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공모전참가작 새글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7 18: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631,041
추천수 :
25,487
글자수 :
451,495

작성
24.06.02 18:00
조회
12,077
추천
565
글자
25쪽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DUMMY

함양군민들이 신나게 민주주의 비슷한 것을 누리던 진주의 가을에서, 경식이 그 동안 일을 하던 한양의 봄으로 다시 시간을 돌려보자.


조선 전국 백성의 대부분은 농민이니까 농협을 우선 만들었지만, 어찌됐건 조선에도 이미 상업과 공업이 존재한다.


그리고 경식의 목표는 그것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고, 이들도 조직화하여 발전 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공업의 발전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는데, 다름 아닌 군제 개혁을 하는 도중 엄청난 꼴을 봤기 때문이다.


"군기시에 있는 갑옷이 5천개가 안되는데, 그 중 철갑은 1,000개가 안된다라..."


조선의 번상병제가 로테이션 복무이다보니 갑옷도 딱 그 로테이션하는 자리만큼만 갖춰져 있었다.


"갑옷장이 갑옷을 만드는데에는 어느 정도 속도가 걸리오?"


"갑옷장이 30 여 명인데, 종이갑옷의 경우 한 달 동안 10벌을 만들어서 1년엔 120벌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경식은 욕이 나올 뻔했다. 그럼 상비병 12,000명 입힐 갑옷 만들려면 100년이 걸리겠네? 그것도 철갑도 아닌 종이갑옷 입히는데?


게다가 서울에 있는 갑옷장이 30명 정도인데 지방에 있는 갑옷장은 다 합쳐서 50명이란다. 이러니까 전투를 하겠냐고!!!


임금이 눈에서 노기가 흘러나오자 병조판서 성준이 임금을 진정 시키려고 아무 말이나 했다.


"그, 그래도 이제는 국용이 넉넉하여 갑옷장이 번상을 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으니 한 달에 30벌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급 병사나 서리들은 진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줘서 부정부패를 못 막고 있지만, 장인들에게는 꽤 돈을 후하게 주고 있는 편이다.


덕분에 이제 다들 도망도 안 치고, 되려 번상 올라온 장인이 가족까지 서울로 불러서 눌러앉고 전업으로 장인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겨우 10,000명에게 입히는데에 30년이 걸리지 않는가!"


병사 10,000명이라고 하면 삼국지로 전쟁을 배워서 10만도 작은 군대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엥? 그것도 군대임?' 소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근래에 상비병 1만을 찍어본 적도 없다.


장부 상으로는 정병이 10만이라고 나와 있고, 성종 시절 여진을 토벌하겠다며 쥐어짜서 2만을 동원했지만 갑옷도 무기도 없으면서 그냥 장부 상 병사로 쓰여 있는 일반인을 대충 끌고 갔을 뿐.


그래서 2만을 동원하고 여진족을 겨우 7명 죽이는 우스운 전과만 남기고 돌이왔다.


이 생산량은 제도를 조금 바꿔서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것으로는 충족할 수가 없다.


"됐소. 내가 직접 군기시를 살피리다. 아울러 대신들은 내가 내리는 경장들의 절목을 올해 내로 실행해야 할 것이오."


졸지에 왕이 직접 보는 앞에서 갑옷 만들기 대회를 시작하게 된 갑옷장들은 벌벌 떨며 갑옷을 조립했다.


경식이 파악해보니, 갑옷을 만드는 과정이 어느 정도는 나눠져 있었다.


갑옷에 가죽이랑 천이랑 철이 다 들어가는데 갑옷장이 그걸 다 할 순 없으니, 가죽 부품은 가죽장이 만들고, 천은 상의원이 만들고, 조립만 갑옷장이 하는 식이었다.


병기에는 제작 장인의 이름이나 감독관 이름, 생산년도까지 쓰여 있어 과학적 생산방식에 나름 근접했다.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해.'


갑옷 제작 과정들을 보니, 분업화해서 대량 생산하기 제일 좋은 것은 두정갑이었다.


일단 갑옷의 찰을 만드는 과정, 갑옷을 조립하기 위한 두정(리벳)을 만드는 과정을 세분하고, 규격을 통일 시킨다.


갑옷 조립의 경우,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찰을 두정으로 천에 박는 작업은 비교적 단순하니 선대제 수공업 형태로 백성들에게 부품을 뿌리면 될 것이다.


'농번기라 농민들에게 뿌리긴 좀 그렇고...그래, 난민촌 사람들에게 시키면 딱이겠군.'


병사들에게는 유감이겠지만 장식은 없앤다. 급하다.


이것저것 공업 관련해서 할 일이 많은데 철 공급이 부족했던지라 마포방 쪽 집을 몇 채 사들여서 군기시를 하나 더 만들고 행궁으로 삼았다. 마포방도 포구이고 경매장도 있어서 철 바로바로 사들이기에 아주 좋다.




신료들은 왕이 난데없이 무비(武備)를 갖추기 위해 필요하다며 서울을 떠나는 것도 모자라서, 두정못 만드는 도구나, 갑옷 찰에 구멍을 뚫는 도구 같은 걸 만드는데에 골몰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신료들은 이미 왕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개기면 자꾸 두들겨 패는 타입인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이건 진짜 아니다.


서울에서 마포까지 왔다갔다 하며 보고하는 것도 다 일이며, 아무리 군무가 중요하다지만 지금은 평화 시기다.


그런 건 무신들 맡겨도 된다. 자기들 혹사 시키는 만큼 무신들도 혹사 시키면 될 텐데 왜 갑옷 만드는 걸 왕이 직접 한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일거리를 신료들에게 폭탄처럼 잔뜩 던져놓고서 이런다는 말인가.


하지만 모든 대신들의 의사가 이렇게 모이진 않았다. 애초에 공조랑 병조는 이미 다 같이 마포로 끌려가서 같이 일하는 중이었다.


서울에 남아있던 육조 중 예조판서 성현이 총대를 잡고 왕에게 상언하러 가야했다. 호조랑 이조랑 형조는 지금 바빠서 못 온다.


애초에 예조 혼자 총대 잡고 이런 상언을 해야하는 건 지금 제일 급한게 예조라서 그렇기도 하다.

식년시 건도 있고, 중국에 보낼 사신들 관련해서도 이것저것 재가 받을 일이 있는데 마포까지 왔다갔다 해야하니 여간 일이 아니었다.


한 시진이 걸려서야 궁이라 부르기엔 너무 초라한 마포행궁에 도착했다.


그 때 행궁 약간 바깥, 경강변 모래 사장 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적인-!!! 거발-!!!"


팡! 파바바바방!!


분명 화포가 격발되는 소리다. 하지만 그것은 화포의 소리라기에는 너무 일제히 울려퍼졌다.


알고 있는 소리가 익숙하지 않게 울려 퍼지며 지축을 뒤흔들었다. 조선 최고의 악학자 성현의 고막이 들은 적 없는 소리로 자극받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성현이 소리가 나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이어서 다시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준적인-! 거발-!"


파바바방!!


성현은 화약 소리가 나는 곳으로 초헌(軺軒)의 방향을 바꿨다. 요새 조선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다 임금을 찍으면 맞기 때문에, 저 이상한 소리가 나는 곳에 임금이 있을 거 같다.


과연 흰 용포를 입은 임금이 높은 곳에서 병사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병사들 주변에 연기가 자욱한걸 보니 무슨 총통을 쏜 것이 분명해보였다.


"오오오!"


공조와 병조 관헌들이 체통도 잊고 여염의 사내들과 똑같이 환호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기계(* 현대어 기계와 한자도 같으나, 조선시대에는 주로 병기의 뜻으로 쓰임.)가 있다면 더 이상 군국의 일은 우려할 것이 없습니다! 야인도 왜인도 엄히 징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이 전조에서 최무선이 처음으로 화포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그것을 써 기계를 만든지 오래되었으나 전하께서 만드신 이 소총에 미치는 것이 없습니다!"


"크흠! 옛 사람들의 지혜를 익혔을 뿐인데 어찌 내 공로이겠는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소."


그야 경식 입장에서는 진짜로 옛날의 지혜가 맞으니까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긴 하다.


'고마워요, 국립진주박물관!'


유튜브 알고리즘 따라서 나온 '타임슬립을 대비해서 조총을 배우자' 같은 어그로 쩌는 제목의 영상을 보지 않았으면 쓸 수 없는 미래 치트였다.




경식이 순전 문과라서 기술적으로 뭐 하기에는 좀 안 어울려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사실 19세기 산업혁명 초입까지도 대부분의 기술은 교육 같은 거 따로 안 받은 기술공들이 만든 것이다.

기계식 시계 같은 게 아니라면 대부분은 공학 같은 전문적인 교육 없이도 좀 손재주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애초에 역사에 관심 없는 이과는 몇백 년 전 골통품인 조총의 구조 따위 찾아보지 않는다.

차라리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역사 관련 영상이 추천으로 뜨는 사람들이 조총의 구조를 알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문과가 많은 편이다. 경식도 그 중 하나다.


정부기관의 공식 유튜브 치고는 무척이나 컨셉을 잘 잡은 그 채널 덕에 경식은 총통과 조총의 차이는 물론 조총의 구조와 종류, 심지어 제작 방법까지 꽤 숙지할 수 있었다.


정말로 타임슬립해서 써먹게 되는 날이 올 줄을 몰라서 그렇지.


다만 조선의 공업 기술 상 제대로 된 조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총통을 재활용하여 개머리판을 달고, 화약접시를 붙이고, 완발식 방아쇠를 붙인 만든 급조 총기에 더 가까웠다.

굳이 말하면 원래 역사의 소승자총통과 비슷했다. 소승자총통보다 진보한 면이 여럿 있긴 하다.


그래도 개발 자체는 정말 빨랐다. 경식이 두꺼운 종이를 오려서 용두, 방아쇠, 개머리판 등 부품 모양을 만들고 바늘로 연결해서 메카니즘과 대략적인 구조를 장인들에게 보여줬다.


그걸 본 군기시 대장장이가 "화약을 버티려면 정철을 두드려 만들어야 할 것인데, 하루만 주시면 만들 수 있겠습니다." 하는 것 아닌가.


옆에서 목장은 "비록 나무여서 화약을 버틸 수는 없겠으나, 그 모양새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두 시진이면 만들 수 있습니다." 라고 한술 더 뜬 소리를 했다.


목장이 만든 것을 바탕으로 잘 작동되는지 살피고, 대장장이가 다시 철로 완성 부품을 만들고, 총통에 그것들을 붙이니 정말로 이틀 만에 됐다.


생각해보니 세계사적으로도 원래 조총은 일단 한 번 본 나라들은 다들 순식간에 복제해서 쓸 정도로 구조 자체는 단순하긴 하다.


한계가 있다면 이건 구리 총통을 재활용해서 만든 과도기적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은 구리랑 납이 부족하다. 철도 부족하다.


구리는 원래 역사에서도 부족해서 큰 일이라고 항상 난리치던 물건이다. 대포 만들랴, 활자 만들랴, 동전 만들랴 이리저리 많이 들었는데 이렇다 할만한 광산이 없다.


그나마 경식이 바꾸는 중인 조선에서는 동전도 없고 활자도 이제는 구리를 쓰지 않는다.


납의 경우, 조선에서는 원래 은 정제하다가 나오는 폐기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경식이 인쇄기를 만들고서, 그 후 활자도 구텐베르크식으로 납으로 만들면서 쓸모가 늘었다.


그 때는 폐기물 알뜰하게 쓴다고 다들 마냥 좋아했는데, 이제 경식이 소총통을 만들면서 탄환도 납으로 만들었다.

로렌츠탄이나 미니에탄은 총열 안에서 팽창해서 위력이 좋아진다는 말을 인터넷에서 주워 들어서 납으로 탄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납 광산 같은 걸 별도로 개발 못한 상태다.


철은 그나마 공급이 어느 정도 있다.


조선 초기의 철 생산 체계는 철장도회제라는 부역제적인 체계 및 수군과 죄인들을 부역하는 방식으로, 공납을 통해 공급 받았다.


그런데 경식이 조선에 왔을 때는 이미 철장도회제에 대한 부역제도도 망가진 상태였고, 민간의 철소에서 제철이 이뤄진 것을, 망가진 공납 체계 덕에 그냥 시장을 통해 구입했다.


그리고 경식의 개혁으로 물류가 폭증한 상태라, 그냥 경매장에서 사니 몇만 근 정도는 너끈히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철로 총을 제대로 만들자니 그러려면 나사 파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총은 연철을 파이프 형태로 만든 후 나사로 뒤를 막아서 만든다.


파이프 만드는 법은 진주박물관 유튜브에서 봐서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나사다.


밀랍을 손수 깎아서 나사의 모양을 알려주니 목공들은 금새 따라 만들었지만 대장장이들은 무척 곤혹해 했다.


다행히 연철 깎는데 쓰는 강철 공구 같은 건 있어서 거의 하루 종일을 걸려서 나사 몇 개를 깎아냈다.


그 연철 나사로 어찌어찌 총으로 만들었더니 절반 정도는 뒤가 터졌다.


여기서부턴 딱히 경식도 방법이 없었다. 나사 깎는 선반이 18세기 영국에서 개발된 건 아는데 그 구조까진 모른다.


"장인들이 소총을 만드는데 익숙치 않으니 시간을 들여 숙련되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겠소."


왕은 자기는 손 떼고 장인들이 알아서 만들게 기다리겠다고 하자 병조에서 극구 반대했다.


"우리나라는 전조부터 최무선이 원나라로부터 화포를 만드는 법을 배워와 쓰고 있는데, 그것이 이롭기가 지극하여 아직도 무기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찍이 삼국으로 나뉘어 있을 때 각 나라가 십만의 병사를 동원했으나, 그것을 일통한 우리나라가 병사를 십만을 부리지 않는 것은 화포로 난을 하루아침에 잠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만드신 소총의 묘리가 지극하여 충분히 만들어 병사들에게 나눠준다면 백성들의 이익이 만세를 거듭하지 않겠습니까?

군왕이 정한 바를 함부로 바꿔선 백성이 혼란하여 민폐가 커질 따름입니다. 어찌 이 좋은 기계를 폐할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만들어 달라고!! 라는 내용이었다.


'아니, 애초에 포기한다는 말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사실 소총을 개발하는 동안 병조랑 공조는 경식에 비해 그다지 한 게 없다. 왕이 원맨쇼 하는거 구경만 하다가 개쩌는게 나오니 환호만 했다.


이세계 용사님 대단해를 넘어서 강제로 일 시키려 하는 신하들의 뜻에 왕은 감동했다.


신하들이 왕을 화수분으로 보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제 신하들을 부려먹기로 했다. 너희도 일 해야지.




"전하께서 두정을 만드는 법을 궁구하시어, 두정장들이 하루에 두정을 서른 개 만들던 것이 이제는 하루에 십만 개가 만들어지니 그 묘리가 신이합니다만, 어찌 인군이 장인의 일을 직접 살필 일이겠습니까?"


병조는 국방 담당이다보니 신무기 개발이나 군비 확충 같은거 해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왕이 갑옷 만들겠다면서 두정못 만드는 방법까지 감독해가며 이렇게 만들라, 저렇게 만들라, 이 도구를 써봐라 하며 끼어드는 건 영 이상해보였다.


소총은 그나마 딱봐도 세보이니까 그 임팩트 때문에 찬양을 한 거고, 그에 비하면 겨우 두정못 만드는 건 가슴이 옹졸해지지 않는가.


세종 때 뭔가 뿅뿅 만들던 것도 실무는 이천, 장영실 같은 실무진이 하고 직접 망치질은 장인들이 했지 왕이 이렇게 직접 살피지 않았다.


"...병조는 두정갑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두정의 갯수를 일일히 세 본 적이 있소?"


병조 관헌들은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안 썼다.


조선이 세종 시절에는 장영실 같은 인재가 나오고 과학 기술이 동시대 서양보다는 못할 지언정 여러 성과를 냈는데, 왜 그 이후로는 없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성종 시기를 기점으로 병조, 공조의 중간 관리직 관헌들이, 문과 출신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문과 급제자가 식년시만으로도 3년 마다 33명 정도가 공급되지만, 그에 비하면 병사들을 제외한 관직 수는 500개 정도가 전부였던 조선은 문과를 위해 아무 자리나 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세조 시기까지만 해도 공조나 병조의 중간 관리직이 실무적인 작업 기술을 가진 이들 위주로 배치되었던 것이, 성종 무렵부턴 문과 급제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각종 경공장들을 관리하는 자리에 생산기술을 모르는 사대부들이 올라가고, 품질 관리도 하지 않고 장인이 어련히 잘 만들었을거라며 대충 하고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식의 조선에서는 다르다.


관료들 일자리는 이제 넘친다. 그런 문과 놈들은 이미 다 호조에 처 넣었다. 되려 인력이 부족해서 걱정이다.


장인들에게 돈을 빠방하게 준 덕에 도망은 커녕 점점 모여들고 있어서, 그 중에서 골라서 중간관리직을 맡길 수도 있다.


그러면 문과들은 이제 뭘 해야할까? 더 높은 자리에서 공돌이에게 아무튼 만들라고 닥달하기?


대충 비슷할지도 모른다. 경영학의 생산관리론이 바로 그걸 과학적으로 하는 방법이니까.


다시 한 번 '이세계 용사' 박경식으로 돌아갈 때다.


어차피 뭐 직접 만드는건 천해서 사대부들이 할 게 아니라고 할 게 뻔하잖아?


지금부터 과학적 관리론이라는 걸 알려주도록 하지. 수학 못하면 병조와 공조에도 못 있게 될거야.




일단 과학적 관리에 필요한 것은 규격화와 정량화다.

생산의 모든 과정을, 재료부터 동작까지 모든 것을 규격화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고도의 분업이 필요하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찬양한 그것이다.


두정못 만드는 장인들을 분업 시키는 것은 그 몸풀기였다.


"갑옷에 박는 찰을 만드는 것부터, 갑옷에 찰을 박는 과정까지, 모든 작업 과정을 세세히 나누시오.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사람마다 나눌지 계획을 짜시오."


찰은 철을 두드려 판으로 만들고, 규격에 맞게 자르고, 구멍을 뚫고, 열처리 하는 과정으로 분화되었다. 이 일은 야장(* 冶匠, 대장장이.)들이 하게 된다.


갑옷의 천 부분은 누비천을 만들고, 천을 규격에 맞게 자르고, 본을 대어 일정한 자리에 구멍을 뚫는다. 이 과정은 직조장들이 한다.


조갑장(造甲匠)들은 마지막에 천의 구멍마다 찰을 박아 갑옷을 조립하는 과정만 반복한다.


이제 규격화된 과정에 따라 정량화한다.


"철갑 하나를 만들 때 들어가는 찰의 갯수와 두정못, 천의 갯수는 어떻게 되는가?"


"찰이 213개, 두정못은 그 갑절인 426개, 천은 8필이 들어갑니다."


"갑장들이 갑옷을 조립하는 속도는 어떻게 되는가?"


"흉갑을 조립하는 자는 하루에 2벌을 조립하며, 견갑을 조립하는 자는 하루에 4쌍을 조립하고, 완갑을 조립하는 자는 6쌍을 조립하며..."


"흉갑을 조립하는 자를 기준으로, 나머지 부위를 조립하는 자들은 얼마가 있어야 갑옷 한 벌만큼 갖춰지는지 계산하시오."


병조는 다행히, 병사 수를 세는 게 주요 직무인지라 원래 산술에 능한 자 위주로 들어온다. 그다지 막힘 없이 계산하며 인력 배치를 다시 시행했다.


"갑장들의 조립 과정을 궁구하여, 제일 빠르게 조립하는 자의 방식을 확인하여 나머지에게도 그것을 따라하게 하시오."


과학적 관리론의 기반이 된 이론 중 하나인 동작 연구(Motion Study)다.


사대부들에게 이런 걸 시키다니 너무하다고 투덜거리지만, 이미 왕의 방법대로 하니 갑옷이 하루에 열댓 벌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료들도 왕이 시키는대로 하면 얼마나 성과가 나올지 궁금해져서 따르기 시작했다.


가장 빠르게 조립하는 갑장이 앞 나와 견본이 되어, 다른 갑장들도 같은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며 조립하게 한다.


"갑장들의 작업은 3각을 일하고 1각을 쉬는 것을 반복하여 네 시진 동안 진행하게 하시오."


"갑장들이 갑옷을 만들어 내는 수대로 차례대로 세웠을 때, 중간에 서게 되는 이는 몇 개의 갑옷을 조립하오? 그보다 많이 생산하는 갑장은 산료를 기본보다 절반 더 쳐주시오."


이런 일련의 방법론은 갑옷만이 아닌 칼, 창, 화살까지 모든 병기 제조에 적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도 있었다.


장인들이 아무리 천시받는다지만, 공장의 일은 사대부들은 감히 넘 보지도 않고 넘 볼 수도 없는 자신들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사대부들이 관심이 없는 걸 이용해서 자기들이 생산량을 줄이거나 품질이 나쁜 걸 납품해서 좀 적당히 챙겨 먹기도 했고.


그런데 사대부들이 모든 과정에 끼어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쉴 시간도 쥐꼬리만큼 주며, 하나의 물건을 만들 때마다 (자기들이 내킬 때는) 기교를 정성 들인 것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지금 하는 일이 어디 장인의 일인가? 그냥 찰을 천 구멍에 대고, 두정못을 끼워 망치로 두 번 두드리는 일만 하루에 수천 번 씩 반복하는 것 아닌가. 이런 건 장인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도 두정못을 두는 자리에, 천을 놓는 모양과 자리까지 정하고, 망치를 휘두르는 법까지 정해서, 어기거나 속도가 늦으면 평가가 깎인다.


금상이 작년에 주자소에서 뭘 만든 이후로 거기 공인들이 맛이 가 있는 모양새였는데, 이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갑장들 중 열댓이 번상은 이제 끝난거 같으니 하번하겠다며 나섰다.


그러자 군기시 주부가 말한다.


"아, 하긴 원래 번상제에서는 자네들은 돌아갈 때가 된 게 맞지. 그런데 산료를 월 60전 씩이나 쳐준다고 여태 안 돌아갔으면서 왜 이제야 그러는가?"(*1)


"나리는 사대부가 공인들 일하는데 일일히 끼어들고 있는데 자존심도 안 상하십니까? 우리는 아주 미치겠습니다."


"아, 하긴 사대부가 되어서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나라가 어떻게 되려는지.

심지어 자네들 월료가 다음 달부터는 100전부터 시작한다니, 이제 웬만한 관헌들보다 높으니 그야말로 나라가 뒤집혔어."


"생각해보니 나라가 부여한 역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군기시로 돌아갑지요."


갑장들의 공인으로서의 자존심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갑장들은 얌전히 돌아가서 다시 할 일을 시작했다.


되려 이조에서 반발이 나왔다.


"녹봉을 가자하는 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가장 큰 후대라고 세종대왕께서도 일찍이 말씀하신 바인데, 어찌 공인들의 산료가 사대부들의 녹봉보다 높단 말입니까.

산료를 이리 높게 쳐주었다간 그들이 교만해져 일을 게을리 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사대부 다운 주장이었다. 그냥 하민들이 월급 더 받는게 꼽다는 소리를 이렇게 하네.


효율적 임금 이론에 대해 설명해야하나? 아니지, 이건 이념에 관련된 부분이라 좀 더 계산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철갑이, 내가 군기시를 바꾸기 전 시장에서 값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소?"


"잘 모르겠습니다."


"500전이오, 한 벌에 500전. 그리고 갑장들은 그대로 30명인데, 하루 마다 40벌을 만들지. 그럼 한 달 동안 만드는 갑옷의 값은 얼마이며, 갑장 한 명은 얼마를 버는 셈이오?"


"..."


문과라 암산엔 약한건지, 수식이 너무 길어져서인지, 그 값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인정하기 싫은건지, 이조 관헌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됐네, 내가 말하지. 갑장 하나가 매 달 2만전 어치의 갑옷을 만드는 셈이오. 이런데 어찌 월 산료 100전이 높다는 것이오?"(*2)




두 달 반 동안의 연구와 장인들의 재배치, 교육과 훈련이 끝났을 때 생산량은 이전의 수십 배로 폭증했다.


하루마다 검 등 단병기가 400개, 창 등 장병기가 600개, 철갑이 80개, 화살이 1000개가 쏟아져 나왔다.


품질도 균일했다. 장인이 좋은 것은 장에 팔고 열악한 것을 군기시에 올리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두 달이면 지금 서울의 병영들에 보관된 병장기를 다 합친 수보다 더 많은 양이 채워진다.

조선이 평상시에 굴리던 상비군들을 무장 시키기에는 두 달이면 충분한 것이다.


1년이면, 조선이 여지껏 굴려본 최대 규모의 군대인 2만 대군에게 모두 철갑을 입히고도 넉넉하게 남는다.


4년이면, 문자 그대로 10만 철갑병이 생겨날 것이다.


병조 관헌들은 고구려 이후로 굴려본 적 없는 대병력을 조선에서 다시 굴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자 벌써 가슴이 웅장해져서 눈물이 났다.


삼국 시절에는 전쟁 때마다 10만 대군을 굴려서 웅장한 싸움을 했는데, 삼국을 통일한 이 조선에선 갑옷은 커녕 무기도 없는, 장부로만 10만인 군대를 굴리는게 얼마나 서러웠는가.


그조차도 돈이 없다고 봉족제로 돌리고, 갈수록 번상을 느슨하게 하고, 결국 이젠 북방의 야인 수십 명도 때려잡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젠 그 설움의 날도 끝이다.


역시 금상은 화수분이 틀림 없다.


병조 관헌들의 가슴 속에 '고...구...려...' 세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왕은 아직 별 말도 안 했는데 병조 관헌들의 머릿 속에서는 이미 조선의 10만 철기가 만주를 달리고 있었다.


---


*1 : 모든 것을 부역제로 때우던 나라 조선은 서울 소속 장인인 경공장 역시 번상 부역으로 때웠습니다. 작 중에서 언급된 조갑장의 경우, 30명이 총원인데 3번으로 나뉘어 실제 근무는 10명이 하고, 이것을 6개월 마다 교대하는 식이었죠.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 박경식은 그냥 월급을 확 올려주는 것으로 대응해서 번상 올라온 장인들이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냥 서울에 눌러 살기 시작해서 경공장의 수가 확 늘어버렸습니다.

사실, 그나마 경공장들은 도망치면 조정과 왕실의 물품이 정말로 공급이 중지되어 나라가 망하기 때문에 조선 기준으로도 임금을 후하게 쳐준 편이긴 합니다. 박경식의 조선은 그보다도 많이 주고 있고요.


*2 : 사실 설정상으로는 두정못 제작, 겉감과 안감 제작, 찰 제작까지 군기시 수백 명의 장인이 총동원된 대형 생산라인이 구축되어 있고 갑장 30 여 명은 정말로 마지막의 갑옷 조립만 맡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계산한다면 훨씬 복잡하게 될 것입니다. 원재료비도 계산을 해야하는데 그것도 홀랑 빼먹었고요. 경식이 이조에서 따지는 걸 물리치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계산한 것이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경제왕 연산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외부 팬아트 모음 +12 24.06.10 2,182 0 -
공지 <경제왕 연산군>은 월~금 18시에 연재됩니다. 24.05.08 10,685 0 -
48 신항로 2 NEW +72 9시간 전 3,733 332 25쪽
47 신항로 +47 24.06.26 6,356 391 25쪽
46 수완가 +58 24.06.25 7,368 380 22쪽
45 아이신기오로 +98 24.06.24 8,199 465 24쪽
44 자본과 기술 +72 24.06.21 9,139 480 21쪽
43 인클로저 +79 24.06.20 8,641 459 23쪽
42 봉 잡았다 3 +67 24.06.19 9,116 485 24쪽
41 봉 잡았다 2 +79 24.06.18 9,251 455 22쪽
40 봉 잡았다 +90 24.06.17 9,849 493 23쪽
39 탈상 +87 24.06.15 10,261 474 21쪽
38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56 24.06.14 10,173 478 22쪽
37 생일 축하합니다 +55 24.06.13 9,892 452 23쪽
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063 465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59 24.06.11 9,983 462 21쪽
34 돈과 전쟁 +54 24.06.10 10,771 494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1,761 507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1,844 536 25쪽
31 서울의 여름 +36 24.06.05 11,338 480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088 494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1,730 517 22쪽
»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078 565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6 24.06.01 12,117 556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175 554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473 543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094 490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563 541 24쪽
22 백성 2 +40 24.05.27 12,592 534 22쪽
21 백성 1 +42 24.05.26 13,170 540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