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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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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작품등록일 :
2020.05.18 17:10
최근연재일 :
2020.08.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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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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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립

DUMMY

은발 머리를 이마 위로 쓸어넘기면서 왕자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수십명이 넘는 사상자가 있었고, 그 몇배의 실종자가 생겼네. 족히 다섯개가 넘는 마을이 전멸했지. 이건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피해일세. 레이포드가 공격받고 있어.”


로저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지만,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네피로스의 후예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놈들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남부 아이바르에 위치한 거대 수림으로 도주했다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지. 이미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남부 기사단이 흉수를 잡기 위해 파견되어 있고, 보다 확실한 해결을 위해 왕실 기사단의 단원들도 일부 차출할 예정이네.”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는 왕자의 시선에서 로저는 2기사단에서 누가 차출될 예정인지 금세 깨달았다.


왕자는 그에게 다음 임무를 내려주는 명목으로 다시 그를 왕도 밖으로 내보낼 생각인 것이다.


절로 짜증이 치밀었지만 로저는 내색하지 않은채 서둘러서 대답했다.


“제 힘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거들겠습니다.”


“고맙네. 확실히 자네는 뛰어낸 인재가 틀림없군. 다이레아의 신뢰를 받는 이유가 있었어.”


“........”


“휘장에 대한것은 내가 사람을 시켜 따로 조사해보도록 하지. 기사단의 병력 차출에 관해서는 따로 공문을 내릴 터이니 그동안은 대기하고 있도록하게.”


로저는 말없이 몸을 깊숙하게 숙이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안쪽에서 문이 닫히는것을 확인한 뒤에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저런 임무에 그를 보내놓고 기사단에서 내칠만한 명분을 만들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모르는척 하기도 힘들었다.


정작 로지스 와이즈먼을 기사단에 꽃아넣은것이 왕자라는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이레아의 호감을 사기 위해 했던 일이지만, 정작 이렇게까지 신경에 거슬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게 분명했다.


힘을 키우기 전까지는 왕자에게 트집잡힐만한 거리를 줘서는 안될텐데,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아서 머리가 아팠다.


예전에 레이포드에서 몇번 플레이 했었을때 이런 과정에 대해서는 소홀했기에 더욱 그랬다.


“힘들어 보이는군.”


왕자의 궁을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곱슬머리의 남자가 복도 벽에 등을 기댄채로 로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전에 왕자의 등 뒤에 서 있던 바로 그 기사였다.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로저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섞였다. 남자의 기척은 로저의 예민해진 감각으로도 잡아낼 수 없을만큼 흐릿했던 것이다.


곱슬머리의 기사가 그런 로저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느낌이 좋군. 저번과는 아예 다른 사람인것 같아.”


“.........”


“오해하지는 마. 그냥 신기해서 그런거니까. 저번에 전하를 보러 왔을때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는데, 오늘은 온몸에 칼날을 두른것같아. 짧은 사이에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건가?”


“그렇게 쉬운일이었다면 제가 일개 단원으로 머무르고 있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로저는 태연하게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덜컥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얼마나 감이 좋으면, 한번 보는것만으로 로저가 변했다는것을 이리 쉽게 알아챈단 말인가.


곱슬머리의 남자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착각이겠지. 그때는 인사를 못했지만, 난 글렌이라고 한다. 왕자 전하의 호위를 맡고 있지. 쓸만한 기사를 보게되어 기쁘군.”


“로지스 와이즈먼입니다.”


“널 따로 불러내어 일을 맡기는걸 보면 전하도 네 기민함을 알아본거겠지. 오래지 않아 더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겠어.”


“하하.....”


글렌이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는걸 알았지만, 로저는 굳이 그 오해를 고쳐주지는 않았다.


로저가 난감한 웃음을 짓자 글렌은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바쁜 사람을 불러세운건가? 미안하군. 나중에 보자고.”


“죄송합니다.”


궁을 완전히 빠져나온 뒤에야 로저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저렇게 감이 좋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신경이 깎여나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던것이다.


로저가 검귀의 백을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직관과는 달리, 글렌의 감은 원래 그가 타고난 재능이 분명했다.


저런 감각을 가지고 왕자의 호위를 맡고 있는 만큼, 글렌의 실력 역시 로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겠지.


“갈길이 멀다, 멀어....”


로저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기사단 본부로 복귀했다.


정문에서 경비를 서는 병사들에게 복귀 신고를 대충 마치고 단장실로 올라가자, 다이레아를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나무와 책 냄새가 풍기는 단장실에 앉아있던 그녀는 로저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저, 돌아왔구나.”


“그럼요. 임무 따위는 금세 해치우고 왔습니다.”


다이레아의 표정은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그를 반기는 그 모습에 로저의 입가에도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는 로저의 웃음을 보고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단장실 안쪽 소파에 앉았다.


로저가 맞은편에 앉자 그녀가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그리 위험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네. 사실은.....”


왕자가 내려주었던 임무와, 그가 했던 말을 들려주자 자연스럽게 다이레아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했다.


“전하께 왕국 곳곳에서 습격이 일어났다는 언질은 들었지만, 상황이 정말로 좋지 않은 모양이군. 왕도 기사단까지 동원되야 할 정도라니...”


왕도를 지키는 1, 2기사단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외부 문제에 동원되는 일이 드물었다. 기사단의 전력이 외부로 빠진다면 왕도에는 공백이 생길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 인원만 차출하는 만큼 큰 문제는 없을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굳이 네게 그런 말을 하셨다는건.....”


다이레아가 살짝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 역시 왕자가 로저를 밖으로 보내려는 낌새를 눈치채고 있는것이다.


로저는 굳이 말을 하는 대신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 굳이 왕자의 속내를 떠벌리면서 그녀를 부추겨봤자 별다른 소득도 얻을 수 없다.


그녀처럼 진중하면서도 결단력있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주는것이 훨씬 효과적임을 로저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굳이 따지자면 로저는 왕자의 계획에 오히려 찬성하는 편이었다.


걸출한 재능을 얻어서 질좋은 토양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실전이라는 물을 주지 않으면 실력은 성장하지 않을테니까.


지금 로저에게 필요한것은 왕궁 안에서 얌전히 보호받는것이 아니라, 다소 위험하더라도 직접 몸을 부대끼면서 실전감각을 늘려가는 것이다.


실전경험을 통해 머릿속에 존재하는 기억과 몸의 움직임을 일치시킬수만 있다면, 로저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이런 속내는 싹 감춘 채, 로저는 일부러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절 단장님의 부관으로 임명해주신것이 바로 전하 아닙니까. 이제와서 그분의 뜻이 변하셨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겠죠.”


“........”


다이레아는 숨이 막히는 듯한 얼굴로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로저는 그 시선을 받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을 나서기 전에 그녀를 한번 돌아본 로저가 억지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지금 당장 기사단을 완전히 떠나는것도 아니니까, 너무 마음쓰지 마십쇼. 혹시 압니까? 제가 단장님만큼 강해지면 전하가 제 부탁을 들어주실지.”


그녀의 눈빛이 살짝 변하는것을 보면서 로저는 천천히 집무실 문을 닫았다.


이 정도 밑밥을 깔아놓는 정도라면 괜찮겠지. 운이 좋다면 영웅급 기사인 다이레아에게 직접 대련을 지도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로저는 기사단 본부를 나와서 숙소쪽으로 향했다.


다이레아에게도 보고를 마쳤으니 공식적으로 지령이 내려올때까지는 쉴 생각이었던 것이다.


본부와 숙소 사이에 있는 정원을 지나는데, 마침 그 사이를 가로지르던 한 무리와 딱 마주쳤다.


“......와이즈먼 부관.”


마커스와 8번대 기사들의 서슬퍼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로저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수가.


뱀처럼 얇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마커스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는 우리가 왕자 전하의 뜻을 몰라보고 실례를 했지.”


“.......”


“이번에도 내 부탁을 거절할 만큼 중요한 볼일이 있는지 궁금하군.”


로저는 왼손을 검에 얹은채로 마커스를 응시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8번대의 평기사들은 더이상 로저가 신경써야 할 상대는 아니었다.


검귀의 감각을 얻은것만으로 로저는 이미 그들보다 더 높은 경지를 엿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8번대의 수장이자, 기사단의 간부 자리를 꿰차고 있는 마커스는 이야기가 달랐다.


왕국에서 난다긴다하는 기사들을 모두 모아놓은 왕도 기사단에서도, 극소수의 엘리트들만이 거머쥐는 기사단 수뇌부의 자리.


그것만으로도 마커스의 재능이 그의 저열한 성품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선택받은 이들만이 도달한다는 영웅급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마커스는 왕국을 통틀어 최상위권의 실력을 가진 엘리트 나이트였다.


‘넘지 못할 상대는 아니지만, 쉽게 닿을 만한 수준도 아니야.’


내면에서 솟아오른 직관이 선명하게 유불리를 예견하는 만큼, 그 사이의 간극까지 실감한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승부를 겨뤄볼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이레아에게 미리 말을 좀 해둘걸 그랬나.’


설마 임무에서 복귀하자마자 이렇게 딱 마주치게 될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번과는 다르게 상당히 과묵하군. 믿을만한 뒷배가 사라지니 입을 다무는건가?”


로저가 계속해서 침묵하자, 더욱 짙은 웃음을 지은 마커스가 한발 앞으로 나오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계집애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다고 모두 해결될거라....”


“마커스 경. 부관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에 마커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8번대의 뒤쪽에서 기사 한명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기사의 백금색 머리칼을 확인한 마커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크레시에 경이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그 사이 로저의 옆으로 다가온 크레시에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급한일이 아니라면 부관을 데려가고 싶군요. 와이즈먼 경과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꽤나 성급하신것 아닙니까? 분명히 제가 먼저 부관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허공에서 두 기사의 시선이 부딫혔다.


8번대 기사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크레시에의 시선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 싸늘한 크레시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 마커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말 여기서 한번 해보자 이겁니까?”


“저는 이미 부관과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집니다!!”


쾅!!


분을 이기지 못한 마커스가 주먹을 움켜쥐자 날카롭고 서슬퍼런 마력이 사방으로 뻗치며 피어올랐다.


그 강렬한 압박에 정원에 화사하게 피어있던 꽃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크레시에의 옆에 서 있던 로저는 마커스가 내뿜은 마력에 내심 감탄했다.


가볍게 주먹을 쥐었을뿐인데도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은 로저의 예상을 초월했다. 적어도 마력량이라는 부분에서 로저는 마커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빨리 방법을 찾기는 해야겠군.’


마력의 부족은 전투에 있어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페널티가 된다.


다행히 로저는 마력을 늘려주는 유물, 영약, 술법, 혹은 무술이나 마법까지도 두루두루 알고 있는만큼, 후천적으로 마력량을 늘리는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일단 왕도에서 벗어나 왕자의 눈을 피한 뒤에야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기사들의 대립은 한층 가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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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난입 +19 20.06.13 29,271 935 14쪽
39 국면 전환 +30 20.06.13 30,277 995 14쪽
38 이데르타 (3) +19 20.06.12 29,408 914 14쪽
37 이데르타 (2) +19 20.06.12 29,268 887 13쪽
36 이데르타 +18 20.06.11 29,680 922 14쪽
35 전투 시작 +25 20.06.11 30,260 1,026 14쪽
34 기척 +17 20.06.10 30,149 921 13쪽
33 남부 기사단 +19 20.06.10 30,297 951 13쪽
32 길잡이 +22 20.06.09 31,474 960 13쪽
31 전조 +17 20.06.09 30,917 1,004 14쪽
30 아이바르의 숲 +35 20.06.08 31,357 964 13쪽
29 제국 조사전단 +20 20.06.07 31,992 981 12쪽
28 내부의 적 +18 20.06.06 32,824 964 13쪽
27 숲의 종족 +24 20.06.05 32,798 1,040 11쪽
26 한명 더 +20 20.06.04 33,592 969 13쪽
25 두번째 임무 +14 20.06.03 33,566 970 12쪽
24 협력의 대가 +20 20.06.02 33,785 996 12쪽
23 마탑의 마법사 +21 20.06.01 35,178 988 12쪽
22 차출 +26 20.05.31 35,424 1,038 11쪽
21 확신을 더하다 +30 20.05.30 35,947 993 11쪽
20 대담 +35 20.05.29 36,833 1,063 13쪽
» 대립 +28 20.05.28 37,101 1,064 12쪽
18 메인스트림 네피로스 +22 20.05.27 37,035 1,083 11쪽
17 왕도 지하수도 +18 20.05.26 37,050 1,052 12쪽
16 길잡이 반셀 +23 20.05.25 38,899 1,044 12쪽
15 구명의 은혜 +34 20.05.24 39,301 1,129 13쪽
14 첫번째 임무 (3) +24 20.05.23 40,109 1,1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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