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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우주에서 돌아오는 중 ☽

하루 혹은 영원

웹소설 > 일반연재 > 시·수필

이웃별
작품등록일 :
2016.02.12 00:11
최근연재일 :
2018.10.23 14:18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7,670
추천수 :
316
글자수 :
20,063

작성
16.02.12 00:52
조회
370
추천
16
글자
2쪽

술렁거림

DUMMY

바람이 불었습니다. 오후 세 시 쯤.

열 살 짜리 꼬마였을 때 가지고 있었던,

주름장식 달려있는 파란 우산을 펼친다면

하늘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우산은 그, 파란 우산이어야만 해요.

열 살 때,

아슬아슬 통나무다리를 하나 건너야만 학교에 올 수 있는

코가 빨갛던 짝꿍에게 주어버린

그 우산.



오후 다섯 시 쯤

와인을 꺼내려고 창고로 사용되는 방 문을 열었다가

벽에 기우뚱 걸려있는

검은 축제를 목격했습니다.

벗겨진 벽지와 너덜한 방풍 비닐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줌 빛은

오히려 축제의 은밀한 공모자였어요.

쿠스코의 닫힌 축제, 닫힌 원 중앙에 몽롱히 서 있다가

검은 가죽 속, 낙서투성이 기타를 투시했습니다.

아니, 바로 그 낙서들을.

내 귀에서 반복되는 단조롭고 규칙적인 멜로디는

낙서들의 아우성이었지요.

마치 주문 같았어요.



코드 잡는 법보다 박자 맞추는 게 더 어려웠던 때에

이런 상상을 했어요.

올리브나무 밑에 모여든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상상.

언어는 없어요. 기쁨의 음향은 수식어가 달린 백마디의 말보다 진솔하지요.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에요.


... 그런 상상.

열 다섯 살이었어요.



이제 파란 우산은 아마도 빨간 코의 짝꿍 손을 떠나

박쥐들에게조차 외면당한채

(박쥐가 사모하는 건 검은 색 우산이라지요)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기타는 사실 고장났어요.

4번 줄이 고정되지 않아요.

악기가게에서 고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고장난 건 기타만이 아니니까.

낙서들만이 열 다섯 살의 서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 중 하나는,


그 사람,

아프리카의 여덟살 난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는군요.

한 아이에게 빛을 선물하고

조용히 흐뭇해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아마도 빛이 나겠지요.



기타의 낙서들이 술렁거립니다

축제는

은밀해야 한다고요.

nabi.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 작성자
    Lv.49 난정(蘭亭)
    작성일
    16.02.12 12:58
    No. 1

    우와! 사진도 멋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2.12 17:13
    No. 2

    감사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페나이
    작성일
    16.02.16 20:21
    No. 3

    추천안할수가 없군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2.16 22:27
    No. 4

    감사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셀폽티콘
    작성일
    16.04.22 02:49
    No. 5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4.22 13:20
    No. 6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Personacon [탈퇴계정]
    작성일
    17.10.29 09:28
    No. 7

    저는 언젠가 한 번 믿음이 견고하다면 진짜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대신 단 한 차례도 의심을 해서는 안 되는데, 그 의심이 사람을 날 수 없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 한 차례의 의심도 없어야 한다는 그 말이 지금 돌이켜보면 참 무시무시한 것 같아요. 'ㅁ'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7.10.29 13:33
    No. 8


    저도 어릴 때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나는 것 뿐만 아니라,
    의심이 하나도 없다면
    아픈 곳이 치유되고 물건을 옮길 수도 있다고요.
    또 죽은 시클라멘이 살아날 수 있다고요 @_@
    정말로, 한 차례의 의심도 없어야 한다는 그 말의 깊이란 참 무시무시한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까플
    작성일
    18.05.21 01:03
    No. 9

    참 이상하죠? 산만하게 여러 내용을 쓰셨는데 전혀 번잡하지가 않은건
    필력이라는 표현으론 평가가 안돼요.
    마치 이것을 보고 있음 또 새로운것을 꺼내는 그런 여유로운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05.22 00:09
    No. 10

    소소한 일상을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이라 여유가 있을 때만 쓴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까플님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타큐
    작성일
    21.11.15 13:41
    No. 11

    문피아에서도 이런 글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1.11.19 22:32
    No. 12

    오래된 글인데 찾아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시고ㅠㅠ 감사합니다. 타큐님!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9ps
    작성일
    23.12.18 13:19
    No. 13

    날았었나... 말없이 계속 걷고 호수엔가 빠지고... 어렴풋한 소설 기억과 제법 아파했던 시절을 떠올려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이웃별님. 따뜻한 연말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3.12.18 20:46
    No. 14

    앗!! 이 오래된 글을 찾아주셨네요.
    부끄러워서 공개했다 비공개로 바꿨다 하다가 그냥 열어뒀어요.
    9pass님도 따뜻하고 건강한 연말 보내세요:D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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