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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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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작품등록일 :
2020.05.18 17:10
최근연재일 :
2020.08.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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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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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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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해묵은 악연

DUMMY

“정말로 다급한 일이었다면 인재를 끌어모아 조사단을 편성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데 고작 부관 한명에게만 단독 임무를 할당하는건 그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나요?”


“........”


“이런 말이 실례가 될 수 있다는건 알지만, 왕궁 안에서 부관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기사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왕자 곁에도 우수한 기사들이 수두룩할텐데 굳이 부관을 지명했다는건....”


로저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로 이런 대답을 원했기 때문에 일부러 그녀에게 임무에 관한 이야기를 흘린것이다.


왕국 출신이 아닌 그녀라면 왕자의 명성이나 평판에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지금 로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장님은?”


“제가 받은 임무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모르십니다.”


“그걸 굳이 제게 이야기했다는 건.... 실수가 아니군요.”


두어번의 문답만으로 순식간에 정답에 도달한 크레시에를 보면서 로저가 씩 웃었다.


“맞습니다.”


다이레아에게 사정을 설명한다면 그녀 역시 로저의 편을 들어주겠지만, 왕자의 총애를 전적으로 받고 있는 그녀를 설득하기에는 적지않은 시간이 걸릴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왕자가 바로 로저를 그녀의 부관으로 임명해준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왕자가 쓰고 있는 가면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아....”


크레시에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함께 달콤한 향내가 복도를 감돌자 로저가 움찔했다.


“잠깐 이야기만 나눌 생각이었는데..... 부관은 상당히 수완이 좋군요.”


“그만큼 제 사정이 다급하다고 생각해 주시지요. 그냥 해본 말에 불과하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예요. 다른 사람도 아닌 제게 이런 말을 했다는것 자체가 부관의 역량을 증명하는 셈이겠지요. 부관을 도울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검푸른 제복 상의에 손을 넣고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작은 은빛으로 빛나는 새 모양의 브로치. 새의 눈동자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크레시에는 그 브로치를 잠깐 쳐다보다가 로저에게 건넸다.


“이걸 왕도 서쪽 끝에 위치한 도박장에 있는 란티스라는 남자에게 보여주세요. 그가 아직 이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겁니다.”


“.......제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크레시에의 말에 로저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지금 돌아가는 정황으로 보아서는 그녀가 제국에서 왕국으로 넘어올때 사용했던 수단을 로저에게 가르쳐주는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만약 로저가 작정하고 이 브로치를 이용해 신원을 파헤치기 시작하면 지금껏 감춰왔던 그녀의 비사를 전부 까발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상한 임무를 받았다는 사정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선심을 쓸만큼 크레시에는 호인이 아니다.


크레시에가 대답했다.


“제가 처음 기사단에 들어왔을때, 부관이 홀로 검술 연습을 하는것을 본 적이 있어요.”


“네?”


“기사라고 하기 힘들었던 조악한 검술을 오늘 보여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 저는 짐작이 가지 않는군요.”


“.......”


“그런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들었을때는 거절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멍하게 서 있던 로저는 은빛 브로치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 빚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그래, 오늘부터란 말이지?”


다음날, 로저는 일어나자마자 미리 싸두었던 가방을 들고 다이레아의 집무실로 향했다.


출장 신청서를 작성한 뒤 그녀에게 제출하자 다이레아가 꼼꼼하게 그가 작성한 신청서를 읽었다.


“적어도 4일 안으로는 돌아올 계획입니다.”


“생각보다는 이르군.”


“전하께서 빠르게 성과를 보길 원하시더군요.”


“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다이레아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전하는 은근히 성급하신 편이지. 하지만 외부로 출장을 나가면서 궁을 왕복하는것은 시간 낭비가 상당히 심할텐데....”


다이레아에게는 임무 내용을 제대로 말해준 적도 없지만, 그녀는 벌써부터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는듯 했다.


로저는 이 조치가 왕자가 그를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서라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딴소리를 했다.


“왕도 근처를 벗어나지는 않을 예정이니 큰 문제는 없을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지나치게 효율과는 거리가 먼 문제야. 전하께서 하시는 일이니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알았다.”


마치못한 태도로 신청서 하단에 서명을 남긴 그녀가 서류를 로저에게 돌려주었다.


로저는 그것을 품안에 챙긴 뒤, 다이레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겠지만, 몸 조심할 수 있도록 해라.”


글쎄, 적어도 지하수도에서 기다리고 있는게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닐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로저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무력을 손에 넣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그것을 이야기하는것은 시기상조다.


지금 왕자의 치세는 완벽한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영민한 이들은 그의 뛰어난 능력 뒤에 숨겨진 균열을 눈치채기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왕도에 다가올 재앙은 더욱 거대하고 위험해질테고, 단지 로저를 멀리 치워버릴 명목으로 미리 조치를 취하지 않은 왕자의 실책이 드러나겠지.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면서 천천히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것이 바로 레이포드 왕국을 거점으로 삼기 위한 공략의 단초였다.


“이런 일이 귀찮아서 레이포드에서 플레이를 별로 안해봤던 거였지....”


새삼 어째서 과거의 자신이 산속에 틀어박혀 주술사 플레이를 하고 있었는지를 되새기면서 로저는 궁 밖으로 향했다.


기사단 본부를 나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왕궁의 대정원을 가로지르는 외진 골목길이 나왔다.


본부에서 정문으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지만, 궁 사이로 비집고 억지로 터낸 곳이라 공적인 업무 시에는 이용하기 어려운 길이기도 했다.


길 양옆에 세워진 가로수 사이로 들어선 순간 로저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다.


쉽사리 잡히지 않는 애매한 감각에 머뭇거리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감이 좋군.”


쌔애액!!


뒤쪽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로저는 왼발을 축으로 있는 힘껏 몸을 비틀었다.


상반신을 홱 돌린 순간 은빛의 섬광이 그의 가슴팍을 비스듬히 스쳐지나갔다.


조금만 늦게 움직였어도 바닥에 내장을 쏟아냈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상황에 로저는 난데없이 검을 휘두른 상대를 노려보았다.


“마커스 경, 이게 무슨 짓입니까?”


“경이라고? 설마 네게 그런 말을 들을줄이야.”


마커스가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를 좁히면서 코웃음쳤다.


그와 동시에 골목길 저편에서 여러명의 기사들이 나타나 널찍하게 두 사람을 둘러쌌다.


그 기사들 사이에 가일 스코필드의 얼굴이 있는것을 확인한 로저가 혀를 찼다.


지금 이게 누구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그제서야 이해했기 때문이다.


마커스는 손에 쥔 검을 가볍게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내게 무릎까지 꿇으면서 검을 가르쳐달라고 빌던 녀석이 많이 컸어. 그때 철저하게 짓밟아놨다고 생각했는데, 내 실수군.”


“........”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를 배워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주제를 잊어먹으면 안되지..... 이제와서 그렇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줄 알았나?”


그 말을 듣고나서야 로저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늘어나지 않는 실력에 몸부림치던 로지스 와이즈먼이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러 다니다 마커스에게 발목이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8번대에 소속된 가일이 그 과정에서 로저의 검술을 보고 그를 경멸하게 된 거라면 지금껏 이해가 가지 않았던 가일의 적대감 역시 납득이 된다.


이런 식으로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생길때마다 ‘엘스노지아’를 좀 더 꼼꼼하게 플레이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지만,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가정일 뿐이다.


문제가 뭔지 알았으니, 이젠 해결해야 할 시간이었다.


“후우.... 마커스 경.”


로저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제가 어떤 말을 했든, 어떤 약속을 했든간에 모두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군요. 심신이 미약한 상황에서 했던 약속들을 이행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런 말이 나올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8번대의 다른 기사들이 입을 벌리고 로저를 쳐다보았다.


정작 마커스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로저를 노려보면서 싸늘하게 대꾸했다.


“머리가 아예 맛이 가 버린모양이군. 그때도 단장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지랄하던 놈이 이제와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냐?”


“음, 그래도 아주 멍청한 놈은 아니었군요.”


“뭐?”


예전의 로지스 와이즈먼은 마커스에게 약점을 잡혔다고 이것저것 퍼주는 멍청한 짓거리는 하지 않은 모양이다.


결말이 뻔한 협박을 들어주는게 얼마나 안좋은 선택인지 알고 있긴 했던건가.


저 뱀눈의 기사에게 얽매여있는게 없다는것을 확인했으니 남은건 이 몸의 주인이 남겨놓은 악연을 청산하는것 뿐이었다.


따분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로저가 말했다.


“기사단의 번대를 지휘하시는 분이 고작 저같은 평기사를 협박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간의 정을 봐서 단장님께 말씀드리는 일은 없을테니 오늘 이후로 안좋은 감정들은 모두 털어버리기로 하지요.”


당연하지만 로저가 이렇게 말한다고 마커스가 곧이곧대로 수긍하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에 분노한 기사들 중 한명이 곧장 마력을 일으키며 로저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대장님 앞에서 자꾸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거냐!!”


파앙!!


로저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피했는데도 북을 두드리는 듯한 웅장한 소리와 함께 희미한 진동이 전해져온다.


단지 손바닥을 휘둘렀을뿐인데도 이 정도의 여파.


마력을 사용하는 초인들의 힘은 평범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강대함을 품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서 로저가 고개를 저었다.


“말을 들을 생각이 없군요.”


고작 이런 말에 곧장 폭력을 휘두르는것을 보면, 그동안 8번대가 예전의 로지스 와이즈먼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만하다.


재능을 가지고 시비를 걸면서 툭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두들겨 팼겠지.


“이새끼가 어디서 그렇게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로저에게 손바닥을 휘두르던 기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기사의 복부에 정확하게 꽃혀들어간 로저의 발차기가 그대로 위로 올라가며 그의 턱까지 후려갈겨버렸기 때문이다.


퍼어억!!


“크웁..!! 이, 이 개새끼가.... 으웨엑...!!”


단 한번의 발차기에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나가떨어진 기사가 새파래진 얼굴로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로저는 엎드려서 토사물을 쏟아내는 그의 앞에 서서 빙그레 웃었다.


“사실 저도 말로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뻐엉!!


축구공을 걷어차듯이 기사의 머리통을 발로 후려치자, 입안에 머금고 있던 이물질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면서 기사가 쓰러졌다.


로저는 ‘엘스노지아’에서 이런 방식의 시나리오를 무수히 많이 접해보았고, 또 폭력을 사용하는데 주저하는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극단적인 상황에는 극단적인 대처가 필요한 법.


다짜고짜 기사 하나를 박살내고 나자 그제서야 주변의 분위기가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로저는 마커스를 돌아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볼일이 있다면 빨리 말해주시죠. 저도 시간이 남아돌아서 마커스 경을 상대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제정신이 아니군. 여기서 정말로 한번 해 보겠다는거냐?”


검을 움켜쥔 마커스가 으르렁거리자 로저도 왼손을 검에 가져다 댄 채로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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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난입 +19 20.06.13 29,276 935 14쪽
39 국면 전환 +30 20.06.13 30,282 995 14쪽
38 이데르타 (3) +19 20.06.12 29,415 914 14쪽
37 이데르타 (2) +19 20.06.12 29,275 887 13쪽
36 이데르타 +18 20.06.11 29,687 922 14쪽
35 전투 시작 +25 20.06.11 30,272 1,026 14쪽
34 기척 +17 20.06.10 30,160 921 13쪽
33 남부 기사단 +19 20.06.10 30,304 951 13쪽
32 길잡이 +22 20.06.09 31,478 960 13쪽
31 전조 +17 20.06.09 30,924 1,004 14쪽
30 아이바르의 숲 +35 20.06.08 31,363 964 13쪽
29 제국 조사전단 +20 20.06.07 32,002 981 12쪽
28 내부의 적 +18 20.06.06 32,829 964 13쪽
27 숲의 종족 +24 20.06.05 32,802 1,040 11쪽
26 한명 더 +20 20.06.04 33,598 969 13쪽
25 두번째 임무 +14 20.06.03 33,571 970 12쪽
24 협력의 대가 +20 20.06.02 33,789 996 12쪽
23 마탑의 마법사 +21 20.06.01 35,184 988 12쪽
22 차출 +26 20.05.31 35,429 1,038 11쪽
21 확신을 더하다 +30 20.05.30 35,952 993 11쪽
20 대담 +35 20.05.29 36,840 1,063 13쪽
19 대립 +28 20.05.28 37,107 1,064 12쪽
18 메인스트림 네피로스 +22 20.05.27 37,043 1,083 11쪽
17 왕도 지하수도 +18 20.05.26 37,057 1,052 12쪽
16 길잡이 반셀 +23 20.05.25 38,907 1,044 12쪽
15 구명의 은혜 +34 20.05.24 39,310 1,129 13쪽
14 첫번째 임무 (3) +24 20.05.23 40,117 1,1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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