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와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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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달콤한 비가 내립니다.
푸른 이끼를 털외투처럼 입고 있는 늙은 대추나무가
빗속에서 늙은 미소를 흩뿌리고 있습니다.
온화하고 은은하게 반짝이기까지하는 미소는
나이만큼이나 신비스럽습니다.
사실 저 나무를 오랫동안이나 보아왔지만
내가 아는 것이란,
바람이 불면 툭툭 부러지는 메마른 가지들과
그 가지에는 도곤족의 물영양 가면처럼 우아한 가시가 돋아있다는 것,
봄에는 연두색 꽃을 다윗의 시처럼 웅장하게 피우며
수 백(어쩌면 수 천) 마리의 토종 일벌들을 불러들인다는 것,
구멍 난 몸통에는 딱새들이 둥지를 튼다는 것,
가을에는 작고 못생긴 열매들로 마당을 어지럽힌다는 것..
정도입니다.
조금 추상적인 면을 곁들여 말하자면
겉모습 만큼이나 기괴하고 고집스럽다는 것,
입이 무겁다는 것, 줄기 밑둥에 심어놓은 국화의 기분에 은근히 신경을 쓴다는 것,
나란히 서 있는 다섯 그루의 대추나무가 사실은 한 그루라는 것, 등이
내가 그에 대해 '아는' 범주에 포함될까요.
그런데 오늘 저 나무에 대해서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면
가지 끝에는 무수히 많은 음표들이 적당한 높이에서
수많은 소리들을 낸다는 것입니다.
마치 늙은 주술사의 손에서 투명하게 흔들리는 산호 악기처럼
온갖 영혼들과 통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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