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

나르시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2.12.15 05:44
최근연재일 :
2014.05.02 02:28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36,916
추천수 :
522
글자수 :
570,796

작성
14.04.30 18:25
조회
421
추천
5
글자
24쪽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5)

DUMMY

지하드가 이븐보다 수가 높기는 하지만 사실 그 차이가 겉으로 보이는 만큼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븐이 매번 일방적으로 밀리는 이유는 싸움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븐의 목을 따버릴 수만 있다면 팔다리 하나쯤, 아니 자기 목을 내줘도 아깝지 않다 여기는 지하드의 기세가 모든 걸 설명한다. 머리로만 승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둑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수 싸움 이상으로 기 싸움이 중요한데, 목숨을 건 칼부림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만일 둘의 마음가짐이 뒤바뀐다면 수세에 몰리는 것은 오히려 지하드일 터였다.

임초서와 가란자도 그런 이유로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상대를 자극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이븐의 도발은 다소 지나친 데가 있어 모자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그들이 죽기로 달려드는 신도문의 정예를 상대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힘겨운 일이었다.

임초서가 신도문을 너무 얕잡아 본 탓도 있었다. 관심이 온통 세(勢) 불리기에만 쏠려 있던 신도문은 관의 위임을 받자 더욱 신이 나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에 바빴다. 동네 건달이며 갈 곳 없는 부랑자, 심지어 폭열단에서 흘러들어온 자들까지 여과 없이 신도문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윤진인의 신도류는 그야말로 신묘한 검술이었다. 게다가 마충천이 이끌고 나선 제자 백여 명은 제대로 검술을 전수받은 신도문의 정예였다. 지금 이 자리에는 그중에서도 쓸만한 제자들로만 열 명을 골라 온 것이다. 그냥 상대하기에도 결코 만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임초서는 역시 임초서였다. 수세에 몰리기는 했지만 큰 위기 없이 잘 버티고 있었다. 가란자도 임초서의 제자답게 활약이 대단했다. 임초서보다도 먼저 한 명을 처치할 정도였다. 이븐에게 달려들던 제자가 지하드에게 목이 달아나자, 얼결에 그 뒤를 따르던 다른 한 명이 깜짝 놀라 잠시 혼을 놓은 틈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가란자의 화살이 그 목을 단숨에 꿰뚫었다. 다른 적들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활을 버리고 칼을 드는데, 그 동작에 서두르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둘이 여덟을 상대하는 것은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보통의 오합지졸이라면 굳이 목숨을 걸어가며 강한 상대에게 다가서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씩 제거하는 게 가능하다. 반면 이렇게 다수가 한꺼번에 죽기 살기로 덤벼들면, 한 명을 베기 위해 거리를 좁히는 순간 다른 자의 간격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계속 뒤로 물러서며 틈을 살필 수밖에 없다.

마충천의 검술이 경지에 올랐다고 하나 임초서와는 격이 다르므로 크게 두려워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다수를 상대하는 소수가 체력적인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고, 임초서도 사람인 이상 언제까지고 나이를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대로라면 이븐이 꼼짝없이 지하드 손에 목숨을 잃을 게 뻔했다. 화란을 구하기 위해서는 지하드의 정보와 이븐의 지혜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임초서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한편, 두려워하던 상대가 뜻밖에 뒤로 물러서기만 하자 신도문은 사기에 자신감까지 더하여 기세가 더욱 맹렬해졌다. 그러나 그 기세에는 맹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방어를 버리고 공격에만 집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적이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분노가 방심으로 변해 방어를 소홀히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실을 먼저 눈치챈 것은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임초서가 아니라 그의 영민한 제자 가란자였다. 평소에는 스승에게 모든 판단을 위임하는 그였지만, 화란의 안전에 관한 일에서만큼은 임초서가 냉정을 잃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스승의 눈과 머리가 되기로 마음먹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란자는 힘이 빠져 당황한 듯한 손놀림을 보이다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며 틈을 보였다.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제자 둘이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가란자는 일부러 큰 소리로 웃으며 여유 있게 하나를 쳐내고 하나를 피했다. 세 사람 모두 서로의 간격 안에 있었다.

화들짝 놀란 두 제자가 뒷걸음질치며 방어 자세를 갖추는데, 가란자는 그들에게 냉소를 보내며 몸을 돌려 또 다른 제자를 공격해 들어갔다. 가란자가 그렇게 여유를 보이자 두 제자는 방금 적의 꾀임에 속아 큰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방어”라는 두 글자가 다시 새겨진 것이다.

한동안 다른 제자들을 전력으로 상대하던 가란자가 돌연 몸을 돌려 그 둘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자기 목숨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둘은 각기 방어 태세를 취하느라 서로를 보호해 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로 가란자가 노리던 바였다.

그러나 가란자의 실력은 그 짧은 순간에 상대의 목을 날려 버리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왼쪽 상단을 노리는 척하며 재빨리 손목을 틀어 오른쪽 중단을 횡으로 가르는 회심의 일격이 아깝게 막혀 버리자 다른 제자들이 화급히 검을 뻗는 바람에 옆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제자 하나가 목이 반쯤 잘려나가며 힘없이 쓰러졌다. 자기에게 달려들던 상대가 다섯에서 넷으로 줄어들자 의아하게 여긴 임초서가 곁눈으로 보고는 등을 보인 하나를 뒤에서 베어 버린 것이다.


"나를 상대하다 말고 감히 등을 보이다니! 배짱 하나는 칭찬할 만 하구나!"


임초서의 일갈에 마충천조차 기가 질려 한 걸음 물러섰다. 마충천이 그 지경이었으니 다른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가란자의 검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까이 있던 자의 발목 인대를 끊었다. 목숨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가 질려 있는데, 가뜩이나 체구가 작은 가란자가 잔뜩 몸을 숙이고 다가와 급소가 아니라 발목을 노리는 일격을 날리자 미처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제자들이 서둘러 가란자를 공격해 부상 입은 동료를 구했다. 그때 임초서가 달려들어 쓰러져 신음하는 제자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아무도 그를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임초서가 포효했다.


"자, 이래도 꼬리를 말고 도망치지 않을 테냐? 자고로 개는 개 다워야 하는 법이다!"


적이 겁을 먹고 내뺄까 봐 이븐을 흉내 내어 그들을 다시 자극하려는 의도였지만 이번에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개든 말이든 뭐가 된들 어떻겠는가? 그러나 마충천이 아직 건재한데 사부를 두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마충천은 마충천대로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게다가 임초서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를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었다.

과연 말을 마친 임초서의 검이 그를 무섭게 덮쳐 왔다. 마충천이 황급히 검을 들어 막자 제자들이 서둘러 그를 도왔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임초서의 편에 서 있었다. 일행이 여섯밖에 남지 않았으나, 다섯으로도 베지 못했던 임초서에게 넷 이하를 붙일 수는 없었다. 최소한 한 명이 가란자와 일대 일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마충천 말고는 가란자를 꺾을 자가 없었으므로, 전멸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 * *


"낭자는 이 자와 어떤 관계인가?"


지하드의 목소리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서희가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이미 내 주인이라 말하지 않았더냐?"

"그래, 좋다. 저놈이 홀리고 다니는 여자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그건 그렇다 치고, 손에 쥔 그것은 무엇이냐? 혹시 그걸로 나를 베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글쎄, 가능할지 모르겠구나. 네 진짜 검이 어떠한지에 달렸다."


지하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귀엽게 봐주려 했더니 실언이 지나치구나. 내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렇다고 조금 전의 나라면 네가 벨 수도 있었다고 여기는 것이냐?"

"조금 전처럼 한 번 휘둘러보겠느냐?"


서희가 생긋 웃으며 답하자 지하드는 할 말을 잃었다. 지하드 정도 되는 고수가 어떻게 이렇게 가냘픈 소녀에게 그런 강검을 휘두른단 말인가? 그렇다고 평정을 되찾은 자신의 절기를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의 원한은 사소한 체면이나 인정 따위에 얽매일 만큼 가볍지 않았다. 지하드를 옭아매는 사슬은 이븐을 향한 복수심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지, 꽃으로도 때리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소녀가 검을 들고 막아서자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임초서는 벌써 신도문을 다섯으로 줄여 놓고 있었다.

지하드가 입을 열었다.


"네가 비록 어린 소녀라 한들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구나. 어른들 일에 끼어들어 만개하기도 전에 꽃을 상하지 말고 물러서 있거라."


서희가 고개를 저었다.


"네 검이 대단하기는 하나 나를 치지 않고는 오늘 내 주인을 베지 못할 것이다."


지하드는 문득 오기가 솟았다.


"너를 해치지 않고 스승의 은혜를 갚을 수 없다면 오늘은 그냥 물러나겠다."


지하드는 말을 마치며 서희를 지나쳐 이븐에게 달려들었다. 검기가 조금 전과는 사뭇 달랐다. 시퍼런 검신(檢身)이 맹독을 품은 독사처럼 휘어져 들어왔다.

그를 보고 자세를 갖추던 이븐은 깜짝 놀라 뒤로 펄쩍 뛰었다. 서희가 어느새 몸을 돌려 지하드와 검을 맞대고 함께 자기를 공격해 들어 온 것이다. 마치 두 개의 검이 들러붙은 것 같았다. 지하드도 놀라며 검을 크게 휘둘러 서희를 떼어 놓았다. 그 힘에 밀려 서희의 몸이 몇 보 밖으로 멀리 날아갔다. 이븐이 놀라 외마디 비명을 삼키는데, 서희는 마치 자기가 그렇게 뛰어올랐다는 듯이 지면에 사뿐히 내려섰다.

이븐은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깨닫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희는 지하드와 함께 이븐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그의 검을 제어해 변화를 억제했던 것이다. 객점에서 젓가락으로 화적들을 처치하는 것을 보고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그저 나르시스 덕분에 순간적으로 큰 힘을 발휘했을 거라고만 여겼었다. 신도문의 여섯 장로를 사질(師姪)이라 칭할 때도 그녀가 윤진인의 양녀이기 때문에 서열이 그렇게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 어린 나이에 실제로 윤진인의 절학을 전수받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화적이나 다름없는 길을 가고 있는 신도문이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길 만도 했다

서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단한 검이다. 하지만 나를 치지 않고 내 주인을 베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구나. 내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판단한 것이니 지금 말을 바꾼다 해도 탓하진 않겠다."


지하드도 비로소 서희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말까지 들은 마당에 뱉은 말을 주워담기에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지하드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런데 문득 서희를 보니 검을 왼손으로 옮겨 들고 오른팔을 툭툭 털며 살짝 인상을 쓰고 있었다. 지하드의 강맹한 검기를 억지로 제어하려다 보니 팔에 무리가 간 것이다.

지하드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검을 논하는 자가 겉모습만 보고 무례를 범한 점 깊이 사죄한다. 허나 장부가 이미 뱉은 말을 되삼켜 허물을 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네가 막는다 해도 나는 너를 해치지 않겠다. 임 장군이 나머지 넷을 모두 처리할 때까지 내가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면 훗날을 기약하고 오늘은 그만 물러서기로 약속하마."


임초서와 가란자까지 가세하면 아무리 자기라 해도 혼자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서희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은 그녀에 대한 찬탄과 존중의 뜻이 담긴 무인의 솔직한 호의였다. 서희도 순순히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살초를 쓰지는 않겠다. 나는 그저 전력으로 내 주인을 지킬 것이다."


지하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침묵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입을 반쯤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븐도 이번만큼은 허튼소리로 분위기를 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하드가 진정한 무인이라면 그에게 검을 가르친 이븐 또한 평범한 날건달일 수 없다.

이븐이 천천히 검을 고쳐 쥐었다. 검을 들고 그렇게 진지해져 봤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지하드도 그 변화를 눈치챘다.


"그 얼굴 참 오랜만이군."


이븐은 대답 없이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서희에게 말했다.


"팔 아프지?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정말이지 주인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전에 없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검을 다시 오른손으로 옮겨 쥐고 왼손으로 오른팔을 주무르던 서희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주인 너도 칼 하나를 더 숨기고 있었구나."


이븐이 멋쩍게 웃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때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없는 칼이라면 스스로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없지. 사실 이놈을 상대로는 꺼내봤자 소용없기도 하다. 네가 애써 녹슨 검집에서 뽑아주었는데 면목없게 될까 두렵구나."


이븐은 천천히 오른발 끝을 지하드에게로 향하며 옆으로 섰다. 검을 대각선으로 내려 지하드와 그 사이의 바닥 한 점을 향하게 하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신도문 제자 하나가 임초서의 검에 맞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븐도 지하드도 그쪽으로 주의를 빼앗기지 않았다.

그 둘이 서로 죽자고 칼부림을 한 세월이 한두 해가 아니었으나, 이렇게 진지하게 승부의 양상을 띠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 위로 예리하게 날이 선 집중력. 그런 마음가짐은 원한다고 아무 때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자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임초서의 손놀림이 점차 둔해지더니, 가란자를 비롯한 신도문 넷도 아예 손을 놓고 이븐과 지하드의 대결을 멍한 표정으로 구경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란자와 신도문은 하늘 끝까지 닿을 것처럼 맹렬하게 치솟는 지하드의 맹렬한 기운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임초서의 시선은 이븐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지하드야 임초서가 평생 보고 들은 무인을 통틀어 최강의 무사였다.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븐을 보는 그의 놀라움은 가란자 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녀석이 저 정도의 무인이었던가!’


서희도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채 이븐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한 불꽃이 그를 감싸며 차갑게 타오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록 둘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깎은 조각상 같았다. 지켜보는 자들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고함을 지르며 칼부림하던 일들이, 어린 시절 따뜻한 햇살 아래 즐기던 낮잠 속을 스쳐간 꿈과 같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두꺼운 유리 속에 갇힌 사람들처럼,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아늑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임초서는 이 평온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알고 있었다. 주변을 가득 메운 이 유리로 된 공기는 작은 콧김 하나로도 산산조각이 나 피부를 날카롭게 찢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는 건 지하드의 몫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고수들의 싸움은 기대했던 것만큼 볼거리가 많지 않은 게 보통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기 싸움만 하다가 구경꾼들 눈에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보이지도 않게 결판이 나기 일쑤다. 아주 작은 차이 하나가 승패를 결정짓는다.

그러나 이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리 크지는 않다 해도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븐이 평소에 전력으로 지하드를 상대하지 않은 것도 그의 진지하지 못한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결과가 너무나 뻔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뺄 궁리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지하드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둘이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드의 입장에서는 둘의 차이가 압도적이지는 않다는 게 문제였다. 따라서 승부를 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잊고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며,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제 거의 정점에 닿아 있었다.

관전하던 자들은 시간이 정말로 멈추지는 않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하드의 강렬한 기운에 압도되어 그의 호흡에 자신의 호흡을 빼앗겨, 서로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을 뿐이다. 지하드가 박자를 깨고 숨을 깊이 들이쉰 다음 멈춰버리자, 그에게 호흡을 빼앗겼던 자들은 한순간 숨이 턱 막혀 버렸다. 그 바람에 지하드가 취한 최초의 동작을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다. 지하드와 이븐의 거리가 반으로 좁혀지는 과정을 놓치지 않은 사람은 서희와 임초서밖에 없었다.

이븐은 거리가 반으로 좁혀지도록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든 사람 같았다. 그러다가 돌연 바닥을 향하던 검을 앞으로 쭉 뻗으며 몸을 날렸다. 온통 지하드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던 신도문과 가란자는 아직 한참 거리가 벌어져 있는 줄 알았다가 갑자기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간을 왜곡하는 싸움이었다.

지하드와 이븐이 서로의 오른쪽으로 교차해 지나갔다. 이븐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등 뒤로 검을 휘둘렀다. 지하드는 몸을 회전해 검을 피하며 이븐의 텅 빈 왼쪽을 노렸다. 이븐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지하드의 간격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지하드의 사검(蛇檢)이 가장 변화무쌍하게 꿈틀대는 범위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버린 것이다.

지하드는 놀라지 않고 반 보 물러서며 손목을 비틀어 이븐이 내지른 검을 흘렸다. 검 끝은 이미 이븐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서너 번이나 자유자재로 변화를 일으키는 지하드의 사검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막는다 해도 한 번이 고작이었다. 이븐은 피해를 감수하고 몸을 비틀며 지하드의 얼굴을 향해 검을 뻗었다.

지하드도 얼굴을 돌려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서너 번은 일어났어야 할 사검의 변화가 한 번 반에 그쳤다. 이븐의 왼쪽 겨드랑이 반 뼘 아래가 손가락 한 마디 깊이로 찢어져 나갔다. 지하드의 뺨에는 면도칼에 베인 것 같은 얕은 상처가 길게 새겨졌다.

지하드는 뒤로 물러서고 이븐은 전력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이븐이 지하드의 왼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등 뒤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하드의 간격 안이었다. 달려온 탄력으로 간격을 벗어나야 정상이지만 이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안에서 검을 팽글 돌리며 지하드에게 바짝 다가섰다.

지하드는 이븐이 자신의 간격보다도 안쪽으로 파고들자 검으로는 그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손안에서 검을 곤봉처럼 돌리며 거리가 없는 곳에서 공격하는 기술은 이븐이 2년 전 카잔에게 한 번 써먹은 바 있었다. 지하드는 이미 대처 방안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지하드는 드러누우며 오른발로 이븐의 턱을 차올렸다. 머리가 땅을 향하고 다리가 하늘을 향하는 강력한 일격이었다. 공격이 통하지 않더라도 다리를 차올린 탄력으로 한 바퀴 돌아 자세를 바로 하고 사뿐히 내려앉아 다시 간격을 확보할 수 있는 한 수였다.

그러나 이븐도 지하드가 나름의 대응법을 궁리해두었을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지하드의 오른발이 턱에 닿으려는 순간 고개를 돌려 충격을 흘리며, 팽그르 돌던 검을 바로 잡고 앞으로 쭉 뻗었다. 지하드는 물론이고 멀리서 구경하는 사람들 눈에도 검이 갑자기 몇 배나 길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절초였다. 지하드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이븐의 검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어 속절없이 뒤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이븐의 검이 한 치만 더 뻗어나갔어도 심장을 찌를 수 있었다. 그러나 비록 빗겨 맞긴 했으나 턱을 걷어차인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븐의 검은 추진력을 잃고 지하드의 왼쪽 가슴에 끝을 살짝 담그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치명상은 피했으나 지하드도 이번 공격에는 적잖이 놀랐다. 이븐이 충격을 털어내느라 도리질을 하고 있는데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간격을 벗어난 거리에서, 둘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천천히 기력을 회복했다.

단순히 멀리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체 시력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 있는 가란자조차 움직임을 모두 따라잡을 수 없는 싸움이었다. 시간을 왜곡하고 거리를 무시하는 싸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검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저런 검은 자신의 검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지."


임초서가 침묵을 깼다. 가란자가 올려다보니 임초서의 눈에도 경탄의 빛이 가득했다. 그러나 마충천 등의 넋 나간 표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임초서는 가란자의 눈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 ‘스승님의 검은 줄곧 저 싸움 속에 함께 있었구나!’


가란자는 “검은 검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직접 상대해 봐야 알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가 이븐이나 지하드를 상대한다면 어디를 어떻게 베이는지도 모르고 죽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이븐과 지하드도 서로의 검을 눈으로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검이 상대의 검을 느끼고 스스로 주인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로서는 아직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였다. 가란자는 자신의 위치를 또 한 번 분명히 깨달았다.

한편 임초서는 감탄하면서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화란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신도문을 모두 제거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일단 화란을 구해놓고 생각할 문제가 아닌가? 지금 완전히 기가 질린 신도문을 제거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다음 이븐을 도와 지하드를 제압하는 게 정답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임초서를 옭아매는 또 하나의 사슬이 발목을 잡았다. 저런 승부에 끼어드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븐을 돕겠다고 공언했던 서희도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아직은 끼어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얼핏 대등해 보이는 싸움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미 상당히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둘 다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으나 이븐의 부상이 확실히 더 깊었고, 그나마도 이븐이 방어를 버리고 필살의 각오로 승부에 임했기에 그 정도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이다. 힘과 체력에서 밀리는 이븐이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은 두고 볼 것도 없이 자명한 일이었다.

서희가 보기에 이븐은 이미 숨겨둔 패를 모두 써버렸다. 혹시라도 남겨둔 패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수일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승부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목숨과 바꾼 승리일 것이다. 서희가 나설 차례였다.

그러는 동안 둘이 다시 맞붙었다. 서희의 생각대로 양상은 조금 전과 크게 달랐다. 방어를 버리고 공격 일변도였던 이븐이 몸을 피하고 검을 쳐내는 빈도가 점점 높아졌다. 그만큼 지하드의 장단이 점점 빨라졌다. 이븐은 한 번씩 주고받던 공격이 두 번에 한 번, 세 번에 한 번 꼴로 수를 빼앗기고 있었다.

지하드가 몸을 뒤로 젖히며 엇박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침내 서희가 몸을 날렸다. 검이 세 번째 변화를 일으키기 전에 눌러 이븐이 피할 틈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건 심각한 계산착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르시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4) <3권 끝> +2 14.05.02 507 5 33쪽
7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3) 14.05.02 433 5 16쪽
7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2) +2 14.05.02 448 4 25쪽
7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1) 14.05.02 434 4 20쪽
71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0) 14.05.02 336 5 27쪽
70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9) 14.05.01 453 4 26쪽
69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8) 14.05.01 420 5 35쪽
68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7) 14.05.01 428 4 13쪽
67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6) 14.05.01 405 6 25쪽
66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5) 14.05.01 417 4 13쪽
6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4) 14.05.01 483 8 14쪽
6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3) 14.05.01 464 6 24쪽
6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2) 14.05.01 447 5 13쪽
6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 14.05.01 610 7 20쪽
61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6) +2 14.05.01 506 4 20쪽
60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5) 14.05.01 463 8 24쪽
59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4) 14.05.01 503 5 14쪽
58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3) 14.05.01 372 5 17쪽
57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2) 14.05.01 434 4 15쪽
56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1) 14.05.01 433 7 11쪽
55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7) 14.05.01 343 6 25쪽
54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6) 14.05.01 263 6 19쪽
53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5) 14.05.01 450 7 18쪽
52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4) 14.04.30 363 6 17쪽
51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3) 14.04.30 461 4 18쪽
50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2) 14.04.30 307 6 18쪽
49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1) 14.04.30 665 3 17쪽
48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6) 14.04.30 332 5 19쪽
47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5) 14.04.30 504 5 20쪽
46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4) 14.04.30 436 4 19쪽
45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3) 14.04.30 424 5 15쪽
44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2) 14.04.30 263 7 12쪽
43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1) 14.04.30 472 7 24쪽
42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2) 14.04.30 394 8 14쪽
41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1) 14.04.30 246 6 11쪽
»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5) 14.04.30 422 5 24쪽
39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4) 14.04.30 366 6 14쪽
38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3) 14.04.30 307 6 16쪽
37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2) 14.04.30 320 6 23쪽
36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1) 14.04.30 304 4 21쪽
35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4) 14.04.30 356 6 7쪽
34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3) 14.04.30 341 4 14쪽
33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2) 14.04.30 455 5 21쪽
32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1) 14.04.30 469 7 13쪽
31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2) 14.04.30 432 5 15쪽
30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1) 14.04.30 307 9 21쪽
29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9) 14.04.30 467 7 14쪽
28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8) 14.04.30 341 7 24쪽
27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7) 14.04.30 418 7 12쪽
26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6) 14.04.30 308 6 11쪽
25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5) 14.04.30 407 6 15쪽
24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4) 14.04.30 448 6 11쪽
23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3) 14.04.30 374 5 16쪽
22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2) 14.04.29 402 7 15쪽
21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1) +1 14.04.29 538 7 20쪽
20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4) 14.04.29 570 4 18쪽
19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3) 14.04.29 550 6 22쪽
18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2) 14.04.29 406 9 15쪽
17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1) 14.04.29 535 8 13쪽
16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7) 14.04.29 370 9 16쪽
15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6) 14.04.29 513 7 14쪽
14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5) 14.04.29 345 6 25쪽
13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4) 14.04.29 515 8 18쪽
12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3) 14.04.29 559 9 17쪽
11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2) 14.04.29 569 12 10쪽
10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1) +2 14.04.29 690 12 10쪽
9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9) 14.04.29 495 11 8쪽
8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8) 14.04.29 606 13 9쪽
7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7) 14.04.29 653 13 9쪽
6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6) +2 14.04.29 547 13 8쪽
5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5) 14.04.29 682 11 8쪽
4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4) 14.04.29 598 11 8쪽
3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3) 14.04.29 849 14 10쪽
2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2) 14.04.29 1,246 14 8쪽
1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1) 14.04.29 2,223 2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