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낯짝이 그렇게 두껍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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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진짜 짜증 나!!! 그 엄마 진짜 왜 그래?! 미친 거 아니야! 가만히 있는 우리 애들을 지 딸이 건드렸으면 사과를 해야지, 왜 지가 성을 내. 아, 재수 없어!”
그날 저녁,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해 들은 인영은 분을 못 이겨 소리를 질렀다.
상대적으로 이런 일에 무던한 현동이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목소리 좀 낮춰. 애들 듣겠다.”
“당신은 뭐 했어? 그 여자 낯짝에 욕도 못 날리고?”
“스티브한테 전화 와서 전화 받고 있었어.”
“아- 진짜! 그래서 내가 학교 옮기자고 했잖아!”
괜히 내가 일을 크게 만든 건 아닌가 싶어 조용히 듣고만 있었는데, 하루, 이틀 있었던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그 애가 계속 괴롭혔던 거야?”
“아- 오빠. 나 진짜 미치겠어요. 아니, 작년에 여기 왔을 때, 한국 사람인 것 같아서 먼저 인사했는데, 표정이 좀 그렇길래 그다음부터 굳이 아는 척하지 않고 다녔는데, 글쎄 그 집 애가······.”
쌓인 게 많았던 인영은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사연은 복잡하지 않았다.
세나, 세린이보다 1년 먼저 온 아이인데, 처음에는 친하게 구는 것처럼 하더니, 점점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너는 왜 영어 발음이 구리다는 둥,
한국에서 어디 살았냐는 둥,
고추장 냄새난다는 둥···.
“학교에는 얘기해봤어?”
“얘기했죠.”
한국 애들 사이의 문제이다 보니 학교에서 시큰둥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부모고 아이고 영어를 잘 못 하니까, 당장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언니 도움도 받아봤는데, 그 못된 애가 꼭 선생님 안 볼 때,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놀 때, 그럴 때만 시비를 거니까···.”
안 봐도 뻔하다.
제 엄마가 저 모양이니 애가 뭘 보고 배웠겠나.
“아- 진짜 미치겠어요. 내가 그래서 학교 바꾸자고 했잖아!”
인영이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현동이에게 화를 냈다.
녀석은 성격이 무던했다.
그래서 장사할 때도 진상 손님들에게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그러려니,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하는 표정이다.
처음 듣는 나도 열불이 나는데···.
“야, 들어보니까 심각한 거 같은데?”
“애들 일이야. 우리 때는 안 그랬냐? 나 초등학교 재식이한테 몇 년을 맞고 다녔는데.”
“아— 진짜! 오빠, 현동 오빠가 이래요. 당신이 맞고 살았다고 당신 애들도 그래야 돼?”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때리는 것도 아니잖아. 이 정도는 약과야. 다른 학교 간다고 저런 애들 없을 것 같아? 있어요. 아직 어려서 그렇지. 나중에 중학교, 고등학교 가봐라? 더 한 애들이 나타나. 지금부터 저런 것들을 상대하는 법을 배워야, 나중에 그런 것들이 나타났을 때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거야.”
녀석이 하는 말의 의미가 뭔지는 않다.
도망쳐다니기 시작하면 나중에 더한 놈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할 줄 몰라,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말.
일종의 백신처럼 지금부터 저런 애들을 멀리하고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
현동이 녀석이 잊어버린 것이 있다.
녀석의 말대로 초등학교 때 괴롭힘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 비교하면 장난 수준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당시 괴롭힘이 정신적으로 덜 힘들었던 건 아니다.
솔직히 나는 그때 애들한테 놀림당했던 게 더 생생히 기억난다.
「야, 얘한테서 걸래 냄새나.」
「얘네 집이 반지하라서 그래.」
조끄만 것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심장을 후벼파는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댔다.
「진짜 별꼴이야. 떡볶이 장사하는 집 애한테서 고추장 냄새가 나지 뭐 그러면 버터 냄새가 나겠어. 아, 재수 없어.」
어디서 들었겠나, 제집에서 들었겠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아는데. 야, 그런 애들이 커서 더 못된 애가 되는 거야.”
“알지. 그렇다고, 전학 가는 게 답은 아니잖아.”
그렇다. 답이 아니다.
못된 송아지는 혼을 내줘야 한다.
어떻게?
“인영아, 어제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
“자주 일어나요. 올해는 반이 달라져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정말 이제는 따라다니면서 저러네.”
오케이.
“나 귀국 며칠 미뤄야겠다.”
“왜? 뭐? 설마 이 일 때문에? 야, 우리 애들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할게.”
“오빠가 알아서 못하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바쁜 민호가 세나, 세린이 일 때문에 한국 못 가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아니, 말 돼.”
“뭐가 말이 돼?”
“돼.”
세상에 내 조카들 일보다 더 급한 건 없으니까.
“오빠, 오빠가 어떻게 좀 해줘요. 오빠 영어 잘하시잖아요. 울 오빠는 이런 일에는 정말 속 터지게 무뎌.”
썩 잘하지는 않는다. 의사소통이 될망정 어디 가서 영어로 따지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려고 며칠 더 머물겠다고 한 건 아니다.
“내일 애들 픽업 내가 갈게.”
---*---
-아 진짜 미치겠어.
“왜 또?”
-아니 글쎄 저번에 말한 그 집 애들 삼촌이라는 사람이 또 온 거 있지? 그러고는 나한테 뭐라고 그런 줄 알아? 미친······.
이종태는 신경질이 났다.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해서는 짜증 나는 일을 쏟아붓는다.
“그러니까 거기서 한국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안 어울렸어! 그것들이 온 거야!
“알았어, 알았어. 세린이한테 얘기해, 걔네들하고 놀지 말라고.”
-말했지. 근데 그 집 애들이 자꾸 알짱거리잖아.
“그 원래 못 사는 집 애들이 그래. 세린이가 귀티가 나니까 괜히 자꾸 앞에서 알짱거리는 거야. 친해 보려고. 애들도 다 알아. 온 지 얼마 안 됐다며?”
-응. 1년.
“영어도 못 하겠네.”
-못해.
“그런 애들이랑 놀면 안 되지. 외국 애들이랑 놀라고 해. 영어 쓰는 애들.”
-놀긴 누가 놀아. 걔네들이 세린이한테 자꾸 들러붙는 거지. 아, 짜증 나. 이름도 우린 세린이랑 같아서 부르면 그 애가 같이 쳐다본다니까. 솔직히 이름 바꾸라고 하고 싶다니까.
“영어 이름 불러.”
-안 그래도 그러려고. 아, 진짜 짜증 나. 학교 옮길 것처럼 그러더니, 학교도 안 옮기고···.
“그런 사람들이 원래 그래···. 아, 그러니까 내가 미국으로 가라고 했잖아.”
-아니, 또 왜 얘기가 그리로 가? 나 미국 싫어. 그리고 내가 캐나다 시민권이 있는데 왜 미국에 가.
캐나다 시민권이 있다고 미국에 못 갈 건 뭐 있나? 근데 꼭 이 주제만 나오면 아내는 화를 낸다.
장인어른 댁도 있으니까, 그리로 간다고 했을 때 동의했는데, 이종태는 여전히 캐나다, 밴쿠버가 별로다.
그에게는 미국 옆에 붙은 촌 동네일 뿐이다.
“알았어, 알았고. 그 사립은 어떻게 됐어? 아직도 못 보내는 거야.”
애초에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못 보내는 이유는 애가 어느 정도 영어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영어 실력이 미달이었다.
-안 그래도 올해 준비해서 내년에는 사립으로 가려고.
“그래. 사립 보내. 어디나 공립에는 기질기질한 것들이 있어. 거기도 떡볶이 장사하는 사람이며?”
-응. 진짜 웃기지 않아? 아니, 떡볶이집 하는 애한테서 고추장 냄새가 나겠지. 그러면 무슨 버터 냄새가 나겠어? 애가 나니까 난다고 하지. 그럼? 우리 세린이가 거짓말을 하겠어? 사실을 말했는데, 왜 사과를 해? 민 애가 사과를 해야지.
“원래 그런 부류들이···잠깐. 민 애? 우린 세린이 밀었어?”
-어- 밀었어, 가만히 있는 애를.
“이런 미친 새끼가. 경찰에 신고했어?”
-응?
“경찰에 신고했냐고? 그런 것들은 감방에 처넣어야지. 왜 남의 귀한 애한테 손을 대고 지랄이야.”
-아니, 그 남자가 밀었다는 게 아니고, 그 집 애가···.
“아니, 그러니까, 그 집 애 말이야. 싹수가 노랐네. 어린 게 벌써부터 손부터 올라가고. 혹시 아빠가 전과 있고 그런 거 아니야?”
귀찮은 듯 전화를 받던 남편이 갑자기 열을 내자, 살짝 당황스럽다. 전화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전과가 있으면 캐나다 이민 못 왔겠지.
“세탁했는지 어떻게 알아, 요새 세상에. 아니면 운동 같을 거 했을지도 모르고. 거기 남편이 덩치가 크다며? 운동 좀 했단 놈들이 툭하면 손부터 올라오고 그래. 아, 근데 애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남의 애를 밀고 지랄이야. 이 새끼가 진짜···.”
-세린이도 맞고만 있지는 않았어. 같이 때렸어.
정확하지 않다.
본인 딸이 먼저 때렸고, 그래서 현동의 딸이 방어적으로 밀었던 거다.
하긴, 어차피 사실대로 정확하게 말해줘도, 듣고 싶은 거만 들었을 거다.
그런 부류다.
“거기 한다는 가게 이름이 뭐야?”
-응? 그건 왜?
“말해봐.”
-<현동이네>인가? 근데, 그건 왜?
“그런 애들은 부모를 교육해야지. 백날 애들한테 말해봤자, 우리만 나쁜 사람 돼.”
-어쩌려고?
“아, 내가 알아서 할게. 당신은 세린이나 잘 봐. 걔네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그리고 사립 힘들 것 같으면, 미국 가는 거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밴쿠버 아니야. 강북 살던 동네 떡볶이집 애들이 갈 정도면 거기 시골 맞아. 그때 말한 보스턴이나 뉴욕 다시 한번 좀 알아봐.”
-······알았어.
딸깍.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딱히 뭔가를 하려고 상호를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허세였다.
괜스레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물어보는 것처럼.
---*---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꼬맹이가 못 하는 말이 없네.”
증거를 잡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 엄마가 이겼다고 생각한 ‘못된 송아지’는 다음 날 바로 또 시비를 걸었다.
교묘한 아이였다. 늘 어리고 말주변이 없는 동생을 먼저 건드린다.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세나가 발끈하면, 그 모습을 보고 달려온 선생이나 어른 앞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이거 봐. 이걸 보고도 오빠는 참을 수가 있어? 세나한테 피해 다니라고 할 수 있겠냐고?”
할 수 없다.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막상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여자가 진짜 애 교육을···.”
영상 속에는 그 집 애가 세린이를 건드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연기하는 것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
“얘! 너 뭐 하는 거야? 너 진짜 이 아줌마한테 혼 좀 나 봐야 정신 차리지!”
“으앙-”
“저기요.”
“아- 진짜 그쪽 애들 좀 똑바로 교육하세요! 못된 얘들이 자꾸 우리 애를 괴롭히잖아요!”
“이봐요, 아줌마. 아주머니, 누가 누구를 괴롭혀요. 누구 닮아서 싹수가 노란 그쪽 애가 시작한 건데.”
“어머, 어머. 상스러워. 누구더러 아줌마래. 저기요!”
······.」
옆에 있던 아이에게 부탁했다. 전부 촬영해달라고.
그 여자의 뻔뻔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
“어떡할래? 니들 결정이야.”
서로를 보는 현동과 인영.
“난 좋아. 두려울 것 없어. 이런 것들은 정말이지 혼이 나야 해.”
“······.”
결정을 내린 인영과 달리 망설이는 현동.
“애들은···.”
“애들 얼굴은 다 모자이크할 거야.”
“······.”
“괜찮을까? 이런 거 공개하면 괜히 명예훼손 소송 같은 거 당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거는 걱정 마라.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해결한다.
---*---
강남의 큰 한우집.
마감 무렵 근사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나타난 사장 이종태는 가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정해야 할 부분을 지적하고는 매출을 확인했다.
만족스럽다.
내일 장사 준비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다음 가게로 움직인다. 강남에만 그의 가게가 일곱 개다.
징징- 징징-
-어디야?
“가게.”
-언제 와?
“금방 가.”
전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술집이다.
-서연이가 너 보고 싶대
“여시 같은 년. 막상 옆에 있으면 건들지도 못 하게 하면서.”
-삼십 분이면 와?
“한 시간.”
-오케이. 알았어. 빨랑 와.
딸깍.
통화를 끊은 이종태는 다음 가게로 가려다가 마음을 바꾼다.
‘하루쯤이야.’ 집에 잔소리할 와이프도 없고 애도 없는데.
다음 점포로 가려던 그는, 핸들을 돌렸다.
그 순간.
징징- 징징-
동생이다.
“왜?”
-형. 방금 내가 보낸 영상 봤어?
“영상?”
좀 전에 친구랑 통화할 때 뭔가 들어왔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체크를 안 했는데···.
-그거 좀 봐봐.
“왜? 뭐 재미있는 거야? 운전 중이야. 나중에 볼게.”
-그런 게 아니야. 형수 영상이야.
“응?”
이종태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휴대폰에서 동생이 보낸 영상을 플레이한다.
「···
“아니, 그럼! 떡볶이집 장사하는 애한테 고추장 냄새난다고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사실이잖아요. 사실!”
“사실이면 그렇게 막말해도 되는 거예요?”
“나니까 난다고 하지. 왜요? 뭐가 틀렸어요?”
“그럼, 아주머니가 성형한 걸 보고, 제가 성괴 같다고 해도 되는 거겠네요? 사실이니까?”
“뭐라고요! 아, 진짜 별꼴이야. 재수 없어. 지금 말 다 했어요? 뭐? 성괴? 별 진짜 거지 같은 게. 내가 이래서 어디 가서 한국 사람이라고 말을 못 한다니까. 이런 인간들 만날까 봐.”
···」
영상을 끝까지 본 이종태.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하— 이 여편네가 진짜···.”
그는 곧바로 아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밤늦게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송 변호사님. 급한 일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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