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테테인먼트 회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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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계약서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흠. 저번에 만나러 가셨을 때, 그쪽에서 계약서가 있다고 했다고 그러지 않으셨나요?”
“분명 그랬는데, 만약에 없다고 하면요?”
“그렇다면 구두계약을 했다고 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계약이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 둘 중의 하나인데. 후자면···.”
내가 만나본 박성준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준수야, 혹시 SY 엔터테인먼트에 그 곡을 네가 썼다는 걸 증언해줄 만한 사람 있어?”
“증언해줄 만한 사람이요? 음···사장님 말고는 피디님이랑 편곡자 형이 제가 썼다는 걸 알길 하는데···.”
“그래? 그 사람들은 왠지 박성준 사장하고 친할 것 같은데.”
“친해요. ···아!”
증인이 필요했다.
여차하면 내가 설 수도 있고 캐나다에 있는 현동이를 불러올 수도 있었지만, 증거력이 떨어졌다.
내부인 중에 있으면 좋다고 해서 물어봤는데···
“있어? 다른 사람?”
“도빈이한테 제가 원곡을 들려준 적이 있기는 한데···.”
“도빈이?”
“네, ‘디이티’ 도빈이요.”
SY 엔터에서 1년간 동고동락한 후배.
녀석이 도와줄까?
도와준다고 해도, 잘나가는 아이돌을 어떻게 개인적으로 만나볼 수가 있지?
띠리링- 띠리링-
-웬일이에요? 먼저 전화를 하고?
“부탁 좀 하나 들어줄래요?”
-무슨 부탁인데요?
---*---
SY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상하 F&B에서 <상하치킨> 내년 모델로 ‘디이티’를 고려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상하치킨? 오- 대박인데. 벌써 치킨 광고가 들어오고. 뭐래?”
“괜찮으면 일단 미팅부터 하자고.”
“당연하지. 언제? 나는 목요일 빼고 다 돼.”
“아, 근데 사장님 만나기 전에 애들부터 좀 먼저 만나보면 안 되냐고 요청해와서요.”
“애들? 돼. 근데 왜?”
“상하 F&B 회장님 따님이 ‘디이티’ 팬이라고 하시네요. 이번 모델 제의도 그분이 추진하시는 거라고···.”
“아, 그래? 아, 그럼, 당연히 만나게 해드려야지. 애들 스케줄이···오늘은 방송 있고, 내일 오전이 비었잖아? 연락해서 내일 오전으로 잡아. 이런 거는 빨리 진행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치킨 광고 제의가 들어왔다는 말에 신이 난 박성준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직원의 다음 보고에 인상이 구겨진다.
“준수 건은 어떻게 할까요? 내용증명이 계속 들어오는데.”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무시해.”
“계속 무시해도 될까요? 그래도 김앤강에서 오는 건데···.”
“도대체 그 새끼는 돈이 어디 있어서 김앤강 변호사를 쓴 거야.”
“그러게요.”
“어디 먼 친척에 아는 사람이라도 소개받았나? 아- 됐어. 김앤강이 뭐 대수야. 오히려 잘 됐어. 존나 비싼 로펌 썼으니, 질질 끌면 지쳐서 나자빠지겠지. 일절 대응 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도빈이요···.”
“도빈이 왜? 또 아프대?”
“원래도 멘탈이 센 애는 아닌데, 스케줄이 많아지고 몸이 힘들어지니까···.”
“지랄하고 있네. 누가 들으면, 지가 무슨 BTS쯤 되는 줄 알겠네. 이제 갓 데뷔한 새끼가 무슨 스케줄이 많다고 투정이야. 야, 지 선배들은 일주일에 열 시간도 못 자고 행사 뛰었어. 이 새끼가 진짜 오냐, 오냐 하니까.”
“그래도 준수 있을 때는 준수가 옆에서 잘 다독이면서 끌어줬는데.”
“야! 이 상황에 무슨 준수 타령이야! 안 되겠네, 이 새끼. 야, 도빈이 데리고 와. 이것들이 아주 배가 불렀지. 그리고, 김 실장에게 도빈이 정산서 좀 가지고 오라고 해. 이것들이 회사에 갚아 할 돈이 얼만 줄 알아야 정신이 번쩍 들지.”
“네.”
---*---
며칠 뒤,
현동이네 1호점.
“준수야, 이제 진짜 결단을 내려야 할 타이밍이다. 할 거지?”
“네.”
“그러면 마음 단단히 먹어. 시작되면, 저쪽에서 갖은 치사한 방법으로 널 음해하려고 할 거야. 그리고 ‘디이티’ 팬들이라고 하는 애들도 처음에는 엄청 널 비방할 게 뻔하고.”
“네.”
“너무 걱정하지는 마. 진실이 밝혀진 다음에는 다 좋아질 거니까. 그러면 니 곡, 제 주인한테 들어올 거야.”
“사장님.”
“형이라고 하라니까.”
“감사해요. 도와주셔서.”
이길 거 알고 있었지만, 어찌 됐건 상대는 유명 기획사.
그 과정이 쉽지 않을 수도 있기에 준수의 다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행히 녀석은 준비됐다.
“이 변호사님, 소송 제기해주시죠.”
“알겠습니다.”
---*---
「신인 그룹 ‘디이티’ 신곡, “내 곡이었다.” 방출된 멤버 주장」
「SY 엔터테인먼트 측, ‘터무니없는 주장. 현재 상황 파악 중’」
「김앤강, 방출 멤버 민모 씨 대리하여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 제출」
쾅!
“아, 미친 새끼. 이게 진짜 돌았나!”
포털 사이트에 도배된 기사들을 본 박성준은 책상을 세게 내려쳤다.
“야, 이거 왜 기사 안 내려?”
“지금 홍보팀에서 기자들하고 전화하고 있습니다.”
“빨리 내리라고 해.”
“네.”
“애들은 어디 있어?”
“지금 부산대 내려가고 있습니다.”
“미쳤어? 상황이 이런 데 어딜 가? 올라오라고 해.”
“네?”
“올라오라고 하라고, 병신아! 상황 진정될 때까지 당분간 숙소에 처박혀 있으라고 해!”
“아, 네.”
고함을 지른 박성준은 사무실 안으로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윤태형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윤 변, 어떻게 승산이 있겠어?”
-쓰읍-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그 계약서 조항은 효력 없음이라고 판단될 게 거의 확실해요. 그냥 조용히 합의하시는 게···.
“그러려고 했는데, 저쪽에서 죽어도 안 하겠다잖아.”
-네? 합의를 안 하겠다고요?
“안 하겠대. 1억 제시했어. 아이- 시발, 그 정도면 1년 치 저작권료야.”
-1억 원을 제시했는데도 합의를 안 하겠다고요? 어차피 저작권수익 양도는 확실해서 못 다투는데.
“그렇다니까. 괜히 기록 남을까 봐 내가 직접 만나서 얘기했는데도, 무조건 작곡자 명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야. 돈 필요 없대.”
-하-참 이상하네요. 김앤강에서 그걸 안 받을 리가 없는데···.
“작곡자 명은 바꿀 수 없어. 자작곡인 것처럼 홍보해서, 이제 와서 바꾸며 올해 활동 접어야 해. 지금 치킨 CF도 논의 중이고, 그렇게 되면 손해가 막심해. 윤 변, 진짜 방법이 없는 거야? 혹시 김앤강에 아는 선후배 없어?”
-하···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박성준은 마치 부정적인 대답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거는 어때? 계약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건.”
-계약이 없었다고요? 계약서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계약이 없었다?
“응.”
-그럼 혹시···?
“법원에서 표절을 증명하는 게 훨씬 더 어렵잖아.”
-그렇죠. 훨씬 어렵죠.
“소송도 길어질 거고.”
-훨씬 길어지죠. 1심에서 패소해도 항소하고 하면 2, 3년은 충분히 끌죠. 게다가 표절 소송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증명이 어려워서.
“오케이. 그게 낫겠네. 그사이에 민준수 그 새끼가 방출돼서 악의적으로 소송하는 거라고 언플하면 ‘디이티’ 활동도 계속할 수 있고, 괜찮네. 어때, 윤 변? 표절 소송은 승산이 있는 거지?”
-해당 조항을 놓고 싸우는 것보다는 승산이 있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윤 변은 그렇게 준비하라고, 언론 쪽에는 우리 쪽에서 뿌릴 테니까.”
-네, 사장님.
딸깍.
통화를 끊은 뒤 박성준은 민준서가 서명한 계약서 원본을 불에 태웠다.
띠리링- 띠리링-
-네, 사장님.
“홍보팀 이 실장 좀 들어오라고 해.”
---*---
「SY 엔터테인먼트, “방출생 민모 씨의 주장 전혀 근거 없어. 강력 대응 경고.”」
「SY 엔터 박성준 대표, “방출 멤버 민모 씨, 사생활에 문제 방출했다. ‘디이티’ 신곡에 관한 주장은 명백한 보복 행위.”」
“끝까지 고심을 많이 하다가 내보낸 멤버입니다. 실력은 좋았는데, 인성이 좋지 않아서 다른 멤버들하고 충돌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사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사생활 문제요?”
“방송에서 제가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솔직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고요. 그 친구는 방출 결정을 내린 저한테 불만이 많겠지만, 저는 지금이라도 그 친구가 정신 차리고 잘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성준 대표.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려고 틀었는데, 역시나 쓰레기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잖아.”
“네.”
다행히 소송하기로 마음먹기 전까지는 많이 흔들렸던 준수도 제법 단단해졌다. 박성준의 음해에 끄떡없다.
“변호사님, 이 정도면 이제 히든카드를 써도 되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조금만 더 기다리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정식으로 계약이 없었다는 주장과 함께 해당 곡의 창작자가 민준수 씨가 아니라는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한 다음에 하는 것이 상대를 빼도 박도 못하게 할 겁니다.”
애초에 이런 상황이 오기를 기대했다.
기대했다고 말하면 조금 우습나? 아무튼 박성준이 계약서를 들고나왔어도 당연히 우리 쪽에 승산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계약이 없다고 주장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더 통쾌하게 박살 내 줄 수 있으니까.
*
「“변호사님, 계약서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흠. 저번에 만나러 가셨을 때, 그쪽에서 계약서가 있다고 했다고 그러지 않으셨나요?”
“분명 그랬는데, 만약에 없다고 하면요?”
“그렇다면 구두계약을 했다고 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계약이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 둘 중의 하나인데. 후자면 아마도 해당 곡이 민준수 씨의 곡이 아니라고 주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준수 곡이 아니다? 그러면 저희는 표절 주장을 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죠. 근데 표절 입증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한 2년 전쯤에 제가 원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말고 있고요.”
“그런 증언이 있다면 당연히 소송이 도움이 됩니다. 다만, 요새 유사한 멜로디의 노래가 많기도 하고, 장르의 유사성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소송이 길어질 수도 있고요. 아, 물론 승산이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흠.”
“제일 좋은 건 내부 사람이 증언해주는 게 제일 좋기는 한데···. 혹시 SY 엔터 내부에 원곡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없을까요?”」
*
있다.
“준수야, 그래서 도빈이는 설득해봤어?”
“네.”
“뭐래?”
“아직도 살짝 망설이기는 하는데, 해 줄 것 같아요.”
준수의 마음이 통했다, 그 한 명에게.
*
그리고 며칠 뒤,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SY 엔터 측에서 박성준 대표 진술서와 함께 답변서 제출했습니다. 다른 사람 창작곡이라는 취지의.
때가 왔다.
“그럼, 도빈군 인터뷰 준비하면 되는 건가요?”
---*---
SY 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운동하고 느지막이 출근한 박성준은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켰다.
연예란 기사를 주르륵 훑는 그.
별다른 게 없다.
그런데, 좀 전까지 없던 ‘많이 본 뉴스’란에 갑자기 뜬 속보 기사.
‘강도빈’이라는 이름이 그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재빨리 클릭해서 기사를 읽어내려가는데···.
“야! 야! 이거 뭐야! 이거 뭐냐고! 김 실장! 김 실장!”
「<단독> ‘디이티’ 강도빈, “신곡의 작곡자 방출된 민준수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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