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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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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작품등록일 :
2020.05.18 17:10
최근연재일 :
2020.08.19 13:0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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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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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721

작성
20.05.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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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확신을 더하다

DUMMY

“훌륭한 도박실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매일 그의 멱살을 쥐고 싶은 손님들이 찾아오는것처럼 보였습니다.”


로저의 농담에 크레시에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빈말로라도 성실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그런 단점이 무색할 만큼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건 인정할수밖에 없군요.”


로저는 동의했다. 음울하고 예민한 성격과는 다르게, 란티스가 가진 지성은 날카롭고 예리했다.


누구라도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면 그가 지닌 명석함을 금세 눈치챌 수 있으리라.


왕자와 비견되는 식견과 판단력을 가졌다는것은 보통 재능이 아니었다. 그건 란티스 역시 능히 한 세력을 이끌만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만큼 여기저기 원한을 사고 있기도 하죠.”


“말솜씨가 시비를 걸리기에 적당하긴 했습니다.”


로저는 그것 역시도 동의했다. 크레시에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잠시 버벅였다.


“.....저는 기사단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그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따지자면 서로 거래를 주고받은거나 다름없었지만, 그만한 사람이 허무하게 죽는걸 보고 싶지는 않군요.”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의리는 없지만, 도움은 주고 받을 수 있을정도의 관계다.


크레시에는 노골적으로 그것을 로저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로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기사단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는 크레시에 대신에, 로저가 대신 란티스를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로저는 남은 커피를 비우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시선이 로저를 따라 움직였다.


“란티스가 저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건 그가 크레시에 경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저는 그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다분히 회의적인 로저의 말에 크레시에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제가 크레시에 경에게 적지않은 도움을 받은건 사실이죠. 란티스가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한다면, 이번처럼 그가 죽지는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 이상은 오로지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겠죠...”


크레시에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감았지만, 그녀가 입으로 말하는것보다 훨씬 란티스를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물론 로저는 란티스를 도와주려다 제국 고위층에게 미움을 사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르윈의 경우처럼 적당히 간을 보다가 선을 넘는다 싶으면 손을 빼는것이 가장 중요했다.


란티스의 협력자로 제국에게 눈도장이 찍혀버리면 이렇게 거리가 떨어진 왕국에서는 어떻게 대처할 방법도 없다.


제국을 완전히 뒤엎어버릴게 아니라면, 적어도 중반부까지는 제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로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크레시에가 그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오늘 새삼스럽게 부관을 다시 보게되는군요.”


“네?”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부관은 제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요. 거듭 감사 인사를 하긴 했지만, 그 이상에 대해선 깔끔하게 선을 긋더군요.”


“그건....”


“이해했어요. 그만한 인내심과 신중함 없이 그동안 기사단에서 버틸수는 없었을테니까요.”


역시 대화 간간히 크레시에가 언급했던 제국 관련 이야기들은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직접 그것을 언급한 이상, 로저도 굳이 모르는 척 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그걸 경에게 물어보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


로저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크레시에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저는 일개 기사단원일 뿐입니다. 너무 과대평가하시면 곤란합니다.”


“결코 그런 의도는.....”


그녀가 어째서 제국에서 왕국으로 넘어왔는지 이야기를 시작하면 로저는 싫어도 그녀의 시나리오에 말려들수밖에 없다.


도움을 받은건 어쩔 수 없지만, 로저는 아직까지는 그녀의 이야기에 손을 댈 생각이 없었다.


크레시에 역시 방금 한 말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고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단장의 부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는건 어떻습니까?”


로저는 그녀의 말에 웃는 표정으로 검을 톡톡 두드렸다.


“크레시에 경이 제게 한수 가르침을 내려주시는걸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죠.”


말이 새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크레시에는 어찌되었든 지금 기사단에 몸을 담고 있고, 다이레아의 편을 들겠다고 로저의 앞에서 직접 말한 사람이었다.


그녀 역시 로저가 이 상황을 웃어넘기는 것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부관은 생각보다 짖궂은 사람이군요.”


“그래서 제 도전을 안받아주실겁니까?”


로저가 놀리듯이 말하자, 그녀 역시 희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한수 정도로 되겠어요?”



#



“왜 이렇게 된거지?”


로저는 검집을 붙잡은 채 혼자 중얼거렸다.


13번대가 머무르는 별채. 안쪽에 마련된 연무장에 십수명이 넘는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모시는 번대장의 성향을 닮기라도 한건지, 그들은 누구 하나 소란 피우는 일 없이 차분하게 연무장의 중앙으로 시선을 던졌다.


메마른 먼지가 풍기는 단단한 땅 위에 선 두 사람.


크레시에에게 대련을 요청했던 로저와, 냉막한 표정으로 검을 들고 있는 크레시에...의 부관 밀리아가 거기 있었다.


연무장의 뒤쪽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크레시에가 눈이 마주친 로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깨너머로 지켜보던 밀리아가 나직하게 말했다.


“로지스 경. 13번대를 너무 무시하시면 안됩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기사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혼자서만 대장님과 어울리려 하시다니요.”


“아니, 그냥 대련을 부탁한것 뿐인데....”


로저는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했지만, 밀리아는 더 이상 들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녀는 팔을 곧게 뻗어 발검하더니, 더할 나위없이 깔끔한 동작으로 검끝을 들어 로저에게 겨누었다.


“평가전에서 가일을 때려눕힌 솜씨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8번대는 두들겨패도 시원찮은 이들 뿐이라 저도 즐겁게 구경하긴 했지만, 그것과 이건 엄연히 다른 문제지요.”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로지스 경이 내민 도전장은 대장님이 아니라 같은 부관인 제가 받아드리는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


더없이 차분한 표정으로 그렇게 단언하니 뭐라 할말도 없지만, 로저는 여전히 억울한 심정을 감출수 없었다.


크레시에와 둘이 대련하고 끝났어야 할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은 순전히 밀리아 때문이었으니까.


집무실 밖에서 로저와 같이 나오는 크레시에에게 일정을 물어보더니, 그녀가 로저와 대련을 할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대뜸 순서를 가로채고 나선것이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다른 13번대 단원들도 불러모아 로저가 빼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니, 어쩌지도 못하고 엉겁결에 연무장까지 끌려나올수밖에 없었다.


‘크레시에와 대련을 하는게 더 나았을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검귀의 재능을 제대로 체화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강한 상대와 검을 맞대는것이 좋았을테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자리에서 밀리아와의 대련으로 크레시에에게 로저의 재능을 보여주는것이 최선일테지.


말뿐이 아니라 로저에게 정말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크레시에와 보다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터.


그것 역시 기사단에 아군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로저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이렇게라도 보여주는 수밖에.’


마음을 굳힌 로저도 자세를 잡고 왼손을 검에 얹었다.


그 모습을 본 밀리아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평가전에서도 한번 보았지만 로지스 경은 왼손잡이셨군요.”


“손을 바꾼것만으로 많은것이 달라보여서 마음을 정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군요. 검을 쥐는 손을 바꿔쥐는것으로 재능을 꽃피우다니, 저는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사람의 재능이란 날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니까요.”


“......?”


묘하게 단정적인 밀리아의 말에 로저가 미간을 찌푸리는사이, 그녀는 자세를 낮추고 곧바로 땅을 박찼다.


쐐애애액!!


거친 바람소리를 뒤로 하고 단번에 거리를 좁힌 밀리아가 아래쪽에서부터 검을 낮게 치켜올렸다.


카아앙!!


빠르게 검을 뽑아낸 로저가 밀리아의 검격을 막아내자, 그녀는 뒤로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앞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고, 서로의 호흡이 닿을만큼 가까워지자 밀리아가 속삭였다.


“저 역시 홀로 검술을 수련하던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


“그때 본 당신의 검술은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고작 쥐는 손을 바꾼다고 갑자기 실력이 상승한다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콰드득!!


칼날을 옆으로 비틀면서 밀리아가 더욱 로저를 밀어붙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눈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얕은 눈속임으로 가린 실력은 금세 드러나기 마련이죠. 이 대련에서 그 실체를 모두 까발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당신이 얻는게 뭡니까?”


로저는 이 딱딱해보이는 기사가 어째서 이렇게 자신을 싫어하는지 궁금해졌다.


밀리아는 겉으로는 로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것처럼 행동했지만, 지금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는 짙은 적의가 섞여있던 것이다.


의외로 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쪽이 무슨 속임수를 사용하든 알바는 아니지만.... 주제를 모르고 저희 대장님과 어울리려 드는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카아앙!!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검을 떨치며 뒤로 물러났다.


“재밌군요.”


로저가 말했다.


“누가 정말로 주제를 넘은건지 확인해봅시다.”


밀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희미한 조소를 지었을 뿐이지만, 그녀가 로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다시 손을 들어올린것은 밀리아가 먼저였다.


그녀는 오래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는 듯이, 성큼 앞으로 다가와 로저의 눈앞에서 그대로 검을 휘저었다.


검을 쥔 손목이 다채롭게 회전하면서, 허공에서 대번에 십수가지 검로를 그려냈다.


검술이 어찌나 정교하고 교묘한지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그 궤적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연무장 한가운데 펼쳐진 십수발의 검극은 빠르게 사방을 회전하면서 상대를 찾아 헤매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일제히 그 머리를 로저에게 돌리고 쏟아져내렸다.


촤아아악!!


춤사위와 같은 검격이 난무하는데도 그 중심에서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표정에는 일체의 흔들림도 없다.


그것은 밀리아가 단지 타고난 재능이나 오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전사라는 증거.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검술에 매진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정교함이 이미 그녀의 오른손에 쥐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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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데르타 (3) +19 20.06.12 29,407 914 14쪽
37 이데르타 (2) +19 20.06.12 29,268 887 13쪽
36 이데르타 +18 20.06.11 29,680 922 14쪽
35 전투 시작 +25 20.06.11 30,260 1,026 14쪽
34 기척 +17 20.06.10 30,149 921 13쪽
33 남부 기사단 +19 20.06.10 30,297 951 13쪽
32 길잡이 +22 20.06.09 31,473 960 13쪽
31 전조 +17 20.06.09 30,916 1,004 14쪽
30 아이바르의 숲 +35 20.06.08 31,356 964 13쪽
29 제국 조사전단 +20 20.06.07 31,992 981 12쪽
28 내부의 적 +18 20.06.06 32,824 964 13쪽
27 숲의 종족 +24 20.06.05 32,797 1,040 11쪽
26 한명 더 +20 20.06.04 33,591 969 13쪽
25 두번째 임무 +14 20.06.03 33,566 970 12쪽
24 협력의 대가 +20 20.06.02 33,785 996 12쪽
23 마탑의 마법사 +21 20.06.01 35,178 988 12쪽
22 차출 +26 20.05.31 35,424 1,038 11쪽
» 확신을 더하다 +30 20.05.30 35,947 993 11쪽
20 대담 +35 20.05.29 36,833 1,063 13쪽
19 대립 +28 20.05.28 37,100 1,064 12쪽
18 메인스트림 네피로스 +22 20.05.27 37,035 1,083 11쪽
17 왕도 지하수도 +18 20.05.26 37,050 1,052 12쪽
16 길잡이 반셀 +23 20.05.25 38,899 1,044 12쪽
15 구명의 은혜 +34 20.05.24 39,301 1,129 13쪽
14 첫번째 임무 (3) +24 20.05.23 40,109 1,1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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