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

나르시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2.12.15 05:44
최근연재일 :
2014.05.02 02:28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36,928
추천수 :
522
글자수 :
570,796

작성
14.04.30 23:38
조회
363
추천
6
글자
17쪽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4)

DUMMY

"서희야, 네 종에게 이 배에서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방으로 안내해달라 해라."


서희가 그 말을 반복하자 범계가 일어서 앞장섰다. 이븐이 해영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질질 끌며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네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범계가 안내하지 않으면 다시 찾아올 수도 없을 만큼 깊은 곳이었다.

이븐이 웃으며 말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놈이 잘도 이런 곳을 아는구나."


범계가 정색을 했다.


"귀신은 없어요."

"그래. 아까는 네가 잘못 보았다. 그나저나 너 땅벌을 아느냐?"


범계가 코웃음 쳤다.


"누굴 바보로 아시네."

"그럴 리가. 네가 얼마나 영리한데. 가서 땅벌 몇 마리랑 개미 집 하나를 털어 와라. 네 주인도 칭찬해줄 것이다."


서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범계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이븐은 이미 병신이 된 해영을 사슬로 단단히 묶었다.

서희가 물었다.


"뭐 하는 거냐? 저놈은 이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

"너는 일어서지 않았느냐?"

"나하고 같더냐?"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자에게 죽음도 허락할 수 없다."


서희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븐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피 몇 방울만 빌리자."


서희는 나르시스의 기제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븐의 요구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순순히 칼로 팔목에 상처를 냈다. 봇짐에서 뭔가를 꺼내던 이븐이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 참. 성격도 급하지."

"그게 무엇이냐?"


이븐의 손에는 묘하게 생긴 유리관이 들려 있었다. 한쪽 끝에 가는 바늘이 달려있었다.


"주사기라는 거다. 이렇게 쓰지."


이븐은 서희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을 살짝 빨아들인 다음 해영의 팔뚝에 찔렀다.

서희도 이제 이븐이 하려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븐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서희야. 나는 이 자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서희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븐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부터 할 일은 너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구나."

"짐작은 간다. 땅벌이 몸속에 알을 낳게 하고 개미 밥으로 던져 주려는 것 아니냐?"

"그러려면 온 몸의 껍질을 벗기는 게 좋지."

"돕겠다."


귀는 멀쩡한 해영이 그 말을 듣고 공포에 질려 괴상한 소리를 냈다. 둘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자 아이가 그런 일 하는 거 아니다. 험한 일은 주인에게 맡겨라."


서희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선 안 된다."

"안 된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이놈의 마수를 피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그 여인이 아니라 다른 여인이었다면 너는 이놈을 용서했겠느냐?"

"그럴 리가 있겠느냐?"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븐은 자신이 순전히 개인적인 원한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아끼고 그를 아끼는 여인을 두 번 다시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품고 살았던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어떤 여인도 마음에 품지 않으려 했으나, 순진한 소녀의 마음을 가벼이 여기고 장난을 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니 죄책감을 덜어낼 길이 없었다. 그는 지금 그 몫까지 해영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이다.

서희는 그런 사정을 모르면서도 계속해서 정곡을 찔러왔다.


"허나, 이렇게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았겠지."


이븐이 대답하지 못하자 서희가 말을 이었다.


"너는 그 여인이 몸이 더럽혀질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각하느냐? 멍청한 소리하지 마라. 남자와 한 번 몸을 섞으면 여인의 몸이 더러워지느냐? 그 여인은 단지 힘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는 일을 원치 않는 자에게 끝없이 당해야만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끊은 것이다. 네가 이렇게 빨리 구하러 올 줄 알았다면 설사 몸이 더럽혀진 다음이라도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븐이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얼굴을 감쌌다. 서희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객점에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이유도 그와 같다. 알량한 힘을 내세워 다른 인간에게 원치 않는 운명을 강요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껍질을 벗겨 벌레들이 뜯어 먹도록 던져 주는 일에 개인적인 원한씩이나 필요하더냐? 저들의 논리를 그대로 돌려주는 일이다. 세상 모든 악한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내게 손이 부족하고 특별히 네게 원한이 깊으니 이 자를 들어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삼는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는데 나이가 무엇이고 성별이 다 무엇이더냐!"


이븐은 눈을 감고 한참 동안 그녀의 말을 되새겼다. 억지로 반박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으나 그 말에 진심이 담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자 자기가 유독 이 아이에게만은 말로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엄청난 생각이 슬쩍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 형태가 잡히지 않았다.

이븐은 고개를 들어 서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옳다.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구나. 그러나 이 일은 온전히 내게 맡겨다오."

"알아들은 게 아니구나."

"알아들었다. 그러나 누군가 농사를 지어야 한다 해서 네가 농사도 지을 것이냐? 고기를 낚고 집을 짓고 옷을 지을 것이냐? 누군가 험한 일을 해야 한다. 너와 나 사이에서, 그건 주인의 몫이다. 그리 약속하지 않았더냐?"


서희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만 웃어버렸다.


"그렇게까지 내 주인이 되고 싶은 게냐?"

"응? 이미 주인 아니었나?"

"장난이 너무 길었나 보다."

"뭐 어떠냐? 그리 해로운 장난도 아닌데. 우리 그냥 장난이나 치며 살자."


서희가 피식 웃으며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문서를 잃어 버리면 장난도 끝인 줄 알아라."


문이 닫히기 직전 서희가 한 마디를 던져 넣었다. 이븐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닫힌 문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이븐은 한참 동안 그대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멀리서 둔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범계가 돌아올 때가 된 것이다.

이븐이 눈을 떴다.

그와 눈이 마주친 해영은 죽음을 허락하는 사신은 차라리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


가란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임초서가 이미 그의 몫까지 눈물을 흘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란자가 느끼는 것은 슬픔보다도 암담함에 더 가까웠다.

화란이 약속한 대장군의 인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옛 성현이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불가능해 보이는 가능성보다 가능해 보이는 불가능성에 더 강하게 이끌리는 존재다. 무엇보다도 화란이 없으면 묘향과의 혼인은 어떻게 되는지가 걱정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란자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 ‘공주 마마께서 승하하셨는데 나는 내 안위만 걱정하고 있구나.’


그러자 비로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공주의 죽음을 슬퍼하는 건지, 이 암담한 현실에 던져진 소인배의 처지를 비관하는 건지는 그 자신도 분명히 알지 못했다.

가란자와 함께 되돌아와 해적의 잔당을 소탕한 안토니오스도 임초서가 공주의 시신을 안고 돌아오자 할 말을 잊었다. 부하들 소식을 물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공주가 변을 당했을진대 부하들이 안전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저 배 안을 헤집고 다니는 지하드를 피해 도망쳐 나온 잔당을 입구에서 하나씩 잡아 족치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서하손이 가교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낯익은 얼굴들이 뒤따랐다. 창기병대가 환호성을 질렀다. 생존자 중 창기병대가 두 명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다가 공주의 시신을 묻으러 멀리 걸어가고 있는 임초서와 가란자의 뒷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서하손은 그제야 공주가 변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서둘러 뒤따라가 뭔가 위로의 말을 전하려 했다. 지하드가 가교 위에 나타나 서하손을 만류했다. 공주의 신하들에게 잠시 그들만의 시간을 주자는 의도였다. 서하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번엔 서희가 걱정이었다. 지하드가 내려와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특히 이븐의 행동에 대해서 자세히 들려주었다.

서하손은 비로소 임초서가 이븐을 사도의 무리라 일컫고, 지하드가 그를 악마라고 칭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선악의 피안(彼岸)에 있는 것처럼 보이던 서희가 유독 그와 죽이 맞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근심이 깊어졌다.

그러나 그의 근심은 곧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 서희가 홀로 흑마를 타고 배에서 내려온 것이다. 서하손은 그녀가 그 끔찍한 현장에서 빠져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가 서쪽 해안에 모여 크고 작은 희비(喜悲)에 울고 웃었지만, 사실 축배를 들기에도 고배를 마시기에도 너무 일렀다. 임초서와 이븐조차 잊고 있었지만 아직 관군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해안을 경계해야 할 가란자가 화란을 매장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계책을 내야 할 이븐은 밀실에 틀어박혀 엉뚱한 일에 골몰하고 있었으며, 정신이 반쯤 나간 임초서는 자리에 있건 없건 별반 다를 게 없었으니, 배를 타고 섬으로 다가 오는 관군의 존재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연히 범계도 관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게 아니다. 그는 그냥 보았을 뿐이다.

범계가 큰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전장에서 유난히 빛나던 범계를 알아본 창기병대가 잔뜩 긴장하여 창을 고쳐 쥐려는데, 서희가 나서 그를 반갑게 맞자 어리둥절하면서도 경계를 풀 수밖에 없었다.


"많이 잡아 왔느냐?"

"예, 아씨. 얼른 아씨 주인님께 전해드리고 오겠습니다요."

"그래. 수고해라."

"수고는요, 무슨. 그런데 누가 오고 있던데요? 아까 싸우던 놈들인 것 같은데, 위험하니 아씨도 저와 함께 가시지요."


서하손은 이 자가 누구길래 서희에게 이렇게 공손히 대하는지 의아하게 여기다 말고 깜짝 놀라 대뜸 물었다.


"뭐라고요? 수가 얼마나 됩니까?"


범계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인사도 없이 대뜸 질문을 던지자 그를 멍하니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지하드가 답답해하며 그를 채근하려 하는데 서희가 그를 막았다.


"그래, 누가 온다고? 몇 명쯤이나 되겠느냐?"


범계는 서희가 관심을 보이자 기분이 좋아져서 실제로 본 것보다 더 과장되게 이야기했다.


"아주 많이요. 셀 수도 없던 걸요?"


안토니오스가 짧게 신음했다.


"선봉 2천에 본대가 5천이었습니다. 오한에 해군이 없고, 해적의 배를 되는 대로 불태우긴 했지만 남은 배와 어선까지 총동원하면 꽤 많이 실어 나를 수 있겠지요."


오한뿐 아니라 휘 제국 전체에 해군은 없었다. 내륙에만 눈을 돌리기에도 바쁠뿐더러, 누가 해군을 편성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대양의 용이 나타나 배를 모두 가라앉혀 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바다에는 해적과 어부들뿐이었다.

서하손이 다시 다급한 목소리로 범계를 불렀다.


"상륙하기까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범계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서희를 쳐다보고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역풍이지만 반 시간도 안 걸릴 걸요?"


머리가 좀 모자라지만 범계는 뛰어난 무사이기 이전에 노련한 뱃사람이었다. 지하드는 그의 말을 다 신뢰하지 않았으나 다행히 다른 이들은 범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의 정확한 추측을 그대로 믿었다.

안토니오스가 입을 열었다.


"배를 타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어서 임 장군님과 이븐 선생을 모셔 오도록 하지요. 그래도 시간에 댈지 알 수 없으니 여기 있는 인원 중 반이라도 먼저 배를 타고 떠납시다. 창기병대 반과 여기 계신 아가씨 일행이 먼저 배에 오르십시오. 제가 임 장군님과 이븐 선생을 모시고 뒤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에 따르지 않았다. 창기병대가 이제 와서 대장을 버리고 떠날 리도 없었고, 서희는 이븐을, 서하손과 범계는 서희를, 그리고 지하드는 임초서에게 또 하나의 빚을 질 수 없었던 것이다.

서희가 안토니오스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안을 냈다.


"범계야, 서둘러 내 주인에게 그 상자를 전하면서 적이 배를 타고 몰려온다 말씀드려라."


범계는 명을 받고도 서희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꾸물거렸다.


"어서 가래도."


서희가 범계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자 범계가 마지못해 발걸음을 뗐다. 어여쁜 소녀가 기골이 장대한 거한을 아이처럼 다루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서희가 말을 이었다.


"제가 흑마를 타고 장군께 말을 전하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해변으로 가 배를 지키십시오. 우리가 제때 나타나지 않으면 상황을 봐 먼저 떠나도록 하십시오. 장군께서 어느 쪽으로 가셨습니까?"


안토니오스가 얼결에 방향을 가리키자 서희가 대답도 듣지 않고 말을 달렸다. 흑마를 따라잡을 수도 없거니와, 그 속도에 감탄하고 있을 시간도 없으니 남겨진 자들은 서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안토니오스가 주저하는 서하손을 달랬다.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먼저 떠나는 것이 저분들에게도 오히려 안전합니다. 우리가 떠나지 않으면 저분들을 찾을 때까지 섬을 뒤지겠지만, 우리가 눈앞에서 도망치면 섬을 뒤지지 않고 우리를 쫓을 테니까요."


듣고 보니 그랬다. 서하손은 역시 한 무리를 이끄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를 따라 해변으로 달렸다. 한 무리를 이끄는 그 전문가가 서희의 말을 얌전히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부두에 도착한 일행은 다가오는 선단의 규모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범계가 말한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림잡아 보병 5백 정도가 해적선에 나눠 타고 있었다.


"그 바보는 셈도 할 줄 모르나 보군."


지하드가 혀를 차자 서하손이 고개를 저었다.


"셀 수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수가 아님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안토니오스의 생각은 달랐다.

장수는 눈앞의 싸움만을 따로 떼어 생각해선 안 된다. 지금 배를 타고 도망치면 살 수는 있으나 그다음이 문제다. 쫓기는 신세이기는 피차일반이었으나 연륜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임초서라면 다음 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없이는 이방인 서른 명이 이 배타적인 땅에서 도모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변의 모래사장이 말을 달리기에 적합하지는 않으나 상대가 보병이라면 창기병 서른 기로 충분히 시간은 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저쪽은 물 위에 있다. 적 앞에서 물을 건너는 것은 병법의 가장 큰 금기다. 병력이 반쯤 건넜을 때 적이 습격하면 이쪽은 대형도 갖추지 못한 채 전력의 반으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건너봤자 희생만 커질 뿐이니, 병력을 반이나 고스란히 떼주고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물론 그것도 병력 차이가 어느 정도일 때 이야기다. 지금은 그 차이가 거의 스무 배에 가깝다. 그러나 5백 대 30의 싸움은 5만 대 3천의 싸움과 또 다르다. 기병 대 보병이라는 상성도 무시할 수 없다. 강도 아니고 바다를 건너는 병력이 여러 척에서 동시에 상륙하기는 어렵다. 적이 반이나 건널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내리는 족족 공격해 수를 줄이면 승산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안토니오스가 좌우에 명령을 내렸다.


"불을 피우고 불화살을 최대한 많이 준비해라."


기병대는 주저 없이 그 명령을 따랐다.

서하손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스무 배나 되는 적을 상대로 싸울 생각이십니까?"


안토니오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싸움을 피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안토니오스는 양군이 처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고는 말을 이었다.


"활이 간신히 해변에 닿을 거리에 불을 피우고 불화살을 준비하면 적은 해변에서 화살이 닿을 거리 이상으로 다가설 수 없습니다. 기병대가 단숨에 해변까지 달려가 불화살을 날릴지 모르니까요. 희생을 감수하고 전속력으로 배를 몰아 상륙한다면 먼저 내리는 자와 나중에 내리는 자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수의 차이가 사라지니 각개격파가 가능합니다."


서하손이 탄성을 질렀다.


"배는 불에 취약하고 덩치도 큰 데다가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하니 백 보 이상은 떨어져 있어야겠군요."


안토니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 위에서 백 보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임초서 장군 일행이 합류하면 여기 있는 배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 적장이 어리석어 쓸데없는 희생을 치르려 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확실히 그랬다. 승산이 없지 않다고는 하나 적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 이쪽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터였다. 서로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르시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4) <3권 끝> +2 14.05.02 508 5 33쪽
7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3) 14.05.02 433 5 16쪽
7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2) +2 14.05.02 448 4 25쪽
7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1) 14.05.02 434 4 20쪽
71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0) 14.05.02 336 5 27쪽
70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9) 14.05.01 453 4 26쪽
69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8) 14.05.01 421 5 35쪽
68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7) 14.05.01 428 4 13쪽
67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6) 14.05.01 405 6 25쪽
66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5) 14.05.01 417 4 13쪽
6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4) 14.05.01 484 8 14쪽
6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3) 14.05.01 464 6 24쪽
6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2) 14.05.01 447 5 13쪽
6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 14.05.01 610 7 20쪽
61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6) +2 14.05.01 506 4 20쪽
60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5) 14.05.01 463 8 24쪽
59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4) 14.05.01 503 5 14쪽
58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3) 14.05.01 373 5 17쪽
57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2) 14.05.01 434 4 15쪽
56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1) 14.05.01 434 7 11쪽
55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7) 14.05.01 343 6 25쪽
54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6) 14.05.01 264 6 19쪽
53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5) 14.05.01 450 7 18쪽
»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4) 14.04.30 364 6 17쪽
51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3) 14.04.30 461 4 18쪽
50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2) 14.04.30 307 6 18쪽
49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1) 14.04.30 665 3 17쪽
48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6) 14.04.30 332 5 19쪽
47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5) 14.04.30 504 5 20쪽
46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4) 14.04.30 436 4 19쪽
45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3) 14.04.30 424 5 15쪽
44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2) 14.04.30 263 7 12쪽
43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1) 14.04.30 472 7 24쪽
42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2) 14.04.30 394 8 14쪽
41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1) 14.04.30 246 6 11쪽
40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5) 14.04.30 422 5 24쪽
39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4) 14.04.30 366 6 14쪽
38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3) 14.04.30 307 6 16쪽
37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2) 14.04.30 320 6 23쪽
36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1) 14.04.30 305 4 21쪽
35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4) 14.04.30 356 6 7쪽
34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3) 14.04.30 341 4 14쪽
33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2) 14.04.30 455 5 21쪽
32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1) 14.04.30 469 7 13쪽
31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2) 14.04.30 432 5 15쪽
30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1) 14.04.30 307 9 21쪽
29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9) 14.04.30 467 7 14쪽
28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8) 14.04.30 341 7 24쪽
27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7) 14.04.30 419 7 12쪽
26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6) 14.04.30 309 6 11쪽
25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5) 14.04.30 407 6 15쪽
24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4) 14.04.30 448 6 11쪽
23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3) 14.04.30 374 5 16쪽
22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2) 14.04.29 402 7 15쪽
21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1) +1 14.04.29 538 7 20쪽
20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4) 14.04.29 570 4 18쪽
19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3) 14.04.29 550 6 22쪽
18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2) 14.04.29 406 9 15쪽
17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1) 14.04.29 535 8 13쪽
16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7) 14.04.29 370 9 16쪽
15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6) 14.04.29 513 7 14쪽
14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5) 14.04.29 346 6 25쪽
13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4) 14.04.29 516 8 18쪽
12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3) 14.04.29 559 9 17쪽
11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2) 14.04.29 569 12 10쪽
10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1) +2 14.04.29 690 12 10쪽
9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9) 14.04.29 495 11 8쪽
8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8) 14.04.29 606 13 9쪽
7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7) 14.04.29 653 13 9쪽
6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6) +2 14.04.29 547 13 8쪽
5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5) 14.04.29 682 11 8쪽
4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4) 14.04.29 598 11 8쪽
3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3) 14.04.29 849 14 10쪽
2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2) 14.04.29 1,246 14 8쪽
1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1) 14.04.29 2,223 2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