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지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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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읍- 흡- 흡- 허- 허-”
숨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는 내가 진정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었다.
“이게···다 뭡니까?”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돈···나무···
끝이 보이지 않는 수천 그루의 ‘돈’나무.
그가 드림캐피탈 금고에 끌고 왔던 신기한 수레에 박혀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로고가 그려진 화분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히 서 있는 그것들 사이로 팔처럼 생긴 기계가 왔다 갔다 한다.
나무에는 각국의 지폐들이 달려있고,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원반같이 생긴 물건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쓸어간다.
“도대체···이게···무슨···헉···헉···.”
다시 숨이 가빠진다.
나이가 들었다.
진정시키는 데 십여 분이 걸렸다.
“저 화분들이 만들어 내는 건가요?”
“네? 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아닙니다.”
“그렇다는 말은···.”
“네, 나무입니다.”
나무라···각국의 지폐가 나는 나무···.
“당신은 누구십니까?”
순간 그가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아니한가. 돈을 나무에서 자라게 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신이거나, 아니면···.
“<큰나무그늘> 고문입니다. <트리 그룹> 대표라고도 하고요.”
‘서른 대여섯쯤 되었을까? 아니면, 마흔?’
이민호 고문이 나를 보고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 천진난만한 어린이 같은 미소였다.
“여기 오만 원 지폐 말고도 백 달러, 오백 유로, 엔화, 위안화 다 있는데, 이것들도 사용하셨나요?”
“아니요.”
왜였을까?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드림캐피탈에 지하에 있는 지폣잎을 제외하고 시장에 풀린 건 한 30억, 40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폣잎?’
그는 나무에서 나는 지폐를 그렇게 불렀다.
고작(?) 3, 40억 원밖에 풀지 않았는데 1조가 넘는 그룹을, 그것도 2년 남짓한 기간에 만들었다고?
사실이라면 그는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혹시 미래에서 오셨나요?”
“네? 하하하. 그렇게도 생각하실 수 있겠네요.”
그 뒤로 몇 번 더 물었지만, 그는 자신을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칭했다.
나는 확신했다.
그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면,
신 혹은 악마일 것이 분명하다고.
“이 많은 현금이 시장에 풀리면 혼란이 올 겁니다.”
“현금은 정부에서 늘 풀고 있죠.”
“그것과 이것은 다릅니다.”
“뭐가 다르죠?”
“그건···.”
“수십, 수백 명의 경제 석학들이 계획적으로 푸는 거라서요?”
“그도 그렇지만, 그건 국민의 동의하에 의해서 풀리는 거니까요.”
“우 부장님은 동의하셨나요?”
“직접 동의하지는 않았어도 저희가 뽑은 정부가 내린 결정이지 않습니까.”
“저는 뽑은 적이 없는데요. 설사 뽑았다고 해도 정부가 내리는 결정에 모두 동의한 적도, 할 마음도 없습니다.”
‘뭐지? 반정부주의자인가?’
“그렇다고 해도 국가만 발행하는 지폐를 위조하여 뿌리는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겁니다!”
“지지율 50%로 넘지 않는 대통령의 결정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소위 말하는 위정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많고요. 그건 정당한가요?”
“그건 민주주의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그렇다면 제가 원하는 대통령을 앉히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네?”
“선거는 돈입니다. 당장은 힘들어도 한 십 년 정도면 대통령까지는 무리더라도 트리 그룹을 옹호해줄 정치 세력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민주주의에 따라오는 부작용이라고 하실 건가요?”
“결국 위폐를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이시네요.”
“아니요. 위폐는 드림캐피탈 금고에만 들어가 있을 겁니다.”
“그게 그거죠. 결국 아무런 가치가 없는, 위폐를 담보로 돈을 빌리시는 거니까.”
“담보는 말 그대로 담보일 뿐입니다. 단순히 산업 계획 만에도 돈을 빌려줄 수 있죠. 제 꿈을 담보로 누군가 돈을 빌려주는 것과 다름없죠. 그 꿈이 실패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성공하면 문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난다.
자신이 한 말에 절대적 믿음이다.
“과연 드림캐피탈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이미 경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반문에 할 말이 없었다.
드림캐피탈은 그 돈이 가짜라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
드림캐피탈은 설사 그 돈의 위폐라는 의심을 했어도 대출을 계속해줄 것이었다. 이미 트리 그룹이 꾸는 꿈에 돌이킬 수 없는 배팅을 했으니까.
“저를 이제 죽이실 겁니까?”
비밀을 보여주었으니, 드는 생각은 그것밖에 없었다.
굳이 내게 보여 줄 이유가 뭐 있겠나.
자랑? 연민? 아량?
“하하하하. 아니요.”
그러나, 그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그의 다음 말에 나는 다시 숨이 멎었다.
“그럼 왜 저한테 이것들을···.”
“제 ‘숲’지기가 되어주십시오.”
숲지기······
아-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돈이 떨어지는 나무들로 가득 찬 숲을 지키는 관리자.
그 순간 내가 알고 있던 알량한 지식은 의미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래.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나도 정치에 신물 난다.
결국은 다 제 밥그릇 싸움 아닌가.
결국은 다 식구, 지 새끼들 주려고 만드는 규칙들.
알지도 못하는 법들.
정작 필요한 데 쓰지도 않는 예산들.
훗날 그와 조용히 이곳에 앉아 사이다를 마신 적이 있다.
그때 물었다. 나한테 왜 ‘숲’지기가 되어달라고 했냐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 나는 그에게 없어도 별 아쉬울 것 없는 존재였다.
“반가웠어요.”
“왜요?”
“제 꿈을 같이 나눌 동지가 생겨서.”
동지···.
그날 결심했다.
죽는 날까지 나는 ‘숲’지기가 되기로.
그게 내 사명이라고.
“맡겨만 주신다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성명과 생년월일을 말씀해주십시오.」
“우동익, 69년 3월 8일.”
삐빕-
「우동익 책임님, 안녕하십니까? 환영합니다.」
*
그날도 민호는 같은 꿈을 꾸었다.
길을 걷다 나무를 만났고, 나무의 지폐를 따라가 서울에 다다랐다.
“총재님, 오셨습니까?”
꿈속에서 우동익은 그를 총재라고 불렀다.
---*---
“왜요?”
조금 전 민호는 결혼은 언제쯤 할 거냐는 채영의 질문에 할 마음 없다고 대답했다.
“그냥 하기 싫은데요.”
“그러니까 왜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면 계기 같은 거라도. 설마 혹시 여자랑······.”
“맞아요.”
“네?! 여자가 싫다고요? 그럼 뭐 진짜 남자가 좋은 그런 거예요?”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여자가 싫다고 하니까···.”
“내가 언제 여자가 싫다고 했습니까? 여자랑 살고 싶은 맘 없다는 의미였지.”
“아- 다행이네요. 그나마. 여자랑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서. ”
“게이 혐오자예요?”
“네.”
“아···.”
“왜요?”
“저번에 보니까 인종차별주의자에, 이번에는 동성애자 혐오.”
“그렇다고 죽이고 싶고 그런 거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존중과 거리. 내 신조에요.”
“네, 알겠습니다. 거리 지켜드릴게요.”
민호의 대답에 채영의 오른쪽 이마에 주름 잡힌다.
‘흥, 누가 자기한테도 그 거리를 지켜달라고 했나.’
“근데, 오늘 왜 보자고 했어요?”
“뉴스 봤어요? 북미에서 <하우스> 버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
“네, 봤어요.”
“인정할게요. ‘더 한우’ 이름 괜찮았던 것 같아요. 오늘 자 뉴욕 타임에 실린 ‘한우’에 대한 기사예요.”
채영이 해당 기사를 띄운 태블릿PC를 내밀자, 민호는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그건 아직 보지 못했나 보네요.”
“‘한국의 한우는 앵거스 비프와 비교해 훨씬 더 기름지지만, 와규처럼 질리는 맛이 아닌 씹으면 씹을수록 육향이 올라오는 멈출 수 없는 맛이다.’ 와- 기사가 굉장히 우호적이네요.”
“제가 또 누굽니까? 상하 F&B의 음채영이죠.”
“로비한 거예요?”
“요새 로비 안 하고 뜨는 기사가 있는 줄 아세요? 몇 줄짜리 트위터 기사가 아니라 정식 기사라고요. 아, 그래도 기사 내용까지 간섭한 거는 아니에요. 로비한다고 내용까지 고칠 삼류 잡지는 아니니까.”
뭐가 됐든, 기분 좋은 글이다.
“고든 갬지 셰프 평은 봤어요?”
“아니요.”
“뭐야? 다 아는 것 같더니. 자요.”
「이 씨발 존나 맛있네.
#fuckindelish #theHanwoo #HouseBurger」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요?”
“뭘요?”
“이 정도면 석 달 안에 점포 수 두, 세 배는 늘려야 하는데, 한우 공급량에 문제없겠느냐고요?”
한우 공급량···.
---*---
띠리링- 띠리링-
-네, 대표님.
“오랜만에 가게에 갔는데, LA에 가셨다고 하시네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여기 지금 BDS (배드 애스 소년단) 멤버들이 지난달에 콘서트 마치고 다녀간 이후로 난리가 나서요.
한우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아, 그래요? 심각한가요?”
-네, 일단 급한 대로 부족한 부분은 호주산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한우 전문점’에서 호주산을 쓰기가 좀···.
“알겠습니다. 제가 연락 좀 해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재단 일도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아닙니다. 그럼, 수고 좀 해주십시오.”
“네, 대표님도요.”
딸깍.
띠리링- 띠리링-
-선배님!
육동영 셰프와 통화를 마친 민호는 조규형에게 연락했다. 한림사료를 퇴사한 그는 이제 ㈜ 현동이네 구매팀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규형아, 한우협회장님한테 연락해서 농장 좀 더 연계해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
성명: 이민호
생년월일: 1986년 5월 5일
신장: 177cm
주소: 성북구 성북로 444
본적: ···
도대체 이 볼품없는 인간의 어디가 좋은 건지 한재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기보다 잘 생겼나? 아니다.
키가 크나? 아니다.
나이가 어리나? 그것도 아니다.
돈이 많나? 어디 이제 1조 조금 넘는 기업 주제에 35조 새한그룹에 비교하나.
그런데 도대체 왜?!
「한심한 놈. 여자 하나 어떻게 못 해서는···쯧쯧. 내가 음 회장하고 직접 이야기했다. 조만간 상견례 날짜 잡을 거니까, 너는 그때까지 애기 단속이나 해. 남자 있다는 소문이 있두만. 쯧쯧쯧.」
비서실장이 가져다준 이민호에 대한 파일을 보고 있던 한재림은 어젯밤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쾅!
그의 주먹이 책상을 내리쳤다.
띠리링-
-네, 사장님.
“사룟값 인상 통지 나갔나요?”
-이제 내보내려고 합니다.
“인상비 수정하죠.”
-네?
“원안대로 15%로 하죠.”
-아···그러면 농가들 반발이 심할 텐데···. 회의 때 말씀드렸듯이 벌써 올해만 두 번째라, 그렇게 되면 작년 이맘때에서 60% 이상 오르게 되는 겁니다.
“올리세요.”
-넵, 알겠습니다.
딸깍.
사룟값이 오르면 국산 육류 가격이 오른다.
그러면 수입육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고, 외국산 육류 수입도 같이하는 한림은 자연스럽게 수입육 가격을 올릴 수 있다.
그다음에 사룟값을 내려서 국산 육류 가격을 안정시키면 된다.
독과점 기업의 흔한 시장 컨트롤 방법.
원래는 좀 더 완만하게 올리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이유가 생겼다. 한재림은 이민호를 도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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