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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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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작품등록일 :
2020.05.18 17:10
최근연재일 :
2020.08.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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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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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구명의 은혜

DUMMY

시큰둥하게 대꾸하는 란티스를 보면서 로저는 어째서 크레시에가 란티스를 추천했는지 이해했다.


그는 로저의 설명을 듣자마자 앞뒤 정황을 파악하고 인과를 추측하면서 결론을 내놓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과감한 추론을 사용해서 결론을 이끌어내고는 있지만, 로저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선에서 추측을 그치고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단순하게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순간순간 달라지는 변수를 순식간에 고려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내놓는 타입으로, 이건 란티스라는 남자가 머릿속에서 즉각적으로 손익계산이 되면서 동시에 판단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레사아가 란티스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로저가 어떤 문제를 들고가든 그럴듯한 방법을 제시해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결과적으로 그는 로저에게 대폭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물론 길잡이 하나만을 데리고 곧바로 지하수도로 내려가라는 극단적인 조언이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는 로저가 감내할만한 것이었다.


만약 해낼수만 있다면 적어도 임무를 완수하는 시간을 사흘은 앞당길 수 있을것이 분명했다.


“이해했어. 상당히 과감하고 무모한 방법이군.”


“하지만 효과적이지. 그렇지 않냐?”


란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잠깐 브로치를 내려다보다 그것을 로저에게 휙 던졌다.


그는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걸 가지고 올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찾아오지 마라.”


“왜지?”


“오늘 널 도와준건 그 여자에게 빚진게 남아있기 때문이지, 네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니까. 그리고 넌 딱봐도 계속 귀찮은 일을 들고 올것처럼 생겼어.”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로저는 다시 란티스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였다.


“왕도 구석에서 도박사 노릇이나 하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은건가?”


“흐흐....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러지 않았다면 그 여자를 도와주지도 않았을거다.”


란티스가 음침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럼 이 나라를 떠나는게 좋을거야.”


“.....뭐?”


“제국도 안전하지 않지. 개인적으로는 저기 남쪽에, 열대우림으로 가득한 깊은 숲을 추천한다. 그런 곳이 아니고서야 네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걸.”


“지금 나랑 말장난이나 하자는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다만 이제 이 대륙에서 혼란을 피할 수 있는곳은 없을테니까. 미리 경고해두는거다.”


메인스트림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로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로저는 란티스가 그의 말을 무시할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의외로 진지하게 그 말을 듣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 돈에 눈이 먼 멍청이들이나 상대하고 있다보면 마음이 편해지지. 난 이제 지쳤어.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꺼져라.”


“.......”


로저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술집을 나왔다.


란티스처럼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자가 게임에서 로저의 눈에 띄지 않았던것도 이해가 간다.


아마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큰 흐름을 피해 숨어 지내던 것이겠지.


하지만 결국 날카로운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고, 지금처럼 언젠가는 싫어도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바로 술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금발의 여자처럼.


그녀가 바로 란티스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로저의 말에 아르윈은 돌아보지 않은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사람들 구경하는것도 나름 재밌더라고.”


로저는 말없이 그녀의 뒤에 서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 녀석이 도와준대?”


“큰 기대를 한건 아니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은 말을 하더군요. 그럭저럭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아르윈은 그렇게만 말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쉴새없이 재잘거리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둠으로 뒤덮이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면서 로저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쪽도 해야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생각해보니 그것 때문에 이제 너랑 같이 다니지는 못할것 같아. 별일 아니기는 하지만, 안하면 또 귀찮을 일이 생기거든.”


아르윈의 대답은 평범했지만, 로저는 그 평온한 말속에 아주 옅은 살기가 배어있는것을 눈치챘다.


“........”


로저는 그녀를 보면서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내면에서 걷잡을 수 없이 크게 자라난 강력한 직관이, 그녀가 다음에 할 일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추측도 하지 않았지만 로저는 이미 그녀의 목표가 누구인지 확신하고 있었다.


주머니에 양손을 꽃아넣은 아르윈의 뒷모습을 보면서 로저가 말했다.


“대화를 좀 했습니다.”


“.........”


“하루하루 졸부들의 돈을 뜯어먹으면서 사먹는 술 한잔에 만족하고 있더군요.”


머리 뒤로 묶어내린 그녀의 금발이 흔들리는것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고, 누구와 원수를 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뭘 바라고 있는지는 알겠더군요. 그냥.... 조용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르윈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로저가 쓴웃음을 지었다.


“란티스를 죽이두록 놔두지는 않겠습니다. 이대로 못본 척 넘어간다면 그건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제 책임일테니까요. 절 도와준 사람을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굳이 말하는것조차 부질없는 심증들 뿐이었지만 결론을 내리기에는 충분했다.


아르윈이 계속 말하던 해야하는 일.


그건 바로 혈법사인 란티스를 찾아내 죽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로저는 기이할정도로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르윈이 고개를 돌렸다.


“참 감도 좋아...... 짜증날 정도로.”


그녀의 얼굴에는 더이상 미소가 떠올라 있지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말이 뭔지도 정확하게 알고 말이야.”


“.......”


로저는 내심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녀를 떼어놓고 왔어야 했으니까.


설마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로저가 찾고 있는 사람과 똑같을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완전히 몸을 돌린 아르윈이 속삭였다.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그늘 아래서 어둡게 빛났다.


“내가 하려고 한다면, 막을 수 있겠어?”


“제가 말입니까?”


로저가 쓰게 웃었다.


아직 허리춤에 검이 걸려있기는 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영웅이란 힘의 흐름을 주도하는 대륙의 핵심 전력.


레벨업 시스템의 엄청난 성장성을 가지고도 플레이어가 영웅급 무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본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했다.


그런 존재에게 아무런 시간 투자 없이 재능만으로 맞서는 일이 가능할리가 없었다.


아마 지금 당장 맞붙는다면 검을 뽑기도 전에 살해당할것이다.


아르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어쩌겠다는 거야?”


“뭘 어쩌겠습니까?”


로저가 어깨를 으쓱였다.


“직접 막아서는 것 말고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죠. 예를 들면.... 지금 당장 란티스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쳐줄수는 있겠군요.”


“그런 대답을 기대한게 아닌데?”


“아니면 아르윈님이 마음을 바꿔먹으면 되겠군요. 왕도 한복판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싸울 필요도 없어지겠죠.”


“........”


아르윈이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자 로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르윈이 달려든다면 로저는 깔끔하게 란티스를 살리는 일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란티스를 죽게 내버려두고 싶진 않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아르윈과 싸웠다가는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게 될 테니까.


왕자의 임무를 실패하는건 물론이고, 어쩌면 로저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부담까지 지워가면서 란티스의 목숨을 구해줄 의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랜 침묵끝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만두자. 시작하기도 전에 들켜버린 이상 의미는 없을테니까.”


아르윈은 김이 팍 새버린 것처럼 밍밍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요.”


로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제멋대로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악인은 아니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도박이었다.


혼란을 일으키는걸 좋아하지 않고서야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을 죽이겠다고 난동을 부리지는 않을테니까.


다행스럽게도 란티스를 죽이는 일은 아르윈에게 그리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르윈은 로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무 좋아하지는 마. 이 일을 포기하면서 입는 손해는 네게서 받아낼 생각이니까.”


“......네?”


“넌 내게 사람 한명분의 목숨빚을 진거야. 네 말을 듣고 란티스 프라울러를 살려주기로 했으니까.”


그런 억지가 어디있냐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로저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삼켰다.


변덕이 심하다고 알려진 그녀의 성격상 갑자기 수틀려서 갑자기 란티스의 모가지를 따버려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결국 로저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무슨 빚을 받아내려고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저를 찾고 싶으시다면 왕도 2기사단에 들러주시죠.”


기사단에는 다이레아가 버티고 있는만큼, 아무리 아르윈이 제멋대로라고 해도 난동을 피우지는 못할것이다. 이게 로저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소심한 반항이었다.


“2기사단의 로지스. 기억해두겠어.”


아르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을 돌렸다.


“나중에 보자고. 네 뒤에 있는 녀석도 말이야.”


그 순간 그녀는 허공에 새롭게 색을 덧칠한것마냥 흐릿하게 변해 사라졌다.


로저의 감각으로도 간신히 그 순간을 인지할수만 있었을 뿐이다.


떠들썩한 술집 문앞에 혼자 남아있던 로저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아직 숨어있을 생각이야?”


“빌어먹을..... 그 여자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란티스가 술집의 기둥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말했잖아.”


로저가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숨으려면 대륙 끝에 있는 숲으로 가라고.”


“.......”


란티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로저가 아니었다면 오늘 그는 이 자리에서 죽었을테니까.


“아니면 크레시에 경에게 도움을 부탁하는게 좋겠는데.”


“멍청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난......”


그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로저는 그의 사정을 대충이나마 짐작했다.


아르윈이 말한 ‘프라울러’는, 중앙 제국에서 반역자로 규정되어 멸문당한 가문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프라울러 가문의 생존자를 도와서 제국을 뒤집어버리는 시나리오도 있긴 있었지.’


로저의 기억으로 그 생존자는 남자가 아니었다. 란티스는 시나리오와는 연관되지 않은채 숨어살던 프라울러의 또다른 생존자였던 것이다.


로저가 알고 있는 제국에 대한 비밀을 란티스에게 풀면서 그를 도와주면 비슷한 방식으로 제국을 뒤집어버릴수도 있겠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메인스트림이 시작도 하기 전에 제국을 무너뜨리는건 최악의 수다.


이번 메인스트림의 시나리오가 대규모 전쟁과 연계되는 경우, 무슨일이 있어도 제국의 전력은 유지되어야만 했다.


결국 란티스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겠어.”


“괜찮은거야?”


“저렇게까지 말하고 갔으니 내 위치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일은 없을거 아니냐? 그거면 됐어. 단순히 말뿐이었다면 모르지만, 네놈이 나 대신에 보증을 서줬는데 뭐가 문제냐.”


란티스의 음울한 웃음을 보면서 로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에게 무슨 감사인사나 보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오늘 있었던 일은 모두 이걸로 퉁치자고.”


술집을 나가 걸음을 옮기려는데, 란티스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야.”


“음?”


란티스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은화 하나를 꺼내 거기에 피를 짜내 묻혔다. 그는 그걸 로저에게 던져주고는 말했다.


“그걸 들고 기어들어오면 내 목숨값 정도는 지불해주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어라.”


피곤한 표정으로 눈두덩을 문지르면서 도박장쪽으로 사라지는 란티스를 쳐다보던 로저는 은화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란티스의 혈액이 은화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혈법사라더니, 표식을 묻힐때도 피를 이용하는 센스가 괴악하기 짝이없었다.


로저는 질겁한 얼굴로 은화를 대충 주머니에 찔러넣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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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국면 전환 +30 20.06.13 30,277 995 14쪽
38 이데르타 (3) +19 20.06.12 29,408 914 14쪽
37 이데르타 (2) +19 20.06.12 29,269 887 13쪽
36 이데르타 +18 20.06.11 29,680 922 14쪽
35 전투 시작 +25 20.06.11 30,261 1,026 14쪽
34 기척 +17 20.06.10 30,150 921 13쪽
33 남부 기사단 +19 20.06.10 30,298 951 13쪽
32 길잡이 +22 20.06.09 31,474 960 13쪽
31 전조 +17 20.06.09 30,917 1,004 14쪽
30 아이바르의 숲 +35 20.06.08 31,357 964 13쪽
29 제국 조사전단 +20 20.06.07 31,992 981 12쪽
28 내부의 적 +18 20.06.06 32,825 964 13쪽
27 숲의 종족 +24 20.06.05 32,798 1,040 11쪽
26 한명 더 +20 20.06.04 33,592 969 13쪽
25 두번째 임무 +14 20.06.03 33,566 970 12쪽
24 협력의 대가 +20 20.06.02 33,785 996 12쪽
23 마탑의 마법사 +21 20.06.01 35,178 988 12쪽
22 차출 +26 20.05.31 35,424 1,038 11쪽
21 확신을 더하다 +30 20.05.30 35,947 993 11쪽
20 대담 +35 20.05.29 36,834 1,063 13쪽
19 대립 +28 20.05.28 37,101 1,064 12쪽
18 메인스트림 네피로스 +22 20.05.27 37,036 1,083 11쪽
17 왕도 지하수도 +18 20.05.26 37,050 1,052 12쪽
16 길잡이 반셀 +23 20.05.25 38,899 1,044 12쪽
» 구명의 은혜 +34 20.05.24 39,302 1,1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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