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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우주에서 돌아오는 중 ☽

하루 혹은 영원

웹소설 > 일반연재 > 시·수필

이웃별
작품등록일 :
2016.02.12 00:11
최근연재일 :
2018.10.23 14:18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7,731
추천수 :
316
글자수 :
20,063

작성
18.03.22 18:38
조회
157
추천
7
글자
2쪽

길 위의 행렬

DUMMY

봄햇살 충만한 마당에 서서

계절이 지나가는 길을 보았어.



지금껏 자연스러웠던 겨울의 흔적이


초록잎을 반짝이며 배시시

고개를 쑥 내민

아직은 꿈을 꾸는 듯한

어린 풀들에게

있던 자리를 내주는 길.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그 길 위라는 걸 알자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심술이 나기도 했어.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을 끼고

가위를 꺼내왔어.


부용화의 마른 꽃대를 자르고

장미덩굴을 가지치기 하고

겨우내 자리를 옮겨 다니던

(달그락 들썩들썩 바스락)

이제 반쯤은 부서져버린 낙엽을 쓸어 담았어.


그래도 심술이 가시지 않았어.



햇살이 충만한

3월이라는 길 위에서

계절의 행렬을 보았어.


꽃다지의 어린 싹들이

묵은 낙엽의 꼬리를 잡고

거대한 무대 위로 등장하면


낙엽들은 슬며시 손을 놓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거야.


그런 식으로 겨울은

자리를 내어주고

흔적을 지우는 거야.



봄 속으로 한 발을 쑥 들이민 듯

화창한 3월 어느 날.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심술이 났어.


질서정연하게 한 방향으로 걷는다는 것이

새로운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흔적을 지운다는 것이

행렬에서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길 자체라는 사실이

새 것과 옛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어쩌면 못마땅했던 거야,

잠시 두려웠던 거야.


산산이 바스러지는 과정이

먼 훗날의 일이 아님을

보았던 거야.


화창한 봄날, 길 위에서.

KakaoTalk_20180317_23323486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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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Lv.79 서백호
    작성일
    18.03.22 20:37
    No. 1

    흐흐흐. 봄이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03.22 22:36
    No. 2

    봄이에요 봄봄 ♪
    그런데 아직 밤이 춥긴 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하늘소나무
    작성일
    18.03.22 21:48
    No. 3

    자연을 사랑합시다!!!
    화창한 봄날 길위에서 시작을 향해 다가가는 끝을 보고계셨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03.22 22:36
    No. 4


    물론 사랑해요! :D
    햇살이 좋아 사방이 반짝이는 날, 문득 시들고 죽은 것들이 눈이 밟히더라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희망녀
    작성일
    18.03.23 05:16
    No. 5

    낙엽이 있어 저 푸르름이 더 화려해 보이는게 아닐까요? 주름 가득한 노인의 미소가 포동포동한 아이의 천진함에 자신의 자리 내어줌이 헛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처럼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03.23 12:16
    No. 6

    맞는 말씀이에요. 희망님. 돌려 말하긴 했지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탈퇴계정]
    작성일
    18.03.23 13:13
    No. 7

    벌써 싹 나왔네요.
    저희 집에도 곧...+ㅅ+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03.24 00:21
    No. 8

    실내에 두었던 시계꽃도 꽃망울이 커졌어요!
    시계꽃 처음이라 설레네요 +ㅁ+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역전승
    작성일
    18.04.11 05:59
    No. 9

    감상 잘하고 갑니다.
    싱그러움을 안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04.12 00:05
    No. 10

    감사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윤도경
    작성일
    18.06.04 01:59
    No. 11

    겨울에게 알려주고 싶군요.
    3월 꽃샘추위도 남아있고
    4월 폭설도 남아있고
    5월 우박도 남아 있으니,
    아직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그러고 보니, 빙하기도 아닌 것이,
    겨울이 점점 길어지는 느낌도 드네요.
    혹시 기억하실지요?
    2000년대 초반에는 3월에 한번씩은 꼭 폭설이 내리곤 했는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06.05 00:52
    No. 12


    그랬군요! 저는 몰랐지만
    가끔씩 엉뚱한 시기에 폭설이 내려
    계절을 깜짝 놀라게 하지요.
    기후가 변하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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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행렬 +12 18.03.22 158 7 2쪽
40 배고파 +6 18.01.09 130 7 2쪽
39 겨울, 새싹, 봄그림자, 너. +6 17.12.25 134 4 1쪽
38 새신발 +3 17.12.25 88 4 2쪽
37 눈雪 물 +2 17.12.18 120 4 2쪽
36 성냥팔이 소녀에게 +6 17.12.02 133 5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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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미립자의 답시 +3 16.08.03 170 5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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