 생각했다.


'지금이 딱 목화를 심기에 적기인데, 아예 목화를 가득 심어서 일부는 조정에 팔고, 일부는 해남 사람들끼리 목면을 짜서 팔면 되는 것 아닌가?'


윤효정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무척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찰로 써서 막쇠에게 들려주어 처갓집에 보냈다.





사위의 편지를 본 정귀영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어린 사위 녀석이 나름대로 머리를 쓴다고 하는구나!"


이득은 이득대로 챙기면서 백성들 인심을 잃지 않는 수완으로, 해남에서 명망이 높은 지주로 군림하는 정귀영은 윤효정에게 훈수를 들어야 할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다.


사실 윤효정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상재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아산의 일도, 따지고 보면 정귀영이 배를 태워 보낸 덕에 가능했던 것 아니겠는가.


정귀영은 역시 자기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글머리는 없는 사위 놈이지만, 적어도 집안 재산을 까먹지는 않고, 되려 불려낼만한 놈이다.


아들 놈도 글머리가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적어도 사위 놈이 가산을 지킨다면 나중에라도야 누가 집안에서 문반으로 올라서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기약물(* 선물 계약에 대한 작 중 창작 용어.)이라...'


사위가 전달한 최신 제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정귀영도 나주 민회 사람들이랑 마찬가지로 고민에 빠졌다.


보아하니 이 기약물 거래라는 것은 단순히 아직 나지 않은 작물을 거래하는 것이지만, 자세히 따지면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곡물의 경우, 풍년이 들면 값이 내리고 흉년이 들면 값이 오른다는 것은 장사 수완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선인들조차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대다수의 농민들이야 자급자족 생활을 이어가니 시장경제의 역동성에 노출될 일이 없었어서 신경 안 쓰고 살아왔을 뿐.


하지만 이제는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누구든지 그 사실을 볼 수 있게 나라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득을 볼 수 있게 나라가 아주 판을 깔아준 참이기까지 했다.


정귀영은 이번 보리 농사 흉년에도 큰 손해를 입지 않았다. 되려 비축해두었던 쌀을 풀어서 이윤을 보고 있는 쪽이었다.


재작년에 아예 배를 사서 장사를 하려고 보니, 2년 연속으로 풍년이었어서 되려 쌀 팔 곳이 부족해져 배를 버릴 뻔했는데, 이제 흉년이니 다시 배를 부릴 때가 되어서 잘 된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새로 생긴 기약매매로, 기약하는 순간 가격이 고정되고, 풍흉에 따른 손익을 피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풍년으로 값이 떨어져도 비싸게 팔 수 있겠지만, 흉년으로 값이 올라도 싸게 팔아야하니, 이제 풍흉에 따른 손익이 정반대로 뒤집히게 된다.


농사의 풍흉은 그 누구도 모르는 법. 이걸로 항상 일방적으로 이득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정귀영은 이 새 법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해는 가을 농사도 흉년이었다. 전라도와 충청도가 그랬는데 특히 충청도가 심했다.


경식이 오고서 첫 해부터 곡물 시장 연결과 비축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이전처럼 굶어죽는 사람이 쏟아지거나 정부 기능이 마비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번 흉년 때는 조 가격만 좀 오르는 정도였으나, 두 번 연속으로 흉년이 들고 특히 삼남 지역 중 두 군데가 동시에 흉년이니 쌀 값도 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에는 지금 왕이 부추기는 서울 이기주의의 영향도 컸다.


서울에 슬럼가가 생기는 것을 싫어했던 왕이 빈민들을 대량 취직 시켜준 결과, 서울의 구매력이 더 상승해서 쌀을 더욱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대책없이 서울로 몰려갔다가 갑자기 공기업에 취직한 빈민들이야 태평성대라고 칭송하지만 지방에겐 그렇지 않았다.


면포를 짜서 파는 것을 주업으로 했던 나주 도시 지역은 더 영향을 크게 받았다.


서울이 원료인 면화를 쓸어가고 있는데, 흉년이 드니 면화의 가격은 더 오르고, 식량가도 오르고, 심지어 서울에서 면포를 갑자기 대량 생산해서 값이 떨어지니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화매소와 민회에서 아주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주고는 있으나, 나주의 빈민들의 빚은 계속 늘어만 갔다.


하마터면 나주 향교도 운영을 정지할 뻔 했으나, 조정에서 비용을 댈테니 운영을 계속하라고 명령이 내려왔다.


윤효정은 절망하며 향교가 방학하는 겨울까지 기다려야 했다.





"막쇠야, 우리 처갓집에는 너 말고도 종이 많은데 왜 항상 너만 오느냐?"


"글쎄요, 주인 마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지 않겠습니까?"


장인어른의 생각이라. 장인 어른이 자길 놀리려고 막쇠만 보내는 것인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하여, 처갓집의 농사는 어떻게 되었느냐? 추수 직전에 태풍이 부는 바람에 때를 놓쳤으면 큰 일이 났을 것인데."


"아, 과연 농사는 망쳤지요. 그러나 부잣집은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주인 마님이 농사 한 해 좀 망쳤다고 일이 나실 분입니까?"


"그야 그런데, 내가 서찰로 목화를 심는 것이 어떠냐고 아룄는데 어떻게 되었느냐? 저번 간찰로는 다 생각이 있으시다고만 하셔서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구나."


"아, 목화를 평소보다는 많이 심었는데 그게 나리 말씀 때문인거 같기도 합니다. 목화도 바람에 거진 다 쓰러졌지만."


윤효정은 그 말을 듣고 실망했다. 나름대로 농학을 배우고 조언한 것인데 별 소용이 없었다니. 물론 1년 배우고서 한 말이 신통하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하다.


"그래도 별 일 없습니다. 주인 마님께서는 이번에도 돈을 버셨는걸요."


"뭐? 어떻게 말이냐?"




간단한 이치였다. 농법이 비슷하다면, 농사를 망치고 성공하는 여부는 한 마을이 통채로 운명 공동체나 다름없다.


똑같이 태풍이 불었는데 한 마을 바로 옆 밭이면서 벼는 죽고 목화는 멀쩡하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기약물 매매...즉 선물 거래 제도를 도입하면서, 원격지 작물을 매매할 수 있는 법제가 꽤 잘 만들어졌다.


선하증권에, 거래조건 규칙에, 화매소를 통한 신용장 발급까지. 경식이 일본이랑 무역도 계획하고 있는지라 당초 생각보다 더 법제를 더 잘 갖춰서 만들어 냈다.


좀 수수료가 세긴 해도, 이제 돈 있는 사람들은 목 빠지게 상인들이 물건을 날라 오기만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내년에 진주에서 추수할 목화가 필요하다면 미리 진주의 화매소에 가서 기약을 하고, 계약서를 받아 온다.


그리고 내년 목화가 추수되고, 진주 화매소에서 배에 실으면, 배에서는 선하증권을 발행한다.


그리고 물건을 받을 사람은 파발로 선하증권을 받는다.


아직 조선의 항해술 수준이 좀 낮아서, 바람을 기다려야만 출항을 할 수 있다보니 속도 자체는 대부분 파발이 더 빠르다. 파발이 다닐 수 없는 제주도 등 섬 정도가 예외다.


목화를 사서 받는 사람은 선하증권과 계약서를, 물건을 받기로 기약 된 화매소에 제시하면 해당 물품을 받을 수 있다.


계약 이행에 대한 보증은 물건을 파는 지역 민회에서 보증하고 국가 기관인 화매소가 공증하여 집행할 수 있으니, 배달하는 배가 침몰하는게 아니면 떼먹힐 가능성도 낮다.


이 시스템을 활용해서 정귀영은 '분산투자'를 하기로 했다.


일단, 목화 농사 자체는 좀 더 늘일 가치가 있다. 사위 녀석이 하는 말은 나름 이치에 닿았다.


그냥 농사보다 목화로 목면을 짜는 것이 더 돈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것 없는 사실이 맞다.


하지만 농사의 풍흉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진주 지역에서 나는 목화를 기약으로 사들이기로 했다.


진주가 풍년이라면 진주에서 맺은 기약은 다소 손해겠지만 목면을 짜서 팔면 이득이 나서 벌충된다.


진주가 흉년이라면 기약은 이득이 되고 목면을 짜서 팔면 더 큰 이득이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해남에서도 목화 농사를 짓는다면 위험은 더 분산된다.


가장 최악의 경우가 해남은 흉년이고 진주가 풍년인 것이지만, 이조차도 진주에서 들여오는 목화를 짜서 팔든지, 아니면 그대로 나주에 목화솜을 팔든지 하면 이윤을 챙길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귀영의 투자는 가장 최악의 경우가 될 뻔 했다. 전라도가 흉년이고 경상도는 흉년을 피했으니까. 그러나 정귀영의 행동이 특별히 빨랐던 덕분에 손해가 커지지 않았다.


조선인들은 아직 목화라는 원료 자체를 매매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나주 사람들은 목면을 만들어 전국에 판매하면서도 다른 지역에서 목화 원료를 사들이는 상업망을 구축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라도 일대에 흉년이 들고, 서울이 계속해서 목화를 매입해서 목화 가격이 점점 오르니, 나주 일대의 목화의 가격은 3배나 급등했다.


진주에서 목화를 기약으로 들여온 정귀영은 이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그냥 나주에 목화를 팔기만 해도 이득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해남은 농사를 꽤 망친 편이지만, 해남 주민들은 정귀영이 나눠준 목화솜으로 목면을 짜고 품삯을 받아 생계를 이어갔다.


해남의 주민들이 짜낼 목면은 정귀영의 배로 양계 등지로 팔려 나가 돈을 벌어올 것이고, 해남 사람들이 먹을 미곡은 정귀영의 창고에서 방출될 것이니, 이번에도 정귀영은 민심도 얻고 돈도 챙겼다.




이 모든 이야기는, 막쇠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윤효정에게 미처 다 설명하지 못했다.


윤효정은 겨울에 방학된 후에야 이 이야기를 장인과 아내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을 들은 윤효정은 역시 아직 자신은 장인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애송이임을 깨달았다.


자긴 고작 아산에서 헛소문을 퍼트려서 쌀을 비싼 값으로 받은 것이 전부 아니던가.


"장인어른, 그런 수완은 대체 어떤 경서를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하하하하! 이게 경서에 나오는 것이겠느냐? 너는 글공부나 열심해서 생원시라도 붙어보아라. 정 글에 뜻이 없으면 여기서 농장 다스리는 일을 배우고."


사실 홍문관에 들어간다면 볼 수 있는, 왕이 쓴 조잡한 책에 비슷한 내용이 있기는 하다.


왕의 지식은 아직은 제대로 된 책의 꼴을 갖추진 못해서 인쇄하여 널리 알리지는 않고 있으나, 이미 조선인들은 경험을 통해서 경제를 점차 알아가고 있었다.


---


<이하 미주>


*1 : 15화 <호조야 지금 너만 힘든줄 아냐 다들 힘들어>에서 경식이 학제 개혁을 하는 장면이 나왔지요. 향교들을 싹 밀고 일부 도시들에만 남기는 대신 기능을 강화하여 경학(유학), 제술(공문서 작성요령), 서산(계산과 정자체 작성), 율학(법률), 무학(병학), 악학(음악), 농학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아직 작 중 조선에서는 성균관을 나오지 않아도 대과를 볼 수 있으나, 경식은 향교에서 경학 시험을 통과하고 성균관에 입학해야만 문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려고 구상 중입니다. 사림과 사학이 성장하여 조정에 들어올 여지를 아예 차단하려는 의도죠. 또 작 중에서 표현된대로, 문관으로 싹수가 없으면 무과나 서리로 등용하기 위해 만든 것임도 15화에서 언급되었습니다.


*2 : 조선의 소유권에 대한 법적 개념은 세조 시기와 성종 시기에 급격히 강화되었습니다. 원역사에서는 이 시점에는 아직 토지권과 노예 매매 정도만이 문권이 작성되며 거래되던 물종이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히, 소유권의 법적 개념이 강해지고 계약이 중시되는 것은 상업의 발전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중기와 후기에 들어서 상업이 발전할 수록 계약서가 작성되는 물종이 다양해집니다. 다만 재산권과 계약에 대한 성문법은 계속 소략하고 비체계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재산권 등 민사 관련 내용이 민법으로 분류되어 정의된 서양법과 달리, 동아시아의 법전은 행정법적인 측면이 강해서 육조를 따라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육전으로 분류되어 재산권 관련 내용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18세기 중반까지도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북부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조선의 재산권 개념도 서양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경식은 영국과 네덜란드 수준으로 소유권 개념을 강화시킬 계획이지요.

<이헌창. (2014). 조선시대 재산권,계약제도에 관한 시론(試論). 경제사학, 56(0),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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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신항로 +47 24.06.26 7,664 424 25쪽
» 수완가 +58 24.06.25 8,194 402 22쪽
45 아이신기오로 +98 24.06.24 8,867 488 24쪽
44 자본과 기술 +72 24.06.21 9,656 501 21쪽
43 인클로저 +79 24.06.20 9,083 477 23쪽
42 봉 잡았다 3 +67 24.06.19 9,548 502 24쪽
41 봉 잡았다 2 +79 24.06.18 9,670 468 22쪽
40 봉 잡았다 +90 24.06.17 10,265 505 23쪽
39 탈상 +87 24.06.15 10,664 484 21쪽
38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56 24.06.14 10,566 489 22쪽
37 생일 축하합니다 +55 24.06.13 10,270 465 23쪽
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452 475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60 24.06.11 10,345 471 21쪽
34 돈과 전쟁 +54 24.06.10 11,144 500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2,145 513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2,247 544 25쪽
31 서울의 여름 +37 24.06.05 11,697 488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439 500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2,107 526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465 573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8 24.06.01 12,503 562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542 562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844 551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452 499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942 55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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