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으로 가는 문 -96화-
"조금 갑작스럽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결말이지요?"
"칼리체, 너 혹시…?"
난 베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에카테야르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의 아버지에게 안겨 있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것이겠지.
아무튼 이것으로… 그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련한 기억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다는 황금빛 풍경…. 에카테야르의 고향은 노란 벼가 잔뜩 심어져 있는 거대한 농지가 있는 곳이 아닐까.
뭐, 이것으로… 나는 그녀의 고향을 보게될 일은 없겠지.
"정말 너를 얼마나 찾아 해메었던지…! 공주님이 이 서임식에 직접 초대해 주지 않았다면, 너를 절대 찾지 못했을거란다!"
"공주님이…?"
에카테야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공주가 있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공주는 이미 계단에서 내려와 어딘가로 사라진 채였다.
그녀가 직접 베델에게 와서 축하 인사를 해줄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다행이다, 다행이야. 거의 십년 동안이나 너를 찾지 못해 나는 네가… 잘못되기라도 한줄 알았단다. 그런데 이렇게 몸 성한 모습을 보게되니, 정말 다행이야."
그는 계속 다행이란 말을 중얼거리며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눈물이란건 슬플때만 나오는줄 알았는데… 너무 기쁠때 나오기도 하는 군.
"자, 얼른 우리 영지로 돌아가는게 어떻겠니? 네 어미도 너를 보면 기절할만큼 기뻐할 거다."
에카테야르가 당황스런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저는…."
우리를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그녀의 아버지를 향했고, 그녀의 입이 열리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당신이 제 아버지라는게 실감이 나질 않아요…."
"…."
"저는 과거의 기억이 없어요. 제가 기억하는건 요 몇달간의 일 뿐. 거기다 아버지라는건… 어떤 것이지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에카테야르는 천천히 그를 자신에게서 떼어내며,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라는 단어의 뜻을 모른다는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단지,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오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괜… 찮단다. 그런식으로 잃어버린 딸이 완전히 무사하길 바라는건 사치겠지."
그녀의 아버지는 무척이나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에카테야르는 계속 입술을 달싹 거리는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지만 차마 말이 안나오는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넌 분명 내 딸이 맞단다. 내가 네 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하지만 말아다오."
"…."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에, 에카테야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구나."
#
서임식이 끝나고 나와 베델, 에카테야르는 시야가 탁 트여 석양이 잘 보이는 노천 카페로 왔다.
왠지 나른한 기분이다.
베델은 기사가 되었고, 에카테야르는 그녀의 아버지를 만났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모두 끝났다.
"칼리체, 무슨 생각해요?"
빨대를 가지고 커피 위에 잔뜩 얹어져 있는 거품같은 것을 휘젓다가, 옆에서 들려온 에카테야르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다소 복잡한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베델에게 들었어요. 제 아버지… 라는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온건, 당신이 마릴렌 공주에게 한 부탁 때문이지요?"
"응."
눈치가 빠르군.
옆을 힐끗 바라보자 베델이 초조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앞에 놓인 커피에는 전혀 손도 안댄 채다.
"고마워요, 라고 해야할까요."
그녀는 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묘하게 쓸쓸한 표정으로 커피를 한모금 홀짝였다. 컵을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무척이나 섬세해 보인다.
"아버지… 와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에카테야르는 아직도 아버지, 라고 말하는게 어색한듯 하다.
"…."
"아버지는 제가 어릴적에 있었던 일을 잔뜩 늘어놓긴 했지만, 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어요. 아니, 오히려 가슴 한켠이 따스해 지는 느낌이었어요."
글쎄, 나는 홀로 존재하는 드래곤이기에 그녀가 말하는 따스함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는, 꽤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칼리체, 이젠…."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
컵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이젠 우리를 떠나버릴 건가요?"
대충 눈치를 챈건가….
"무슨 소리니?"
"최근, 당신의 행동이… 마치, 상황을 정리하는것 처럼 보였어요. 베델이 기사가 되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듣자 마자, 꼭 기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저에게 제 아버지를 찾아주었지요."
"…."
베델은 아무말 없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컵을 만지작거리고 있는게… 무척이나 불안해 보인다.
나는….
"내 여행은 현자에게 대답하는 것으로 끝이 났단다, 에카테야르."
"현자? 대답이라구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니, 저것은 대답을 바라고서 묻는 것이 아니겠지.
"네 여행이… 끝났다구?"
베델 역시 에카테야르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얼굴을 하고선 내게 물었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가 인간들의 사회에 있을 이유는, 더이상… 없지 않은가.
"네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것 정도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어.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 남아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았지만…."
역시… 라고 해야할까.
아니,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지금까지의 일로 간단히 눈치챘었겠지.
베델과 에카테야르가 그것을 모른척 했던건… 이런 식으로 나마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나는 앉아있던 탁자에서 의자를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리체…?"
"알고 있겠지만, 내 진짜 이름은 루루렌칼리체. 나는 침묵하는 숲과 절멸의 산맥을 지배하는 백룡이에요."
"백룡… 이라구요?"
- 그래, 나는 너희 인간들과는 달리 영원을 살아가는 드래곤이지.
드래곤의 언어인, 만능의 언어가 베델과 에카테야르에게 스며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속에서 퍼지는 내 음성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신은 정말… 인간이 아니군요."
마력을 개방한 내 드래곤 아이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려 하고 있다.
근질근질한 등에서 드넓은 창공을 비행할 수 있는 날개가 돋아나려 한다.
"칼리체…."
- 이제 끝낼 시간이다.
"칼리체!"
베델이 내게 단숨에 달려왔다.
마력을 개방한 나는, 이제 그의 동작을 아주 간단하게 따라잡을수 있었지만… 그의 행동을 피하진 않았다.
그는 나를 자신의 품에 와락, 안아버렸다.
"안돼, 가지마 칼리체-! 언제까지고 곁에 있을것 같던 네가 어째서 이렇게 간단히… 떠나버린다고 말하는거야!"
- 놓아라, 인간.
"… 그런식으로 애기하지마요, 칼리체."
에카테야르가 마치 울음을 터트릴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정말 잔인하군요,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죽었다 살아나 제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고, 이제는 그런식으로 말하며 저희에게서 완전히 멀어져 버리려는 건가요!?"
"…."
깜짝 놀랄만한 반발이로군.
만남과 헤어짐은 언제 어디에서나 찾아온다. 나는 항상 그것에 익숙해져 있지. 다른 세 개체의 드래곤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항상 죽음이란 방법으로 내게 헤어짐을 고하니까.
"베델, 일단은 이 손을 좀 놓아주지 않겠나요…?"
"안돼! 내가 이 손을 놓아버리면, 넌 금방이라도 떠나 버릴거잖아!"
사실 그가 내 몸을 놓느냐, 놓지 않느냐는 내가 이 공간에서 사라지는데 전혀, 라고 할만큼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라도 날… 붙잡고 싶은 것일까.
"이제 가야해요."
"왜, 왜! 어째서! 어째서 지금이여야만 하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리의 곁에 있어 줄 수는 없는 거니?"
가까이서 나를 내려다 보는 베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조금만 더, 라…. 어리석군. 이미 내가 내 본래의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이 관계는 끝이 났다.
이제는 더이상… 예전의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
"칼리체, 너는 나에게… 구원, 이었어."
그는 여전히 나를 껴안고 있는 채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의미없이 마물을 사냥하고, 공허하게 용병일을 하던 내게… 무언가 텅 비어 있는듯한 너는, 내 자신을 비추는 맑은 호수와 같았지."
"…."
"너는 투명한 눈동자로 여과없이 인간을 비추어 내고 있었어. 항상 인간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얼굴로, 너는 아무것도 없던 내게 어떤 열망을 불어넣었던것 같아."
"…."
"… 너를 사랑하고 있어, 칼리체."
사랑.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아주 가까이서 느껴진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두근거림일까, 곧 있을 나의 대답…? 아니면 내가 떠나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 저렇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갖지 못하는 드래곤인 나는, 아마 영원의 끝에 이르기까지 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난 사랑이란 감정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해요."
"칼리체…."
에카테야르는 이미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석양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눈물이 하얀 볼을 타고 내려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난 베델과 에카테야르를 좋아했던것 같아요."
베델은 멍하니 나를 내려다 보다가 나를 꼭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어주었다.
"정말… 떠나야만 하니?"
"…."
이미 대답은 필요 없겠지. 베델은 그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진한 아쉬움에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석양이 사라지고, 밤이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정말로, 나도 저 석양처럼 사라져야 하겠지.
"즐거웠어요."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나는,
- 행복하길.
만능의 언어로 그들의 행복을 강하게 염원한채 그들에게서 모습을 감추었다. 마지막에 본 그들의 슬픈 표정을…,
나는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베델, 그리고 에카테야르….
내게 가장 소중했던 인간들이여, 안녕.
* 이것으로 주인공의 여행이 끝이 났습니다.
* 이제 새로운 챕터로.
* 완결같은 분위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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