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지하밀성(地下密城) <05>
우르릉...
지하밀성이 붕괴되어 가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이는 이미 붕괴가 지척까지 다다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정신없이 비급을 탐독하던 세 사람이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은 그때였다.
“우리가 잠시 상황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늦기 전에 어서 출구라도 찾아야겠습니다!”
조양천이 먼저 벌떡 일어나더니 열 개의 비급이 들어 있던 봇짐을 얼른 등에 맸다.
그러자 단중도 뒤따라서 다른 봇짐을 등에 바짝 둘렀다.
“뒷일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비급들을 버려 둘 수는 없겠지요.”
단중의 말에는 죽음에 이르러도 비급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두 개의 봇짐들과는 달리 세 사람의 손에는 이미 아까 빼내었던 비급이 한 권씩 들려 있는 상태였다.
봇짐 속으로 집어넣어야 할 비급들을 그들은 쉽게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지반이 크게 흔들리면서 우렁찬 굉음이 공간을 진동시키며 긴급함을 알렸다.
“허... 서두릅시다!”
조양천이 들고 있던 비급을 얼른 품에 넣으며 소리지르자 단중과 원기종도 급히 품속에 비급들을 갈무리했다.
절세비급 앞에서 개결(介潔)하게 있을 무인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세 사람 사이에 비급에 관한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열권의 절세비급중 세 권이 이들의 손에 들어갔으나 아직 일 곱권의 비급이 남아 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지하밀성에 들어와서 비급 한권 가진다는 것은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출구를 못 찾아 어쩌면 목숨을 잃을 상황인데도 무공에 대한 욕심과 집착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많은 비급들이 있으니...별 티는 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출구를 찾던 세 사람의 머리에 떠오른 공통된 생각이었다.
“원장문인! 여기 좀 와보시오!!”
단중이 뭔가를 찾아냈는지 고조된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뭡니까!!”
조양천과 원기종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급히 다가왔다.
“이것은!! 십이지신(十二支神)이 새겨진 벽면!!”
원기종은 무엇인가가 생각나면서 둔기에 맞은 듯 충격을 받고 있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辛酉戌亥)의 열 두 개의 형상을 가진 벽면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처음에는 우연이거니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찌 설명해야 합니까?”
단중은 속가제자인 위현룡이 예지했던 그 상황을 언급하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거 참 희한한 일이군요.”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조양천도 괴이쩍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출구는...”
“축(丑)입니다!!!”
이미 위현룡의 말을 믿게 된 원기종이 힘껏 부르짖었다.
“어쩌면 우리가 살수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줄기 희망을 찾은 단중이 기쁜 얼굴을 하면서 내력을 끌어올렸다.
쌍장을 모은 그가 축이 새겨져 있는 벽면으로 힘껏 장력을 뿜어냈다.
벽면을 뚫고 지하밀성을 빠져나갈 작정을 한 것이다.
펑!.
주위로 부서진 내력의 기(氣)가 물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이런...벽면이 멀쩡합니다!”
세 사람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단중이 뻗은 장력은 전력을 다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벽면에는 작은 흠집하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르르릉.
앞은 벽으로 막혀 있고 뒤에서는 지하밀성이 계속 허물어지면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일 다경이면 세 사람은 지하밀성을 무덤삼아 하직인사를 해야 할 판이다.
진퇴양난 속에서 원기종이 외쳤다.
“우리 모두 한꺼번에 저 벽을 부숴야 합니다! 모든 내력을 총 동원하십시오! 기회는 단 한번뿐입니다!! 여기서 실패하면 내력이 고갈되어 더 이상의 시도가 불가능합니다!“
즉 밑바닥까지 내력을 모조리 응집하여 단수에 방출시키자는 뜻이었다.
세 사람의 머릿속에는 단 한번뿐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다!!)
원기종과 단중은 장력을 끌어올릴 준비를 했고 조양천은 검풍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조양천은 장풍이 절기가 아니었기에 부득이하게 검풍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벽면 한 곳으로 모든 힘을 집중시키십시오!”
세 사람의 눈에는 비장함이 서렸다.
“갑니다!!! 하나, 둘, 셋!”
단중의 구호에 맞춰서 태산같은 장력이 모아져 벽면으로 돌진했다.
펑!
강력한 내력에 지하밀성이 붕괴되는 듯 진동하였고, 급작스런 내력 소모로 세 사람은 현기증을 느끼면서 휘청대기에 이르렀다.
“허...큰일이군요...벽면이 끄떡도 안 하다니...”
어지러움에 인상을 찡그리던 단중이 멀쩡한 벽면을 보고 허탈한 기색을 보였다.
조양천이 힘이 빠졌는지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이미 모든 내력을 다 쏟았습니다. 이젠 더 이상 기력도 없기에 다시 시도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이 곳에서 뼈를 묻는가 봅니다.”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근처에 웅크리고 죽은 해골의 모습이었다.
원기종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근심어린 눈으로 벽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런데 꿈쩍 않던 벽면이 육중한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뒤쪽으로 쏠려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 움직입니다!!”
단중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펄쩍 뛰면서 외치자 쓰러져 있던 조양천도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이건 기적이오!!”
세 사람의 환호소리와 함께 육중한 벽면이 뒤로 완전히 넘어갔다.
쿵소리와 함께 돌가루가 퍼져 주위가 뿌옇게 서리는데 세 사람의 안면으로는 잔잔한 미풍이 느껴져 오고 있었다.
“출구입니다!!”
“모두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 이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원기종이 외치면서 먼저 신형을 날렸다.
기진맥진한 상태였으나 희망의 문을 발견한 그들은 전력을 다해 출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하하하하하!! 이제부터 무림은 내가 장악하게 될 것이다!!”
벼랑위에 서서 보이는 푸른 강산을 보면서 홍후인은 깊은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이제야 절세비급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마교와 구파일방은 물론이고 모든 무림세가가 내 발아래 꿇어 엎드리리라!!“
지하밀성에서 발견한 귀혼환령검이라는 비급을 품속에 넣으면서 홍후인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하늘과 땅에 대고 호령했다.
“우선 무림에서 위세가 대단한 마교부터 꺾어서 본보기로 삼으면 구파일방이 알아서 고개를 숙일 것이다. 하하하하!!“
현재 무림에서 마교가 구파일방의 세력을 능가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청성파를 필두로 이미 많은 문파가 마교와 연을 맺거나 손을 내미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홍후인이 마교를 우선순위로 잡은 것은 훗날의 잡음을 불식시키기에 가장 효과적인 선택일지도 몰랐다.
입가에 만족한 웃음을 담으면서 홍후인이 자리를 뜨기 위해 몸을 돌릴 때였다.
“앗!! 저 놈들은!!”
그의 얼굴에서 의혹과 당혹 그리고 경악스런 표정이 짙게 서리기 시작했다.
돌먼지를 뒤집어 쓴 덕분에 돌부처처럼 된 세 사람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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