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Vac v.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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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산호세,
인세인 테크 테스팅 랩(Testing Lab).
샤라라라락-
머니백(MoneyVac) v. 1.0이 바닥을 훑고 지나가자 오만 원권 지폐들이 입구 속으로 슈슈슉 빨려 들어갔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솔직히 첫인상이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뭐랄까, 건방져 보였다고나 할까?
물론 이해는 갔다. 음성지원 AI 로봇 개발을 목표로 하는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에 돈 쓸어 담는 청소기 제작을 의뢰했으니,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최대한 정중하게 의뢰를 부탁했고, 향후 투자 계획 의향도 밝혔다.
그런데도 심도형 대표는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게다가 개발비 예산으로 30억 원이나 되는 거금을 요청한 건 향후 100대 이상 주문하겠다는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최대 12,000Pa 석션 파워에 오퍼레이팅 타임 2시간 20분, 소음 레벨 31dB 이하입니다. 지문 인식 기능과 음성 어시스턴트 기능이 탑재되어 있고, 자동 매핑과 장애물 회피 센서도 장착되어 있으며, 베이스에는 요청하신 위폐 식별 기능 및 카운팅, 아이언링, 번들링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불만과 불신이 머니백 버전 1.0의 시범 운행을 보고는 완전히 사라졌다.
겹겹이 쌓여있는 1,000장의 지폐들을 깔끔하게 빨아들인 머니백 v. 1.0은 알아서 베이스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함(bin)을 비운 뒤, 다시 청소를 시작했으며,
그 사이 베이스 스테이션은 청소기가 모아온 지폐를 일일이 확인하고 그 수를 센 뒤, 100장 단위로 묶어 보관함에 차곡차곡 쌓았다.
“자동 청소 기능도 있습니다. 끈적이는 물질이 붙은 게 아니라면, 젖은 지폐를 말려주는 기능이 있고 적외선으로 살균한 뒤 번들링을 하게 됩니다. 번들링 기능은 20장, 50장, 100장, 200장으로 조정이 가능하고, 화폐 종류 및 단위 구분도 가능합니다.”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심도형 대표는 바닥에 각국의 지폐를 단위별로 바닥에 뿌리고는 머니백을 돌렸다.
샤라라라락-
KOR▶
₩50,000: 35
₩10,000: 54
₩5,000: 56
₩1,000: 13
USD▶
$100: 28
$50: 12
$20: 88
$10: 4
$5: 34
$2: 15
$1: 112
EUR▶
€500: 9
€200: 12
€100: 54
€50: 19
€20: 9
€10: 24
€5: 5
JYP▶
¥10,000: 14
···
···
···
Counterfeit▶
₩50,000: 3
$100: 2
$20: 6
€500: 1
€50: 1
¥10,000: 2
“공간 크기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 1,000 square feet 너비의 평평한 바닥이라고 가정했을 때, 시간당 대략 12,000장가량의 지폐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단일 단위 설정 시, 처리 시간은 두 배 이상 단축됩니다. 최대 커버 공간은 12,000 square feet, 매핑 플로어는 최대 10 장소까지 저장할 수 있습니다.”
최첨단 기능들이 탑재된 AI 돈 쓸어 담는 기계.
비록 불필요해 보이는 기능들이 많았지만, 핸드폰 기능을 다 사용할 필요가 있어서 최신 폰을 사는 건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자제하려고 해도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기대 이상이네요!”
“머니건으로 돈을 쏘는 속도보다 빠를 겁니다. 만족하시나요?”
이건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과 다름없었다.
“한 가지만 추가할 수 있을까요?”
“뭐죠?”
“어둠 속에서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시죠.”
“어둠이라고 하면.”
“조도 0lx에도 작동할 수 있게요.”
“그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 작동 시 센서라든지 기계 자체에서 나오는 최소한의 빛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아, 그건 상관없습니다. 작동 시 나오는 빛이 태양처럼 밝지만 않다면···.”
아리송한 지시에 심도형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지만, 더 자세하게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머니백은 부자의 장난감이었을 뿐이었기에.
“알겠습니다. 자, 그러면 생산단가에 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머니백 v. 1.0 프로토타입의 생산단가는 개발비를 제외하고 순수 제작 비용만 약 13,000달러입니다. 일단 바디는 카본 파이버로 제작되었고 모터랑 카운터에 들어가는 부속은 저희 로봇 암(robot arm)에 사용하는 티타늄 합금 소재가 들어갔습니다. 뭐 일반 플라스틱 소재와 강철 합금을 사용하고 메모리나 디스플레이도······.”
자존심이 상했던 거다.
머니건으로 쏜 지폐나 주워 담는 장난감 따위를 만들어달라고 했던 게.
심도형은 그래서 더 일부러 단가가 높은 자제만을 사용해 제작했다. 심지어 로고에 다이아몬드까지 박아서.
설명이 끝났을 때, 그는
‘자, 니가 만들어 달라고 한 게 이거지? 대신 한 대 천삼백 만원이야. 이래도 계속할 거야?’
라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멋지게 만들어주실 줄 몰랐네요. 저는 쓸어 담는 지폐계수기 정도 생각했는데···. 이거라면 당장 100대가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다.”
내 대답에 심도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다음 말에 곧바로 내려갔고, 그 뒤로는 내 앞에서 한 번도 그런 표정을 짓은 적이 없었다.
“대신 저희 <트리>에서 <인세인 테크>에 향후 5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할 생각인데, 제 제안을 진지하게 들어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투자에 관한 긴 회의가 끝난 뒤, 나는 곧바로 윤새록 변호사에게 투자 계약서 초안을 부탁드렸고, 심도형 대표의 약속을 받아냈다.
“앞으로 제가 의뢰하는 기기들을 제작해주신다는 조건입니다.”
“제작비를 별도로 책정해주신다면 그런 조건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럼 계약서 초안 보시고 연락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말씀하시죠.”
사람이 좀 꽉 막힌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업도 잘 못 하는 것 같았고, 말주변도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그런 면들이 그에 호감이 가기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의 실력을 보고 나니 오히려 그런 면들이 좋게 느껴졌다.
갑자기 든든했다.
돈나무 공장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안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 고민하고 있을 때 나타난 사람.
<인세인 테크>의 심도형.
어쩌면 그 또한 앞으로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프로토타입 제가 가지고 가도 될까요?”
---*---
인천공항.
상업용이었다면 이것저것 인증도 받아야 하고 복잡하게 할 게 많았지만, 개인용이었기에 비행기에 실어 가져올 수 있었다.
세관을 통과한 뒤 트롤리에 싣고 나오자, 공항에 마중 나온 준수가 물었다.
“이건 뭔가요, 사장님?”
“청소기.”
“청소기요?”
“응.”
“아···. 댁으로 가실 건가요?”
“그러자.”
원래는 회사에 잠깐 들를 의도로 준수를 불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집으로 가는 게 나을 듯싶다.
준수가 끌고 나온 차에 머니백(MoneyVac)과 캐리어를 실은 뒤 조수석에 올라탔다.
“별일 없었고?”
“네, 별일 없었어요.”
“오복떡집은?”
“우리쌀농산이랑 계약 완료했고, 이제 공장 알아보러 다니신대요. 당장 10호점까지 떡 납품하는 데는 문제 없을 거라고 하세요.”
“연말까지 점포 열 개 더 늘린다고 말씀드렸어?”
“네. 건물만 찾으면 기계 들여놓는 건 문제도 아니래요. 연말까지 생산량 맞춰주실 수 있대요.”
비록 점포가 열 개밖에 되지는 않지만, 이곳저곳 벌여 놓은 사업이 많다 보니 생각보다 신경 쓸 게 많았다.
다행히 승호와 준수가 잘해주고 있고, 김앤강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서 버티고 있었지만, 슬슬 전문 인력들을 뽑아야 할 때가 왔다.
[민호: 규형 씨, 혹시 우리 회사에서 일할 마음 있어?]
조규형에게 연락했고,
[민호: 과장님, 이번 주 시간 괜찮으시면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중석 과장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채영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민호: 채영 씨, 혹시 괜찮은 스카우팅 업체 아시는 데 있나요?]
인터넷을 검색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나름 다양한 인맥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채영: 알아요.]
[채영: 아는 언니가 대형 서치펌의 이사로 있어요.]
언제나 답장이 빠르다.
성가시게 하기는 해도 참 유용한 여자다.
[민호: 연락처 좀 알려주시겠어요?]
[채영: 직접 만나서 소개해줄게요. 언제가 좋을까요?]
“그냥 연락처를 주지. 뭘 또 만나자고 하지···. 흠.”
“네?”
“너한테 한 말 아니야. 다른 사람.”
[민호: 급하게 채용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서요. HR 전문가한테 자문받고 싶어서 그런 건데. 회사랑 직함을 할 수 있을까요? ]
[채영: 그 언니가 그런 거 전문이에요. 10년 경력이고, 인맥도 넓고, 분야도 전문직에서부터 일반 사무직까지 전부 커버 가능하고요. 내일 저녁은 어때요? 직접 만나서 명함을 주고받으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성가시게 한다고 말했던가?
꼭 이런 식이다. 뭐만 부탁하면 만나자고 한다.
[민호: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저녁에 뵙죠. 7시쯤 괜찮으실까요? 퇴근이 더 늦으시면 이후에도 전 괜찮습니다.]
[채영: 7시 괜찮아요. 언니에게 물어보고 컨펌해줄게요.]
[민호: 네, 감사합니다.]
[채영: ^^]
문자교환이 끝난 줄 알고 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5초도 안 돼 다시 울리는 전화기.
까톡.
[채영: 언니도 7시 좋다고 하네요.]
[민호: 그럼 내일 7시에 뵙겠습니다.]
드디어 이곳저곳 연락을 마치고 전화기를 집어넣었다.
바로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귀에 익다.
“어, 이 노래.”
“시끄러우세요. 끌까요?”
“아니, 아니. 잠깐 볼륨 좀 높여볼게.”
따라- 따따따- 라- 라라라- 따
전자음이 많이 들어간 요새 음악.
그런데 신기하게도 멜로디가 익숙하다. 어디선가 분명 들었던 곡이다.
“리메이크인가?”
“아니요.”
“누구 노래야? 아이돌?”
“‘DET’요.”
“디이티?”
“네.”
“완전 처음 들어보네.”
“그러실 거예요. 신인이에요.”
“아, 그렇구나.”
따라- 따따따- 라 라라라- 따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어디서 들어본 멜로디.
“근데 내가 이 노래를 어디서 들어봤지? 아니, 들어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멜로디가 너무 익숙한데. 그냥 그런 건가? 머니 코드라고 하는 그런 거?”
준수에게 물었다.
녀석이 전문가니까. 싱어송라이터.
근데 내 질문을 받은 녀석의 표정이 묘하다.
뿌듯해하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슬픈 표정.
뭐지?
“그런 거니, 준수야?”
다시 물었다.
“아니요.”
“그럼?”
“기억하시네요?”
“응?”
“제가 한번 들려드렸던 거 같은데···.”
아, 맞다!
예전에 현동이네 캠핑에 따라갔던 적이 있다.
그때 들었다.
준수가 기타로 쳤던 노래.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두 번 들었다.
너무 좋아서 앙코르를 요청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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