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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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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작품등록일 :
2020.05.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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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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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탑의 마법사

DUMMY

다이레아도 공문의 내용에 대해서 약간의 의문만 가지고 있을 뿐 왕자를 의심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원래의 로저를 잘 알고 있는 그녀가 이정도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왕자가 로저의 능력을 믿고 그를 따로 임무에 차출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왕자는 이런 인식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로저를 위험한 일에 은근슬쩍 밀어버리려고 시도할것이다.


짜증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다는것을 알고 있기에 로저는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가 알고 있는 스타팅 옵션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왕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빠르게 성장해 나가는것이 로저가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차출되는 인원중에 마커스의 8번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나와 마커스 사이에 있던 일을 알고 있는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지. 골치아프게 됐어.’


물론 왕자가 마커스에게 따로 언질을 주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행동을 기대하고 8번대를 차출했는지 로저는 알 것 같았다.


“전하께는 다 계획이 있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명령이 내려온 이상 어쩔 수 없죠.”


“알고 있다. 왕자 전하는 이런 일에 허투루 심력을 쓰실 분이 아닐테니.....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거겠지.”


다이레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어색하기만 했다.


왕자 역시 이런식으로 로저를 계속 빼돌리면 그녀에게 의심을 사게 될거라는 사실은 의식하고 있을것이다.


누가봐도 지금 로저를 따로 빼돌리는 왕자의 행동은 합리적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로저를 어떻게든 그녀 옆에서 떨어뜨려 놓아아먄 직성이 풀리는 것이겠지.


앞으로도 왕자는 다이레아가 가진 믿음과 의심 사이의 거리를 계속해서 계산해며, 그녀에게 의심받지 않는 선에서 계속 로저를 밖으로 내돌리려 할 것이다.


그 사이에서 로저는 그녀 스스로 왕자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의심의 싹이 튼것을 확인했으니 충분하다. 아직 그녀에게 속내를 털어놓기에는 주어진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답답한 내심을 억누르면서 로저는 고개를 숙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전하가 내려주신 임무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것 같아서.....”


“.....그래. 다른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면 알려주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로저는 말없이 등을 돌렸다.


집무실을 나온 로저는 곧바로 기사단 본부 밖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임무가 시작되는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사흘 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생각해놓았다.


왕궁 정원을 쭉 가로질러 후문 근처에 위치한 거대한 원형의 건물.


왕립 중앙도서관.


바닥부터 천장까지 맞닿은 선반에 빽빽하게 채워진 책밖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도서관이 그곳에 있었다.


다이레아의 집무실에 있던 서재를 수천배 늘려놓은듯한 엄청난 용량.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보는것만으로 질릴만큼 많은 양의 책이 무더기로 쌓여있었지만, 게임 안에서 제국 대도서관까지 들어가보았던 로저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오직 책만으로 하나의 탑을 쌓아올린 제국의 대도서관과는 달리, 이곳은 그래도 그럭저럭 도서관의 형태를 띄고 있기는 했으니까.


레이포드 역시 자료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는지, 이곳에 쌓아놓은 서적과 문헌의 양은 상당했다.


도서관 구석구석에 꾀죄죄한 차림의 학자들이 주저앉아 퀭한 눈으로 종이를 넘기고 있었다.


로저는 천천히 그들 사이를 스쳐지나가면서 선반에 꽃힌 카탈로그 분류 표를 눈으로 훑었다.


그가 왕도 밖으로 향하는 임무를 앞두고 도서관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검귀...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없는 검사는 아니었을거야.’


그가 가지고 있던 재능을 받아들인지 한달도 되지 않았지만, 로저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이 직감이 보통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고 있었다.


단순히 검술의 재능을 바꿔주는 수준이 아니라, 검을 잡은 순간 아예 사고 방식을 바꿔버리는 이 능력은, 위험했지만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검을 잡아보는 로저가 반평생을 수련한 기사들에게 그럴듯한 승부를 걸 수 있을 정도라는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이제 막 재능을 가져다 사용하는 로저가 이 정도인데, 감각을 평생동안 갈고 닦아 써먹은 검귀에 대해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았을리가 없었다.


로저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왕국의 역사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검귀의 백이 봉인되어있던 검 손잡이가 레이포드에 있었으니, 그의 최후 역시 이 근처였을거라는 계산때문이었다.


키워드는 전쟁과 검사. 전쟁사쪽을 살피면서 개인의 활약에 집중한 파트만을 따로 모아서 확인한다.


이런 방식으로 분류를 해도 로저가 볼 수 있는 책은 수백권을 아득하게 넘겼다.


보는것만으로 의욕이 떨어질만큼 많은 양이었지만 로저는 익숙하게 책 한무더기를 들고 자리를 옮겼다.


이런 식의 자료찾기는 과거 술사 관련 직업으로 플레이할 때 지겹도록 해봤던 일이었다.


아예 도서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자, 금세 그의 주변에 책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졌지만, 로저의 미간은 펴질줄을 몰랐다.


게임에서의 경험으로 이 시대에 활동하는 많은 영웅들을 알고 있었지만, 이 세상의 역사나 과거의 인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으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조차 무시하고 책장을 넘기다 퍼뜩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선반 너머로 흐릿한 주홍빛 노을이 비치고 있었다.


‘도서관 폐관 시간이 언제였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로저가 굳은 다리를 털고 일어나며 비틀거리는데, 옆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중앙도서관은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들을 위해 상시 개방되어 있어요.”


새빨갛고 풍성한 머리를 가진 젊은 여성이 팔짱을 낀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만만한 기세를 풍기는 그녀에게서는 무시할 수 없을만큼 진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선명한 시선으로 로저를 보면서 웃었다.


“기사분이 그렇게 책을 오랫동안 쳐다보는게 신기해서 무심코 말을 걸었네요. 이곳에 처음 오시는것 같은데, 폐관 시간을 확인하려던것 아니었나요?”


“아뇨. 맞습니다. 눈치가 좋으시군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거든요. 그런데 다음날 와보니까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던 할아범이 어제 그자세 그대로 곯아떨어져 있지 뭐예요.”


말하는걸로 보아서는 그녀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머무른듯 한데, 다른 사람처럼 피곤하거나 음침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풍만한 가슴골 사이 걸린 붉은 보석으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본 로저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추켜올렸다.


“마탑 소속이시군요.”


“어떤 마탑인지도 알아보나요?”


“.....이그니토?”


이그니토는 주로 불과 관련된 마법을 다루는 마탑이다.


로저가 자신없이 중얼거린 말에 그녀가 씩 웃었다.


“그쪽이야말로 눈치가 좋은데요?”


로저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생긴것만 봐도 활활 타오르게 생긴 여자가 불의 마법까지 사용한다니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자는 먼저 손을 내밀고 말했다.


“카이나 벨드린이라고 해요.”


“로지스 와이즈먼입니다.”


로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두어번 흔들어준 뒤 물었다.


“이그니토 마탑의 마법사분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의 수는 적지 않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법사들의 수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주로 한가지 개념을 끝가지 파고들어갈 각오가 되어 있는 외골수들이 마탑에 소속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들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일이 드물었다.


하물며 이그니토라면 레이포드가 위치한 대륙 서부와는 완전히 반대방향인, 동쪽 근방에 위치한 마탑이다.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대륙을 횡단할 각오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조사해보고 싶은 사료가 있는데, 제국 대도서관에서도 찾을수가 없더군요. 레이포드는 서부에서는 가장 안정된 치세를 향유하는 나라인 만큼, 자료보관도 잘 되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찾고 있는 자료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사실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카이나가 적당히 대꾸하면 로저도 다시 책을 파고들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로저의 흥미를 끌었다.


“별건 아니지만, ‘로 바이어스’의 사료집을 찾고 있어요. 그 책에 담겨있을 내용이 제가 연구하는 내용과 부합할거라는 확신이 있거든요.”


“......로 바이어스 말입니까?”


“그 책은 일방통행의 묘리를 마력에 풀어내는데 성공한게 틀림없어요. 불의 마법에 그 묘리를 응용할 수 있다면 연구는 더욱 완벽해질 수 있어요.”


수천년전에 존재하던 ‘편견의 법전’이라 불리던 마도서로, 지금의 마법과는 전혀 다른 법칙을 내포하고 있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유물이다.


실제로 게임 안에서도 몇가지 시나리오를 진행하면 마도서를 복원시키는것이 가능한데, 그것을 소유한 마법사의 경우에는 ‘편향마법’이라 불리는 상당히 독특한 마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로저는 마도사로 플레이하면서 실제로 그 책을 손에 넣은 기억이 있었다.


정확한 공략법을 대라고 하면 가물가물하지만, 적어도 관련된 단서가 어디 남아있는지는 안다.


무심코 그녀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려고 입을 벌렸던 로저는 아차하고 입을 다물었다.


굳이 상대에게 거저로 정보를 넘겨줄 필요는 없었다. 로저는 짐짓 모른체하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렇군요. 저는 검술을 향상시키고 있어서 이름난 검사과 관련된 서적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기사답군요. 소득이 좀 있었나요?”


“아뇨. 워낙 양이 많고 또 여기저기 분산되어있어서 어렵네요.”


“저랑 상황이 비슷하네요. 아예 단서를 찾지 못한건 아니지만, 너무 뜬금없거나 맥락이 끊겨서 그럴듯한 논리로 연결하기 힘들정도예요.”


카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쓸데없는 이야기였네요. 로지스 경도 금방 원하는 자료를 찾길 바랄게요.”


그녀가 도서관의 책들 사이로 사라진 뒤 로저는 다시 책을 펼쳤지만 결국 집중하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잘만하면 마도서에 관한 단서를 대가로 카이나의 힘을 빌릴수도 있겠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암흑 제국의 시나리오가 출현한만큼 로저는 이번 왕자가 내려준 임무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짐작하고 있었다.


조사 명목으로 움직이게 되는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적지 않은 소란이 일어날 터.


그런 상황에서 화력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마법사의 존재는 굉장한 도움이 될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탑의 마법사가 왕국에서 진행하는 작전에 손을 거들어줄 수 있을까.’


괜히 접근했다가 자신이 로 바이어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여지만 주고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다면 곤란했다.


특히 이 왕궁 안쪽은 오롯이 왕자의 눈이 뻗어있는 장소. 왕자에게 발각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만한 이득을 얻을 수 있어야 했다.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로저는 결국 책을 덮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이미 왕궁의 하늘은 노을이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맑은 밤하늘에 떠오른 별빛을 바라보면서 기사단 숙소로 돌아가던 로저는 저 앞에서 흔들리는 새빨간 머리카락을 보고 멈칫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마주칠지 알 수 없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순식간이었다. 로저는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카이나.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로지스 경?”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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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이데르타 +18 20.06.11 29,680 92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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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기척 +17 20.06.10 30,150 921 13쪽
33 남부 기사단 +19 20.06.10 30,298 951 13쪽
32 길잡이 +22 20.06.09 31,474 96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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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메인스트림 네피로스 +22 20.05.27 37,036 1,083 11쪽
17 왕도 지하수도 +18 20.05.26 37,050 1,05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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