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으로 가는 문 -13화-
"아가씨, 어서오십시오."
"아, 집사."
마차의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은 반백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긴 인간의 노인이었다.
그녀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가 이 저택을 관리하고 있는 인간인 모양이었다.
나와 칼리아넬도 그녀를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베리오스가 내가 마차에서 내릴때 손을 내밀었는데,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 마차에 내린다음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안한 듯한 표정으로 내민 손을 등뒤로 집어넣었다.
"뒤에 계신분들은…?"
"아, 손님이에요."
손님, 인가.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이만 가볼까 했지만, 그류벨 이라는 인간을 다시 한번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저기… 보수는 선불로 받았고, 저는 이만 가볼까 합니다."
뒤에서 젊은 인간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베델이었다.
"아, 베델도 저택에 좀 머물다가 가세요. 아무리 보수를 받고 일하셨다지만… 그때 보여주었던 당신의 활약은 그 보수 이상이었어요."
나는 그 상황을 별로 주시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어느정도의 활약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가씨의 말씀대로 머무르다 가게. 난 자네가 다른 무례하고 신의 없는 보통의 용병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 자네는 이 호의를 받아들일만하네."
"아, 저…"
"그렇게 해주실거죠, 베델?"
"예에…"
환하게 미소짓는 에네리아의 얼굴에 그는 얼결에 대답을 한것 같았다.
베리오스는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베델이란 인간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그류벨 님이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용병이란 보수룰 받고 원하는 일을 해주는 직업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상당량의 재화를 쥐어주고 인간 사회의 안내를 시키는것은 어떨까.
인간들의 재화따위 눈깜짝할 사이에 산더미 만큼 창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생각에 빠져있다 고개를 들어 시야에 잡힌 건물의 내관은 외관 만큼이나 대단했다.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이나, 주변 곳곳에 세워진 화려한 장식물들의 배치는 상당히 신경써서 고려한 느낌이 풍겼다.
거의 모든 장식물들이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통일성의 사이로 미묘한 변화가 엿보였다.
감탄할만한, 품격있는 내관이었다.
그리고 이 품격있는 공간의 중심에 그 모든 품격과 화려함을 압도하고도 남을만한 남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오오, 에넬.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정말 보고 싶었단다."
"꺅!, 아… 아버지!"
그류벨이라는 인간은 전에 봤을때의 그 강인하고 굳건한 인상은 다 내팽겨 친채로 에네리아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렇지,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에네리아라는 소녀가 바로 그류벨이 나에게 그런 고결한 의지를 보일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그에게 에네리아는 그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관계, 자식과 부모라는 관계가 바로 나라는 거대한 공포에 맞설수 있는 힘을 주었다. 저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언제까지 저를 어린애 취급하실 거에요!"
"하하, 이 아버지에게 에넬은 항상 어린애란다."
그는 에네리아를 바닥에 내려놓고서야 이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시선은 나에게서 우뚝 멈추었다. 그의 눈이 커지며 역력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설마 이 모습만 보고 내가 백룡, 루루렌칼리체 라는것을 눈치챈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가 칼리아넬이 요정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때 내 옆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의 시력으로 그 정도 거리의 사물을 판별하기란 어려웠으므로 눈치채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역시나 이쪽을 훑은 그의 시선은 나에게서만 오래 머물렀을뿐, 칼리아넬은 금방 스쳐 지나갔다. 이정도라면 그가 눈치챘다고는 생각 할 수 없겠지.
"그런데 저쪽에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저 청년은…?"
"아, 돌아오는 길에 만난 분들이에요. 저분들께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렇구나."
그는 에네리아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고는 이쪽을 주목했다.
"본인은 그류벨 룬헤임 바루에르요. 에네리아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니, 아버지 된 자로서 감사를 표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칼리체 입니다."
"칼리아넬… 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뒤로 쏙 숨어 버렸다. 그류벨의 의아한 눈동자가 이쪽으로 닿는다. 하지만 그는 칼리아넬의 반응을 단순한 수줍움이라고 생각했는지 희미한 미소만 짓고 말았다.
"베델 입니다."
베델은 아까의 약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베델의 모습 역시 이런 화려한 공간에 전혀 위축되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이 있었다.
저런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자들은 모두 그 거대한 존재감이 그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것, 나의 드래곤 아이(Dragon's eye)는 그것을 충분히 꿰뚫어볼 수 있다.
"자, 일단 들어오게. 손님들이 올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손님을 접대할 준비가 갖추어 지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니까."
손님 접대라는 것은 식사를 말하는 것인 모양이었다.
조금 기다리다 우리를 데리고 간 것은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 곳이었다. 그 테이블에는 나는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여러가지의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하긴, 거의 정오를 넘어가는 시간이니… 보통 이때가 인간들이 음식을 먹는 시간이었지. 칼리아넬은 인간들의 음식이 입에 잘맞는지 맛있게 그것들을 먹고 있는것 같았다.
나야 음식이란 것을 먹지 않으니 먹는 흉내만 낼 뿐이지만.
"칼리체 양은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뭐, 특별히 다른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음식들은 모두 훌륭해요, 다만 문제는 제가 소식가라는 점이지요."
"칼리체. 그러다가 당신, 키 안클걸요? 성장기의 소녀는 많이 먹어야 키가 쑥쑥 큰다구요."
그렇게 말하는 에네리아도 많이 먹지는 않는다. 그녀에게 배당된 음식의 양은 내것에 비하면 훨씬 많기는 하지만, 보통의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의 양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나저나 그녀의 말대로 인간들은 십대일때 가장 많은 육체적 성장을 겪으니 그녀의 말대로 많이먹어야 키가 크는 모양이다.
내 현재 키는 인간들의 평균키에 미치지 못하니 그녀가 그런 말을 할만도 하다. 상당히 키가 큰 베델에 비교한다면 지금 내 키는 그의 가슴팍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례되는 말이구나, 에넬. 그러는 너도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잖니?"
"우… 제 입장에선 이것도 많이 먹는 거라구요."
칼리아넬은 그녀의 말에 자신의 접시에 놓인 음식의 양과 에네리아의 접시에 놓인 음식의 양을 비교하는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베델은 그런 칼리아넬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작게 미소지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을 찡긋하며 시선을 돌렸다.
저건, 무슨 의미가 담긴 행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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