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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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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작품등록일 :
2020.05.18 17:10
최근연재일 :
2020.08.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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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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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차출

DUMMY

이 세상에서 막 깨어났을때의 그였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순식간에 그녀의 검격에 난도질당해서 반불구가 되었으리라.


그녀의 검격은 다채롭고 예리했으나 그만큼 악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로저는 지금 밀리아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녀의 검에 대한 모든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을 쥐고 살의를 들이마신 순간부터 평소에도 예민한 감각이 미친듯이 끓어오르며 내면에서 거대한 염상을 빚어낸다.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직관이 머릿속을 관통한 순간 몸이 움직였다.


뛰쳐나가듯 두발 앞으로 걸어나가며 검을 쥔 왼손을 크게 돌린다.


그에 맞춰 로저의 칼날이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어깨부터 무릎사이를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느릿하게 내려앉는 순간.


터터터텅!!


밀리아가 밀어넣었던 검격들이 일제히 다른 방향으로 튕겨나가며 목표를 잃고 사그라들었다.


“....!!!”


그녀가 쥔 검이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위로 크게 솟구치는것과 동시에 로저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로저는 시간이 멈춘것처럼 느릿한 시계속에서 밀리아의 눈동자가 크게 뜨이는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녀도 로저의 반격을 아예 고려하지 않은것은 아닐것이다.


밀리아는 그를 철저하게 짓밟기 위해서 오히려 방심하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로저가 이런 식으로 밀리아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칠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겠지.


방심이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 잠깐의 틈새. 그 사이를 뚫고 훤히 벌어진 그녀의 흉곽에 칼날을 꽃아넣는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강렬한 직감이 온몸을 지배하는 사이, 검귀의 기억이 겹쳐지며 밀리아의 가슴에서 피분수가 뿜어져나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로저는 그 환상을 따라 검을 꽃아넣는 대신, 발로 그녀의 명치를 걷어찼다.


뻐억!!


“큽!!”


로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밀리아가 뒤로 쭈욱 밀려났다.


그녀는 잠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지만,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로저를 노려보았다.


“.......”


한번으로는 인정하기 어렵겠지. 로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땅을 박찼다.


일체의 속임수도 없는 곧은 찌르기. 빠르지만 궤적을 읽힌 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격이다.


밀리아는 깔끔하게 로저의 검을 피해냈지만, 등을 훤히 드러낸 그의 모습을 보고도 멈칫거리더니 결국 공격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뒤로 물러선 그녀의 모습을 로저는 의외라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너무 뻔해서 오히려 함정이라고 생각한건가. 상당히 합리적인 스타일이군.’


발로 걷어차이고도 이성을 잃지 않기가 쉬운 일은 아닐텐데, 밀리아는 상당한 절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 전처럼 과감하게 접근하는 대신, 로저의 양 옆으로 움직이면서 빠르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 간합을 맞추는것을 실패했으니 밖에서부터 상대를 파악해나가겠다는 의도인가.’


무시하던 상대에게 예상외의 일격을 얻어맞은것 치고는 아주 냉정하고 효율적인 전투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상위 기사의 부관을 자처할 수 있는 것일까.


밀리아가 어째서 로저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 도움은 되지 않는군.’


밀리아의 검을 맞받아치면서도 로저는 가일과 대련했을때와 크게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그의 직관은 여전히 밀리아의 움직임을 간파하는것도 모자라,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가능성을 잡아내고 있었지만 그건 이미 평가전에서 경험했던 감각이었다.


재능과 기억, 육체의 합일. 그리고 검귀가 사용하던 ‘탁천마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더욱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굳이 따지자면, 처절한 전투끝에 상대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검귀가 평생동안 추구해왔던 자극이.


“역시 직접 죽이면서 확인해야 하나....”


로저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혼잣말에, 밀리아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 직후, 밀리아의 검격에 더욱 거센 마력이 실리기 시작했다.


콰앙!!


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진 순간 로저도 상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밀리아는 더없이 차분한 표정으로 로저의 등 뒤를 응시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누군가를 쳐다보는것이 아니라, 극도의 집중상태에 들어간 징후임을 깨달은 로저가 눈살을 찌푸린 순간.


쐐애액!!


밀리아가 양손으로 거머쥔 장검이 새하얀 섬광으로 흩어지더니, 벼락같이 로저의 정수리에 떨어져내렸다.


에제키엘 제식 검술

백화(白華)


쩌저저적!!


한낮의 연무장에 새하얀 번개가 내리꽃혔다.


일시적으로 주변이 살짝 어두워질만큼 엄청난 광량에 모두가 살짝 눈을 찌푸렸지만, 크레시에는 담담히 그 빛살의 너머에 시선을 던졌다.


먼지가 그치고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두 손을 들고 있는 로저의 목에 밀리아가 손날을 들이밀고 있었다.


“밀리아 경. 만족하십니까?”


로저가 웃으면서 묻자, 밀리아는 말없이 손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발밑에 떨어진 그녀의 검을 주워들고는 로저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짧은 식견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일로 경의 실력을 너무 쉽게 판단한것 같군요.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본 13번대의 다른 기사들이 웅성거렸지만, 밀리아는 신경쓰지 않았다.


중요한것은 저기 멀리서 이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크레시에가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느냐였으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로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밀리아 경이 했던 말들. 크레시에 경께서 정말로 듣지 못했을까요?”


“.......”


로저는 대답하지 못하는 밀리아를 놔두고 연무장을 벗어났다.


석연치 않은 결말이었지만, 13번대의 기사들은 어쨌던 로저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들의 부관과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는 것만으로 로저는 존중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이건 뜻하지 않은 수확이군.’


들려오는 박수소리를 한귀로 흘리면서 로저는 생각에 잠겼다.


‘설마 검귀의 기억이 상대가 사용하는 검식을 알아볼 줄이야.’


말 그대로였다. 로저는 밀리아가 검식을 사용하는 순간, 그것이 에제키엘 제검술의 ‘백화’라는 검식임을 단번에 깨달았던 것이다.


백화는 순간적으로 마력을 칼날에 집중시켜 위력을 폭발시키는 기술로, 사용하는 순간 칼날이 새하얀 빛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일반적으로 왕도 기사단의 기사들이 레이포드 제식 검술을 사용한다는것을 생각하면, 아마 밀리아가 따로 습득한 기술임이 분명해보였다.


왕실은 기사들이 레이포드 제식 검술을 익히고 있다면 실력 향상을 위해 다른 검술을 익히는 것을 막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검식임에도 그 이름과 정체를 알아챘던것은 분명히 로저의 안에 내재된 검귀의 기억때문이겠지.


로저는 내심 자신이 흡수한 혼백이 얼마나 미친 놈이었는지를 깨닫고 혀를 내둘렀다.


사람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던 이 살인귀는 상대가 사용하던 기술은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던것이다.


“밀리아가 저지른 무례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로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크레시에가 피곤한 표정으로 눈가를 누르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군요. 그때 평가전을 제대로 보았다면 결코 그런 말은 하지 못했을텐데...”


역시 그녀는 밀리아가 로저에게 속삭였던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로저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나중에라도 크레시에 경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이런 상황에서 로저가 계속 13번대에 머물러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가 곧바로 자리를 피해주는것이 크레시에나 밀리아에게는 상황을 수습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로저의 말을 들은 크레시에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미 격렬한 대련을 마치고 나왔으면서도 상대를 요청하는 로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꼭 시간을 내도록 하죠. 오늘 부관의 실력을 보니 저도 방심할 수 없을것 같더군요.”



#



“로저, 오늘도 시간이 안될것 같구나.”


다이레아는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무수한 서류더미가 산처럼 높게 쌓여져 있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거죠.”


로저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크레시에와의 일이 있은 이후, 로저는 휴식을 취하면서 며칠동안 다이레아와 대련을 해보기 위해 기회를 노렸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평소에도 그녀가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가 이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왕자가 2기사단의 단원들을 차출할 예정이라는 공문을 보내온 후, 다이레아는 하루도 빼먹지 않았던 개인 단련까지 생략해야 할만큼 바빠진 것이다.


그동안 기사단이 수행하던 여러가지 업무들을 궁내 다른 부서에게 일시적으로 인수인계 하는 모든 과정을 그녀가 직접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서류를 만지다 슬쩍 로저를 올려다본 다이레아가 말했다.


“예전에는 네게 이런 일까지도 도움을 받았었지.”


예전의 로지스 와이즈먼은 실제로 부관으로서 그녀의 업무를 보좌했던 모양이지만, 지금의 로저에게는 없는 기억이다.


그녀의 말을 받아줄 수 없었던 로저는 웃으면서 적당한 대답을 골랐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십니까?”


“후후,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 널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


“기사단에서 일했던 네가 날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겠지. 하루하루 버티기 힘겹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그립구나.”


다이레아는 아련한 표정으로 먼 곳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회상하는 시간은 로저가 함께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저 적당히 맞장구를 칠수밖에 없었다.


“원하신다면 잠깐이라도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됐다. 당장 임무를 나서야 하는 기사에게 무슨 일을 맡기겠느냐.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 보낸 공문을 네게도 보여줘야겠군.”


서류들을 뒤적거려 종이 한장을 찾아낸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구나.”


다이레아의 손에 잡혀 있는 공문을 슬쩍 본 로저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것 같았기 때문이다.


“2번대, 8번대, 11번대를 동원하는것도 모자라서 로저 너까지 임시 지휘요원으로 차출할 계획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공문에는 2기사단 3개 번대와 로지스 와이즈먼의 이름을 정확하게 언급하며 아이바르에서 일어난 대규모 습격사건의 조사를 명령하고 있었다.


공문 아래쪽에서 푸른 빛으로 빛나는 왕자의 인장을 보면서 로저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왕자가 날 치워버리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군. 이렇게 될 거라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말이 좋아 지휘요원이지, 그보다 직위가 높은 기사단의 각 번대장이 로저의 명령을 들을리가 만무하다. 그냥 로저를 임무에 참가시키기 위한 쓸모없는 구실에 불과했다.


문제는 왕자가 이렇게 대놓고 로저를 밖으로 내돌려도 누구도 왕자의 의도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거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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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국면 전환 +30 20.06.13 30,276 995 14쪽
38 이데르타 (3) +19 20.06.12 29,407 914 14쪽
37 이데르타 (2) +19 20.06.12 29,268 887 13쪽
36 이데르타 +18 20.06.11 29,680 922 14쪽
35 전투 시작 +25 20.06.11 30,260 1,026 14쪽
34 기척 +17 20.06.10 30,149 921 13쪽
33 남부 기사단 +19 20.06.10 30,297 951 13쪽
32 길잡이 +22 20.06.09 31,473 960 13쪽
31 전조 +17 20.06.09 30,916 1,004 14쪽
30 아이바르의 숲 +35 20.06.08 31,356 964 13쪽
29 제국 조사전단 +20 20.06.07 31,992 981 12쪽
28 내부의 적 +18 20.06.06 32,824 964 13쪽
27 숲의 종족 +24 20.06.05 32,797 1,040 11쪽
26 한명 더 +20 20.06.04 33,591 969 13쪽
25 두번째 임무 +14 20.06.03 33,566 970 12쪽
24 협력의 대가 +20 20.06.02 33,784 996 12쪽
23 마탑의 마법사 +21 20.06.01 35,178 988 12쪽
» 차출 +26 20.05.31 35,424 1,038 11쪽
21 확신을 더하다 +30 20.05.30 35,946 993 11쪽
20 대담 +35 20.05.29 36,833 1,063 13쪽
19 대립 +28 20.05.28 37,100 1,064 12쪽
18 메인스트림 네피로스 +22 20.05.27 37,035 1,083 11쪽
17 왕도 지하수도 +18 20.05.26 37,049 1,052 12쪽
16 길잡이 반셀 +23 20.05.25 38,899 1,044 12쪽
15 구명의 은혜 +34 20.05.24 39,301 1,129 13쪽
14 첫번째 임무 (3) +24 20.05.23 40,109 1,1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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