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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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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7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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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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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
글자
22쪽

돈과 전쟁

DUMMY

강무를 상당히 희한한 형식으로 한다는 말을 들은 인근 백성들이 몰려나와 구경했다.


"1만 대군이 모여서 석전을 한다며?"


"아니, 석전은 아니고 촉을 뺀 화살로 싸우는 연습을 한다는데?"


"그래서 싸우는 거야 마는거야? 볼 거리가 있어?"


과연 석전 구경이라면 환장을 하는 민족이라, 뭔가 석전 비슷한 거라고 얘기가 나오자마자 다들 구경할 생각에 부풀었다.




장수들은 나름 진지하게 훈련이라고 생각하며 임하고 있는데, 백성들이 구경이나 하려는 상황이 영 불편했다.


사실 이걸 기획한 왕 속셈 자체가 그 구경거리 만드는게 맞았지만.


경식은 이 구경거리를 보는데 팝콘도 나쵸도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이딴 걸로 신대륙 항로 찾으려고 하면 미친 왕이라고 사서에 기록되겠지?'


과연 연산군의 몸(*1)에 사학과 출신이 빙의해서 그런지 역사서는 두려웠나보다. 두려워하는 것 치고는 이미 뭔가 이상한 짓을 많이 했지만.


결국 대신할 주전부리는 못 찾은 채 구경을 계속했다.


사실, 이 모의 공성전은 전부 각본이 짜여진 싸움이다.


석전 같은 느낌으로 싸운다고 해도, 당연히 방벽이 있고 위쪽에 선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리고 이 공성 강무를 할 시간은 길어야 1주일 남짓.

공성 측이 초월적인 기술의 공성술을 가진게 아니면 정상적으로 함락은 어렵다.


그러니 그냥 수성측이 승리하는 것으로 각본을 짜놨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훈련은 아니다.

중군에서 각본의 어떤 단계를 따르라고, 북치고 장구쳐서 명령 내리는 것을, 일선의 병사들이 따르도록 통제해야하니까.

되려 이 부분 때문에 제일 중요한 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성측에서 정찰을 맡은 유담년이 요새의 주변을 빙빙 돌며 살펴보았다.


아무리 각본이 짜인 강무지만, 공성군의 지휘관들은 공성군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게 몰입하여 성을 공략할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논의했다.


'성이...높지 않지만, 넓다!'


본 성벽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서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사다리를 타면 올라갈 수 있어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가는 것 자체를 막는 구조물들이 빼곡하게 겹겹히 쌓여 있었다.


해자가 깊고 넓게 파여 있는데, 그 해자 바깥에 치 같기도 하고 옹성 같기도 한 것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치 바깥에도 또 해자가 파여 있으며, 그 해자의 겉에는 또 참호가 있어서 병사들이 쇠뇌를 들고 돌아다녔다.


참호도 바로 공격하기 쉽지 않도록, 참호 바깥에 또 해자가 있는데 그 해자 바깥에는 녹각이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어디로 접근하든 성벽, 치, 옹성, 참호 넷에서 동시에 시석을 날려왔다.


심지어 성문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치와 옹성이 서로 비슷한 모양새로 뾰족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진입로가 있는 쪽이 옹성 같긴 한데 해자에 걸친 다리가 들려 있어 어디로 들어갈지 난감했다.


'석성도 아닌 토성을, 구조를 교묘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난공불락의 요새가 만들어진다니!'


물론 왕이 함경도 갑사들 불러놓고 훈련 시키다가 딱히 할 거 없으면 성 만들라고 삽질하고, 또 잠시 공백 있으면 해자라도 한 겹 더 파라고 또 삽질하고를 5개월 간 반복한 결과이긴 하다.


첫 개발 의도랑 달리 공력이 꽤 든 셈이나, 그래도 가난한 조선에서는 토성만으로 이런 가성비 요새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혁신이다.


조선은 성벽 축조술이 워낙 떨어져서, 맘 먹고 석벽으로 성을 쌓아도 비가 오면 무너지기 일쑤였다.


토성은 가성비는 좋지만, 대부분의 경우 평야의 읍성 용도로 만들어져서 높이도 낮고, 근래는 관리도 안되어서 방어력은 기대할 수 없다.(*2)


대신 조선이 진짜 방어용으로 투자한 건 산성이다.

이것도 지금은 오랜 평화 때문에 쇠락했지만, 아무튼 한반도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방어력은 산성에 의지했지 평지성에게 방어력을 기대한 역사는 없었다.


그런데 금상이 고안한 이 토성은 평지에 있고, 벽의 높이가 낮은데도 도저히 공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병력은 공성측이 10배나 많은데도 말이다.


유담년이 살피고 온 그런 사세를 보고 받은 장정(張珽)도, 북한산 자락에 올라 저 성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 성이면, 석전 놀이가 아니라 진짜 전쟁처럼 화포라도 필요하겠군."


물론 이 강무에서는 허용되지 않지만, 실전이라면 그 정도는 동원해야할 철옹성이었다.




공성군이 화포 대신 가져온 것은 화차를 개조한 전차였다. 각본이 만들어질 때 군기시가 미리 만들어놨다.


무슨 '판저 포!' 같은 건 아니고, 거칠게 말해 그냥 수레에 방패벽을 크게 만들어 달아놓은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조선보다 수십 년 전 쯤 유럽에서 벌어진 후스 전쟁 때, 프라하 민병대가 사용한 바겐부르크 전술에서 따온 것이다.


경식이 군사사를 잘 몰라도, 대충 마차의 방패벽 뒤에 엄폐한채로 원딜을 하는 전술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사실 고대부터 흔히 있던 전술이기도 하다.


공성군 측이 여러 대의 마차를 이용해서 화살과 돌을 막아내며 점점 접근해오자, 성 내부에서 제일 밖의 참호의 병사들에게 귀환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구경하던 백성들이 수성군이 도망치는 걸 보면서 환호하기도,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각본대로 움직이는 전투인걸 모르고, 공성측이 이길거라고 내기를 한 사람들일 것이다.


첫 날은 그렇게 공성군이 1점 승리한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둘째 날은, 녹각과 말뚝 때문에 공성측은 더 이상 수레를 끌고 성에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공성군 지휘부는 말뚝과 녹각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할지 논의했다.

물론, 논의하는 모양새만 보여주는 거다.

실전에 써도 좋을 아이디어가 나와도, 각본을 따라야해서 실행하진 않는다.


(정해져 있던)결론은 방패를 수레에서 떼어서, 병사들을 엄폐할 수 있게 설치하고 병사들이 녹각과 말뚝을 치우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병사들이 녹각과 말뚝을 치워 수레 한 대 정도가 드나들 길이 생겼다.


수성측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성문에 안에서 열리더니, 성 내에 있던 기병들이 뛰쳐나와 우회하여 작업 중이던 공성측 병사들을 공격했다.


공성측 병사들은 수레도 방패도 내버린채 진지로 도망쳤다.


첫날보다 더 큰 환호성이 인근 백성 무리들에서 터져나왔다.


'...아무리 농사 끝났어도 쟤들은 진짜로 끝날 때까지 보려는 건가?'


이튿 날은 수성측이 1점을 딴 것으로 진행되었다.



3일 째, 경식은 양측 지휘관들과 대신들을 모아서 이러한 강무 훈련이 도움이 되는 것 같은지 의견을 물었다.


"마치 정말로 전쟁을 하는 듯 생생하니, 이전의 사냥을 통한 강무와는 비할 바 없이 군사들이 정예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병서를 읽는다 한들 직접 싸움을 한번 겪는 것에 어찌 비기겠습니까? 전하께서 고안하신 이러한 강무를 군례에 올려 항구히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하께서 설계하신 팔각보(* 八角堡, 경식이 만든 성형요새가 팔각형임.)의 견고함이 참으로 굳셉니다.

토성으로 형상만 갖추더라도 오백으로 일만 군사를 대적할 것이오, 하물며 벽돌로 견고히 짓는다면 누가 감히 무너트릴 수 있겠습니까?"


"허나 팔각보는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정예하며, 시석을 항상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비로소 그 힘을 낼 수 있겠습니다.

허나 전하께서 군액을 줄이고 날랜 병사들만을 남기고 조련하고 있으며, 군기시에서 궁시를 충분히 만드니 방비에는 두려울 것이 없겠습니다."


반응이 꽤 좋았다. 특히 유자광은 벌써부터 성형요새의 약점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경식은 유자광을 간신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일머리가 꽤 좋은 걸 보고 놀랐다.


"좋소. 아예 매년 이런 강무를 할 수 있도록 의례를 만들고, 이것을 전담할 아문을 만드는 것이 좋겠소. 의정부는 인재를 추천하고, 아문의 이름도 지어 올리시오."



4일 째, 공성측이 다시 화력을 투사하며 성으로 접근했다. 하루동안 쉬어서인지 구경꾼은 줄어들었다.


수성측이 다시 점령했던 참호를 포기하고, 공성측은 수레에 나무 다리를 단 공성장비를 끌고 왔다.


말뚝과 녹각을 치워 생긴 공백에 파고 들어가 해자에 다리를 놓고, 방패를 든 병사들이 건너가 참호를 점령했다.


각본대로면 원래 4일차는 여기서 끝이다.


그런데 수성측 일부 병사들이 생각하기에는 좀 달랐다.


"어? 놈들이 가까이 와서 딱 쏴 맞추기 좋아졌는데 왜 멈추래?"


이 훈련이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병사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몇몇 병사들이 성 내부에서의 공격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공성측의 병사들을 쏘기 시작했다.


성 내부에서의 공격이 잦아드는 줄 알았던 공성군은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퇴각했다.


그걸 본 중군에서 급하게 양군에게 중지 명령을 내렸다.


"명을 어긴 병사들을 군율로 다스려라!"


수성측의 지휘관 유순정(柳順汀)이 차갑게 명령했다.


경식이 놀라 진짜 전쟁도 아닌데 죽이는 것은 과하다고 했으나, 유순정은 '병사를 후하게만 대하거나 아끼기만 해서는 부릴 수 없습니다(厚而不能使, 愛而不能令).' 라며 그대로 죽였다.


5일차의 훈련은, 하필 그 병사들이 하려고 했던 참호에 들어온 공성군을 수성군이 공격하여 몰아내는 것이었다.


경식이 유순정에게 병사들을 진짜로 죽이는 것은 과하다고 한 이유가 이래서다. 빈정이 더욱 상해있는 왕에게, 공성군의 사령관인 장정이 나서서 말했다.


"이미 주상께서 강무를 여실 때 제사를 올리고, 금띠와 부월을 내리셨습니다.

비록 지금 같은 공성 강무의 의례는 다 갖춰지지 않았으나, 강무 역시 본래부터 앞다투어 화살을 쏘아 사람을 다치게 하면 본률(本律)에 따라 벌하게 합니다.

어찌 전하께서는 군율보다 병사를 아까워 하십니까?"


기분이 상했을 때 나오는 경식의 '그 버릇'이 나오려는 것을 탐지한 유자광이, 유순정을 벌하라고 나서서 말했다.


유자광이 이러는 걸 보고서야 경식은 제정신을 차렸다. 유자광이 간언하는거 반대로 하면 최소한 과반은 맞을 거 같았다.




6일 째, 마지막 날에 다시 장군들을 불러모아 이 팔각보를 어떻게 사용하는게 좋고, 적이 따라 만든다면 어떻게 대응하는게 좋은가를 토의하게 했다.


수성군측은 비교적 상식적인 답을 내놨다.


"팔각보는 비록 벽이 낮으나, 여러 보와 호와 해자로 둘러 쌓으며, 병사들이 시석을 쏴 던지기에 비로소 견고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고안하신 소총을 충분히 갖추고, 총통을 보에 배치하면 천군이 온다 한들 감히 무너트릴 수 없습니다.

서정군에도 이러한 묘리를 전하여, 진보(鎭堡)를 전부 팔각보로 짓게 하고 총통을 충분히 보낸다면 더 이상 야인이 감히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수성군의 주장에 경식은 그 말이 전부 맞다고 동의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기도 하다.


공성측은 벌써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이 팔각보의 묘리가 귀신 같으니 공격해야할 곳을 알 수 없고, 허한 곳이 없습니다.

적들이 이 보를 짓는 법을 알게 되면 나라의 큰 우환이 될 것이니, 그 묘리를 문자(*조선 시대에는 한문을 뜻함)가 아닌 언문으로 써서 감추는 것이 어떻습니까?"


한글 전용을 군사 기밀 감추기 위해 쓰자는 게 미래에는 좀 특이한 주장으로 보이겠지만, 이 시대 동아시아에서는 한자가 국제 공용 문자이기 때문에 꽤 그럴싸한 주장이었다.


사실 성종 시절에도 양성지(梁誠之)가 똑같은 주장을 하며 ≪총통등록銃筒謄錄≫의 한자본을 불태워버렸다.

경식도 소총 연구하는 척 하면서 읽은 책인데, 한글 전용책을 조선에서 처음 본지라 꽤 신기했다.


"좋소, 병무에 관한 책은 되도록이면 언문으로 써서 감추는 것이 어떻소? 병법 역시 언해본을 만들고, 병사들이 언문과 병법을 익히게 하면 좋겠소."


예조가 뜬금 없이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학당에서 가르치는 천자문, 소학 역시 언해본을 만들어 널리 펼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예조가 상언한 말 역시 아주 좋소. 예조에서 그 일을 맡아 진행하시오."




공성강무에는 꽤나 돈이 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훈련용 수준이라지만 모의 공성전이다.

8천명이, 실제 모의전투 단 4일 동안, 한 명 당 하루에 쇠뇌를 5발만 쐈어도, 쇠뇌살이 16만발이 소모된 것이다.


또 소모된 종이갑옷이나, 훈련용 나무 활대 쇠뇌 - 강철 활대 쇠뇌를 썼다간 사람 잡는다 - 만든다고 쓴 것까지 합치면 더 아득하다.


이미 작은 산 몇 개 정도는 민둥산이 되었을 것이다.


그걸 계산해 보고서 경식은 정말 전쟁은 안 하는게 좋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2차 대전기 미국이 전쟁으로 정부 재정 늘여서 민간 경제 활성화 어쩌구는, 겨우 창고 짓는 걸 뉴딜이랍시고 해서 1년 재정의 3분의 1을 쓴 경제적 아기 조선에게는 머나먼 미래의 일이다.


물론 병사들에게 급여를 꽤나 주고 있고, 각 부대에게 병사들 급여를 갹출해서 소모품을 사게 하고 있으니 호조 재정이 직접 나간 건 그렇게 어마어마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구매력이 상당한 1만명 가까이가 몰리니 서울 물가가 갑자기 오르는 무시무시한 현상까지 일어났다.


'중국인들은 대체 어떻게 역사적으로 툭하면 백만 대군을 동원해서 전쟁을...아니, 그래서 망했나?'


경식의 마음 속에서 평화주의와 반전정신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차피 기존 강무도 1~2주 정도 진행한 것이 상례였다고 하니, 여기서 갈무리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박힌 쇠뇌살들이나 돌들을 정리해서 창고에 넣어 정리하고, 마지막 훈련 겸 행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사례(射禮)를 시작했다.


주나라의 의례(周禮)에도 있고, 활쏘기 대회 느낌...아니, 정말로 활쏘기 대회로써 분위기 띄우기에도 좋고, 군사력 증강에도 도움되고. 정말 좋은 스포츠였다.


주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 조선도 전국적으로 도입하고 싶어하는데 아직도 전국에 도입은 못 된 일이기도 했다.


내심 유교를 경멸하고 있는 경식조차도 이 정도면 작정하고 전국에 도입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이건 사대부들이 계속 사서를 써도 자기 업적으로 써주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경식은 자기가 사례의 첫 발을 시작하겠다면서, 자기가 개발한 강철 스프링강으로 만든 활을 가져오게 시켰다.

석궁의 활대 부분만 빼낸 그것이다.


"전하께서 만드신 강철궁은 그 굳셈이 누구도 쉬이 당길 수 없는 것입니다. 뿔로 만든 활로도 위용을 떨칠 수 있으니 각궁을 쓰는 것이 어떻습니까?"


더군다나 여자처럼 몸이 가늘어 풍채의 위엄이 없는 왕에게는 누가 봐도 무리였다.


"아, 내가 태조의 후손인데 그걸 못 당기겠냐! 됐고 가져와!"


신료들은 왕이 저 따위 싼 말투를 찍찍 갈길 때는 피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가져왔다.


한편으로는 태조 이성계의 후손이요, 태종을 제일 닮은 왕, 세조의 증손자인데 뭔가 해낼 수 있을 거 같아보이기도 했다.


신하들의 기대 속에서, 경식은 강철로 만든 활의 시위를 당겼다.


"흡!!!!!"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활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흐으으읍!!!!"


기합을 늘인다 한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이, 싯팔! 연산군 새끼! 내가 오기 전에 운동 좀 해놓지! 계집애 같이 빼빼 말라서는 활도 못 당기고 이성계 유전자는 다 어디 간 거야?'


경식은 자기도 미래에서도 연산군 몸으로도 운동을 안 해놓고서 뻔뻔하게 연산군 탓을 했다.


"강궁을 당기는 것은 무부의 일이요, 인군의 일이나 대장의 일이 아니다.

이 궁을 잘 당겨 맞추는 병사에게는 자급을 올리겠다."


왕이 자신의 조상을 일개 무부로 내리치는 셀프 패드립을 쳤지만, 아무도 그것에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사례가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강철궁을 누가 당길 수 있는지 대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병사들이 강철궁을 당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왕이 못 당긴 활을 감히 그 누구도 당길 수 없다는 권력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물리적으로 못 당겼다.


수십 명 중 하나 정도는 당겨냈지만, 만작(* 끝까지 활을 당김)까지는 못해냈고 제대로 쏴 맞추지도 못했다.


애초에 저 강철궁은 염소발 지렛대랑 편자를 동시에 써야 당길 수 있게 만들어진 쇠뇌 활대다.

빠른 장전을 위해 장력을 제한하긴 했어도, 사람이 팔힘으로 활처럼 당기는 것을 고려하여 만든 것이 아니다.


경식이 이상한 허세를 부리려고 해서 일이 괜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뿐이다.


그 때 신하들 사이에서도 간신으로 찍히고 왕에게도 간신으로 찍힌 유자광이 끼어들었다.


"제가 유생 중에 강한 활을 당기는 재주가 뛰어난 이를 알고 있는데, 그가 이번 사례에 참가하니 전하께서는 이번에 보시는 것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다음 병사, 아니, 그냥 유생이 바로 유자광이 추천한 그였다.


간신이어도 일머리는 뛰어난 유자광의 추천사는 헛말이 아니었다.


그 유생은 사례의 참가자 중 처음으로 강철궁을 만작해냈다.

멀리서 봐도 그 활을 잡은 왼팔이 떨리는 것이 보였으나, 결국 표적을 맞춰냈다.


"적중이오-!!"


이건 경식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무령군이 추천한 재목이 쓸만하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신은 참군 이승언의 아들 이장곤(李長坤)이라 합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경식이 미래에서도 알고 있던 조선인이 나왔다.


'고리 백정의 딸이랑 결혼했다는 민담으로 유명한 사람이잖아!'


생각해보니 이장곤의 이야기 자체가 연산군 때 사화에 휘말려서 죽을 뻔 했을 때 백정들 사이에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였던 거 같다.


민담 위주의 만화라서 무슨 재주가 뛰어나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문과 생원시에 붙었다고 하니 글머리도 좀 있는 모양이고, 덩치도 큰 게 무사로 쓰면 쓸만 할 거 같아보였다.


"참으로 귀한 인재를 얻었다. 내가 너를 서용하겠다. 병조에서는 생원 이장곤이 배속될 자리를 알아보시오. 내금위에 자리가 있는가?"


이장곤은 내심 '어...나 문과인데...' 라고 생각했지만 왕이 직접 벼슬을 내리며 무려 내금위로 배속해주려는데 그런 거 따지는 싸가지를 보일 수는 없었다.


이장곤은 사극의 그 유명한 성은 망극을 시전하며 물러났다.




강무는 이전의 사냥 대회 일때도 백성들 고초가 심하다고 반대가 많던 행사였다.


그리고 시장경제적 구조로 재정을 개편한 지금은 백성들의 고초가 심해지는 대신 재정의 지출이 심해진다.


강무하느라 쓴 돈은 다시 납전첩(국채) 발행으로 채우기로 했다. 작년의 납전첩 값도 슬슬 갚아야할 때가 와서 현금이 필요하다.


작년의 납전첩은 인플레이션 방지용 땜빵 정책이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진짜 국채로 성립하도록 1년물, 3년물, 5년물, 10년물까지 다양한 종류로 만들 계획을 짜고 있다.


평준도감이 직접 조정 각사에 돈을 빌려주는, 현대적으로 말하면 본원통화 발행(*3)으로 돈을 늘이는 건 이제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평준도감에서 직접 정부 각사에 돈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대신 호조가 납전첩을 발행해서, 정부 각사의 예산안대로 지급하여 사용한다.


사실 원래 역사의 조선은 갑오개혁 직전까지 조세권이 일원화되지 않고 각사와 지방 관아에 나눠져 있던 것과 비교하면, 경식의 조선은 벌써 근대적 재정구조로 달려가고 있는 셈이었다.


"민회에서 식리를 2할로 하여 주고 있으니, 납전첩의 식 역시 그 정도는 되어야 백성들이 살 것이오. 올해의 납전첩의 식은 그렇게 하시오."


사실 지금까지의 금리가 너무 낮기도 했다.


신용화폐를 처음 도입하는데 최소 1600만전이라는 막대한 양을 공급해야하다보니, 조선 기준으로는 구휼 때 수준의 저리로 마구 지폐를 뿌려댔다.


완전한 은행은 아니긴 해도 이제 민회가 은행 역할 비슷한 걸 수행하니, 신용 창조(*4)로 인해서 본원통화 발행 시에 인플레이션이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금리를 높혀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한다.


작년처럼 발행한 납전첩을 백성들에게 팔고, 한편으로는 발행한 납전첩을 회수한다. 이번에는 서울에서만 파는게 아니라 전국에서 진행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작년에 발급한 납전첩을 다시 팔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


*1 : 연산군은 실록에 "임금(上)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서(史書)뿐이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결국 폭군으로 영원히 기록에 남게 되었지만요. 연산군일기는 다른 실록들에 비해 좀 빈 부분이 많은데, 연산군이 사관들을 탄압한 흔적으로 보입니다.


*2 : 조선의 성곽은 치(雉), 옹성, 해자 등 기본적인 시설은 다 갖춰져 있었습니다. 작 중 언급한 것처럼, 벽돌로 성벽을 짓자는 건의도 조선 전기부터 계속 있었습니다. 개성부의 내성은 실제로 벽돌로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평화가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기술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없었고, 부역 노동에 기반하여 성을 쌓다보니 견고함도 부족한 편이었죠. 해자 유구 역시 구간에 따라서는 폭이나 깊이가 3m 정도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폭이 5m 정도였고요. 그나마도 당연히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 당대에도 해자가 다 매몰되어서 한심한 지경이라고 비판되기도 했습니다.

<윤용출. (2018). 조선후기 번벽축성(燔甓築城) 논의와 기술 도입. 한국민족문화,(67), 235-280, 10.15299/jk.2018.05.67.235>

<심정애. "조선시대 읍성의 해자에 관한 연구-해미읍성을 중심으로." 국내석사학위논문 한서대학교 대학원, 2011. 충청남도>


*3 : 본원통화는 중앙은행에서 직접 발행하여 찍어낸 현금입니다. 현대 선진국에서 본원통화는 '공개시장조작' 혹은 '재할인창구' 라는 것을 통해서 공급됩니다. 공개시장조작은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고, 재할인창구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게 담보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작 중 조선에서는 7화 <이세계 용사 박경식>에서 설명한, 평준도감이 정부 각사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 '공개시장조작'에 해당하게 되고, 27화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에서 설명하는, 민회에 평준도감의 돈을 예금하는 것이 '재할인창구'에 해당되는 셈입니다.


*4 : 신용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26화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에서 본문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작가의말

노땅아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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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경제왕 연산군>은 월~금 18시에 연재됩니다. 24.05.08 10,685 0 -
48 신항로 2 NEW +72 9시간 전 3,726 332 25쪽
47 신항로 +47 24.06.26 6,352 391 25쪽
46 수완가 +58 24.06.25 7,367 380 22쪽
45 아이신기오로 +98 24.06.24 8,198 465 24쪽
44 자본과 기술 +72 24.06.21 9,139 480 21쪽
43 인클로저 +79 24.06.20 8,641 459 23쪽
42 봉 잡았다 3 +67 24.06.19 9,116 485 24쪽
41 봉 잡았다 2 +79 24.06.18 9,250 455 22쪽
40 봉 잡았다 +90 24.06.17 9,848 493 23쪽
39 탈상 +87 24.06.15 10,261 474 21쪽
38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 +56 24.06.14 10,172 478 22쪽
37 생일 축하합니다 +55 24.06.13 9,892 452 23쪽
36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조선의 하늘 +44 24.06.12 10,062 465 21쪽
35 돈을 버는 자, 돈을 쓰는 자 +59 24.06.11 9,982 462 21쪽
» 돈과 전쟁 +54 24.06.10 10,771 494 22쪽
33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진다 +47 24.06.07 11,760 507 25쪽
32 진격의 세종(The conqueror) +68 24.06.06 11,843 536 25쪽
31 서울의 여름 +36 24.06.05 11,337 480 23쪽
30 우릴 돈으로 살 셈인가! +43 24.06.04 11,086 494 21쪽
29 아니 내 10만 철기가!!! +34 24.06.03 11,729 517 22쪽
28 또 이세계 용사 박경식 +94 24.06.02 12,075 565 25쪽
27 우리는 주인이다 힘차게 살자 +76 24.06.01 12,116 556 21쪽
26 농촌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91 24.05.31 12,175 554 20쪽
25 대초피시대 +62 24.05.30 12,472 543 22쪽
24 뒷수습 +49 24.05.29 13,094 490 20쪽
23 백성 3 +56 24.05.28 12,563 541 24쪽
22 백성 2 +40 24.05.27 12,592 534 22쪽
21 백성 1 +42 24.05.26 13,170 54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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