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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2.12.15 05:44
최근연재일 :
2014.05.02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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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0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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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2)

DUMMY

잠시 후 안토니오스가 찾아 왔다.

서희가 말했다.


“장군께 부탁이 있습니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황노준을 그냥 둘 수가 없겠습니다.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어야지요. 힘드시겠지만 잠시 동안만 5백으로 송시진을 막아주세요. 그리고 2백을 떼어 황노준이 언덕을 오르면 후방을 치게 해주십시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황노준의 목만 베면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질 테니까요. 그 연후에 제가 3백을 이끌고 장군께 합류하겠습니다. 그 동안 절대 송시진에게서 눈을 떼시면 안 됩니다.”


안토니오스는 멍한 얼굴로 이븐을 바라보았다. 이븐은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안토니오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 ‘설마 내 심중을 읽은 건가? 아니, 그럴 리가. 그러기엔 정보가 너무나 제한되어 있었다. 이븐 선생이 지모가 뛰어나다 하나 귀신은 아니니까.’


머리 좋은 사람들이 종종 빠지는 늪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머리 좋은 사람을 만나면 상대를 자기 수준으로 생각하지 그 이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상대가 적일 때는 허를 찔릴까 두려워 항상 경계하니 그나마 덜하지만, 한 편일 때는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더욱 방심하게 마련이다. 자기는 상대의 감춰진 심중을 읽으려 하면서도 상대도 그러하리라는 데는 생각이 잘 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안토니오스는 정치가가 아니라 역시 군인이었다. 같은 편을 의심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명 받들겠습니다. 허나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황노준을 내버려두면 백성들이 고초를 겪겠지만 그를 제거하면 오히려 더 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 다른 이가 내려올 텐데, 새로운 태수가 민란을 일으켜 전임 태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백성들을 그냥 두겠습니까?”


이븐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거들었다. 안토니오스가 듣는 자리이니만큼 말투도 정중했다.


“게다가 황노준만큼 만만한 놈도 흔치 않을 겁니다. 저놈이라면 언제든지 목을 칠 수 있으나 혹시 그 자리에 제법 똘똘한 놈이 오면 어쩌시렵니까? 송시진이야 그보다 나은 인재를 찾기 어려우니 제거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황노준은 얘기가 많이 다르답니다.”


안토니오스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이븐이 자기편을 들어주자 더욱 그를 의심할 마음을 품지 않게 되었다.

서희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이븐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화적이 아니라 서희도의 군대라는 것을 밝혀도 마찬가지일까요?”

“다르죠. 백성들에게 화가 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오주와 강문, 홍강 항까지 오한의 주력이 배치될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되지요.”


서희는 한참을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검을 챙겼다.


“밀고 나가겠습니다. 제가 송시진과 담판을 짓지요.”


이븐과 안토니오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송시진이 덕이 있다 하나, 그가 얼마나 고지식한 인간인지는 귀양살이나 다름없는 오주에서 군을 정비해 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저희가 목숨을 걸고 지켜 드릴 테니 아가씨야 안전하다 하더라도 송시진이 사실을 그대로 보고해버리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서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충(忠)이라는 허울에 대의를 팔아넘기는 자라면 베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못 하시겠습니까? 겨우 두 배가 조금 넘는 병력입니다.”


안토니오스가 고개를 저었다.


“황노준이 이끄는 오합지졸과 같이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송시진은 수준이 다른 자입니다.”

“제가 독대할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면 베어버리지요.”


안토니오스는 세 배에 가까운 병력을 이끄는 적장이 뭐 하러 화적으로 여기는 자들의 두목과 독대를 하겠느냐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화적의 두목을 자처하는 자가 서희라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독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베어버린다니? 저 연약한 소녀가 오한 최고의 장수를 말인가?

그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데 이븐이 가로막았다.


“아무리 독대라 해도 좌우에 한 명씩은 거느리겠지요. 범계가 따르면 의심할 테니 제가 따르겠습니다.”


이븐까지 이렇게 나오자 안토니오스도 어쩔 수 없었다. 모든 명령을 뒤집을 수 있는 서희의 존재가 그에게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안토니오스는 참담한 표정으로 막사를 나섰다. 이븐이 급히 따라나가 그를 붙잡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서희 아가씨의 검술은 장군이 상상하시는 이상입니다. 일단은 다른 수를 생각하지 말고 서희 아가씨 명에 그대로 따르기로 합시다. 이미 크게 엇나간 계책인데, 우리끼리라도 손발이 맞아야지요.”


이븐이나 안토니오스나 이제 믿을 건 서로밖에 없었다. 사실 그 둘이야말로 서희도에서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한 쌍이었다. 추구하는 바는 다르나, 서로의 색깔을 느끼고 있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의기투합했다. 안토니오스는 병사 2백을 떼어 눈에 띄지 않게 매복시킨 다음 송시진을 맞으러 달려갔다. 이븐은 백인대를 이끌고 언덕 위로 올라가 일렬로 길게 늘어 세웠다. 그리고는 목소리 큰 범계를 데리고 성 아래로 달려 내려가 이렇게 외치게 했다.


“황노준 이 비겁한 놈아! 우리 아가씨가 무서워 친구를 불렀느냐? 네가 우리 대군을 보고 오줌을 얼마나 지렸는지 네 친구한테 다 일러줄 테다!”


이븐과 범계는 성문 주위에서 몇 번이나 그렇게 외친 다음 언덕 위로 돌아왔다.

황노준은 성문 위에서 안토니오스가 5백을 이끌고 오주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범계가 나타나 그렇게 소리치자 화도 났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섰다.


- ‘저 5백 기가 송시진의 대군을 보고도 맞서 싸울 리가 없다. 틀림없이 헛소리만 잔뜩 지껄이고 도망칠 게다. 송시진 그 여우같은 놈이 그 말을 허투루 들을 리가 없지. 괜히 약점 하나 잡히게 생겼구나!’


그는 언덕 위에 남은 3백 기 정도가 진을 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병법의 금기 중 하나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처지가 못됐다. 성을 비우고 전군을 들면 이쪽이 세 배나 되니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피해가 클수록 전공을 부풀리기도 좋을 터였다.

황노준이 전군을 이끌고 성을 나섰다. 이븐이 그 모습을 보고 서희에게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앞으로 나서지 마십시오. 마상에서는 검보다 창이 낫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어찌 제 몸 하나만 보살피겠습니까?”

“그러셔야 합니다. 이 병사들을 보십시오. 아가씨께서 안전하시다는 확신이 있어야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이 입을 모아 이븐을 거들었다. 서희도 더 고집을 부릴 수 없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적은 황노준 한 사람입니다! 적장의 목을 베면 쓸데없는 살생을 피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미 서희의 성품을 잘 아는 병사들에게는 새삼스러운 명이 아니었다. 백인대의 함성이 언덕을 뒤흔들었다.

강문의 병사들은 함성이 그치기도 전에 언덕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황노준은 언덕 아래 안전한 곳에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곧 그도 언덕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황노준의 9백이 언덕을 반쯤 올랐을 때, 논밭에 매복해 있던 2백이 뛰쳐나와 퇴로를 차단하며 달려든 것이다.

황노준은 미친 듯이 소리치며 북을 울려 언덕을 오르던 병사들을 되돌아오게 했다. 올라가던 탄력은 잠시 멈칫하는 순간 완전히 사라져 중력에 충실히 복종했다. 황노준의 병사들은 거의 굴러 떨어지다시피 내려와 매복해 있던 2백을 막는 방패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편이 비었다. 이븐이 이끄는 백인대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번과는 달리 한꺼번에 내려오지 않고 이븐의 뒤를 따라 가늘고 긴 송곳처럼 황노준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 내려왔다.

진형이 흐트러진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언덕을 돌아내려가던 강문의 병사들은 백인대의 기세를 막아낼 수가 없었다. 돌아서 봤자 중심을 잃고 뒤로 고꾸라질 뿐이었다. 언덕 아래 2백이 버티고 있으니 마냥 후퇴할 수도 없었다. 적은 좌우로 몸을 굴러 길을 열어주며 살 길을 찾았다.

이븐은 황노준을 향해 무인지경으로 달려갔다. 황노준에게 닿기까지 이븐의 창에 목숨을 잃은 적병은 단 세 명뿐이었다. 황노준이 네 번째였다.

백인대가 황노준의 9백을 완전히 가르고 내려오자 기다리고 있던 2백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백인대는 크게 원을 그리며 언덕을 내려온 탄력을 죽이고 돌아왔다. 이븐이 언덕 중간쯤에 주저앉아 있는 적병을 향해 외쳤다.


“황노준은 역모를 일으킨 송시진에게 성을 고스란히 바치려 한 역적이다! 지금 송시진이이리로 오고 있으니 지체하지 말고 성으로 돌아가 문을 굳게 닫고 지켜야 할 것이다!”


범계가 말을 달리며 그 말을 몇 번 반복했다. 강문의 병사들은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어쨌거나 목숨을 살려준다는 데야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븐이 길을 내주자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성문을 굳게 닫았다.

서희가 천천히 언덕을 내려왔다. 아군은 물론이고 적의 희생도 거의 없는 대승을 거두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븐이 그 표정을 보고 실소를 흘렸다.


- ‘뭐야. 안토니오스한테 2백을 달라기에 이런 그림을 그린 줄 알았더니만. 그냥 황노준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뜻이었나 보구나.’


서희의 의도가 이븐이 생각한 만큼 단순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대승을 거둘 줄도 몰랐다. 단지 군을 그렇게 배치하면 이쪽이 매우 유리해져 적은 수로도 큰 희생 없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여긴 정도였다.

그러나 서희는 이븐의 표정을 보자 괜히 얄미워져서 엉뚱한 부분을 칭찬했다.


“창도 제법 잡을 줄 아는구나.”

“잡기일 뿐입니다. 제대로 된 장수와 붙으면 제 몸 하나 지킬 정도나 될까 말까 합니다.”

“친위대장께서 그러하시다니 참으로 든든하다.”


이븐은 크게 웃을 뿐 달리 변명하지 않았다.

사실 이븐의 창술은 검술에 비교해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에게는 검술이나 창술이나 잡기나 다름없었다. 자기 실력과 관계없이 처음부터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킬 생각일 터인 서희에게 굳이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서희는 전장에서 자기 몸이라도 지킬 줄 안다니 기특하다고 치하할 뿐 끝내 적장의 목을 벤 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말을 몰아 안토니오스와 송시진을 향해 달려갔다. 이븐도 자기가 무슨 공을 세웠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병사 3백을 이끌었다. 한참 후에 그 사실을 깨닫고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서희는 이미 지난 일이라며 끝내 한마디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 * *


송시진은 적병 5백 기의 움직임을 보고 그들이 단순한 화적 떼가 아님을 알았다. 민란에 가담한 농민일 리도 없었다. 적은 따라잡을 수도 없고 떨쳐낼 수도 없는 그림자와도 같았다. 한순간만 방심해도 급소를 관통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그림자였다.


- ‘오한에 없는 장수다. 임초서 장군 못지않구나.’


송시진은 적장의 역량에 깊이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서희도를 떠올렸다. 그건 임초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송시진이 안토니오스의 병력운용을 본 이상 이쪽을 화적떼로 오인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실수였다.


- ‘서희도의 서희라는 아가씨가 사실은 화란 공주라는 소문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장수가 모여들 리 없지.’


송시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가 비록 오한의 신하이기는 하나 그가 바쳐야 할 충성의 우선순위는 휘 제국에 있었다. 지금의 천자는 어머니 치마폭에 휘휘 감긴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사실 선대 황제의 적통일 리 없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쩌면 그는 지금 황실의 유일한 적통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을지도 몰랐다.


- ‘확인하자. 확인하고 생각할 일이다. 만일 서희도가 화란 공주의 섬이라면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고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찾아주셨다 여겨야 할 것이다.’


송시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군사를 멈춰 세워 안토니오스와의 신경전을 끝내버렸다. 안토니오스 또한 정말로 송시진의 그림자라도 되는 것처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동시에 멈췄다. 양 진영 사이의 거리는 백 보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송시진은 그 움직임에 또 한 번 깊이 감탄했다.


- ‘내가 서희도로 간다면 저 기병대의 끝자락에서나 말을 달릴 수 있겠구나.’


공명을 탐하지 않는 송시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화란 공주가 그렇게 곤궁한 처지에 몰려있지 않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속의 큰 짐을 덜어낸 것 같았다. 이제 그는 서희도의 서희라는 소녀가 정말로 화란 공주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송시진은 수하의 만류를 뿌리치고 단기로 20여 보쯤 앞으로 나섰다. 안토니오스는 송시진이 먼저 독대를 청해오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의심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마주 걸어나갔다. 그를 본 송시진은 창을 버리고 다시 10여 보 앞으로 나갔다. 안토니오스도 창을 버렸다. 그러나 몇 발자국 앞으로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더니 되돌아가 창을 집어 들고는 군영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송시진은 어안이 벙벙해 돌아갈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러다 적진 너머에서 뽀얀 흙먼지가 이는 것을 보고 덜컥 겁이 나 한두 걸음 뒷걸음질쳤다.

송시진의 진영에서도 흙먼지를 발견하고는 주군을 구하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안토니오스는 군을 반으로 나누어 좌우로 갈랐다. 마치 두 명의 안토니오스가 절반씩 나누어 병사를 이끄는 듯,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송시진 또한 뛰어난 장수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안토니오스는 확실히 격이 다른 장수였다.

거울에 비친 상처럼 좌우로 갈라지는 적병의 움직임에 넋을 놓고 감탄만 하고 있던 송시진은 불현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지 이쪽의 공세를 흩어버리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흙먼지의 정체를 직접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송시진은 급히 손을 내저어 병사들의 전진을 막았다. 이쪽도 훈련이 잘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단 한기도 송시진보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제자리에 멈췄다. 진형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안토니오스도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를 인정했다.

이븐이 이끄는 3백도 거리를 두고 천천히 멈춰 섰다. 좌우로 퍼진 안토니오스의 군보다 앞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서희도의 8백은 자연스럽게 반원을 그리며 학익진을 펼쳤다. 송시진의 2천이 둥근 지붕을 인 초가집처럼 직사각형으로 방진을 펼쳤다. 학익진을 활로 삼아 시위를 걸면, 선두에 선 송시진은 그로부터 5~6십 보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 ‘우리 병사가 많으니 이 방진은 저 학익진의 천적이라 할만 하다. 그런데도 저 뛰어난 장수가 진형을 바꾸지도 않고 후퇴하지도 않는다. 내가 청한 독대에 응하고자 함이다. 적장이 되돌아간 것은 지금 도착한 군에 그의 상관이 있다는 뜻이겠지. 자기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 여긴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모여 있단 말인가?’


송시진은 좌우에 엄명을 내려 아무도 뒤를 따르지 못하게 하고 홀로 나아가 학인진의 활시위에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아군보다 적에게 더 가까우니 위태로운 진형을 감수한 상대에게 빚을 갚은 셈이었다. 안토니오스는 그의 덕에 진심으로 탄복하는 한편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관점에서는 송시진의 행동이 결코 장수가 취할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작은 의를 지키려 수하 2천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븐도 안토니오스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만일 송시진이 저 상태로 밀고 들어왔다면 크게 낭패를 당했을 터였다.


- ‘안토니오스는 만일 적이 그대로 밀고 들어온다 해도 큰 피해 없이 병력을 수습할 수 있다고 자신했을 거다. 기동력은 이쪽이 훨씬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겠지. 그래도 역시 어느 정도 군사가 상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뭐, 독대를 이끌어내려면 그 정도쯤이야 감수해야지. 그런데 이건 모험이 성공한 정도가 아니잖아? 내가 송시진을 너무 높이 보았던 모양이다. 고지식한 것도 저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바보를 면한 수준이라 해야 옳겠다.’


송시진에 대한 이븐의 평가는 공정하다고 할 수 없었다. 꽉 막힌 성격이 그와 맞지 않을 뿐인데 그 능력까지 한 수 아래로 평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도 송시진 같은 장수야말로 임초서에게는 호랑이 등의 날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늙은 호랑이에게는 이제 날개가 절실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은 송시진의 저러한 성품이 몹시 반가웠다. 생각보다 훨씬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계속 오주를 지킨다면 서희도의 행보가 더욱 가벼워질 터였다.

서희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이 송시진이라는 장수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만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제가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이븐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창을 버리고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갔다. 서희가 붙잡을 틈도 없었다.

송시진의 시선은 달려오는 이븐이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서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거리가 멀어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화란 공주일 가능성이 컸다. 사실 가까이서 본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주 성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왕궁에 머문 화란 공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상담이라는 객장과 마주친 적은 있었으나 그때는 그가 임초서라는 사실도 몰랐었다.


“서희도의 친위대장 해영이 인사 올립니다. 오주 태수 송시진 장군이십니까?”


송시진은 해영이라는 이름을 듣고 흠칫 놀랐다.


“해영이라 하셨습니까?”


이븐이 웃으며 대답했다.


“승하하신 화란 공주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이름입니다. 이 이름으로 큰 죄를 지은 해적은 따로 죗값을 치르고 있으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송시진은 이븐이 화란 공주를 언급하자 경계심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리고 공주가 죽었다는 말에도 솔직하게 반응해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멀리 서희가 보이고, 그녀가 사실은 화란 공주라는 소문도 들어 알고 있었으나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븐은 그를 보며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 ‘사기칠 맛도 안 나는 녀석이다. 저렇게 순진하고 고지식한 인간에게 무슨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괜히 짐만 떠안게 생겼는걸?’


그때 등 뒤에서 편자를 박지 않은 말이 지면을 사뿐히 내딛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흑마를 몰고 온 것이다. 이븐이 속으로 혀를 찼다.


- ‘그냥 나한테 맡기면 좋을 것을. 뭐, 상관없겠지. 그 얼굴 보여주는 걸로 얘기는 끝이다.’


과연 그랬다. 이목구비를 확실히 분간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좁혀지자 송시진은 서희가 화란 공주임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말에서 뛰어내려 서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희는 그 짧은 순간에 벌써 이븐이 송시진을 속여넘긴 줄 알고 새삼 그의 언변에 감탄했다. 결정적으로 그를 속여 넘긴 것은 자기 얼굴이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신(臣) 송시진이 공주님께 문안 인사드립니다.”

“이러지 마세요. 저는 화란 공주가 아닙니다.”


서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이븐이 재빨리 그 말을 받았다.


“화란 공주님께서는 서희도에서 이미 세상을 뜨셨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분은 서희도의 서희 아가씨입니다. 그리 아시고, 그리 행동하셔야 할 것입니다.”


송시진은 신분을 감추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공주 앞에서 너무 경솔하게 행동했다 여기고 벌떡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신이 어리석어 죄를 지었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서희는 눈을 감고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븐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어찌 수습하시려고 이러십니까? 어서 말에 오르시지요.”


송시진은 얼굴을 붉히며 그 말에 따랐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 수하는 모두 공주…… 휘 제국의 부흥을 위해 목숨을 바칠 자들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서희의 한쪽 눈썹이 짧게 치켜 올라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시군요. 저는 휘 제국의 부흥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서희는 송시진의 눈이 휘둥그레지거나 말거나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는 학정에 시달리는 오한의 백성을 돕고자 섬을 나섰을 뿐입니다. 그런데 강문 태수 황노준이 저희가 준 선물을 받은 백성들을 폭도로 몰아 학살하기에 군사를 들어 그 목을 베었지요.”


송시진이 짧게 탄성을 질렀다. 1천도 안 되는 병사로 황노준을 처단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으나, 그 뒷감당을 생각하니 아찔하여 터져 나온 탄식에 가까웠다.

이븐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 송 장군을 만나려 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조정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새로 부임할 태수가 백성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야 섬에 틀어박혀 있으면 그만이지만 그래서야 아가씨께서 이렇게 일어서신 의미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송시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황노준은 화적을 토벌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송 장군께서 전멸시킨 걸로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시겠지만 지금 오주에서도 상담 장군이 이끄는 대군이 백성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나쁜 의도가 없으니 앞으로도 그 일을 눈감아 주셨으면 합니다.”


송시진은 그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했다. 비록 방비가 잘되어 있다고 하나 자기가 성을 비운 사이에 임초서가 성을 들이쳤다면 정태로서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이미 화란 공주를 따르기로 결심한 송시진은 서희도의 힘에 완전히 굴복해버렸다. 이븐이 임초서의 1천 2백을 대군이라 과장하여 칭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힘주어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오주는 서희 아가씨의 것입니다. 신 송시진은 그 집을 지키는 개가 되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이븐은 일이 너무 싱겁게 해결되어 버리자 오히려 불안했다. 송시진이 서희가 아니라 화란 공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서희도의 광신도들과 달리, 이치와 도리를 따지는 사상대결을 통해 철저히 굴복시켜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백기를 든 상대를 일으켜 세워 다시 한판 붙어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점에서는 서희가 이븐보다 훨씬 인정사정없었다. 서희가 송시진을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미 죽어버린 휘 제국에 충성을 바치시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송시진은 호흡을 삼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저는 화란공주가 아닙니다. 제 말에 따라주시는 것이 휘 제국을 위하는 것이라 여기신다면 그 마음을 받을 수 없겠습니다. 허나 어떤 마음이시건,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죄 없는 백성들이 고초를 당하지 않도록 여기 있는 친위대장이 말씀드린 바는 꼭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서희도 사람들이 오주에 드나드는 것 또한 휘 제국이 아니라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진정 백성을 위하시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장군님만 믿고 저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서희는 그대로 흑마를 타고 진영으로 돌아가 버렸다.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송시진에게 이븐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분인지 아시겠지요? 서희도가 충성을 바친 대상은 휘제국 혈통이 아닙니다. 바로 저 분이기 때문에 이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지요. 송 장군께서도 우리와 뜻을 같이하시려거든 앞으로는 저분을 화란 공주라 여기셔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븐은 송시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서희의 뒤를 따랐다.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송시진은 입을 반쯤 벌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비로소 목숨을 바칠 주군을 만난 장수가 흘리는 감격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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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4) <3권 끝> +2 14.05.02 507 5 33쪽
7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3) 14.05.02 433 5 16쪽
»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2) +2 14.05.02 448 4 25쪽
7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1) 14.05.02 434 4 20쪽
71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0) 14.05.02 336 5 27쪽
70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9) 14.05.01 453 4 26쪽
69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8) 14.05.01 420 5 35쪽
68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7) 14.05.01 428 4 13쪽
67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6) 14.05.01 405 6 25쪽
66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5) 14.05.01 416 4 13쪽
6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4) 14.05.01 483 8 14쪽
6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3) 14.05.01 464 6 24쪽
6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2) 14.05.01 447 5 13쪽
6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 14.05.01 610 7 20쪽
61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6) +2 14.05.01 506 4 20쪽
60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5) 14.05.01 462 8 24쪽
59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4) 14.05.01 503 5 14쪽
58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3) 14.05.01 372 5 17쪽
57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2) 14.05.01 434 4 15쪽
56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1) 14.05.01 433 7 11쪽
55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7) 14.05.01 343 6 25쪽
54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6) 14.05.01 263 6 19쪽
53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5) 14.05.01 450 7 18쪽
52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4) 14.04.30 363 6 17쪽
51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3) 14.04.30 461 4 18쪽
50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2) 14.04.30 307 6 18쪽
49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1) 14.04.30 665 3 17쪽
48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6) 14.04.30 332 5 19쪽
47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5) 14.04.30 504 5 20쪽
46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4) 14.04.30 436 4 19쪽
45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3) 14.04.30 424 5 15쪽
44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2) 14.04.30 263 7 12쪽
43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1) 14.04.30 472 7 24쪽
42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2) 14.04.30 394 8 14쪽
41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1) 14.04.30 246 6 11쪽
40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5) 14.04.30 421 5 24쪽
39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4) 14.04.30 366 6 14쪽
38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3) 14.04.30 307 6 16쪽
37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2) 14.04.30 320 6 23쪽
36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1) 14.04.30 304 4 21쪽
35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4) 14.04.30 356 6 7쪽
34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3) 14.04.30 341 4 14쪽
33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2) 14.04.30 455 5 21쪽
32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1) 14.04.30 469 7 13쪽
31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2) 14.04.30 432 5 15쪽
30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1) 14.04.30 307 9 21쪽
29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9) 14.04.30 467 7 14쪽
28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8) 14.04.30 341 7 24쪽
27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7) 14.04.30 418 7 12쪽
26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6) 14.04.30 308 6 11쪽
25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5) 14.04.30 407 6 15쪽
24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4) 14.04.30 448 6 11쪽
23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3) 14.04.30 374 5 16쪽
22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2) 14.04.29 402 7 15쪽
21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1) +1 14.04.29 538 7 20쪽
20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4) 14.04.29 570 4 18쪽
19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3) 14.04.29 550 6 22쪽
18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2) 14.04.29 406 9 15쪽
17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1) 14.04.29 535 8 13쪽
16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7) 14.04.29 370 9 16쪽
15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6) 14.04.29 513 7 14쪽
14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5) 14.04.29 345 6 25쪽
13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4) 14.04.29 515 8 18쪽
12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3) 14.04.29 559 9 17쪽
11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2) 14.04.29 569 12 10쪽
10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1) +2 14.04.29 690 12 10쪽
9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9) 14.04.29 495 11 8쪽
8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8) 14.04.29 606 13 9쪽
7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7) 14.04.29 653 13 9쪽
6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6) +2 14.04.29 547 13 8쪽
5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5) 14.04.29 682 11 8쪽
4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4) 14.04.29 598 11 8쪽
3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3) 14.04.29 849 14 10쪽
2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2) 14.04.29 1,246 14 8쪽
1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1) 14.04.29 2,223 2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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