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으로 가는 문 -84화-
"하아…."
온몸이 불에 타는듯이 뜨겁다.
마법에 의해 꿰뚫린 가슴엔 흉터 하나 남지 않았지만, 죽음에서 생환했다는 사실 자체가 몸에 큰 무리를 주고 있는 모양이다.
이 육신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의 것이니까. 그것도 아주 허약한.
"난 솔직히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군."
바로 코 앞에서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몽롱한 정신을 깨워 눈을 뜨니, 베른헬체이스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나는… 그에게 안겨있는 상태였다.
"무엇이 말이냐."
"그렇게 철저하게 인간의 행세를 하는것 말이다. 무엇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까지 인간의 행세에 집착하는 것이지?"
집착이라…?
그는 틀렸다. 나는 인간 행세에 집착하고 있지 않다.
"이왕 할거라면 철저한게 좋잖아?"
태연한 말투 때문일까, 그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 졌다. 그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이 고통은 무척이나 하찮아서 내가 굳이 인간 행세를 그만두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베른헬체이스는 이런 하찮은 고통조차 귀찮게 생각하는 것이겠고.
"무척이나 성실한 분이로군, 백룡 님은."
어디서 들어본것 같은 빈정거림 이로군….
"그러는 너야말로 팔 아프게 굳이 나를 직접 안아서 옮겨줄 필요가 있는가, 베른헬체이스. 이 성 안의 모든 공간과 시간은 네 것 일텐데도?"
"너를 직접 옮기던, 마술을 이용해 옮기던 결과는 같지 않은가? 요는 가능하느냐 불가능 하느냐의 차이지."
내게 죽음의 고통이 하찮듯이, 그에겐 과정 따위야 어찌되건 상관 없다는 건가. 뭐, 굳이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 난 그가 날 안기 편하게 몸을 살짝 틀었다.
"… 너와 같이 다니던 인간들이 무척이나 슬퍼 하겠군."
베른헬체이스는 갑작스럽게 그런 말을 꺼냈다.
"그래…."
"네 생존 사실을 그들에게 알리지 않아도 괜찮겠나?"
생존 사실이라 하니 왠지 우습군.
이 세상에 진실로 드래곤을 죽일 수 있는건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확실히 나는 죽었다고 인식되었겠지. 거기다 레테닌시에스케가 아무말 없이 내 시체를 채 가버렸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알리지 않아도 되. 어쨌든 그들과는 마왕의 앞에서 만나게 될테니까."
"…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난 알아. 그들은 꼭 그곳으로 올 것이다."
그래, 난 안다.
베델의 분노는 이 모든것의 원흉을 향하고 있다. 인간을 사육하던 인간. 그가 억누르고 있는 과거의 비밀.
그 모든 열쇠는, 마왕이라 불리는 자가 쥐고 있다.
"베른헬체이스, 너는 전에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는 인간이 있다고 말했었지."
"그랬지."
"그자는… 지금 마왕이라 불리고 있지 않은가?"
그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나타난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네 피, 네 비늘, 네 마력까지 준것은… 어떤 의도에서 인가?"
"보았던 모양이군. 내 파편을 갖고 있는 인간들을…."
뭐, 인간에게 달려 있으니 무척이나 볼품없어 보였지만.
아무튼, 베른헬체이스는 무엇을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베른헬체이스의 권능은, 소수의 인간에게 거대한 힘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은 필연적으로 계급의 분화를 낳았고, 상위 인간, 하위 인간으로 나누는 쓸데 없는 기준이 되었지.
베른헬체이스는 아무말 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난 괜히 그의 가슴팍을 퍽- 하고 때려보았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난 그것을 통해 보고자 했다, 인간의 모든 추악함을-'
전에 그가 말했던 말이 떠오른 순간, 나는 침대 위에 내팽개 쳐졌다.
"편히 쉬어라. 그 육신의 회복을 위해서 말이지."
묘하게 조롱하는 어조로군.
그는 어딘가에서 순식간에 의자를 가져오더니, 침대 앞에 그것을 놓고 앉아 내게 친절하게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난 아직까지 영 어색하군. 이런… 인간 같은 행위를 한다는게 말야."
그러는것 치고는 꽤 능숙한데.
"쉬라면서?"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게 아닌가, 루루렌칼리체. 묻고 싶은게 많을 텐데?"
그래, 레테닌시에스케가 말했던 백색의 좌나 마왕이라 불리는 자에 관한 이야기 등 그에겐 묻고 싶은게 많다.
하지만… 굳이 그걸 지금 알 필요는 없겠지. 그에게 묻지 않아도, 곧 알게 될테니까. 베른헬체이스는 내 궁금중을 풀어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듯 하지만 말이다.
나는 필요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는군."
베른헬체이스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겨 내 이마를 때렸다. 그 고통은 지금 느끼고 있는 부활의 후유증이 겹쳐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좋은 얼굴이다."
그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 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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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란건 단순히 훼손된 육체의 수복 만을 이르지 않는다. 이미 육신에서 떠나버린 영혼까지 불러들여야만 진정한 부활의 완성이다, 라고 할 수 있겠지.
백색의 좌 라 칭해지는 인간의 소녀가 행한 내 육체의 수복은 말 할 것도 없이 대단하다. 하지만 영혼마저 불러들이는 완전한 부활, 소생은 이 세계에서 오직 드래곤 만이 가능한 거대한 마력행사이다.
영혼에 관련된 신비는 필연적으로 신력(神力)이 개입되어야 하니까.
아무튼, 백색의 좌가 내 육신을 소생시킨건 내게 다시 인간 칼리체 로서 베델과 에카테야르에게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이 된다.
나 스스로가 내 몸을 소생시켰다면, 나는 거기서 베델과 에카테야르를 다시는 인간으로서 만날 수 없었겠지.
그래서 백색의 좌에 의한 내 부활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슨 생각하세요, 칼리체 님?"
연한 갈색 머리카락의, 선한 인상의 소녀.
백색의 좌- 라 불리는 상식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인간'이다.
"너희들은… 내 죽음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내가 감지했다."
레테닌시에스케-
그랬군….
"난 너처럼 쓸데 없이 인간 행세를 하느라 힘을 억눌러 놓지 않지. 반경 수킬로 내의 공간은 항상 내 권속안에 들어와 있다. 그곳에서 나와 맞먹는 신비를 갖고 있는 한 바보 백룡을 발견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 왠지 심통이 난것 처럼 보이는군, 은룡.
"렌 님께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꽤 걱정하셨답니다."
백색의 좌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인간의 착각일테지, 드래곤에게 죽음에 대한 걱정은 전혀, 라고 할 정도로 무용 하니까.
짧은 반바지에 긴 셔츠, 허리에는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검이 매어져 있다. 내 시선이 그 검을 향하자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이건 백색의 좌를 상징하는검, '광휘' 에요."
검 이름이 광휘 인가.
확실히, 그때 본 그 백색의 빛은 이 검이 '광휘'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저 겉모습만이 그 이름을 나타내는건 아닐테지.
백색의 좌라….
"루루렌칼리체."
나긋나긋한 목소리.
내 육체를 소생시킨 후, 욕실에다 팽개쳐 둔 후 자신은 여유롭게 목욕을 즐긴… 어쩌면 로나벨아크하임보다 더 악질적인 녀석이다.
"육천년 전에 기억을 리셋시켰더군."
"…."
그래… 벌써 육천년이나 되었나.
망각을 모르는 나는 기억을 리셋한 직후의 느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근원과 링크된 지식을 제외하고 모든것이 사라진, 그 공허함-
남은건 오직 자기 자신과, 세계 뿐이었지.
- 난 널 사랑한다.
레테닌시에스케의 뜻밖의 말에 나는 의외라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것은 만능의 언어, 은룡의 뜻에 거짓은 없다.
- 그리고, 널 증오하지.
"… 그래?"
백색의 좌, 리체르아가 내게 의아한 시선을 보내온다. 만능의 언어가 전해지지 못한 그녀는 내가 혼자 중얼거린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겠지.
작게 대답하며 은룡을 바라보자, 그녀는 무심한 시선으로 긴 은발을 쓸어올리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도 특별한 대답을 기대했던건 아니었고, 나도 딱히 그녀가 말한것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 우리의 걸음 뒤로 베른헬체이스의 성이 점점 멀어져 간다.
* 음, 바빠서 한편 올려 놓고 급히 나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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