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으로 가는 문 -50화-
다음날, 일거리를 찾아 니하크할룬의 거리로 나오긴 했는데…
"카스텔 공화국에서 들여온 야채들입니다-! 한번 보고가세요!"
"거기 가는 아가씨- 요새 델라피르에서 유행하는 최신 의복들 좀 보고가세요! 어머 정말 유행하는 복장이라니 까요-!?"
아무래도 저런 요란스런 동작과 커다란 목소리를 요구하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흐음, 아무래도 로나벨아크하임에게 좀더 자세한 조언을 구할걸 그랬나…
아니, 왠지 그녀석이라면 도움은 되도 내가 난처할 것 같은 일을 알려줄게 틀림없다. 그냥 온전한 내 힘으로 찾는게 현명하겠지.
그나저나 정말 생기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나도 이제 저런 곳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조금 설레는 기분이다. 수천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내가 고작 이런것에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다니, 인간을 가장하고 있는 것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는건 아닐까.
"…"
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정처 없이 이리저리 거리를 걷다 어떤 건물 앞에 멈춰섰다.
별로 볼것없는 초라한 건물이었지만, 내가 이 곳에서 멈춰 선 이유는… 벽에 붙어 있는 하얀 종이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종이에 쓰여 있는 내용 때문이지만.
'단기 고용'
이거… 물론, 일할 사람을 찾는 다는 소리겠지?
끼익-
이곳의 문은 무척이나 낡은듯, 커다란 마찰음을 내었다.
다소 어두침침한 내부, 잔 때가 묻어 있는 나무 탁자, 벽… 모두 하나 같이 오랜 세월을 머금고 있는듯 했다.
"낮에는 술을 팔지 않습니다."
얄팍한 천조각으로 잔을 닦고 있던 중년의 남성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내게 그렇게 말했다.
"바깥에 벽보를 보고 왔는데요."
"음?"
그제서야 남자는 닦고있던 컵을 내려놓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날 보자 놀란 얼굴로 들고 있던 천 조각을 떨어트렸다.
내 모습을 처음보는 인간은 언제나 저런 반응이니, 이제는 놀랄것도 없다.
방금까지만 해도 나는 거리에 있던 거의 모든 인간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으니까…
"아, 아아. 그, 그렇소?"
"한 일주일 정도만 여기서 일을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무, 물론이지! 그럼 오늘부터 일해줄 수 있겠소?"
역시 외모라는건 굉장한 힘을 갖고 있다. 인간들의 시선으로 성인아닌 어린 내게 고용주인데다가 꽤 나이를 먹은 그가 저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니 말이다.
왠지 이 미모를 이용해 재밌는 일을 해볼수도 있을것 같은데…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지.
이 술집… 아, 이곳이 술집이라는 사실을 나는 처음에 모르고 있었다. 그냥 술도 파는 음식점인줄 알았는데, 설마 술만을 파는 곳이었으리라고는…
어쨌든 이 술집의 주인은 내게 맞는 유니폼을 건네며 해야할 일을 알려주었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방긋 웃으면서 인사하는거다. 자, 이렇게."
술집 주인, 그러니까 이름이… 그래, 마커스 라고 했던가. 음, 그는 지금 내게 인사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양손을 배 위에 올리고 허리를 깊게 숙인다.
"어서오세요-!"
뒤이어 나오는 친절한 목소리…
"간단하지? 하지만 이게 가장 중요한 거란다. 손님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려면 일단 그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줘야 하니까. 자, 너도 한번 해보렴."
간단하지만… 왠지 내게는 전혀 간단한 일이 될 것 같지 않다.
"저… 미소를 지을줄 모르는데요."
"뭐…?"
흠, 미소를 짓지 못한다는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주인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아니, 그것보다 그는 지금껏 미소를 한번도 지어본적이 없다는 내게 더 놀란것 같았다.
"…"
한가하군.
왠지 술을 마시려는 손님은 주로 저녁 시간을 이용한다는 근거 모를 말을 듣고 나는 유니폼을 입은채 벽에 기대어 치맛자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이 유니폼… 왠지 가슴쪽이 푹 파여 있고, 치마가 무척이나 짧아 다리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그 때문에 나는 일단 여성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가슴이 너무 파여 있어 여성으로 변하지 않으면 상의가 그냥 흘러내려 버리니 말이다.
설마 고작 이런걸로 내가 성별을 정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뭐, 잠깐 동안 임시로 변한 것이긴 하지만.
"칼리체, 곧 손님이 오실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여성으로 변한 나는 목소리가 좀더 가느다랗고 얼굴선이 여리하게 변해있었다. 눈에 확 들어올만큼 커다란 변화는 아니었지만.
"감이다."
"…"
왠지 아무런 근거 없는 그의 감은, 놀랍게도 맞아 떨어졌다.
끼익-
문이 열리며 여러명의 인간이 웃고 떠들며 이곳으로 들어온다.
자, 앞에 나가서 배운대로-
배위에 양손을 얹은 뒤 허리를 굽히고,
"어서오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와아,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고! 왠 천사같은 아가씨가 이 칙칙한 가게에서…"
"하하, 이 사람이! 칙칙한 가게라니!"
칙칙한건 사실인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탁자위에 맥주가 출렁이는 커다란 잔을 여러개 올려 놓는다. 기존에 있던 손님이나 새로 술집에 들어오는 손님이나 대화의 화제는 모두 나였다.
그들은 모두 자주 이 술집에 출입하던 단골인듯, 주인인 마커스와 편하게 나에 대해 대화하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 주문좀 받아주쇼!"
"아, 네에- 조금만 기달려 주세요!"
무지 바쁘다.
이 인간들이 나를 놀리듯, 저쪽에서 주문하면 이쪽에서 주문하고 또 저쪽에 가 있으면 다른곳에서 나를 불러댄다.
"저… 여기 맥주 두잔이랑 닭 한마리… 요."
왠일로 젊은 남자였다. 지금까지 이 술집에 오던 남자들은 모두 중년의 나이였는데 말이다.
그는 말끝을 흐리며 터질듯 붉어진 얼굴로 어쩔줄 모르며 내 다리나 가슴쪽에 시선을 보냈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네, 맥주 두잔이랑, 닭 한마리 주문하셨어요."
나는 주문을 확인하며 계산서에 주문 목록을 적어 넣었다.
"저, 저기요…!"
"네, 더 주문하실게 있으신가요?"
막 몸을 돌리려다 그의 말에 나는 다시 주문서를 들었다.
"그… 그게, 저…"
그는 시선을 둘 곳을 모르는듯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눈동자를 이러저리 굴렸다. 빨리 주문해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다른곳에서도 주문을 위해 나를 부르고 있단 말이다.
"가, 감자 튀김도 추가해주세요!"
"… 네, 감자 튀김 하나 추가요."
다시 펜을 들고 주문서에 감자 튀김을 써넣었다.
"와하하하하-! 저 청년, 뭐 할것처럼 뜸을 들이더니 고작 감자 튀김 하나 추가라니!"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가 뒤쪽 테이블에서 터져나왔다. 어째 이와 비슷한 상황이 전에도 있었던 듯 한데…
"오늘은 네 덕분에 젊은이들도 이 술집을 찾아오는구나."
내가 술잔을 가지러 카운터 쪽으로 가자 마커스가 은근한 웃음을 얼굴에 띄우며 내게 속삭였다.
"네?"
"원래 젊은이들은 이렇게 낡은 술집은 잘 오질 않거든. 근데 언제 입소문이 퍼져 나갔는지 왠일로 젊은이가 찾아오다니, 다 네 덕분이란다."
뭐, 그 소문이 뭔진 모르겠다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끼익-
이제는 익숙해진 저 마찰음, 또 새로운 손님이 오는 모양이다. 자리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서오세요-!"
난 미소를 지을줄 모르기 때문에 재빨리 허리를 숙여 내 무표정한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근데… 끝이 닳은 저 부츠, 낯이 익다.
고개를 들자, 그곳엔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베델이 서 있었다.
"너, 너어…"
그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어졌다.
"옷차림이 그게 뭐야!?"
으음…?
* 전 이 글을 상당한 장편으로 쓸 생각입니다. 남성 여성 양쪽의 성별을 모두 취할 수 있는 드래곤인데, 한쪽 성별만 정해서 그 긴 이야기를 늘어 놓는건 아무래도 아쉽겠지요.
결론은 딱히 정해지지 않을 거란 이야깁니다.
잠깐 동안 여성이나 남성으로 변해 있을순 있겠지만요.
아니면 이렇게 했으면 글이 더 흥미롭겠다- 하는 부분 있으면 댓글로 이야기해 주세요. 앞으로 이야기를 써 나가는데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아, 그리고 상당한 분량이 올라갑니다. 부디, 여유롭게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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