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새로운 조우

“글쎄요. 사실 어제까지는 확신이 없었는데, 저쪽의 가일이라는 친구랑 평가전을 하면서 제 한몸 건사할 자신이 생기더군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움찔한 가일이 흔들리는 눈으로 로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에는 자신감 대신 공허한 적의만이 엿보인다.

그는 눈치채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기사의 육체는 이미 로저와의 격차를 인지하고 있는것이다.

“8번대의 기사 다섯명으로 제가 여기서 본부까지 도망쳐서 단장님을 만나는걸 막을 수 있을것 같지는 않군요.”

“......웃기는군. 아무리 같은 마을 출신이라고는 해도 단장이 너같은 평기사보다는 내 말을 들어줄거다. 그걸 알기 때문에 여지껏 찍소리도 못했던 놈이 무슨 생각이지?”

“왜 제가 이런 날에 혼자서 본부를 나서고 있었을까요?”

“뭐?”

로저는 품안에서 출장 신청서를 꺼내 흔들어보였다.

“단장님의 인가를 받고 정식으로 외부 임무를 맡았습니다. 전하께서 제게 직접 하달하신 임무지요. 저는 그저 8번대가 전하의 임무를 방해했다고만 보고하면 그만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왕자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마커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단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로 로저가 왕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도중이었다면 그 후폭풍은 마커스가 감당할 수 있는것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마커스의 우수한 시력은 다이레아의 서명이 적힌 출장 서류가 진짜라는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실 속에 거짓을 숨겼을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에 걸기에는 너무나도 큰 도박이다.

지금 레이포드 왕궁에서 그만큼 왕자의 이름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마커스는 이를 빠득 갈면서 검을 집어넣었다.

“오래 걸릴거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네 거짓말을 확인하는데는 정말 잠깐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까.”

“그동안 저는 궁 밖에 나가있겠군요.”

“......임무에서 돌아오면 두고보지.”

기사들을 이끌고 본부쪽으로 사라지는 마커스를 보면서 로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마커스는 당장 다이레아에게 찾아가 로저가 거짓말을 했는지 확인할것이다.

그리고 로저가 정말로 왕자에게 임무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생각하겠지.

어쨌든 당장 이 자리를 모면한것은 다행이었다.

가일과 같은 평기사라면 몰라도, 기사단의 상석에 위치한 마커스와 같은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아직 없었으니까.

나중에 임무가 끝나고 기사단에 복귀한 이후에 마커스가 다시 시비를 걸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적당히 다이레아에게 붙어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것이다.

그를 상대하는 것은 로저가 제대로 검을 깨우치고 나서도 늦지 않다.

로저는 걸음을 돌려 궁의 정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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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색 아치로 이뤄진 궁의 정문에는 중갑을 착용한 수호병들이 질서정연하게 서서 궁 안팎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기사단의 정복을 입고 있다면 아무때나 드나들 수 있겠지만, 임무를 위해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지금은 수호병에게 출입을 인가받아야 했다.

로저는 수호병에게 다가가 다이레아의 서명을 받은 출장서류를 보여주었다.

“기사님이셨군요. 확인되었습니다. 왕궁 밖으로 나가셔도 됩니다.”

수호병은 그럴듯한 경례자세를 취하면서 로저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제서야 로저는 이 세상에 온 뒤 처음으로 궁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석재로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세워진 무수한 건물들이 사방을 빼곡하게 메웠다.

그 사이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거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왕도 하늘을 부유하는 비행선을 비롯해서 축제라도 벌어진듯 하늘을 날아가는 풍선 무리들.

높게 솟아오른 시계탑이 정각을 가리키자 청명한 종소리가 온 왕도에 크게 울려퍼졌다.

로저는 정처없이 거리를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손님을 찾는 행상인들까지.

음식과 사람내음이 섞인 거리의 냄새와 맑은 하늘 아래 내려쬐는 햇빛의 열기.

게임을 플레이 할때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것들이, 이 세상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게임 안에서 이것보다 더 화려하고 규모가 큰 도시를 몇번이고 오간적이 있었지만, 정말로 실재하는 세상이 주는 감흥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궁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생동감에 로저는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게임 엘스노지아가 아닌, ‘세상’ 엘스노지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정말로 살아숨쉬는 세계에 온 거야.”

로저는 그 뒤로도 한동안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칠이 벗겨진 건물이 없고, 거리에는 굴러다니는 쓰레기도 잘 보이지 않는다. 굶고 있는 아이도, 구걸하는 이도 없다.

엘스노지아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녀봤던 로저는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엇다. 제국도 아닌 왕국이 이정도로 도시를 깨끗하게 관리한다는것은 꾸준한 관심과 투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현왕 대신에 벌써 몇년 째 대신 레이포드를 이끄는 왕자의 업적이겠지. 왕자가 로저를 싫어하는것과는 별개로, 그는 굉장히 뛰어난 통치자였다.

왕자가 권력을 잡기 위해 뭔 짓거리를 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로저가 인정할 만큼.

‘지도자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잘 알고 있는거지. 단순히 게임 NPC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훨씬 더 어려운 상대야.’

로저가 멍하니 생각에 잠긴 사이, 사람이 붐비는 거리 한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꺄아아악!!”

그와 함께 그의 등뒤에서 쇄도하는 다급한 숨소리.

“비켜!!!”

품안에 무언가를 끌어안은 남자가 거칠게 로저의 몸을 밀치려는 순간, 로저의 몸이 그대로 사라졌다.

순간 균형을 잃은 남자가 크게 비틀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곧바로 뛰어서 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런, 도둑이었나?”

그 옆에 서 있던 로저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입맛을 다셨다.

적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무의식적으로 피한 뒤에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상대는 로저를 찾지도 못하고 그대로 도망가버린것이다.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톡톡 치면서 말했다.

“그놈을 잡아야지 피해버리면 어떻게 해? 덕분에 더 귀찮아졌잖아.”

로저는 순간적으로 느껴진 싸늘한 감각에 자신의 어깨를 두드린 상대를 돌아보았다.

포니테일을 한 금발의 여자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갸름한 턱선에 날카로운 콧날, 속눈썹 사이로 빛나는 녹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운 얼굴. 처음 눈이 마주쳤는데도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라는게 느껴진다.

헐렁한 재킷과 검은색 바지을 걸친 가벼운 차림. 복식이 자유로운 엘스노지아에서 그리 유별난 모습은 아니지만 로저는 이 여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로저가 검귀의 재능을 아직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뒤에서 달려드는 사람 하나쯤은 피해낼만큼 감각은 날카롭게 유지되고 있다.

그런 로저의 간극를 아무렇지도 않게 헤집고 들어와 말을 걸 정도라면 그녀 역시 상당한 수준의 마력 사용자라는 뜻이겠지.

그녀의 뒤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중년 부인이 서 있는것을 본 로저가 씩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럼 그쪽이 직접 도둑을 잡아주는게 어떻습니까?”

경비대가 금방 도둑을 쫓을텐데, 왕자의 시선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로저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고.”

근처의 가판대로 걸어간 그녀는 대뜸 상가 벽면에 세워져 있던 깃대를 뽑아 반으로 뚝 부러뜨렸다.

부러진 깃대를 역수로 거머쥔 그녀가 제자리에서 어깨를 뒤로 당기더니 그대로 휘둘렀다.

파앙!!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손에서 떠난 깃대가 무수한 인파 사이를 거짓말처럼 빗겨나가며 이제 막 방향을 꺾어 도망치려던 도둑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콰직!!

“히이이익!!

그 와중에 도둑을 죽이는 대신 옷자락을 꿰어 그대로 벽에 꽃아버린것을 확인한 로저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투창이 아니군.’

주로 사용하는 장비도 아니고, 길거리에 놓인 깃대를 던져서 수십미터 너머의 목표를 정확하게 맞히는동안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내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인외의 경지에 다다른 창술. 이 정도의 기예라면 영웅급 창사가 틀림없다.

이렇게 번잡한 거리의 한복판에서 다이레아에게 필적하는 실력자를 마주쳤다는 기막힌 우연에 로저는 헛웃음을 지었다.

‘게임 안에서 방랑벽을 가진 영웅을 종종 만나도록 설정이 되어있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것도 실제 현실을 반영했던건가.’

여자는 도둑이 깃대에 꿰인채 버둥거리는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환호하면서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사람들 역시 그녀가 보여준 투창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저는 슬쩍 돌아서서 인파 사이를 빠져나갔다.

도둑을 잡기는 커녕 피해버린 치졸한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에 들어선 로저가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영웅과 엮이지 않는게 낫다.’

대륙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영웅급 창사. 그것도 화려한 이목구비의 미인.

이만큼 눈에 띄는 외견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녀의 정체를 모를만큼 로저는 게임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그녀에게 휘둘려봤자 좋을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그녀만한 창사가 왕도에 찾아올 정도라면 보통 흔한 일은 아닐 터. 임무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는 로저는 그런 알지도 못하는 시나리오에 휘말리는것은 사앙이었다.

“왕자의 감시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적어도 몇번은 제대로 결과를 보여줘야겠지...”

“혼자서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거야?”

그 순간 바로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홱 돌린 로저의 옆에서 익숙한 금발의 여자가 씩 웃으면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골목길 좌우를 확인한 로저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것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둑은 잡은 모양이군요.”

“그런 잔챙이따윈 내 손에 걸리면 금방이지.”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면서 요란하게 자신의 무용담을 떠들었다.

들어보니 그 남자를 직접 잡아다 경비대에 넘기고 물건을 되찾아준 다음 사례금까지 받아온 모양이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용돈이 생겼지 뭐야. 오늘은 좀 좋은데서 잘 수 있을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그렇군요. 그래서 왜 제 뒤를 쫓아오신겁니까?”

한참뒤에야 그 자리를 떠났을 여자가 로저와 같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만났을리는 없었다. 그녀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대답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까 보니까, 감이 꽤 좋아보이더라.”

“그게 무슨 뜻입니까?”

“보통 실력이 좋은 녀석일수록 감도 좋은 편인데, 넌 딱히 강해보이지는 않는단 말이야. 그게 신기해서 따라온거야.”

여자는 재밌다는 얼굴로 로저를 쳐다봤지만, 로저는 말문이 막혔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뱉는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은 로저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충]

여캐가 이렇게 꼬이는데 무슨고구마임 ㅋㅋ 주인공 개부러운데

[독자777]

잘 보고 갑니다.
기사단 내부에 왕자의 총애로 빠른 진급을 하는 단장을 질투하는 자들이 단장에게는 못따지니 만만한 부관을 센드백 삼은게 아닌지??

[대구호랑이]

잘보고 갑니다~^^

[ha******]

잼 있어요. 신고된 글이라....?

[숙손통]

게임이니까 개연성 없는 건 뭐...

[紅劍]

진짜 개찐따같네 ㅋㅋ

[[탈퇴계정]]

고구마는 둘째치고 궁내에서 기사단 알력이랍시고 공격을 한다라...일부러 악역 만들려고 발악하는거 같구요. 보니까 앞으로 동료는 여자만 엮을거같은데 히로인만들려고 억지쓰는거같고

[Onionman..]

고구마라기 보단 왕성 밖에 나오더니 개연성 떨어진게 영

[고인물독자]

전개가 답답한건 사실이구만 알바들인가???

[Luden]

왕궁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상급자의 명령도 없이 가서 기사 한명을 막는다...? 이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