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으로 대정령사 - 47
“이봐. 무슨 짓이야! 여긴 내 집이라고. 아무도 없다고 말했을 텐데?”
시몬이 화를 내자 맨 앞의 기사가 침착하게 답했다.
“수사 과정일 뿐이다. 네 말 대로 아무도 없다면 별 문제 없으니 협조하길 바란다.”
“쳇······.”
시몬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괜히 이상한 의심을 받기 싫으니 우선 여기선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하나 묻지. 어제 이상한 손님이 환자로 오지 않았나?”
“이상한 손님···? 그런 질문으로는 잘 알 수 없어.”
이상한 손님이라.
짐작 가는 바는 있지만···.
시몬은 일부러 팔짱을 낀 채 퉁명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지. 무언가 독에 중독된 환자가 오지 않았나?”
“독에 중독된 남자 여러 명이라면 어제 늦은 밤에 찾아왔다. 태도가 무척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었지.”
“역시 그랬군. 어떻게 했나?”
“치료는 해주었지. 그 외에 별 다른 대화는 하지 않았어. 그 뒤로 바로 사라졌으니까.”
시몬은 어제 찾아온 남자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혹시 모습은 어떠했지? 뭔가 짐은 없었나?”
기사의 질문에 시몬은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보았다.
“별다르게 들고 온 건 없었어. 착용한 무기도 전혀 없었고.”
“정말인가?”
“그래. 뭐. 문제라도 있어?”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놈들은 다른 지역에서 온 도적들이다. 우리 플로렌 지방을 다스리는 귀족분의 집에 들어가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훔쳐갔다.”
“세상에······.”
어쩐지 인상이 좋지 않더니만.
시몬은 밑 입술을 물었다.
“귀족의 금고를 지키던 함정에서 독이 나온다고 하더군. 그래서 독에 중독되었는지를 물어본 것이다.”
“그렇다면 그놈들이 확실할 것 같다만···. 내가 봤을 땐 뭔가 들고 오진 않았어.”
놈들이 시몬의 집에 왔을 때는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딱히 없었다. 만약 훔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면 시몬이 반드시 기억해냈을 것이다.
“아, 혹시 이 집에 들어오기 전 어딘가에 두고 왔다든지. 그랬을지도 몰라. 그놈들이 있을 때 딱히 집 밖을 확인해보진 않았으니까.”
“정확하지 않다는 뜻이군. 알겠다. 좋은 참고가 되었다.”
“그나저나···. 그런 흉악범이라면 내가 잡아두면 좋았을텐데.”
“이미 지난 일이지 않는가. 만약에 혹시라도 그놈들이 다시 찾아온다면 그때 부탁하지. 그러면······.”
슬슬 조사는 다 끝난 듯 했다.
기사도, 시몬도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기사 중 한명이 뛰어왔다.
“다, 단장님! 찾아냈습니다!”
시몬과 얘기하던 기사와 시몬이 동시에 그 기사를 돌아보았다. 그 기사는 시몬이 병을 고쳐주고 받은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여기에 백작님의 보석이 일부 있습니다!”
“정말인가?”
“네! 분명히 도난품의 목록과 일치합니다!”
시몬은 주머니를 보며 말했다.
“아. 그 보석은 내가 그놈들을 고쳐준 답례로 받은 보석이야.”
“답례로?”
“그래. 훔친 물건인줄은 몰랐지.”
“·········상처를 고쳐준 답례라······.”
기사단장은 조금 생각을 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연행해라.”
“이, 이봐! 뭐하는 짓이야!”
시몬이 화를 내자 단장이 말했다.
“자네는 주요 참고인으로 보이는군.”
“뭐? 고작 그 도난품 때문에? 그 보석은 내 것이 아냐. 원한다면 돌려주지. 그딴 놈들에게 받은 물건은 나도 필요 없다고.”
“우선 얌전히 수사에 협조해줬으면 좋겠군. 정말로 결백하다면 조사 도중에 보내 줄테니.”
기사 몇 명이 시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희를 따라오시죠.”
“험하게 모시고 싶진 않습니다.”
기사들은 시몬의 팔을 잡으며 포위했다.
“정령사. 시몬이라고 했지? 이 도시에 온지는 얼마나 되었나?”
“육 개월 전이다.”
“그 전에는 어느 도시에 있었지?”
“······그건 왜 묻지? 별로 말하기 싫은데.”
“흐음······.”
그러자 기사단장이 자신의 부하에게 말했다.
“어이. 거기. 너희들은 이 자의 신원을 한번 조사해봐라. ‘시몬’이라는 이름이 맞는지. 그리고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 말이다.”
시몬은 어이가 없어졌다.
‘이놈들. 설마 지금 나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중인가?’
상황이 시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 마을에서 생긴 도적, 살인 사건에 시몬이 휘말리게 된 것이다.
물론 시몬은 도적을 치료해주었을 뿐이다. 그 정도라면 시몬은 간단하게 조사에 응해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다른 부분에도 있었다.
시몬은 육 개월 전. 고향인 칸디스를 제 발로 나왔다.
범죄조직인 ‘검은 칼’을 쓰러뜨린 일로 수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범죄조직이었으면 모를까. 그 조직은 귀족과 엮여 있었지.’
그 때문에 시몬의 죄는 졸지에 귀족을 타겟으로 한 방화와 강도죄로 커졌다.
‘사람을 죽이고 불을 낸 건 확실히 내 잘못이야. 그렇지만 그 놈들이 어떤 놈인지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진 않았고······. 오히려 귀족의 사용인을 죽인 것이 되어있었지.’
그 상황에서 잡혀봤자 하지도 않은 일의 누명을 쓸 것이었다. 그 때문에 시몬은 도망쳤다.
‘지금 이놈들에게 잡혀가면 내가 고향에서 받은 의혹을 그대로 이어 받을 뿐이야.’
그럴 순 없다.
시몬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기사의 팔을 강하게 내리쳤다. 내공을 실은 그 공격에 기사가 휘청거린다. 그와 동시에 다른 쪽의 기사를 몸통으로 밀어냈다.
“으윽!”
“이, 이 자식!”
시몬은 뒷걸음질 하면서 말했다.
“진정하라고. 나는 결백해. 이 시간에 도적을 추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야.”
시몬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듣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황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감히 도시에 소속된 기사를 공격하다니···!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한다! 다들. 그를 구속해라!”
기사 단장은 오히려 화가 나서 외쳤다.
‘나 참. 그렇게 나오기냐?’
기사의 수는 열 명 남짓한 숫자다. 이 정도 숫자는 큰 위험이 되지 않지만······.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만약에 기사까지 죽여 버리면 더욱 더 죄인이 되어버린다!’
시몬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산채로 제압하기로 했다.
‘도와줄까? 시몬?’
‘아니. 너희가 껴들면 너무 힘들어져. 내가 해결할게.’
시몬은 온 몸에 내공을 둘렀다. 그리고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시몬을 포위하려 했던 기사들이 놀라 위로 붕 뜬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그 찰나의 짧은 몇 초 정도의 시간. 그 시간동안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다.
시몬은 빠르게 내려오면서 가장 멀리에 있는 기사를 쓰러뜨렸다.윽하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기 전에 기사가 쓰러졌다. 아직 뒤를 다 돌아보지 못한 다른 기사 여럿의 등을 묵직하게 몇 번 타격했다.
시몬은 지금 정확하게 혈 자리를 노리거나 혹은 죽지 않을 정도의 급소를 내공을 실어서 정확하게 쳤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를 것이다.
“뭐, 뭐야······?”
실제로 다른 기사들이 보기엔 시몬이 몇 번 사람을 툭툭 쳤을 뿐인데 쓰러지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풍경은 분명 거짓말 같이 보였다.
기사들이 무언가 대처를 하기도 전에 시몬은 움직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땐 이미 기사들은 시몬의 집 거실에 쓰러졌다.
“휴우······. 어쩌다가 이런 일이······.”
시몬은 쓰러진 기사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죽거나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다. 시몬은 어디까지나 모두를 잠시 기절시켰을 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었다고. 정말로 난 결백해. 그렇지만 잡혀갈 수는 없어···.”
어디까지나 제압하기 위해서 기절을 시켜놨기에 오래 누워있지는 않을 것이다. 시몬은 빠르게 2층에서 자신의 짐을 꾸렸다. 지금까지 치료소를 운영하면서 벌었던 돈을 모조리 가방에 넣었다.
‘여기서 보석을 가져가면 더 수상스럽겠지.’
시몬은 문제의 원흉이 된 보석이 든 주머니는 기사들이 가진 그 상태로 내버려두었다. 대신에 시몬과 체격이 비슷한 기사 한명이 입은 갑옷과 칼을 챙겼다.
“입으니까 얼추 맞네.”
시몬은 갑옷을 입고 옆에 칼까지 제대로 걸었다. 칼과 갑옷은 아주 좋은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 도시의 문양이 확실하게 찍혀 있다.
‘이 복장은 아마도 도망갈 때 도움이 되어주겠지.’
갑옷을 입고 있는 사이에 한 기사가 손가락을 꿈틀 거렸다. 아마도 꽤 단련한 기사였던 모양이다.
애초에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의 부상을 줄 마음은 없으니, 금방 일어날 것이다.
‘서둘러야겠어. 시몬.’
드리아드의 말에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 밖으로 나왔다.
집 밖에는 기사들이 타고 온 말이 여러 마리 서 있다.
“워워. 착하지.”
시몬은 그중 한 마리를 골라 탔다. 말은 순하게 시몬의 말에 따랐다.
“이제 슬슬 정신이 들 시간이야······. 이럇!”
고삐를 내리치는 소리에 말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의 바람이 시몬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갑옷을 입고 있는 탓에 잘 느껴지진 않았다. 남의 갑옷이다보니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그런 문제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한참을 달리다 시몬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언덕 저 멀리. 시몬이 살고 있던 짐이 조그마한 점처럼 작게 보인다.
“꽤 괜찮은 보금자리였는데······. 마음에 들기도 했고.”
집을 멀리서 돌아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도시에서 산 시간은 육 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이다.
‘그래도 처음으로 이번 생애에서 밖에 나가서 혼자 살아간 집이라 그런가······. 마음이 이상하네.’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서 살았던 집.
처음으로 시몬, 자신이 고르고 구입한 집.
그런 집을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시몬. 이제 슬슬 도시 밖을 벗어나야해. 날이 밝으면 추격자가 붙을 테니까.’
“응. 알고 있어.”
메탈룸의 차가운 말에 시몬은 묵직하게 답했다.
“······이제 가자.”
다시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말 위에서 시몬은 생각했다.
‘내 이번 생애는 운이 나쁜 걸까? 이렇게 불운한 일만 생기다니.’
고향에서 떠나온 것도 이와 비슷한 일 때문이었다. 그때는 시몬자신이 한 일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인과라고 납득 했지만···. 지금은 억울할 뿐이었다.
‘아니면 그때 사람을 죽인 업보일까?······그럴 리가 있나.’
조용하게 혼자 살면서 무공이나 수련하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싶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이었나?
시몬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답답했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나쁜 일이······.’
‘시몬. 그렇지만 시몬. 시몬에겐 나쁜 일만 일어나는 건 아냐’
시몬을 위로해준 목소리는 운디네의 목소리다. 운디네는 시몬의 어깨에 앉아서 예전보다 길게 변한 머리카락을 넘기면서 말했다.
‘시몬의 주변엔 좋은 가족들이 많았지? 언제나 시몬을 아껴주었다고 했잖아.’
운디네의 말에 시몬은 작게 웃었다.
“그러네. 확실히 행복한 사람이야.”
천애고아인 자신을 좋은 가족들이 키워주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정말로 아껴주었다.
“맞아. 운디네. 너를 만난날도 그랬지. 갑작스럽게 불이 났어.”
그땐 분명히 불행한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일 덕분에 시몬은 정령과 계약할 용기를 냈다.
그 날 이후로 시몬의 삶은 전혀 달라졌으니 대장간 화재를 무조건 불행한 일이라 생각할 순 없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이 있는 점도 어떻게 보면···. 행운일까?”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 정령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그 덕에 다쳤던 가족을 고칠 수 있었고. 정령사가 될 수 있었다.
‘응! 분명히 행운이야!’
‘그럼그럼. 나를 만났으니 시몬은 엄청나게 운이 좋다고.’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거야? 정말이지···.’
운디네와 살라만드라가 자신감 있게 말하자 메탈룸이 고개를 저으며 외면했다.
시몬은 정령들을 보며 작게 웃었다.
“자. 그러면······. 도시 밖으로 가볼까?”
정말로 운이 나쁜지. 좋은지. 한번 알아보자고.
시몬은 도시 밖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달렸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Comment '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