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으로 가는 문 -외전 : 드래곤 슬레이어(7)-
#4 - Dragon Slayer(7)
마을의 규모가 굉장히 작았기 때문에, 우리는 헬케튼이라는 인간의 집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집은 작은 언덕위에 있었고, 지붕위에 달린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 늦은 오후라 노을이 져 있어서 그런지, 연기가 상당히 선명하게 보인다.
"음…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나는걸?"
맛있는 냄새…?
벨로그렌스의 그런 말을 듣고서, 나는 후각에 집중해 보았다.
"…."
분명, 어떤 냄새가 풍겨오고 있긴 하지만… 맛있는 냄새라니?
맛은 미각으로 감각하고, 냄새는 후각으로 감각한다. 서로 다른 감각 기관에서 느껴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어 두개가 그렇게 나란히 있으니 잠시 혼란이 느껴지긴 했지만, 나는 그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벨로그렌스가 배를 문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얼마전 알게 된, 배가 고프다는 비 언어적 의사소통 표현이었다.
… 그러고보니, 벨로그렌스로선 제대로 된 인간들의 식사를 해본지 꽤 되었겠군.
"계십니까?"
벨로그렌스는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큰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뭘 하는건가요?"
"응? 뭘하다니… 네가 보고 있는 대로인데."
보고 있는 대로라고?
물론, 그렇긴 하겠지만….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그가 손가락으로 두드린 문을 손으로 살짝 쓸어보았다. … 약간 먼지가 묻어나오는군. 아무튼, 이것은 목재로 만들어진 사물이다. 때문에 이것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의지 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계십니까, 라는 물음이 설마 이 문을 향해 있지는 않겠지.
내가 의아했던 것은 문을 두드리는 행위였다.
벨로그렌스 쪽을 잠시 바라보니, 그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은 대답할 수 없어요. 생명이 없으니까요."
"… 뭐?"
그는 방금전 보인 의아함의 크기를 키우려는듯 했으나 무언가를 납득한듯, 곧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그럼, 물론이지. 문은 대답할 수 없어."
그렇다. 문은 대답할 수 없다.
"내 목적은 이 집안에 있는 헬카튼씨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의 집 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갈 수는 없잖아?"
벨로그렌스는 다시한번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단단해 보이는 그의 손가락이 문과 부딪히며 똑똑, 하는 선명한 소리를 내었다.
… 굉장히 선명한 소리인 만큼, 손가락이 아플것 같은데.
아무튼, 벨로그렌스가 말을 잇는다.
"그래서 문을 두드리며 당신에게 볼일이 있는 내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거야. 문은, 주인이 열어주어야 하는 거니까."
'문은 주인이 열어주어야만 한다'…. 어쩐지 단박에 이해가 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벨로그렌스는 말주변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계속 질문을 해대는 나 덕분에 늘기라도 한 걸까.
"당신… 말을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군요."
그는 멋쩍은듯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별로 대단찮은 말이었던것 같은데…. 그것보다 리체, 나를 말을 잘 못하는 놈으로 여기고 있었구나. 부정할 수는 없지만 왠지 좀- "
좋은건지 나쁜건지 갈피를 못잡는 듯한 벨로그렌스에게서 신경을 끄고, 여전히 닫혀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 소통은 양방향이다. 일방통행일 뿐인 의사전달을 소통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벨로그렌스가 이 문을 두드린 행위는 소통의 요청 쯤으로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흐음… 새삼스럽게, '문' 이라는게 인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홀로 존재하는 우리 드래곤과는 다르게 인간들은 '너' 와 '나' 를 구분지어 사회를 형성한다. 그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는 가정. 그리고 그 가정이 머무는 곳은 내 눈앞에 있는 이러한 집이다.
문의 안쪽 과 문의 바깥 쪽. '우리' 와 '당신' 들. 이것은 집단을 나누는 최초의 경계이며, 그들에게 우호적으로 소통을 요청할 수 있는 유용한 창구인 것이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굉장하군.
"뉘시오?"
끼익, 하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반쯤 열린 문 안쪽엔 중년의 남성이 조금 놀란 얼굴을 한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헬케튼 씨죠?"
"뭐, 그렇소만…."
헬케튼이라는 인간은 벨로그렌스의 예의바른 인사를 여전히 이상한 태도를 유지한채 받아들이고 있었다.
"헬케튼 씨가 이곳의 촌장이라고 해서 찾아오게 됐습니다."
"흠, 촌장이라니…. 이런 코딱지 만한 마을에 그런게 어디있다구. 뭐, 일단 들어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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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 안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돌려 집 안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집안은 조금 어둡고 묘한 냄새가 났다.
이 묘한 냄새의 원인은 아마도… 집안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풀들 때문인듯 싶었다.
"냄새가 조금 심해도 참아 주시구려. 모두 뒷산에서 캐온 약초들인데… 말릴 곳이 마땅치 않아 집안에 널어놓은 것들이오."
"아닙니다. 나쁜 냄새도 아닌데요 뭘. 오히려 냄새를 맡고 있으니 기분이 좀 차분해 지는것 같습니다."
벨로그렌스의 말대로, 묘하긴 해도 그리 맡기 싫은 냄새는 아니었다.
"약초가 이렇게 많은걸 보니… 헬케튼 씨는 의사인가 보군요?"
그는 손을 내밀어 우리에게 자리를 권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의사라는 거창한 직함을 내밀정도는 못 되오. 그저 몇몇 약초의 사용법을 알고 있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촌장이라 추켜세우는 것도 그 때문이오. 이 마을은 외부와의 교류가 없고, 때문에 작은 병이라도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오."
삐걱-
… 그것은 지금 앉은 의자에서 나는 소리였다.
외부와의 교류가 없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이 마을의 모든것은 자급자족을 통해 얻어진 것일테지.
의자가 이렇게 낡아도 교체는 어렵겠군.
"그래서… 외부인이 이런 외진 곳까진 어쩐 일로 오시었소?"
벨로그렌스는 단숨에 답했다.
"저는 제 아내와 같이 이곳에 정착하고 싶습니다."
"아내…?"
그제서야 헬케튼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 동안 나는 키가 큰 벨로그렌스 뒤쪽에 있었고, 집안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상태였기에 이제서야 그의 주의가 나에게 미친듯 싶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살펴보다가, 이내 깜짝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요, 요정족 이로군?"
"아, 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쩌다보니, 라니.
뭐,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전혀 없겠지만… 정말 편리한 변명이로군.
헬케튼이라는 인간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인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들의 감정이란 것에 대한 대략적인 정리같은 것도 나에겐 없었기 때문에, 그 감정들이 어떠한 것인지 통찰해 보기는 어려웠다.
… 당연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수평적이지 않았다.
명백하게 인간과는 다른 어떠한 사물을 바라보는것 같은 눈빛이었다.
"정말 놀랍군. 이곳의 사람들 중 몇몇은 요정이 실재한다는 것조차 믿지 않는다네. 그들에게 있어 요정이란, 이야기 책이나 전설속에서만 등장하는 대상이지."
"그… 렇겠지요."
벨로그렌스는 나로서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뿌듯함과 기쁨을 은근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아무튼… 대답을 해주자면, 굳이 내게 허락을 구할것도 없네. 이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이 대지에 정착한지 1 세대도 지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곳은 자네와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말일세."
"… 그렇군요."
대답이 조금 무겁다.
벨로그렌스와 같은 사람이라면… 본래 인간들이 살고 있던 토지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도망쳐 나온 이들을 이르는 것일까.
나는 창밖 너머의 불모한 풍경을 바라보며 그것에 어렵지 않게 긍정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런 척박한 대지에서 살아갈 이유는 없겠지.
"그보다 다행이로군."
"네? 무엇이 말이죠?"
벨로그렌스의 물음에 헬케튼은 씩 웃으며 답했다.
"내 집에서 조금더 올라가다보면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집이 있네. 누군가 창고로 쓸려고도 했었지만… 마을에서 거리가 좀 있어 포기한듯한 모양이네. 자네와 자네의 아내는 집을 새로 지을필요 없이 그곳에서 지내면 될 것 같네."
"정말 다행이군요!"
그의 말대로 그건 정말 다행인듯 하다. 보금자리인 집을 새로 짓는다니… 현재 인간의 건축 기술이 썩 뛰어나 보이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엔 그들 나름대로의 요령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일 것이다.
벨로그렌스가 그것을 알고 있다고 기대하긴 어렵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 그러고보니 아직 자네 이름도 듣지 못했군. 이름이 뭔가?"
"벨로그렌스 입니다. 제 아내는 리체 구요."
벨로그렌스는 그렇게 자신과 나의 이름을 밝히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슨 행동인가 싶어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곧 헬케튼이 앞으로 내민 그의 손을 맞잡았다.
"벨로그렌스- 좋은 이름이군. 척박한 이곳에서 사는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겠지만… 이곳 마을 사람들은 모두 순박하고 좋은 사람들이네. 앞으로 잘 지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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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케튼의 집에서 나온 우리는 석양을 등지고 계속해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벨로그렌스는 집이 있다는게 무척이나 기쁜 모양인지, 가볍게 딛는 발걸음에서도 가감없이 그의 감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위를 향해 오르고 있는 그의 등뒤를 쫓다, 문득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높진 않지만 이곳은 언덕이었기에 마을의 풍경이 한 눈에 모두 내려다 보였다. 모두라곤 해도… 마을이 워낙 소규모인 탓에 그다지 눈에 띄는건 아니지만.
"…."
지평선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 그리고 그 옆으로 우리가 지금껏 지나온 험준한 산들이 보인다. 시선을 사방으로 던져봐도 온통 너무나도 거대한 자연물들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하늘을 향해있던 시선을 조금만 내려 유심히 관찰해보면, 드문드문 위치해 있는 조그만 인공물들이 보이는 것이다.
거기서, 나는 묘한 감흥을 느꼈다.
이들이 만든 인공물은 이곳에 펼쳐진 자연 풍경에 비해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순응하지 않고, 거스르고 있다. 그래서 보기 좋지 않냐… 라고 하면 그런것은 아니고, 오히려 마음에 든달까.
나쁘지 않은 풍경이다.
"이곳이…! -구나."
힘차게 시작된 벨로그렌스의 말이, 마지막엔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의아한 심정으로 그의 등뒤에서 나와 그의 시선이 향해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목재로 만들어진 작은 집이 있었다.
아니, 이것을 집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풍화가 상당히 진행된 작은 목재더미라고 하는 편이 맞겠군요."
생각에 그쳐야 할 것을 입밖으로 내어보았다.
"흠… 글쎄,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박한 평가가 아닐까. 작은 목재더미라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던 벨로그렌스는 내 혹독한 평가를 듣자 오히려 반발감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는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문' 으로 보이는 것을 잡고 조심스럽게 열었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움이 무색하게 문은 문틀에서 힘없이 떨어져 나왔고, 맥 없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쿵, 하고 문이 쓰러져 내림과 동시에 그곳에 쌓여있떤 뿌연먼지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벨로그렌스는 조금 씁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쓰러진 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어느정도 보수가 필요할것 같아."
아니,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건 차라리 새로짓는 편이 낫겠군.
- 작가의말
* 죄송합니다ㅠㅠ 그동안 시험기간이어서 연재가 좀 지연되었습니다.
* 분량이 좀 적군요 ㅠㅠ 다음엔 1만자 넘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ㅋㅋ!
* 봐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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