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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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02:21 AM」
같은 꿈을 꾸었다.
꿈속의 검은 그림자가 내게 총을 겨눈다.
누구일까?
---*---
「“맛이 없었다는 말인가요?”
“불떡현동의 맛은 위선의 맛이군요.”
“!”
“내가 온다니까 그동안 해왔던 스타일대로 조리하지 않았어요. 이건 내가 어제 먹었던 떡볶이하고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어요.”
“흥, 고작 평론가 한마디에 우리 코리안의 입맛까지 팔아먹은 줄 알았어? 어림없는 소리! 겨우 매운맛 1단계에 절절매는 미국인이 떡볶이를 왈가왈부하는 게 자체가 애당초 무리였다. 가라! 다음에 올 때는 밀떡과 쌀떡의 차이점 정도는 안 다음에 오도록 해라!”
비평가도 평가할 수 없는 맛,
불떡현동.」
“크크큭-.”
옆자리에 앉아 빌 코이쿠가 출현한 광고를 보고 있던 채영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우리 광고 너무 잘 만든 거 같지 않아요?”
“언제는 평가를 실력이 아닌 돈으로 산 것 같아 찝찝하다면서요?”
“그건···그때는···. 아, 근데 요새 헌혈하는 사람들이 진짜 많네?”
답을 들으려고 한 질문이 아니다.
민호는 은근슬쩍 주제를 바꾸는 채영을 모른척해 준다.
“근데, 그쪽이야말로 헌혈도 하지 않을 거면서 왜 계속 여기 나타나는 건데요?”
몇 달 전 알게 되었다.
해외에 있지 않은 한, 그가 규칙적으로 헌혈의 집에 간다는 것을.
그 뒤로부터는 대놓고 따라다니는 중이다.
“저 주사 무서워해요.”
“그러니까요. 헌혈하지도 않을 거면서 여긴 왜 왔냐고요?”
“몰라서 물어요?”
“네.”
“이민호 씨가 자꾸 내 전화를 씹으니까 그렇죠.”
“그거야 자꾸 그쪽이···.”
“잠깐.”
“왜요?”
“우리 서로 안 지 얼마 됐죠?”
“네?”
“5년 가까이 돼요. 이제 서로 이름으로 불러줄 정도는 되지 않았나. 매번 그쪽이 뭐야, 그쪽이.”
“하-.”
“왜요?”
“그거 알아요? 음채영 씨 되게 피곤한 스타일인 거.”
“그쪽 또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 왜 자꾸 알짱거리냐고요라고 말하려던 민호는 그만두었다. 그녀의 대답은 뻔했으니까.
“내가 보낸 J.P. 멕켄지 보고서 봤어요? 정말 계약 진행해요?”
이런 식으로 사업 이야기를 꺼낼 테니까.
“봤어요. 진행해요.”
민호의 간결한 대답에 채영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오리처럼 그의 설명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름 사업하려고 주유소 인수하려던 거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지는 산업에 굳이 뛰어들 필요는 없잖아요. 차라리, 원안대로 쇼핑몰 푸드코트에 들어가는 건 어때요?”
사실상 주유소 사업은 사양산업이었다.
목이 좋은 곳이나 트럭들을 주로 상대하는 곳이 아닌 이상, 고유가와 탄소세 등의 여파로 전기차가 급속도로 늘기 시작하면서 기존 주유소들은 이제 충전소나 충전기가 달린 주차장하고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고.
잘나간다는 주유소 브랜드들은 이제 먹거리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미 들어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주유소 체인 인수에 들어갈 자본으로 유용해서 좀 더 공격적으로 푸드코트 진출에 투자하는 건 어떻겠냐고요. J.P. 맥켄지도 리포트에서 그렇게 결론을 내렸는데, 못 봤어요?”
“봤어요.”
“그런데도 주유소 체인인 거예요? 왜 그렇게 주유소에 집착해요?”
집착이 아니다.
비전이다.
“나중에 수소충전소로 만들려고요.”
“네?”
“지금까지는 전기차가 앞서 나갔지만, 조만간 수소차도 치고 올라갈 겁니다. 특히 버스나 트럭 등 대형 차량에 있어서는 이미 전기차보다 앞서 있어요.”
“엥? 그게 지금 무슨 소리예요?”
“푸드코트에 들어가면 대형 건물 안에 있는 일개 식당일 뿐이지만, 주유소 체인을 얻으면 변형이 가능한 사업 채널을 갖게 되는 거예요. 플랫폼을 갖게 되는 거라고요.”
“그러다가 모두가 집에서 충전하는 시대가 오면요? 화물차만 상대해서 과연 주유소가 될까요?”
“그런 시대가 오면 전기세가 올라갈걸요. 기술은 다각화하는 게 언제나 시장에 이로워요. 그리고 수소가 더 친환경적이에요.”
채영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 휴게소 사업 이야기하는 거 맞죠?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다 망하면요? 그런 시대가 너무 늦게 와도, 아니면 너무 빨리 와도 망하는 거라고요.”
“그럴 리 없어요.”
‘뭐지? 이 남자의 이 자신감?’
까톡까톡.
[수연: 대표님, 기현자동차 정휘순 회장님하고 약속 잡았습니다. 정 회장님께서 내일 조지아로 출장을 가는데, 동행하실 수 있겠냐고 물어서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혹시 문제가 될까요?]
[민호: 아니요. 문제없습니다. 아,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 미국 일정 끝나고 산호세에 잠깐 들를 수 없으신가를 한번 여쭈어봐 주세요. 꼭 보여드릴 게 있거든요.」
---*---
며칠 뒤, 똑같은 꿈을 꾸었다.
‘총을 겨눈 검은 그림자. 누굴까?’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역시나 잠이 오질 않는다.
민호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아흔아홉 그루의 돈나무.
풍성한 가지.
이제는 정말이지 작은 ‘숲’과 같다.
점점 빨라진 생산주기는 이제 11시간에서 12시간 정도.
모체는 물론 이제 아흔여덟 그루의 분체들마저 천장에 닿는다.
가지가 제일 적게 달린 놈도 오천 가지가 넘었고, 하루에 두 번씩 떨어지는 지폣잎은 주기적으로 드림캐피탈 금고로 옮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인다.
소멸시킬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러면 드림캐피탈에 옮겨둔 지폐마저도 소멸하게 된다.
‘성장을 멈출 수는 없나?’
그러고 보니 그 점은 아직 모른다.
멍하니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던 민호는 메일함을 체크했다.
「To 이 대표님,
일정이 앞당겨졌다는 말 들었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저희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from
인세인 테크
심도형
PS-이번에 오시면 특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돈나무들만큼이나 손대는 모든 사업이 번성 중이다.
신도시 프로젝트도, 중국 쪽 사업들도,
해운업도, K-휴게소 프로젝트도,
기현자동차와 인세인 테크의 합작품이 될 수소자동차 스마트팩토리도 그렇게 될 것이다.
전기자의 테슬라라면, 수소차에는 기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저 검은 그림자는 뭘 의미는 하는 거지?’
---*---
「6개월 전, 마카오.
“형님, 제 숙부가 사이노 오션 쉬핑 왕리싱 회장하고 잘 아는 사이인데요. 저희한테 맡길 일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부하의 보고에 이자성은 입안에 쓴맛이 돌았다.
한때는 마카오 바닥에서 무서운 게 없었던 18K파 계열조직의 보스였던 그.
본토 반환 이후,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으로 인해 홍콩, 마카오의 조직폭력배들은 세력이 크게 악화되었고, 이제는 카지노 경호나 서고 술집 아가씨들 뒤나 봐주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상해의 해운회사 사장 따위가 겁도 없이 일을 맡기겠다고 하니 심부름센터 회사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됐어. 첩년 뒷조사나 해달라는 거면. 선룡방에 가서 물어보라고 해. 그 새끼들 그런 거 잘하니까.”
“그런 게 아니라는데요. 거래 경호 업무인데. 제시한 돈이 꽤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큰둥했다.
하지만 돈이 아쉬운 이자성이었다.
“그러면 니가 알아서 해.”
“네, 형님.”
하지만···
막상 거래가 끝나고 부하놈이 공해상 요트 위에서 목격한 일을 들었을 때는 자신이 직접 가지 않은 걸 후회했다.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가방 사이즈만 봐서는 몇천만 불 들어있던 것 같던데요.”
“뭐?”
“네, 미화 말고도 유로도 있었던 것 같고···.”
“근데 고작 요것만 받아온 거야? ‘저희에게 일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그러지 않으면···.”
“멍청한 새끼.”
눈앞에서 몇천만 불 상당의 현찰이 든 가방들이 오갔는데, 조폭이라는 새끼들이 그걸 그냥 지켜보고 왔다.
딸랑 원 밀리언 달러가 들어있는 가방 하나 받아서는 신이 나서 말이다.
이자성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놈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삼합회 조직원들이 아닌 경호업체 직원들이라는 걸.
누구의 손가락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면, 아무 질문 없이 끊어 올 부하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하-.”
미화 백만 불이 담긴 가방을 보고 있는 자성은 한숨이 나왔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는데.
고작 백만 불이라니.
일을 가져온 부하 녀석에서 물어봤지만, 녀석은 무슨 거래였는지도 모른다.
“씨발-.”
바로 그때,
입안의 쓴맛을 백주로 달래며 가방 안의 돈을 만지고 있던 순간.
“이거 뭐야!”
손안에서 지폐들이 사라졌다.」
---*---
미국, 산호세,
인세인 테크 랩.
“대단한데요. 이 정도로 정밀하게 움직이는 로봇팔이라면 공장이 아니라 병원 수술실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휘순 회장은 심도형 테크의 로봇팔(Robot Arm) 시연에 깜짝 놀랐다.
“애초에 의료 기기로 시작한 로봇 암이니까요.”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인 것 같은데, 왜 아직까지···.”
“오늘 같은 날은 기다렸습니다.”
사실 이미 상용화되었다고 할 수는 있다.
용도는 달랐으나 같은 프로토타입에서 제작된 로봇 암이 현재 광주 괭이밥 농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좋습니다. 이러면 얘기가 달다질 것 같습니다. 미국 공장이 먼저가 아니라 한국에 공장을 세워도 될 것 같은데요. 아까, 충북 옥원이라고 말씀하셨나요?”
“네.”
“이 대표님,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정휘순 회장과의 미팅은 순조롭게 끝났다.
원래는 프라이빗제트에서 잠시 이야기만 나누기로 했던 것이었지만, 그를 산호세 있는 인세인 테크 랩까지 데리고 오는 데 성공했고.
예상처럼 심도형 대표의 팩토리 로봇 암 시연은 화려했다.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로봇팔과 같은 움직임에 기현자동차 정휘순 회장은 국내 공장 설립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어떠셨나요? 정 회장님은 만족해하시는 것처럼 보였는데.”
“언제나 기대 이상이네요.”
로봇 암 시연이 끝나고 정 회장이 먼저 떠났다.
그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하나가 더 남아있었기에, 민호는 남았다.
“자, 그러면 이제 제 선물을 보여주실 차례인가요.”
“넵. 헤이, 토마스, 미다스 가지고 나와.”
미다스?
심도형 대표의 지시에 엔지니어 한 명이 옛날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게임기같이 생긴 기계를 가지고 나왔다.
“게임기?”
“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나머지 반은 뭔가요?”
“ATM기입니다.”
“ATM기요? 은행에서 돈 뽑는 ATM기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세계 최초, 실시간 코인 환전 현금 자동 입출금기 Midus V. 1.0입니다.”
실시간 코인 환전 현금 자동입출금기?
---*---
같은 시각, 민호의 성북동 집
검은 그림자가 어슬렁거린다.
요새 같은 주택.
높은 담과 CCTV 위치 등을 확인한 그림자는 아쉽지만, 침입을 포기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몇 개월을 걸려 찾은 집인데.
방범이 삼엄하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자성은 차에 올라타 공항 쪽으로 향했다.
-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공지로 남길까 하다가 이렇게 마지막 회차 끝에 남깁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때마침 공모전이 시작되어서 부랴부랴 준비해서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나는대로 진행하였고, 30화쯤부터는 향후 플롯을 준비해가며 쓰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그부분부터 독자분들이 많이 흥미를 잃으셨더라고요.
그러다가 나름 재미있는 요소라고 생각했던 위폐부분에서는 아우...
많이 쓰리네요. 저는 위폐 이후부터 이야기 흥미로워졌다고 생각하는데, 다수의 독자님들은 그때부터 재미없어졌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 솔직히 타격이 좀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법이라든지, 캐릭터를 소개하는 법이라든지, 다 부정당한 느낌입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느낌.
이혼변호사 때 받은 200개 댓글하고는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는 저도 고구마라고 인정하지만, 위폐는 솔직히 고구마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당연히 설명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그렇게 연독이 떨어지다보니 조급해졌고, 진행이 빨라졌습니다.
원래 계획은 초반부에는 좀 더 요식업에 집중하면서 사업을 늘려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동익 말고 회계법인의 직원이 하나 등장해서 돈숲의 회계를 담당하는 되는 에피소드를 구상했는데, 우동익의 등장에 많은 분들이 매력을 못 느껴하시니,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한명한명 크루를 늘려가면서 (이번 에피소드의 그림자를 포함해서) 숲의 경제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돈숲파티가 Make Korea Greater Than Ever Before를 만드는 게 구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동력이 끊긴 느낌입니다.
응원해주시고 챙겨봐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특히 부족한 글에 후원해주신 7773님, 주형이님, 헤카푸님, 암영천마님, 그리고 선물 보내주신 irms1928님 죄송합니다.
재미있는 글로 돌아오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것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또 뵈었으면 합니다.
덥고 습한데, 건강 유념하시고요. 좋은 한 주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서칸더브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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