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렁거림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바람이 불었습니다. 오후 세 시 쯤.
열 살 짜리 꼬마였을 때 가지고 있었던,
주름장식 달려있는 파란 우산을 펼친다면
하늘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우산은 그, 파란 우산이어야만 해요.
열 살 때,
아슬아슬 통나무다리를 하나 건너야만 학교에 올 수 있는
코가 빨갛던 짝꿍에게 주어버린
그 우산.
오후 다섯 시 쯤
와인을 꺼내려고 창고로 사용되는 방 문을 열었다가
벽에 기우뚱 걸려있는
검은 축제를 목격했습니다.
벗겨진 벽지와 너덜한 방풍 비닐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줌 빛은
오히려 축제의 은밀한 공모자였어요.
쿠스코의 닫힌 축제, 닫힌 원 중앙에 몽롱히 서 있다가
검은 가죽 속, 낙서투성이 기타를 투시했습니다.
아니, 바로 그 낙서들을.
내 귀에서 반복되는 단조롭고 규칙적인 멜로디는
낙서들의 아우성이었지요.
마치 주문 같았어요.
코드 잡는 법보다 박자 맞추는 게 더 어려웠던 때에
이런 상상을 했어요.
올리브나무 밑에 모여든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상상.
언어는 없어요. 기쁨의 음향은 수식어가 달린 백마디의 말보다 진솔하지요.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에요.
... 그런 상상.
열 다섯 살이었어요.
이제 파란 우산은 아마도 빨간 코의 짝꿍 손을 떠나
박쥐들에게조차 외면당한채
(박쥐가 사모하는 건 검은 색 우산이라지요)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기타는 사실 고장났어요.
4번 줄이 고정되지 않아요.
악기가게에서 고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고장난 건 기타만이 아니니까.
낙서들만이 열 다섯 살의 서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 중 하나는,
그 사람,
아프리카의 여덟살 난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는군요.
한 아이에게 빛을 선물하고
조용히 흐뭇해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아마도 빛이 나겠지요.
기타의 낙서들이 술렁거립니다
축제는
은밀해야 한다고요.
Commen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