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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2.12.15 05:44
최근연재일 :
2014.05.02 02:28
연재수 :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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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27
추천수 :
522
글자수 :
570,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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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0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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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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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7쪽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3)

DUMMY

산노인, 일명 아사시니는 고대의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매우 독특한 암살 집단으로서, 그 이름은 집단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이자 집단 자체를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들은 알프스 산맥 깊숙한 곳에 숨어 살며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세상의 모든 쾌락을 경험하게 한다. 그 쾌락의 중심에는 강력한 마약, 해시시가 있다.

의뢰가 들어오면 그들 중 하나를 골라 슬픈 얼굴로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너에게 해시시를 줄 수 없다고. 그러면 특별한 훈련도 받지 않은 암살자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임무를 수행해 내는 것이다. 실패하면 또 보내면 그만이다. 살아서 다시 해시시를 맛보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노인의 무서운 점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독수를 뻗어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가 보통 사람일 때 얘기다. 그러나 지하드 정도 되는 무인이 산노인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산노인의 우두머리, 산노인이 직접 나서지만 않는다면.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그 정도의 조직을 거느리는 자가 해시시 중독자일 리는 없었다. 산노인의 수장은 세습되지 않는다. 전임자는 항상 대륙 최강의 암살자를 찾아 그 자리를 맡겼다. 물론 정신적으로 상당히 비틀려 있어야 수락할 수 있는 제안이다. 그것이 산노인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이븐이 입을 열지 못하자 클로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지하드라면 사서께도 큰 골칫덩이 아닌가요?”


물론 그랬다. 지하드 때문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모른다. 누가 대신 처리해 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와의 일은 자기 손으로 매듭짓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든든한 보호자라고 붙여준 녀석이 오히려 가란자를 위험에 빠트리게 생긴 것이다.


“함께 있는 소년이 있다. 그 녀석에게는 손대지 말라고 전할 수……는 없겠지…… 이런 젠장.”


이븐이 자기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산노인에게 섬세한 일 처리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혼자 움직일 리도 없거니와, 오히려 더 거칠게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래야 산노인이 직접 움직였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 ‘내 평생에 지하드를 걱정할 일도 다 생기는구나. 뭐, 할 수 없지. 이미 손에서 떠난 일이다. 아무리 산노인이라 해도 지하드도 지하드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해 놓고 볼 일이었다. 이븐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 이제 그만 가 봐라.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


클로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람이 모닥불 피워놓고 손님을 맞아요?”

“괜찮아. 여기 이방인이 한둘이어야지. 흘러들어온 이방인이라고 그러면 그만이지, 뭐. 사실 틀린 말도 아니잖아.”

“그러네요. 여전히 거짓말은 안 하시는군요?”


클로에는 활짝 웃으며 진짜로 이 섬에 흘러들어올 수는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눈치 챈 익시온이 그녀를 재촉했다. 이븐이 걸음을 옮기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덧붙였다.


“몽골이 날뛰기 시작하면 송연국도 골치 아플 거다. 일이 재미있어질 것 같지 않냐? 기왕 나를 돕는 김에 조금 더 도와주는 길이기도 하고. 한 번 생각해보시라 전해라. 뭐, 그 노인네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만큼 일이 복잡해질 테니, 그 배포로 내릴 결론이야 뻔하지만.”


마지막 말은 ‘그 노인네’를 자극하기 위한 말이었다. 자기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익시온이 그대로 전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 몽골족 소년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십니까? 그런 꼬마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을까요?”


이븐은 익시온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수상성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익시온과 클로에도 마주 보고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늘에 숨겨둔 보트로 걸음을 옮겼다.


“나 참. 꼭 이런 식이지. 그냥 좀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안 되나? 한 식구끼리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익시온이 투덜대자 클로에가 냉소를 지었다.


“우리는 뭐 당당한가? 우리가 진작부터 이 섬에 숨어 지내면서 무덤까지 파헤쳤다는 걸 아셨다면 아마 우린 아까…….”

“쉿! 말조심해!”


익시온은 듣는 이가 있을 리 없는 한밤의 해변에서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폈다. 클로에는 냉소를 조소로 바꾸고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성으로 들어간 이브는 범계와 놀고있는 서희를 다짜고짜 와락 끌어안았다. 서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찬바람을 오래 쐰다 했더니 머리에 풍이라도 맞은 게냐?”

“한고비 넘겼다.”


녹초가 된 목소리였다. 서희가 이븐의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무슨 일이 있었으면 한고비 넘긴 게 아니게?”

“말 안 해줄 거면 꺼내지를 말아라.”


서희가 이븐을 거칠게 밀어냈다. 그러나 이븐은 서희를 놓아주지 않았다. 서희가 바둥대자 멀뚱히 쳐다보던 범계가 벌떡 일어났다.


“아씨, 괜찮으십니까? 제가 구해 드릴까요?”


서희는 문득 이븐의 팔에서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내 숨소리가 고르게 전해졌다.


“그래. 나 좀 구해다오. 이 녀석이 내가 하루종일 너하고만 논다고 단단히 삐친 모양이다. 밤이 늦었으니 네가 가서 잠자리에 들면 이 녀석도 곤히 잠들 게야. 어서 가 보아라.”


범계는 몹시 서운했지만 순순히 명에 따랐다.


“그럼, 아씨. 제가 가도 선생님이 놓아주지 않으면 큰 소리로 부르셔요. 제가 억지로라도 떼 내어 드릴게요.”


서희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너만 믿으마. 어서 가서 자도록 해라.”


범계가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고 방에서 나갔다. 이븐은 범계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에도 반응이 없었다. 서희는 이븐이 닷새 전 함께 노숙하며 잠시 눈을 붙인 이후 처음으로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희가 천천히 몸을 뒤로 눕혔다. 이븐은 서희의 품에 안긴 채 단잠에 빠져들고, 잠귀가 어둡다고 해영에게 숱하게 야단맞았던 범계는 혹시라도 서희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두려워 밤새 귀를 쫑긋 세우고 온 힘을 다해 잠을 쫓았다.


* * *


가란자가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쥐며 무릎을 꿇었다. 그 옆에 긴 나무 막대기가 힘없이 떨어졌다.


“장군의 제자답다. 그 나이에는 적수가 없을 것이다.”


지하드가 손에 든 나뭇가지를 멀리 던져 버리며 말했다. 그러나 가란자는 칭찬에 만족할 수 없었다. 적은 그 나이 또래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드 나이의 적을 만나 공격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번번이 검을 놓쳐버리는 실력이라면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가란자는 참담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지하드에게 절을 올리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드는 그 뒷모습을 보며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가르침을 청하는 꼬마가 귀찮았지만, 몇 번 상대해주다 보니 그 진지한 태도와 나이답지 않은 실력에 감탄하며 은근히 그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미 상당한 실력인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이 지난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목적의 성격은 전혀 달랐으나 그 초조함만은 지하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지하드를 있게 한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하드가 그를 불러 세웠다.


“주모에게 술상 좀 보라 해라. 먼 길 가야 하는데 목이나 좀 축여두자.”


가란자는 지하드가 몇 마디 위로라도 해주려나 싶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에게는 패배보다 동정이 더 괴로운 시련이다.

지하드는 술상이 다 차려지고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나타나 아무 말 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가란자는 안주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 지하드를 보며 엉뚱한 걱정에 빠졌다.

서희도에 있을 때 서하손은 지하드의 식사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아라비아 이름을 가진 인도인의 내력을 알 수 없어 자칫 큰 실수를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만한 장정에게 끼니때마다 풀만 먹일 수도 없고,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잘못 올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하드나 이븐에게 물어보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 결국 대안은 닭고기였다.

그 이유를 모르는 가란자는 닭을 멸종시켜 버릴 기세로 사흘 내내 닭고기만 먹은 지하드가 안쓰러워 주모에게 안주에 특별히 신경을 쓰라 당부했다. 주모의 주특기는 오리구이였으니 지하드가 안주를 들지 않는 이유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나, 가란자는 문득 서하손에게 뭔가 다른 뜻이 있었나 보다 생각했다.


“안주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닭을 한 마리 잡으라 할까요?”


술잔을 반쯤 비우고 있던 지하드는 가란자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앞으로 뿜어버렸다. 가란자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지하드는 그럴수록 유쾌해졌다. 이렇게 기분 좋게 웃은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네 눈에도 내가 닭에 환장한 놈으로 보이더냐?”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지하드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자 가란자도 한숨 돌렸다. 그러나 대꾸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도 않아 멋쩍게 웃으며 비어버린 지하드의 잔을 채웠다. 지하드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남자는 술을 잘 마셔야 한다.”

“예.”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많이 마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안주를 먹지 않고 마셔야 한다는……?”


지하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구나. 그게 바로 네 검의 약점이라 할 것이다.”


가란자는 정신이 번쩍 들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하드가 말을 이었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제 주량을 알고 그 안에서 최대한 즐기는 것을 말한다. 열 동이를 비운다 해도 그 혀가 꼬인다면 한 잔을 마시고 조용히 잠자리에 드는 이보다 술을 잘 마신다 할 수 없는 게다.”


지하드의 주량은 안주를 먹지 않고 술잔만 연거푸 비워야 채워진다. 가란자도 결코 술이 약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무리하게 지하드와 보폭을 같이하려 했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다. 가란자는 지하드가 말하는 검의 이치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문득 서희의 검이 떠올랐다. 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수록 더욱 놀라운 광경이었다.

지하드는 붉은 눈의 초점이 과거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 눈에 서린 경탄으로 미루어, 가란자는 지금 칼리의 현신을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하드가 초조해졌다.

지하드가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자루 검에 뜻을 실은 자라면 누구나 신의 경지를 바라보고 정진을 거듭해야 마땅할 것이다. 허나 집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검, 그 자체를 뜻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검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일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검 한 자루만으로는 부족할 것이야.”


원래 지하드는 자신만의 검을 찾아 이루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려 했으나, 스스로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며 주제가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듣는 이는 그것을 하나로 이해했다.


- ‘이븐 선생이 지하드 님의 스승임에는 틀림이 없구나. 선생께서 일전에 청성왕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 왕이 일신의 무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좋지 않다고. 그래. 무엇에 의지하려 하는지에 따라 내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코앞의 작은 벽에 눈이 흐려져 무리하게 지하드 님의 검을 따라잡으려 하는 것은 안주를 마시지 않고 이분과 대작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무엇을 이루겠는가? 지하드 님은 그 검으로도 원수를 갚지 못하고 계시지 않은가!’


어줍잖은 동정의 말에 비참함만을 더할 줄 알았던 술자리에서 뜻밖에 큰 깨달음을 얻은 가란자는 크게 고무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드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 마음속으로 새로운 칼날을 갈기에 여념이 없던 지하드는 어린 녀석이 무엇에 이리 고무되었는지 몰라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자리에 앉혔다.

눌러 쓴 삿갓을 벗지도 않고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사내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값을 치르고 천천히 걸어나가던 그는 흥미로운 대화를 주고받던 두 남자를 곁눈질로 쳐다보다가 새로 들어오는 손님과 어깨를 부딪힐 뻔했다. 들어서던 손님과 가란자, 지하드조차 둘의 어깨가 실제로 부딪혔다고 착각했다.

새로운 손님은 다짜고짜 검을 뽑아들었다.


“네놈은 눈먼 봉사냐? 삿갓을 그리 눌러 쓰고 다니니 어르신께 실례를 범하는 것 아니냐! 이 어르신이 손수 버릇을 가르쳐 주마!”


그의 뒤를 따르던 일행 열두어 명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삿갓을 쓴 사내는 천천히 한 걸음 물러서더니 허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제가 밤눈이 어두워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노여움 푸십시오.”


정중한 사죄에도 손님은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사람을 쳐놓고 사과만 하면 그만이냐? 어서 그 흉물스런 삿갓을 벗고 무릎을 꿇지 못할까?”


심하게 부딪힌 것 같지도 않고, 정중하게 사과까지 하는데 저렇게 무례하게 행동하자 객점 안의 다른 손님들까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누구 하나 감히 나서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일행은 어디서 무슨 변을 당했는지 모두 흙투성이, 피투성이에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그리고 두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삿갓을 쓴 사내가 아니더라도 큰 화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란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바보는 운이 좋다더니 악운 하나는 알아줘야겠군요.”


지하드는 무슨 소린가 싶어 손님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수염 한 가닥 없는 매끈한 얼굴에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그자를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 냈다.

지하드와 가란자는 장석이 제 발로 난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으나 그 행색으로 오한 국경 근처까지 도망쳐 온 것으로 보아 지난 일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부러 들리라고 한 말이었으니 당연히 장석의 귀에도 소리가 닿았다.


“어느 놈이 감히 겁도 없이 그런 소릴 지껄이느냐!”


장석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이 가란자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오냐! 네놈이었구나! 마침 잘됐다. 내 아내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장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쪽 눈을 두리번거리며 서희를 찾았다. 서희를 찾지 못하자 더욱 화가 치민 장석은 삿갓을 내버려두고 지하드 일행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장석은 지하드가 서희에게 패해 이미 피투성이가 된 모습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하드는 원래 나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제 와서 산적 떼와 어울릴 일도 없거니와, 삿갓의 움직임이 기묘해 그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두고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석이 이렇게 다짜고짜 달려드니 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술잔을 들어 확 끼얹어버렸다. 워낙 크게 휘두른 탓에 술은 넓게 퍼져 삿갓의 소매 자락까지 적셨다.

지하드가 몸을 일으켜 삿갓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삿갓도 마주 고개를 숙이며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장석은 술을 뒤집어쓴 자기는 안중에도 없고 서로 예의나 차리고 있자 기가 막혀 화도 나지 않았다.


“네놈들이 정녕 여기서 뼈를 묻을 생각이구나. 지금이라도 그 계집을 이 몸 앞에 대령하면 편히 죽여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여달라고 사정해도 그 명을 쉽게 끊지 않을 것이다.”


지하드는 시바(Siva) 신과는 어디 비슷한 구석도 하나 없는 인간이 감히 서희를 자기 아내라고 칭할 때부터 꾹 참고 있었다. 가뜩이나 그러한데 장석이 이렇게 하나하나 해영과 화란을 떠올리게 만들어 버리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도둑놈이 분수를 모르고 감히 누구에게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장석은 그 ‘누구’가 서희를 지칭하는 말임을 모르고 지하드가 자신을 높이며 허세를 부린다고만 생각했다.


“아이고, 소인이 미처 어르신을 몰라 뵈었습니다, 그려. 얘들아, 사죄의 뜻으로 감히 이 어르신들 좀 만져 드려야겠다!”


대장이 화풀이할 곳을 정해주자 화적의 잔당들은 기합 대신 환호를 지르며 객점 안으로 뛰어들었다. 첫 번째 표적은 자연히 문에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삿갓을 쓴 사내였다.

화적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가란자가 깜짝 놀라 검을 뽑아들고 도우러 달려갔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제때 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삿갓을 쓴 사내가 검을 뽑는가 싶더니 두 개의 검광이 사선을 그리며 교차했다. 한 사람이 두 개의 검을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그리고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동시에 휘두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검은 어느새 천천히 검 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달려들던 화적 둘은 삿갓이 검을 완전히 집어넣은 다음에야 자기 손목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켜보던 이들은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넋이 나가, 검을 쥔 오른손 두 개가 손목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닿기까지 몇 분이나 걸린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나서야 객점 안에 두 사람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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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4) <3권 끝> +2 14.05.02 508 5 33쪽
7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3) 14.05.02 433 5 16쪽
7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2) +2 14.05.02 448 4 25쪽
7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1) 14.05.02 434 4 20쪽
71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0) 14.05.02 336 5 27쪽
70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9) 14.05.01 453 4 26쪽
69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8) 14.05.01 421 5 35쪽
68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7) 14.05.01 428 4 13쪽
67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6) 14.05.01 405 6 25쪽
66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5) 14.05.01 417 4 13쪽
6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4) 14.05.01 484 8 14쪽
6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3) 14.05.01 464 6 24쪽
6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2) 14.05.01 447 5 13쪽
6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 14.05.01 610 7 20쪽
61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6) +2 14.05.01 506 4 20쪽
60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5) 14.05.01 463 8 24쪽
59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4) 14.05.01 503 5 14쪽
»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3) 14.05.01 373 5 17쪽
57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2) 14.05.01 434 4 15쪽
56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1) 14.05.01 434 7 11쪽
55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7) 14.05.01 343 6 25쪽
54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6) 14.05.01 264 6 19쪽
53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5) 14.05.01 450 7 18쪽
52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4) 14.04.30 363 6 17쪽
51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3) 14.04.30 461 4 18쪽
50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2) 14.04.30 307 6 18쪽
49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1) 14.04.30 665 3 17쪽
48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6) 14.04.30 332 5 19쪽
47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5) 14.04.30 504 5 20쪽
46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4) 14.04.30 436 4 19쪽
45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3) 14.04.30 424 5 15쪽
44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2) 14.04.30 263 7 12쪽
43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1) 14.04.30 472 7 24쪽
42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2) 14.04.30 394 8 14쪽
41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1) 14.04.30 246 6 11쪽
40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5) 14.04.30 422 5 24쪽
39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4) 14.04.30 366 6 14쪽
38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3) 14.04.30 307 6 16쪽
37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2) 14.04.30 320 6 23쪽
36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1) 14.04.30 305 4 21쪽
35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4) 14.04.30 356 6 7쪽
34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3) 14.04.30 341 4 14쪽
33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2) 14.04.30 455 5 21쪽
32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1) 14.04.30 469 7 13쪽
31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2) 14.04.30 432 5 15쪽
30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1) 14.04.30 307 9 21쪽
29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9) 14.04.30 467 7 14쪽
28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8) 14.04.30 341 7 24쪽
27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7) 14.04.30 419 7 12쪽
26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6) 14.04.30 309 6 11쪽
25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5) 14.04.30 407 6 15쪽
24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4) 14.04.30 448 6 11쪽
23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3) 14.04.30 374 5 16쪽
22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2) 14.04.29 402 7 15쪽
21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1) +1 14.04.29 538 7 20쪽
20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4) 14.04.29 570 4 18쪽
19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3) 14.04.29 550 6 22쪽
18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2) 14.04.29 406 9 15쪽
17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1) 14.04.29 535 8 13쪽
16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7) 14.04.29 370 9 16쪽
15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6) 14.04.29 513 7 14쪽
14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5) 14.04.29 346 6 25쪽
13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4) 14.04.29 516 8 18쪽
12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3) 14.04.29 559 9 17쪽
11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2) 14.04.29 569 12 10쪽
10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1) +2 14.04.29 690 12 10쪽
9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9) 14.04.29 495 11 8쪽
8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8) 14.04.29 606 13 9쪽
7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7) 14.04.29 653 13 9쪽
6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6) +2 14.04.29 547 13 8쪽
5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5) 14.04.29 682 11 8쪽
4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4) 14.04.29 598 11 8쪽
3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3) 14.04.29 849 14 10쪽
2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2) 14.04.29 1,246 14 8쪽
1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1) 14.04.29 2,223 2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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