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시켜서 여기서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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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종류의 음식을 팔다 보니 경쟁을 아예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타켓 고객층이 달라 서로 얼굴 붉혀가며 장사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은 <불떡> 강남점을 방문해서 처음 들었고, 오픈하면서 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형, 확실히 배달이 줄었어. 그리고 거기 줄 서다가 이쪽으로 넘어오던 손님들도 줄었고.”
그런데 저쪽에서 전쟁을 선포했다.
물론 저쪽에서,
‘아니, 뭐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음식점이니까 배달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고. 원플러스원 이벤트? 그런 이벤트는 정당한 영업 방법이 아닌가?’
라고 한다면 딱히 반론할 건 없다.
다만, 그녀의 방식에서 옛날 내가 다녔던 회사가 했던 행태가 보였다.
「“이 대리, <네이처기븐>이라고 들어봤어?”
“네.”
“오랜만에 주성사료 영업팀 과장이랑 술을 마셨는데, 걔네들이 야금야금 시장에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 같던데.”
“아직 작아서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데, 받아본 쪽 반응이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혹시 우리가 관리하는 농장 중에도 있어?”
“장원농장 사장님이 살짝 관심 있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워낙 새로운 것, 유기농, 이런 거에 관심이 많은 분이시잖아요.”
“괜찮은 거야?”
“아무래도 그쪽은 수입해서 푸는 게 아니라, 사료 개발 중점이 되어 있어서 저희랑 사업 모델로 달라서 괜찮을 것 같아요. 규모도 다르고. 주성사료야 겹치는 부분도 있고, 주성사료 개발팀에 있었던 분이 <네이처기븐>으로 가서 개인적인 감정도 있는 것 같고. 신경 안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지켜보다가 혹시 변경 사항이 있으면 보고드리겠습니다.”
“흠···. 아니야. 그때는 늦어. 그런 것들은 지금 아예 싹을 잘라버려야 해. 이 대리, <네이처기븐> 거래처 명단 좀 얻어보고 뺏을 수 있으면, 우리 기존 거래처보다 30% 싼 가격에 납품해주겠다고 꼬셔봐.”
“······.”
“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우리가 안 해도 주성 애들이 할 거야. 그리고, 이 대리, 명심해, 여기 전쟁터야. 신생이라고 봐주고 그런 데 아니라고.”」
상사의 예견이 옳았다.
우리보다도 주성사료 쪽에서 훨씬 더 공격적으로 견제에 들어갔고, 신생 회사라 자금이나 영업력에서 경쟁할 수 없었던 <네이처기븐>은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해산을 선언해버렸다.
대리 1년 차 때 일이었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비즈니스라는 게 서로 봐주고 예의를 갖춰 싸우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고작 걸음마를 뗀 아이라도 붙어보겠다고 나오면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전쟁터라는 것을.
그래도 씁쓸함이 남는 것 어쩔 수 없었다.
나야 한림사료의 직원이니, 당연히 한림사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동시에 내가 <네이처기븐>의 직원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배합사료 시장의 95% 이상이 수입 원료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처기븐>은 국내 사료 개발에 포커스를 맞춰 신생치고는 나름 성과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한림이나 주성 같은 덩치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불법을 저지른 것도,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네이처기분>의 사장이었으면···,」
“기분이 거지 같았겠지.”
끝이 보이지 않게 줄이 늘어선 맞은편 가게를 바라보고 있자니, 옛날 일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응? 뭐라고, 형?”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다.
“저쪽에 ‘쫄리면 뒤지시든지’하고 나오는데, 정말 뒤질 수는 없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전쟁을 받아주겠다.
“승호야, 가게에 큰 종이 있냐? 뭐 쓸 수 있을 만한? 매직도 하나 주고.”
“큰 종이? 스케치북 같은 거?”
“그런 것도 되고 그냥 포장지 같은 것도 되고. 바탕만 흰색이면 돼.”
“잠시만···.”
몇 분 뒤, 승호는 내가 생각하는 크기에 딱 들어맞는 종이와 검정 매직펜을 가지고 왔다.
“뭐 쓰려고?”
“봐봐.”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써 내려가자,
“<불떡> 기다리시는 분들.”
녀석은 내가 쓰는 글자를 따라 읊었다.
“저희 매장으로 배달시켜서 드셔도 됩니다. 뭐? 진짜? 이래도 돼, 형?”
그 여자가 물량으로 승부하고 싶다는데, 어쩌겠나? 나무의 지폐 생산량도 증가했는데, 다 받아주는 수밖에.
“안 될 게 뭐가 있어?”
---*---
똑똑똑.
“죄송합니다. 가게에 일이 좀 생겨서···.”
회의가 끝날 무렵, 성화 F&B 신사업본부 회의실 안으로 이대역 지점장 이도형이 들어왔다.
지각 사유가 궁금했지만, 음채영은 회의가 끝난 뒤에 물을 생각이다.
“그러니까, 종합하면, 순수익은 기대치 이하, 매출은 증가. 이 말이죠?”
“네. 그리고 전체적 매출은 강남점이 여전히 높지만, 평당 매출 기준으로 보면 이번 이대점 매출이 추월했습니다.”
“그건 괄목할만하네요.”
“원플러스원 효과를 톡톡히 본 것 같습니다. 배달을 일찍 재개한 것도 한몫했고요.”
프랜차이즈를 목표로 시작한 브랜드였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매출이 수익보다 중요했다.
물론 마이너스가 날 정도로 심각해서는 안 되지만, 매출 수치를 증대할 수 있으면 어느 정도 수익을 포기하는 방법도 프랜차이즈 런칭을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특히 이미 강남점을 성공시킨 상황이었기에 2호점인 이대역점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을 수 있다면, 단기간의 수익 정도는 양보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이라도 앞 상가에 있는 가게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 앞 가게는 어쩌고 있죠?”
채영의 질문에 이도형이 답하려 했으나, 송재성이 선수를 쳤다.
“<불떡> 이대점에 사람이 몰리면서 낙수효과를 보고 있었는데, 이벤트 시작하면서 그쪽 가게로 가던 대기자 수도 확 줄었습니다. 배달 주문도, 직원을 시켜 지난 2주일 동안 관찰해본 결과, 확연히 감소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거기는 배달앱 주문을 받지 않고 가게에서 직접 전화주문을 받는데, 가게 소유 오토바이 운행 회차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듣고 싶었던 결과.
보고를 들은 채영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알았어요. 일단 원플러스원 이벤트 반응이 좋으니까, 몇 주간 더 유지하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혹시 더 보고할 사항 있나요?”
회의에 참석한 실무진 직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없다.
“그럼, 오늘은 이만하고 끝내죠. 지점장님, 지점장님은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하실까요?”
“예.”
채영의 지시에 모두 회의실을 떠나고, 이도형과 송재성만 남았다.
“가게에 일이 생겨서 늦으셨다고요?”
“네.”
“무슨 일이죠?”
“보고 들으신 것 같은데, 지난 몇 주간 손님 수가 급증하면서 몇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요?”
“일단 업무 강도가 세지다 보니까 직원들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요.”
“그건 문제가 아니죠.”
“네, 파트타임 인력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정리 중입니다.”
“다른 문제는요?”
“옆 가게에서 들어오는 컴플레인입니다.”
사람이 더 몰려드니 옆 가게 주인들도 미칠 지경이다.
“법무팀하고 얘기해봤나요?”
“네. 법무팀하고 얘기해봤는데, 저쪽에서 영업방해로 고소 들어오면 그때 대응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지금은 그냥 철면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정 팀장님하고 이야기하셨어요?”
“네.”
“정 팀장님한테 옆 가게들 증축이나 혹시 다른 건축법 위반 사항들 없는지 검토해달라고 하셨어요?”
“아니···요. 그건 못 물어봤습니다.”
이도형의 대답을 듣자마자, 채영은 옆에 있던 송재형에게 지시했다.
“송 실장님.”
“네, 본부장님.”
“정 팀장님에게 옆 건물 건축법 위반 사항이 있는 알아보라고 하고, 발견하면 실장님은 그걸로 옆 건물 주인을 만나보세요.”
건물주를 통해 상가 입주자들을 압박하겠다는 취지다.
“또 다른 문제가 있나요?”
“예.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뭐죠?”
“<현동이네> 때문인데요.”
지점장이 ‘현동’이라는 이름이 언급하자, 채영의 오른쪽 이마가 움찔거렸다.
“며칠 전에 이상한 사인을 내걸었는데, 이걸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인이요?”
“사인이라고 하기에도 조악한데. 아무튼 스케치북 종이 같은 데 써서 그쪽 가게 창문에 붙였습니다.”
“뭘 써서 붙였다는 거죠?”
“‘<불떡> 기다리시는 분들, 기다리는 거 힘드시죠? 너무 힘드시면 저희 매장으로 배달시켜서 드셔도 됩니다. 에어컨 만빵^^.’”
“뭐라고?”
옆에 있던 송재성이 먼저 놀라 끼어들었다.
그러자, 이도형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해당 사인이 걸린 <현동이네>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을 본 채영은 그대로 얼굴이 굳어버린다.
정말이지, 스타일과 클래스를 중요시하는 그녀가 극혐하는 사인이자 문구이다.
특히 마지막에 붙은 ‘에어컨 만빵^^’은 그녀를 놀리는 느낌마저 든다.
“이게 뭐야? 이건 영업방해지 않아?”
황당했는지, 송재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도 법무팀 정 팀장님에게 옆 상가 컴플레인 관련해서 물어볼 때, 같이 물어봤는데 법적으로 하등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왜? 이건 남에 손님 빼앗아가는 거잖아. 호객행위 아니야?”
“매장에 들어온 손님을 데려가는 게 아니라 단순히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변심해서 가는 거기에 문제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끌고 가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이렇게 자기네 가게에 붙여놓은 거라서 제재할 수도 없고요. 상도의에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요새 같은 세상에 상도의라는 게 뭔지 명확하지 않아서···.”
“하-참, 이 가게 사장도 웃기네. 멀끔하게 생겨서 또라이였네.”
“첫날은 저랑 매장 직원들도 그냥 웃고 넘겼는데, 날씨가 더우니까 확실히 넘어가는 손님들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웃기기는 해도 기발한 점을 어쩔 수 없어서 호기심에 가는 손님들도 많이 생겼고. 오죽하면 이제 저쪽 가게에도 줄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매장보다는 빨리 들어가고 가게도 저쪽이 넓으니까.”
“뭐라고요?”
“하- 참,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내가 요식업에 15년 가까이 일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래요? 무슨 심보야? 돈이 안 되잖아?”
“직원이 슬쩍 한번 가봤는데, 저희 매장 음식만 먹을 수 있는 거는 아니고, 거기서 메뉴 하나를 시키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메뉴가 확실히 다양하고 저렴하다 보니까. 단골 몇 명이 우리 매장에서 떡볶이만 포장해서 간 뒤, 튀김은 거기 것과 먹는 경우도 목격했습니다.”
“그 봐. 영업방해네. 지점장, 진짜 법무팀에서 제재할 게 없다고 얘기했어요?”
“네.”
“분명 있을 거 같은데···. 본부장님, 이건 무슨 수로든 바로 제재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송재성이 길길이 날뛸 동안, 휴대폰 사진 속 사인을 노려보며 듣고만 있던 채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 사인 언제부터 붙어있었어요?”
“일주일 전부터요.”
“이 거지 같은 가게로 배달시키거나 포장해 간 주문이 얼마 정도 되는지는 파악하고 있어요?”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대략 총매출액에 10~15%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굳어있던 채영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선빵을 날렸다가 한 대 제대로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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