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으로 대정령사 - 30
저택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무척이나 거대했다.
수도에 가본 적 없는 시몬이 보기엔 궁전처럼 웅장하게 느껴졌다.
“잠시만. 거기. 무슨 일로 방문했지?”
시몬이 물건을 들고 가까이 가자, 경비원이 시몬을 제지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곳에 사시는 나리께서 저희 대장간에 물건을 맡기셨습니다.”
경비원의 질문에 시몬은 공손히 답했다.
“오늘로 그 물건의 수리가 다 끝나었기에 가져다 드리려고 왔습니다.”
“대장간······? 혹시 그 대장장이 고르드가 하는 대장간인가?”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으로 들어 오거라. 길을 알려주마.”
“감사합니다.”
시몬은 짐을 든 채 경비병을 따라 저택의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큰 저택의 문안에는 마치 작은 도시처럼 건물이 많이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아름다운 길도 보였다. 그 길에 사람이 많이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소란스럽네.’
시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족을 섬기는 사용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뭔가 서로 대화를 나누느라 분주했다.
시몬이 그 대화가 궁금해서 잠시 발을 멈추자, 바로 경비가 물었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게······. 저택에 혹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저택은 유난스럽게도 어수선했다. 경비는 시몬의 질문 뜻을 알아차렸다.
“너도 이 도시에 산다면 알겠지. 며칠전 도적놈들이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은 다음에 불까지 질렀다는 소식 말이다.”
“아아···. 네.”
시몬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적?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방화를 해? ······나에 대해 소문이 그렇게 나고 있다는 뜻인가?’
시몬은 어둠에 숨어 있는 비열한 폭력 조직을 손봐주었을 뿐이다.
그 과정이 과격했다고 누군가가 꾸짖는다면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이 한 일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퍼져 있었다.
“그 도적놈이 불태운 건물이 우리 아르헤르츠 가문에서 관리하는 건물이었던 모양이다.”
“네? 정말입니까?”
“그래. 뭐···. 자세한 일은 나도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아마도 어르신들께서 수습할 일도 많으시고. 화도 많이 나신 모양이야. 일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 눈치를 보느라 바쁘고. 할 일도 많이 생겼지.”
“······아. 네······.”
“어휴. 그런 범죄자 놈은 빨리 잡히는게 좋겠지.”
“그렇습니다.”
도적? 방화? 살인?
귀족 가문의 건물?
아무리 고민해 봐도 잘 알 수 없는 일들뿐이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실프를 써서 이 저택을 좀 조사 해보는게 좋겠어.’
시몬은 바람의 정령인 실프를 불렀다. 실프가 가진 나비를 닮은 날개가 바람을 가르고 저택의 창문 속으로 들어갔다.
“여어! 거기 너! 대장간에서 왔다고 했지? 이쪽으로 와라.”
“네엡~”
이제 남은 일은 실프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시몬은 정령을 믿고 우선 자신은 자신의 일을 했다.
시몬이 대장간 업무를 보고 있을 동안 실프는 저택의 창문으로 들어갔다.
“어머나. 웬 바람이 이리 불지?”“다 해둔 빨래니까 괜히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렴.”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서 커튼이 크게 나부꼈다.
아르헤르츠 가문에서 일하는 메이드들은 치맛자락을 든 채 바구니를 어깨에 멨다.
실프는 넓은 저택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실프는 최하급의 정령이다.
만약 실프가 시몬과 계약을 오래 한 계급이 높은 정령이었다면 실프가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모두 계약자인 시몬에게 그대로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때문에 실프는 자신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시몬에게 전해주었다.
조금 긴 이야기였지만 시몬은 모두 다 들었다.
“고마워. 실프.”
시몬은 대장간 일이 끝난 뒤 자신의 방에서 편하게 앉았다.
실프는 시몬이 앉아있는 의자 앞에서 날개를 접고 쉬었다.
실프가 전해준 이야기 중에서 방을 돌아다니던 사용인이나 메이드의 대화는 시몬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택의 화려한 방에 있다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중요했다.
‘아마도 그들이 공작···. 혹은 공작의 측근이겠지···.’
시몬은 실프가 묘사한 그들의 옷차림을 보고 판단했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이러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군. ‘검은 칼’이 이렇게 허망하게 당하다니.”
“다른 조직에서 자객이라도 왔답니까?”
“아니. 살아남은 논 얘기를 들어보니 젊은 놈 한명이 와서 모두를 쓰러뜨리고 불까지 질렀다는군.”
“세상에······. 정말입니까?”
“그래. ······이걸로 우리 가문도 귀찮게 되었어. 더러운 일을 시킬 개를 잃었으니 말이다.”
사실 ‘검은 칼’이라는 조직 자체가 아르헤르츠와의 연관이 깊었던 모양이었다.
아인헤르츠는 권력을 잡고,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범죄 조직의 힘을 빌렸다. 대신에 ‘검은 칼’이 이 도시에서 날뛸 수 있게 뒤를 봐준 것이다. 즉. 상생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어르신. 혹시나 다른 조직에서 ‘검은 칼’과 저희가 맺은 약속을 알아차린 것은······.”
“어허. 이 사람아. 그런 얘기는 크게 말하지 말게. 주인님께서 아시면 얼마나 근심이 크시겠나?”
“죄.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로군. ‘검은 칼’을 통해서 정보가 샜다면······. 그것은 곤란하지. 주인님께서 피해를 입으실 지도 몰라.”
“그러면 해야 할 일은 하나군요.”
“아아. 그래.”
실프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 옮겨 말했다.
그 대화의 끝은 이러했다.
“그 범인을 찾는다. 그리고 그 자가 다른 놈에게 말을 하지 못하게 수를 써야겠지.”
실프는 두 남자의 대화를 자세하게 따라해 주었다.
시몬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몬. 걱정 있어?’
운디네가 시몬이 걱정되어서인지 시몬의 발목에 기대며 물었다.
‘당연히 있겠지.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리 계약자가 졸지에 범죄자가 되었으니까.’
‘범죄자? 무슨 뜻이야?’
메탈룸의 답에 운디네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몬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범죄자······. 큰일이네.”
‘검은 칼’ 조직원 중에서 시몬의 얼굴을 본 사람은 많다.
지금까지 시몬이 잡히지 않은 것은 아마도 시몬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장간에 온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를 테니 말이다.
“절대로 안전하다고 볼 순 없지.”
아르헤르츠 가문은 이 도시를 지배할 정도의 권력이 있다. 도시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시몬을 발견하는 일도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우선······. 오늘은 자야겠어.”
평소라면 혼자 밖에 나가서 수련을 했겠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몬은 조금 이른 시간에 눈을 감았다.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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