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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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햇살 충만한 마당에 서서
계절이 지나가는 길을 보았어.
지금껏 자연스러웠던 겨울의 흔적이
초록잎을 반짝이며 배시시
고개를 쑥 내민
아직은 꿈을 꾸는 듯한
어린 풀들에게
있던 자리를 내주는 길.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그 길 위라는 걸 알자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심술이 나기도 했어.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을 끼고
가위를 꺼내왔어.
부용화의 마른 꽃대를 자르고
장미덩굴을 가지치기 하고
겨우내 자리를 옮겨 다니던
(달그락 들썩들썩 바스락)
이제 반쯤은 부서져버린 낙엽을 쓸어 담았어.
그래도 심술이 가시지 않았어.
햇살이 충만한
3월이라는 길 위에서
계절의 행렬을 보았어.
꽃다지의 어린 싹들이
묵은 낙엽의 꼬리를 잡고
거대한 무대 위로 등장하면
낙엽들은 슬며시 손을 놓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거야.
그런 식으로 겨울은
자리를 내어주고
흔적을 지우는 거야.
봄 속으로 한 발을 쑥 들이민 듯
화창한 3월 어느 날.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심술이 났어.
질서정연하게 한 방향으로 걷는다는 것이
새로운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흔적을 지운다는 것이
행렬에서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길 자체라는 사실이
새 것과 옛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어쩌면 못마땅했던 거야,
잠시 두려웠던 거야.
산산이 바스러지는 과정이
먼 훗날의 일이 아님을
보았던 거야.
화창한 봄날,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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