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으로 대정령사 - 36
시몬은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졌지만 아직 얼굴이 앳된 동안이기에 다들 시몬을 어리게 보았다. 그는 아마도 시몬이 늦은 시간까지 자고 있지 않기에 말을 건듯했다.
시몬은 종이를 접으며 말했다.
“별일은 아닙니다. 잠시 일기를 쓰고 있었어요.”
“일기라···.”
남자는 하품을 하더니 시몬에게 말했다.
“그래. 여행이 처음이면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랬단다. 다른 도시로 간다는 사실에 어찌나 설레던지 잠도 안 올 지경이었지.”
같은 마을에서 온 중년의 남자는 이것저것 얘기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좀 자두어라. 내일에는 마을에 들린다고 하더구나. 내릴 짐과 사람이 있다고 하니 오늘만 좀 참으렴.”
“그랬군요.”
“너는 멀리까지 간다고 했지?”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한참 남았어요.”
사실 시몬은 어디 목적지가 따로 있지는 않았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일단 가족들이 있는 곳. 고향인 칸디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었다.
단순히 시몬이 벌인 일 때문에 가족이 귀찮아진 정도라면 근처의 다른 도시로 가도 된다. 사건이 조용해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시몬의 대장간 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게에도 여러 가지로 망나니짓을 일삼으며 돈을 뜯어가던 ‘검은 칼’ 조직은 그 질이 정말로 나빴다. 무엇보다 칸디스에 있는 귀족 가문이 뒤를 봐주고 있던 조직이었다는 점이 가장 나빴다.
아르헤르츠 가문. 귀족중에서도 공작이 속해있는 공작 가문이다. 다른건 몰라도 칸디스의 영향력은 정말 높았다. 그런 귀족이 얽힌 이상 칸디스와 가장 멀리로 가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 지겠지만···.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게 언제가 될지 확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다른 금방 지나갈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모두가 잊을 정도로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집에 있을 때는······. 걱정할 거리가 하나도 없었지.’
이 세계도 전생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몬스터나 괴물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 무서워해야 할 것은 사람뿐이다.
시몬은 대장간에 있던 때를 생각했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기도 전에 시몬의 삶은 정말로 평범한 소년의 삶이었다.
걱정이라곤 거의 없는 하루하루.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전생의 기억을 찾은 일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지만.’
시몬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정령을 바라보았다.
이 정령이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 가족을 지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가족을 위험에 빠지게 한 것도 자신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정말로 좋은 사람들뿐이었어······.’
자신을 지금까지 키워주신 고르드 아저씨. 그리고 친 동생보다도 더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유리 형. 대장간에서 일을 하시면서 이것저것 알려주셨던 데이브 아저씨.
모두 시몬과 혈연관계라돈 전혀 없다. 그렇다고 시몬을 키워봤자 무엇 하나 이득이 될 만한 무엇도 없다. 그런데도 모두들 시몬에게 진심을 다해주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든 일이야.’
시몬은 무릎을 세운 채 끌어안았다.
지난 일 년간 키가 부쩍 커서인지 다리길이가 예전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이 길어진 다리가 가끔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앞으로 괜찮을까?’
확신은 없다.
이대로 계속 가면 자신은 어디에 가게 될까.
그 곳에 가면 안전할 수 있을까.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폐는 없을까.
그 무엇도 확정할 수 없다.
시몬을 보며 중년의 남성은 다시 하품을 했다.
“하암~ 어린 나이에 너도 고생이 많구나······. 자. 어서 자거라.”
“네. 안녕히 주무세요.”
그리고 중년의 남성은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시몬도 쓰던 종이를 짐 속에 집어넣고 가방을 안은 채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 * *
그렇게 시몬은 상단의 마차를 타고 며칠간 이동했다.
그 동안 마차는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 들려서 짐을 전해주고, 또 사람을 내려주고. 다시 사람을 태우고 짐을 실었다. 그 몇 개의 마을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면서 피로를 풀었다.
가장 최근에 들린 도시의 여관에서 마차를 관리하는 로버트가 물었다.
“시몬. 그러고보니 너는 어느 도시까지 간다고 했지?”
시몬에게 확실한 목적지는 없다. 무작정 멀리 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목적지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답을 해봤자 의심만 받을 것이다.
“참. 아저씨. 이 마차는 어디 까지 간다고 하셨죠?”
“어디 한번 확인해보자···. 으흠···.”
로버트는 품속에 있는 지도를 꺼내 들었다.
“아, 마지막 도시는 플로렌이란다.”
“플로렌···.”
그 도시는 분명 왕국에서 한참 동쪽으로 가야 있는 동부지대의 영지이다.
시몬의 고향인 칸디스는 아르시아 왕국에서 볼 때 서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지도에서 본다면 칸디스를 기준으로 약간 사선을 그리며 동쪽으로 간 것이 된다.
“마침 잘 되었네요. 저도 그 곳까지 갑니다.”
그 정도 위치라면 괜찮을 것이다.
지금 상태로서 시몬이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위치이다.
“그럼 너도 가장 마지막에 내리게 되겠구나.”
“네. 그때까지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그래. 한동안 피곤했을 텐데 오늘은 여관에서 푹 쉬렴.”
그런 대화를 했던 것이 며칠 전이었다.
그 뒤로 또 며칠의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상단의 마차는 동부 지역의 플로렌에 가서 멈추었다.
“읏챠. 이 짐이 마지막인가요?”
“그래. 넌 정말 힘이 세구나. 도움이 되었다.”
시몬은 마차에 실려 있던 짐을 내리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고맙다. 시몬.”
“아녜요. 덕분에 안전하게 잘 왔습니다. 로버트 아저씨께선 다시 다른 도시로 가시나요?”
“잠시 이 마을에서 며칠 쉬고 나서 나라를 돌아다닐 생각이다. 우리 상단과 연합되어 있는 가게라면 도와줘야하니까.”
“무척 힘드시겠네요.”
“힘들게 뭐 있냐. 그게 다 내 일인걸.”
로버트는 마차에 기댄 채 한숨을 쉬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 그러면 너도 혹시 또 필요하면 부르렴.”
“네. 알겠습니다.”
시몬은 짐을 챙겨 들었다.
“잘 가라. 어린 정령사.”
“덕분에 고마웠다.”
“또 보자고!”
상단의 마차와 함께 이동하는 용병들도 시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시몬은 그들에게 웃어주면서 뒤를 돌았다.
“······자. 이제부터는 어쩐다?”
이 도시에 용건이 있다고 말해뒀지만, 사실 그런 용건이 있을리 없었다.
시몬은 짐을 든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밝은 빛이 시몬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시몬. 어떻게 할거야?’
‘어디로 갈 생각이야?’
‘앞으로 어디를 갈지 생각해보고 움직이자고.’
‘이곳은 따뜻하고 마음에 들어!’
‘꽃 향기가 나는걸 보니 어딘가에 꽃밭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여러 정령들이 동시에 시몬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인 것 같지만 혼자는 아녔다.
시몬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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