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역설법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나는 티레시아스 하하하 까르르르
신들의 목소리를 엿듣고 피조물의 운명을 예언하는 눈 먼 예언자
내가 예언의 노래를 부르면 지상의 생명들은 귀를 막지만
나는 결코 숙명을 피하지 않는다네
검은 것만을 노래한다고 돌을 던지는 이들에게
내 갈라진 목소리의 핵은 숭고한 질그릇이다 일러주어도
나를 반기는 이들은 만나보지 못했네
하하하 까르르르 그래서 이젠 목소리 다듬는 일도
검은 부리에 립스틱 바르는 짓도 그만두었지만
운명을 예언하는 일은 멈출 수 없다네
보이지 않는 눈 대신 반짝이는 지성을 얻은 내게
시력은 효력 없는 키르케의 묘약 같은 것
창공을 비행하며 즐길 수 있는 경관은
이미 쓸모없는 망막 속에 각인되어 있으니
한 겁의 시간을 넘나들며
온 몸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을 노래한다네
누가 들어주겠나, 저 감성과 이성의 조율에 실패한 시인의 이야기를
잘못 이해했네, 세상에 적응한 시인은
감성과 이성의 조율에 실패한 듯 시를 쓰지만
실제로는 어느 하나 밀려서는 안 되지
타협이 나쁘다 말하지 말게나,
줄다리기에서 진 감성은 시인을 철학자로 만들어버리고
줄다리기에서 진 이성은 시인의 삶을 시로 만들어버린다네
삶이 시가 되는 순간 시인은 인간들로부터 내팽개쳐지고
자신이 창조한 시로부터 버림받게 된다는 걸
시인을 필요로 하는 신은 알고 있다네
세상의 등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시인에게
남는 것은 의식뿐이라네
내가 시력을 대가로 얻은 이 모든 권리를
시인은 미련없이 버리고 그 대가로 눈을 얻었다네
순수하게 정제되어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의식의 눈
하하하 까르르르 내가 비밀을 하나 가르쳐주겠네
그 눈은, 신의 질투를 받게 된 것이라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