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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우주에서 돌아오는 중 ☽

하루 혹은 영원

웹소설 > 일반연재 > 시·수필

이웃별
작품등록일 :
2016.02.12 00:11
최근연재일 :
2018.10.23 14:18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7,687
추천수 :
316
글자수 :
20,063

작성
16.02.12 01:20
조회
244
추천
9
글자
3쪽

니나

DUMMY

키가 작고 약했지만 하얗게 부서지던 입가의 웃음은 비아리츠에서 만난 파도만큼 강렬했지. 약한 것은 아름다워. 너의, 쌍둥이 남동생에게 나누어 줘버린 육신의 기력이 내 눈에는 그렇게 아름다워보일 수 없었다. 햇살 좋은 어느날, 심장을 움켜쥐고 처방전을 쥐어 주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네 눈을 보았어.

그래서 택한 의학이 너 뿐만 아니라 너의 나라 카메룬에서 커다란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는 너의 가슴은 네 눈망울 만큼이나 희고 선명했다. 선명한 것은 가슴을 확 트이게 해.

모호함 속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는 나와는 너무나도 달랐어.

너의, 올곧은 결단력, 단단한 사고방식, 솔직한 하얀 웃음.

내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어.


푸른 타일을 밟고 있는 너의 맨발을 기억해. 너의 반질거리는 노란 발바닥. 겨울에도 양말을 신고 싶어하지 않는 네 발바닥은, 그건 발바닥이 아니라 바닷가에 단련된 매끈거리는 자갈이었어. 차가운 푸른 타일을 밟고 있는 따뜻한 자갈. 아마도 따뜻한 온돌 위에 놓여있는 차디찬 내 발보다 네 발이 더, 발이라고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해.


44mmHg / 88mmHg. 이것이 내 최근 혈압기록이다.

숫자는 그럴듯한 가설보다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착각하면 안되지. 네가 말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무기력의 원인을 혈압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닫힌 마음의 완고함은 네트워크 탓으로 돌려보려 해. 남들처럼. 벽을 허물고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준다고 많은 사람들은 착각을 하지만 사실 이 녀석은 벽을 만드는 장치였지. 그룹과 그룹, 지역과 지역,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사이에 작용하는 초강력 바리케이드이다.

포털사이트에서의 언어는 힘이다. 힘은 때때로 정의를 이긴다. 그건 너와 산드린느 사이의 벽보다 훨씬 단순하고 그래서 견고하지.


오늘은 너의, 비아리츠의 파도와도 같은 그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는 않아. 사람들은 안개 속에 서서 선명해지기를 원하지만 선명해지려면 안개로부터 빠져나와. 너는 말하겠지. 너는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리겠지.

그리고 비아리츠의 해변에서는 푸른 바다 너머 무지개가 선명하게 걸리겠지.

PrincesseAfricaine_1-yi_ran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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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49 난정(蘭亭)
    작성일
    16.02.12 13:01
    No. 1

    푸른바다 가물가물한 저 끄트머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에 무지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림이 연상됩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2.12 17:17
    No. 2

    그런 그림 그려보고 싶어요^^ 난정님.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탈퇴계정]
    작성일
    17.10.29 09:24
    No. 3

    무엇이든 변명할 거리는 찾고자 하면 찾을 수 있는 거 같아요.
    딱 제가 그렇거든요.
    변명이 많아요.
    하지만 문제 인식 또한 제대로 하고 있지요.
    그래서 괴로운 거겠죠.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7.10.29 14:02
    No. 4

    변명은 가끔 필요한 것 같아요.
    아니, 문제를 의식하고 변명을 찾아내는 일 말이에요.
    때로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몰라
    변명조차 필요없을 때가 있으니까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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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길 위의 행렬 +12 18.03.22 157 7 2쪽
40 배고파 +6 18.01.09 129 7 2쪽
39 겨울, 새싹, 봄그림자, 너. +6 17.12.25 133 4 1쪽
38 새신발 +3 17.12.25 87 4 2쪽
37 눈雪 물 +2 17.12.18 119 4 2쪽
36 성냥팔이 소녀에게 +6 17.12.02 132 5 2쪽
35 햇살 좋은 날 +4 17.10.29 146 6 1쪽
34 한 조각의 미스터리 +2 17.10.27 148 5 1쪽
33 너 떠난 길 +12 17.06.23 192 8 1쪽
32 그러라지 17.06.22 161 4 1쪽
31 꽃불 +2 17.02.05 172 5 1쪽
30 표정들 17.02.05 166 4 1쪽
29 Los Planetas 17.02.05 173 4 1쪽
28 미립자의 답시 +3 16.08.03 169 5 2쪽
27 블룸송 16.08.03 158 4 1쪽
26 낙화 +7 16.04.17 146 7 1쪽
25 나는 알비노입니다 16.04.07 178 6 1쪽
24 마른 꽃 +4 16.03.26 205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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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지나가는 길목에 +10 16.03.12 158 7 1쪽
21 창가에서 16.03.12 139 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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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수타사 16.03.10 167 6 1쪽
18 향기의 정체 +2 16.03.08 195 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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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나무 될 때까지 +8 16.02.13 179 9 2쪽
» 니나 +4 16.02.12 245 9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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